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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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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도플갱어 배틀로열
글쓴이: 작가지망생
작성일: 11-06-27 01:55 조회: 2,358 추천: 0 비추천: 0
제 1장 Human Hunting



5월. 그것은 3월과 4월의 꽃샘추위와 환절기가 무사히 지나가고 언 땅이 녹으면서 녹읍이 푸르게 지는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생명의 달. 허나, 말이 생명의 달이지 학생들에게는 입학, 혹은 재학이후 첫 학기에 치르는 첫 시험이 기다리고있는 최악의 달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5월에는 또 다른 의미로 가정의 달 이라는 여러가지 이름의 휴일과 행사들이 벌어지는 날이 많았고, 시험의 압박속에 둘러싸인 학생들에겐 그것들이 그림의 떡 같은 휴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5월 5일 어린이 날이라고 너무 긴장 풀지말고 다들 시험공부 바짝 해서 주말 뒤에 보도록 하자.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히 가정실습일을 명목으로 토요일 하루 더 쉬게 해주는거니까 주말이라고 밖에 나가 놀지만 말아라. 선생님들이 시내 순찰도 돌테니까 공부 안하고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태도 점수 왕창 내려갈 줄 알아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시험이고 뭐고 가족들과 함께 여러 행사와 특정 날을 즐기며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야하는 것이 바로 이 때인 것이다. 헌데, 지금 후덥지근한 교실에서 종례를 하고 있는 노년의 담임 교사는 그야말로 바짝 '조이고' 있었다. 아마도 기대에 부응하길 바라는 부모와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어서 빨리 종례가 끝났으면 하고 저마다 가방을 둘러메고 있는 학생들은 당장 어디로 가서 휴일을 즐길지 고민하기 바쁜 얼굴들이다.
"이 선생님은 여기가 전문계 학교라고 해서, 너희들이 전문계 학교의 학생들이라고 해서 학업을 게을리한다는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 고등학생 1학년인데, 라고 생각하면 이미 한참 늦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첫 시험이라고 헤이해지지말고 정신 바짝 차려서 공부해라.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거고, 너희들 스스로가 잘 되는 지름길이니까. 반장. 인사하도록."
긴 훈담이 끝나고 나서야 종례가 끝을 맺자 지루함에 지쳤던 학생들의 얼굴엔 하나둘씩 생기가 피어올랐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반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 학생들은 너도나도 할 것없이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담임 교사도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을 뒤따라 나섰다. 그래도 생기발랄한 모습이 보기좋은지 복도에서 뛴다고 고함을 지르거나 하진 않았다.
"흐아아아, 중학교 졸업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 첫 시험이라니...후딱 지나갔으면 좋겠네."
모두가 빠져나간 오후의 한적한 교실. 그곳에서 한 소년이 투덜거리며 뒤늦게 가방을 둘러메었다.
"가정 실습일이라…시험 공부 명목 대신으로 써먹기 딱 좋은 무급 휴가네."
담임 교사가 말했던 종례 사항을 상기하며 의미모를 말을 했다.
어차피 이곳은 전문계 학교이다. 즉 졸업후에 취직이나 전문계 대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본능적으로 공부에 담을 쌓고 지내는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런데 이 학교는 전문계라는 콤플렉스도 마다하지않고 학생들을 철저하게 공부의 장벽속에 가둬두고 있었다.
"뭐, 우리들도 졸업하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았고, 그동안 내신점수라던가 취직에 필요한 점수같은걸 미리미리 따두면 좋은건 분명하겠지만."
전문계 학생이라고 해서 대학에 가질 않는다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는건 아니다.
학업과 개인 수상 경력, 그밖에도 자격증 등을 고루 갖추고있는 모범생이라면 당연히 얘기는 달라진다.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면 그만큼 좋은 곳에 추천받을수 있고, 남은 3~4년제의 비싼 등록금 내면서 다녀야 겨우 졸업하는 대학을, 자신은 거치지도 않고 바로 다다를 수 있는 셈이다. 쉽게 말하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명문대고 뭐고 일단 일자리 부터 구하는게 최고라는 것이다.
"그래도 야자 (주 : 야간 자율 학습) 안하는게 어디야...야자까지 했으면 이 학교 학생들은 분명 반도 안 남았을거야"
소년은 신발장에 있는 자신의 신발을 집어들며 다른 국가보다 유달리 교육열이 불타오르는 모국의 교육제도를 탓했다.
세계 통계상으로 미루어봤을 때 가장 오래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것도, 가장 시험 점수에 예민한 것도, 사교육비에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도 모두 이 나라, 대한민국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고,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슬슬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어두운 복도를 내다보았다.
"벌써 다 나갔나. 하긴, 이틀도 아니고 사흘간 쉬는 황금 주말인데 당연하겠지."
자신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신나게 놀든 공부를 하든 빨리 이 사람 없는 껍데기 뿐인 학교를 빨리 벗어나는게 우선이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어서고 있는 어두운 복도를 조금 걸었을까. 소년은 발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아직 안간 애가 있나?"
딱딱딱딱─ 하고 낯익은 소리가 가까운 교실로 부터 들려왔다. 슬슬 경비원 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점검 할 시간대라 당연히 불은 다 꺼져있고 햇빛도 거의 들지않아 어두컴컴한 상태이다.
"여긴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딱딱딱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아마도 칠판에 분필로 뭔가 쓰고있는 소리겠지, 아직 화이트보드로 바꾸지않은 구식 학교를 괞히 탓하며 한 교실의 문을 살짝 열었다.
"아무도 없네."
일순, 정전이라도 온 것 마냥 딱딱딱 거리던 불규칙적인 소리는 사라졌고, 앞에 있는 교탁 주변에도 사람같은건 없다.
잘못들은건가, 아니면 이곳이 아닌건가 하고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소리가 뚝 사라지니 소년은 이상한 느낌에 무심코 교실에 들어와 칠판에 다가섰다. 딱딱딱 거리던 소리와는 다르게 진한 초록의 밋밋한 칠판은 흰 분필가루마저 묻어있지않은 허무의 공간만을 보일 뿐이었다.
역시 잘못 봤나, 하며 스테로이드-UP 인가 뭔가 하는 영양제라도 사둘까 하고 건강문제에 한창 고민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럽게 목 뒤가 서늘해지는 듯한 오싹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기분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학교에 혼자 남아있는건 그리 좋은것도 아니고, 괴담같은 것도 곧잘 학교가 배경이 되곤 했으니 느낌상 빨리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적혀있지않은 칠판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돌린 순간. 소년은 자신의 눈동자를 의심했다. 아니,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뭐,뭐야 이거."
문과 커다란 창문 위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들, 그리고 그것을 따라 벽과 기둥, 천장과 꺼져있는 백열구 전등까지 모조리 붉은색의 '문자' 가 쓰여있었다. '문자' 라고 밖에 막연한 설명을 할 수 없는 그 괴기한 필체의 언어는 마치 맞물리고 맞물려 서로 이어지는 듯 했다. 창문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이런거…없지않았나?"
부정…하려고 했지만 곧 그 사실을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없었던게 아니라 못 봤다. 낯익은 소리에 이끌려 당연히 칠판에 누군가 뭘 적고있는거겠지, 라고 생각해버린 나머지 결코 유리창이라던가 벽에 뭔가를 적고있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치 못 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의 어떤 언어인지도 모르는 기괴한 형태의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사각의 장벽속에서, 소년은 눈앞의 현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이렇고 저런 글자들이 빼곡히 쓰여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지는 채 5분도 되지않았을텐데.
"일단 경비원 아저씨한테 알려야……."
직시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면한 덕분에 급증한 신고 정신으로 인해 소년은 닫혀있던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그리고,
"…어?"
문을 열어젖힌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한없이 아래로.
하지만 소년은 그런 것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쓸 여유같은 것도 없었다. 생물 시간에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정맥이라던가 동맥이라던가, 훤히 보이는 양 팔이 한 순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하더라도, 소년의 눈 만큼은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가 여기에 거울을……?'
그렇게 생각했을때, 아마도 누군가 장난삼아 문 앞에 가져다놨을 거울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서서히 미소로 물들어갔다. 어느새 자신이 웃고있었던가? 라는 사고를 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을까.
"Hellow."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난듯한 약간 낮은 중저음이 귓가에 울려퍼졌다. 고 생각했을때는 그것과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 끝없이 떨어지듯 '그것' 의 얼굴로부터 점차 시야가 멀어졌다. 밑으로, 하염없이 밑으로.


* * *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학생은 학생답게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본분을 잘 따르지않으면 미래가 걱정되기 마련이다.
일단 대부분 학생들은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고, 또 그 꿈을 이루기위해선 필수적으로 밑바탕이 될 '자본' 과 '재능' 이 필요한 법이다.
학교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위한 준비 과정 단계를 잘 갈고닦는 일종의 수련장 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이 제일 중요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전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해버린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는 학생은, 심심찮게 한 두명씩 꼭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리고 김민혁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주말! 주말이야! 고등학교 첫 황금 주말이라고! 그러니까 미팅가자 민혁아~."
"지금이면 무려 저렴한 가격 3만 9천 8백에…아니, 공짜로 3 대 3 미팅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이거 놓치면 후회한다?"
"……."
학교를 조금 벗어나서 민혁은 한창 친구들과 주말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미팅같은건 별로 하고싶지도 않고, 고등학교 첫 시험이기도 하니까 그냥 공부하고 싶은데……."
"허어…중학생 까지만 해도 그 순수한 천진난만함을 남발하던 민혁이가 갑자기 공부라니! 우리와 함께 했던 그 부정과 비리에 뒤얽힌 비행의 나날들을 벌써 잊어버린거야?!"
"잊어버린거야?"
얼굴에 양손을 올려놓으며 경악스런 표정으로 의외라는 듯한 말을 하는 소년과, 그런 소년의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있는 또 한명의 소년. 일단 민혁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클래스 메이트들이다.
본인은 별로 신경쓰진 않지만, 다른 학생들에겐 엄청 신경쓰이는 존재들로 알려진, 그러니까 일명 바보 콤비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다.
"그건 너희들이 억지로 끌고간거잖아. 덕분에 개근상도 못 탄게 얼마나 억울한데. 그리고 성준이랑 준성이 너희 둘, 슬슬 공부 해야하지 않아? 중학생 성적 엄청 안좋았잖아, 나도 그렇지만."
"괜찮아~ 괜찮아~. 이래봬도 한다면 하는 사나이 이성준님이라고. 시험 까짓거 벼락치기 한번 하면 평균 80 점도 그냥 받겠다."
"그렇지! 벼락치기 하면 이 준성님도 한수 먹고 들어가잖냐! 어차피 전문계 학교인데 자격증 공부가 더 중요하지 시험 잘 받아봐야 뭐하겠어. 요즘엔 다 능력 위주라서 성적같은건 아무래도 좋은거야."
준성이 걱정할 것 없다는듯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했다.
확실히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성실함과 예절, 그리고 능력과 리더쉽만 있다면 대학같은 귀찮은 곳에 가지 않아도 취업하는데는 문제 없다. 물론 대한민국이 실업률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확실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확실하게 일자리를 구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첫 시험을 앞두고 미팅하러 가는 애들을 받아주는 곳이 있을리가 없지…….'
능력면은 둘쨰치고 성실함이 심히 의심되는 두 사람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잘 알고지냈듯이 당연히 서로의 성격이나 특징들을 모르고 지내는건 아니다. 그렇기에 민혁은 내심 장담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취업을 선택하면 100% 굶어죽을거라고.
"그래도 역시 공부하는게 나을 것 같아. 3년이라고는 해도 그리 긴 시간 같지도 않고…학생의 본분은 일단 공부니까."
"크으…모범생 납시었네. 풍악을 울려라! 여기 모범생이 납시었도다!"
"어이쿠 모범생 나으리! 부디 이 비행청소년들을 채찍질하여 어여삐 여겨 주십시오~."
SM 플레이에 눈을 떠버린 고등학생이라니, 여러가지 의미에서 실격 처리감이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민혁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두 사람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무슨 새디스트도 아니고…어쩄든 난 공부해야 하니까 먼저 가볼게. 장도 봐둬야하니까 조금 바쁠 것 같거든."
"어? 너네집은 장보는 날이 정해져있잖아. 오늘은 좀 너무 빠르지 않아?"
성준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게 기억은 잘 나질 않는데, 잠결에 일어나서 무심코 먹어댔던 것 같아. 이런적은 거의 없었는데…하나밖에 안남아있길래 오늘 장 봐두려고."
"혹시 몽유병 아니냐? 킥킥."
성준의 옆에 기대어 준성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럼 다음주에 봐."
"그래, 공부 열심히 해라 가짜 모범생!"
"몽유병이 분명하니 자면서도 공부해!"
익살스럽게 응원하며 배웅해주는 두 사람에게 혀를 쑥 내밀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헤어진 민혁은 곧바로 반대편 길로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집과 자주 장을 보는 할인 마트가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금방 나왔던 학교를 다시 지나치게 되었다. 시끄러운 운동장을 앞에 두고 민혁은 잠깐 멈춰 섰다.
"어이, 거기 패스! 공 빨리빨리 돌려!"
"우,오오옷! 패스따윈 없고, 필살 허리케인 슛이닷!"
"고,공이 보이지않아!"
1,2학년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었다. 으슬으슬한 꽃샘 추위나 밤낮으로 기온차가 극심한 환절기도 얼추 지나갔으니 슬슬 윗옷도 벗고 운동할 때인지. 땅거미가 저물어가는 저녁 노을 아래서 어울리지않게 축구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축구 안해본지도 꽤 됐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럽게 뒤바뀐 학습관과 생활패턴 등에 이끌려 운동을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조깅이나 체조등이 전부였고, 축구같은 격한 운동은 해본 기억이 중학교 이후로 없다. 그래서 그쪽 부류에 속하는 고등학교 친구들도 없었을뿐더러 같이 운동을 하려해도 신체적으로 차이가 조금 나는지라 수준이 맞질않아 사실상 무리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민혁은 애써 외면한채 정문을 지나쳤다. 단지 자신은 학업에 충실해야할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민혁은 운동을 싫어한다거나 다른 이들과 어울린다거나 한다는걸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걸 싫어하는 편이고, 공부나 독서, TV 시청 등을 제외하면 달리 할 만한 것도 없는게 평범할 뿐인 고등학생이다. 그래서 본인은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중학생 이후 성장이 더뎌진 몸과 잘 붙지않는 근육. 그리고 전혀 늘어나지 않는 근력과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만족스러운 공부가 되지 않았고, 그러한 것들이 마이너스 작용을 하여 스트레스가 일반인에 비해 몇 배는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쌓여갔다.
"역시 같이 놀자고 할 걸 그랬나……."
민혁은 왠지 모르게 최근부터 죽어라 공부를 해왔었고, 한번 공부를 하기로 했으면 교과서나 관련 서적, 필기를 해둔 공책까지 남김없이 챙기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이제와서 갑자기 '놀자!' 라고 소리치며 끼어들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별 수 없지. 일단 장부터 보자. 안그럼 또 굶을지도 몰라."
혼자 살고있다 자신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학생들이 혼자서 자취를 한다거나 하숙집에 얹혀사는건 익숙하기도 하지만 민혁의 경우는 조금 다른 케이스이다.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줄곧 살아왔던 집은 멀쩡하고, 개인 통장에는 취직할 때까지의 생활에 대비한 적지않은 액수의 돈도 예금되어 있다.
단 하나. 가족이 함께 살고있지 않을 뿐.
대충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인것 같다. 그의 부모가 사업상의 문제로 외국에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이 부모의 손에 끌려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같이 출장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민혁은 3년간 계속 혼자서 지내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요리라도 미리 배워둘걸……."
그렇다면 최소한 반찬정도는 혼자서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을텐데. 하고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어느새 할인 마트 앞에 다다랐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 어지간히도 힘들었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민혁은 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하다~."
빵빵한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게 온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짜릿한 쾌감.
힘들게 운동하다가 얼음물을 마시는 것 처럼, 땀범벅이 된 그에게 있어서 이 에어컨 바람은 오존층 파괴고 뭐고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 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장보는 남자는 생활력이 넘친댔지. 생활력이 넘치면 여자한테 사랑받는다고 했고."
생활력.
이 단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총 세 가지 부류로 나뉘게 된다.
첫째는 자취생 혹은 혼자 사는 학생들이고, 둘째는 모든 집안일은 도맡아하는 전업주부, 셋째는 총각이나 처녀 혹은 기러기 부모의 경우 이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자면 남의 도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정, 혹은 본인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말한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가 자급자족식의 생활을 하고있으며, 혹은 그에 준하는 생활을 별 탈없이 해내고 있다.
그리고 민혁은 첫 번째에 준하는 생활력을 가진 '외딴 아들' 이다.
'고아도 아닌데 혼자인건 좀 아니지.'
가족이 출장을 가버린 덕분에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그에겐 생활력을 필요로 하는 거친 환경이 덜컥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생활력의 필수 요소라 함은 당연히…라면이지!"
그의 손에 쥐어진 컵라면의 비닐 소재의 포장지가 백열등 불빛을 반사하며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었다.
"집안 일같은건 아무래도 좋은거야. 그저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돼! 그게 바로 '생활력' 인거지!"
생활력이란건 꼭 집안 일을 잘 하는 것만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는데 별 탈 없으면 그것이야말로 뛰어난 생활력인거라고, 민혁은 그렇게 믿고있었다.
민혁이 생활력과 생존력의 크나큰 오차 범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불러 세웠다.
"오, 민혁이네. 너도 장보러 왔구나."
검은색 야구모자를 눌러쓴 키 큰 남자, 아니 또래쯤 되보이는 소년이다.
"왠일로 일찍 장보러 왔네. 지난번에 사뒀던 라면은 그새 다 먹은거야?"
김도훈.
평소 바보 콤비와 민혁과 같이 다니는 일당 중에 한 명이다. -라고 같은 학급의 친구들은 생각하고 있다-
큰 키에 근육도 탄탄하게 붙은 웬만한 운동선수 못지않을만큼 강인하고 튼실한 체격의 소유자이다.
"어, 잠결에 일어나서 무심코 한 두개씩 먹어버렸나봐. 보관 박스가 텅 비었길래 좀 이르긴해도 사두려고."
"그렇구나. 이제 슬슬 성장기가 오는거야? 많이 먹어대는거라면 의심해볼 여지가 있지."
"라면 먹고 키 클리가 없지. 근육도 안붙는걸."
"난 잘만 붙던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도훈은 살 것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느 집의 외딴 아들과는 다르게 도훈은 집안 일을 직접 할 줄 아는 가장과도 같은 역할을 맡고있다.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친누나는 대학생활로 바쁜 실정이니 사실상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까지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약간 폼이 넓은 교복 안에 감춰진 저 탄탄한 근육들도 모두 그가 만든 균형잡힌 영양식과 꾸준한 운동덕분이다. 라면이나 먹는 민혁과는 생활부터가 천지 차이인 셈이다.
'그래도 청소나 빨래같은건 스스로 할 줄 아니까 꿀리진 않아!'
자신이 할 줄 아는 모든 가사와 일을 떠올리며 애써 태연한척 해본다.
"아, 그러고보니까 아까 집에 잠깐 들렀을때 TV에서 이상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더라."
도훈이 갑작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바꾸자 민혁은 솔깃해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뭐냐, 미스테리 X 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최근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징후를 토대로 특종감을 발견했다면서 왕창 떠들어대고 있었어."
"특종감이란게 뭔데?"
프로그램 제목부터가 딱 봐도 알듯한 '특종감' 이었지만, 그래도 민혁은 예의상 경청자의 태도를 지켰다..
"최근들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자신' 이 보이는 사례가 심심찮게 있었다나봐. 얼핏 보니까 그런 현상을 체험한 사람들의 거주지로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조사를 해보는 것 같던데, 뭐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네."
"또 다른 자신이라면…복제 인간이라던가, 그런거?"
매끄럽지 못한 도훈의 끝맺음에 민혁이 영화나 소설속에나 나올 만한 예를 들어 말했다.
"왜 있잖아. 복제 소라던가 복제 양같은거. 동물들도 복제 실험에 성공하는 마당에 인간이라고 성공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일리는 있는데, 보통 그런 경우 국가 사유 재산및 기밀 사항으로 보호받지않던가. 인간이랑은 조금 거리가 멀다고 보는데……."
"그것도 그러네."
확실히 그 말 그대로 국가에서 시행되는 프로젝트라면 말할 것도 없이 국가 기밀에 속하며, 당연히 그 보안 시큐리티 레벨은 최상급일 것이다.
설령 클론체가 실험에 성공했다 한들 바깥에 마음껏 활보하고 다닐리도 만무하고, 그런걸 상층부에서 가만히 내버려둘리가 없다.
이렇다 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자 도훈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럼 혹시 도플갱어 같은건 아닐까?"
"어, 나 그거 들은적 있어. 한 세계에 자신과 똑같은 외형을 지닌 또 다른 존재가 최소 한 명 이상 존재한다는거. 그거 아냐?"
"최소 한 명 이상? 난 그냥 한 명만 있는줄 알았는데……."
"평행이론이랑 비슷한 논리인데, 도플갱어의 경우 운명이 비슷한게 아니라 외형만 비슷해서 한번에 전부 다 같은 운명을 공유할 순 없으니 머릿수가 많은거겠지. 어떤 사이트에서 봤어."
참고로 민혁의 취미는 하루 1시간 인터넷 서핑이다.
"네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구나, 몰랐네."
"그냥 어떤 사이트에서 본거야."
의외라는 표정의 도훈을 뒤로 하고 종류별로 라면을 하나씩 집으며 민혁이 말했다.
가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라도 알고지내는 사람이 이상한 부류에 관심이 있거나 특기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흔히 둘러대는게 어디서 봤다거나 누가 알려줬다고 하는게 일반적인 대처법이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도플갱어는 진짜와 마주치면 그 진짜는 죽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그리고 그 도플갱어가 진짜 행세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뭐, 아무렴 어때.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에 진지해지는 것보단 당장 중간 고사 준비나 하는게 더 효율적이잖아."
"그렇긴 한데. 준성이랑 성준이는 네가 공부만 한다고 질겁하던걸. 고등학교에 들어서 좀 어두워진 것 같다고도 했고……."
성준과 준성을 만나고 왔었는지 도훈도 민혁의 생활을 콕 집어 말했다.
민혁도 노는걸 싫어하는건 아니다. 단지 남들이 공부만 한다고 걱정해주는게 이상하게 이해가 안될 뿐이다. 공부를 하지않으면 자연스럽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어렵고, 취업조차 못 할거라고 민혁은 그리 믿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쪽의 걱정같은건 아예 신경쓰지않기로 했다.
"괜찮아. 시험 끝나면 나도 좀 한가해질테니까. 특별한건 없으니까 신경쓰지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며 도훈은 옆에 있던 통조림을 하나 집어들었다.
슬슬 할 얘기는 끝난 것일까, 민혁은 은근슬쩍 옆에서 물건을 고르고있는 도훈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라면을 봉투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라면 언제 어디서든 수다를 떠는게 기본이겠지만, 이런 얘기들만 해대서야 같이 있는것도 조금 불편해질 따름이다. 아마도 그것을 피차일반 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다 골랐으니까 먼저 가볼게. 도훈이 너도 성준이랑 준성처럼 너무 놀지말고 공부 좀 해둬."
"아,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짤막한 충고가 섞인 짧은 인사를 끝낸 민혁은 손을 살짝 흔들어주는 도훈을 뒤로 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3만 5천원입니다."
"젠장, 라면값이 또 올랐어……."

* * *

도훈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민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현관문을 비틀어열었다.
"으아…슬슬 더워지니까 땀이 진득하게 들러붙네. 아직 5월 밖에 되지않았는데 수도권 지역이 그런가."
가지각색의 종류별이 다양한 라면들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마루에 대충 내려놓으며 민혁이 한탄하듯 말했다.
수도권 지역은 여름과 겨울의 극과 극이 되는 계절에는 온도변화가 제일 빨리 오는 지역이다. 어찌보면 이런 기온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마도 지금쯤 남부지역의 지방이나 섬 같은 곳은 아직도 선선한 5월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7,8월이나 12,1월 같은 계절이 뚜렷한 기간에는 남부고 북부고 상관없지만, 이런 애매한 기간에는 북부 지방이 괜시리 싫어진다.
"샤워해야지…아, 선풍기도 꺼내서 씻어놔야겠네."
장롱속에 처박아둔지 일년도 채 되지않은 선풍기를 벌써부터 꺼내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민혁이다.
이런 더운 날에는 시원한 냉수로 샤워를 한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한걸 먹는게 최고지만, 민혁의 경우 전기세도 최대한 아끼는 타입인지라 에어컨이 있어도 감히 켤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하물며 선풍기라고 전기세가 많이 나가지 않을까. 비록 에어컨보다 5배는 적게 나간다고 하지만 그것도 적당한 시간대에 한해서이다. 몇 시간이고 왕창 틀어두면 요금명세표의 액수가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컵라면이 개당 700원쯤 했었는데, 요즘은 900원에서 천 원 대를 웃돌고 있는 것만 봐도 물가 상승의 심각성은 슬슬 고조되고 있다.
몇 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컵라면 같은 기호식품의 물가가 대폭 상승했다는건 민혁같은 이들에겐 크나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회선생님이 인플레이션이 어쩌고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역시 요리 배워둘걸."
땀에 절은 진득한 옷을 빨래통에 던져넣으며 진심으로 후회한다는듯 중얼거렸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시절이었고, 머리가 조금 굵어졌다 싶은 중학생 때는 부모가 동생을 데리고 외국으로 가버렸다.
요리는 커녕 집안일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들 하나만 남겨둔채 훌쩍 떠나버린 무대포 부모때문에 아직도 이런 생활이다.
샤워기로부터 나오는 시원한 냉수가 머리위에서 뿜어져내리며 기분좋게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덥고 찝찝하고 후끈했던 기운이 한번에 날아가듯 차갑고 시원한, 그리고 매끈매끈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뻗어나갔다. 극이 극으로 바뀔 때의 짜릿한 쾌감. 마치 여름이 갑자기 겨울로 바뀌는듯한 위화감이지만, 오히려 그것은 기분좋은 변화라고 민혁은 그 느낌을 싫어하지 않았다.
온천에 있는 노인들같은 표정으로 기분좋은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디 클렌징을 하고 머리를 감았다.
잠시후, 샤워를 끝낸 민혁은 하반신에 타월 한장만 감은채 마루에 있는 라면 봉지들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부엌의 냉장고에 음식이나 반찬 대신 라면들을 죄다 쑤셔박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라면들을 계속 집어넣던 민혁은 갑자기 멈추더니,
"그러고보니 라면들이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진거지?"
갑작스럽게 생긴 의문점.
음식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한 민혁인지라 라면을 사두었을때는 하나씩 먹으면서 가끔씩 갯수를 확인하곤 한다. 한달에 두번정도 장을 보니 그 간격은 대략 보름 정도. 민혁이 가진 의문점은 라면의 갯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줄어서 평소의 간격에 다소 어긋난채 장을 봤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13일에서 17일 사이에 장을 보는게 정상인데……."
그것은 일종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다.
딱히 정해놓은건 아니지만 달마다 28일과 31일 사이의 3일간의 차이가 있기에 민혁은 15일에서 +,- 2일의 간격차를 두는 것이다.
한번에 구입하는 라면의 갯수는 대략 40개 가량. 야참 포함 하루에 3개씩 꼬박꼬박 먹는터라 양이 안맞을리도 없고, 장 보러 가는 날도 대개 정확했다.
"서,설마……!"
좀도둑인가!! 홱 하고 고개를 돌린 민혁은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옷장의 제일 밑 부분에 숨겨두었던 통장과 도장, 그리고 비상금이 들어있는 지갑등을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손 대거나 뒤진 흔적은 없는듯 했다.
"다행이다…통장까지 가져갔으면 진짜 난감할 뻔 했어."
아닌게 아니라 통장 뒷면에는 떡하니 비밀번호로 보이는 듯한 4자리 숫자가 쓰여있었다. 척 봐도 비밀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노인들이나 할 법한 뻔한 표시이다.
"흠, 옷장이나 서랍같은걸 뒤지진 않은 것 같은데."
일단은 혼자 살고있다. 민혁이 혼자 살고있다는 것 쯤은 좀도둑이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것이다. 왜냐면 고등학생인데다 항상 도서관이나 학교에 박혀있으니 집에는 대개 늦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열쇠같은걸로 문을 잠궈두는 편도 아니니 전문 털이범은 아니더라도 좀도둑이 들 확률이 아주 없는건 아니다.
"설마 숨어사는 도둑 같은 건 아니겠지."
'Creep in my apartment' 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동영상 포털 사이트에 꽤 화제가 된적이 있었던 동영상을 떠올리며 민혁이 기겁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몰래 숨어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최근이라면 확실히 일리있는 말이다. 알다시피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으니까.
"수색…해봐야하나?"
타월로 하반신을 가린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방을 주욱 둘러보았다.
5평이 될까말까 한 방에는 얇은 이불이 세 개나 쌓여있는 2층 침대, 그 옆의 창가에는 컴퓨터와 책이 잔뜩 쌓여있는 책상. 그리고 벽을 따라 일자로 세워진 옷장과 옆에 있는 서랍장이 전부이다. 장롱은 옆의 안방에 있으니 확인하기 위해서는 방을 옮겨야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숨을만한 곳은…없는데."
선풍기도 미리 꺼내놓을겸 옆방의 장롱도 뒤져보자는 생각에 안방으로 향했다.
하얀색과 핑크색이 감도는 밝은 무늬의 벽지로 꾸며진 인테리어의 안방은 부부용으로 쓰기엔 안성맞춤이었는데, 이는 민혁의 부부가 얼마나 잉꼬부부였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반면, 열어젖힌 장롱은 오랫동안 청소하지않아 케케한 먼지가 풀풀 날리며 어두컴컴한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안쓰는 물건을 모아둔 상자와 아무렇게나 박아둔 구식 선풍기가 1년간 착실하게 먼지를 저금했는지, 테두리에는 본래의 색도 알아보기 힘들만큼 먼지가 쌓여있었다.
"역시 기분탓인가. 잠결에 일어나서 한두개씩 먹었던 것 같기도 한데…하지만 한번에 10개씩 없어지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고……."
오죽했으면 어린이날을 앞두고 이런 쓸데없는 탐정놀이나 하고있을까.
자신의 방이나 안방 말고는 딱히 누군가가 숨어있을 만한 장소같은건 없다. 설마 세탁기나 부엌의 싱크대 밑에 숨을리는 만무하고, 애초에 그런 곳은 안 들킬래야 안 들킬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조사 대상에서 패스된다.
보통 사람같으면 라면 몇 개 없어진걸로 이렇게 심각해질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수도 있겠지만, 민혁의 경우 집안의 쥐구멍까지 뒤져서라도 뭔가 발견하지 못하면 찝찝해하는 타입이다. 기간이나 수량에 맞추는 이상한 습관도 사실은 완벽주의 비슷한 집착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 했다.
"황금 주말이니까 선풍기는 내일 씻어둬야지. 일기예보에서도 날씨는 좋다고 했으니까."
거실앞 베란다에 선풍기를 세워둔 민혁은 일찍 자기 위해 이부자리가 펴져있는 침대에 누웠다.
꽤 덥긴 해도 밤이나 새벽에는 그럭저럭 선선한 편이라 이렇게 얇은 이불로 이부자리를 펴두면 덥지도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다.
"……."
방에 들어오면서 불을 꺼서 그런지 제대로 보지 못 했다.
"이불 안폈는데……?"
옷장을 뒤질 때만 해도 이불은 분명히 잘 정돈되있었던 것 같다.
"아침에 개는걸 깜빡했나보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샤워후의 개운한 상태에서 학업에 지친 사춘기 소년의 몸에는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얼마나 잤을까. 주변은 온통 어둠으로 덮혀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다.
고요와 정적만으로 가득한 현재는 아마도 새벽쯤일까. 허나 아직까지 창문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지않으니 자정을 넘어선지 얼마 되지않은 시간대일 것이다.
"아, 목 말라……."
밥도 안먹고 일찍 잠들었던 탓에 목이 몹시 말랐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 민혁은 떨어지다시피 침대에서 내려와 비틀비틀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불 한점 켜져있지않은터라 문턱에 발을 찧기도, 벽에 머리를 박기도 했지만 여차여차해서 부엌으로 들어와 기어코 물을 마셨다.
"흐아…시원하다."
텁텁한 입과 목의 갈증이 한번에 사라지자 비몽사몽간에도 기분좋게 실실 웃었다.
물병을 냉장고에 도로 넣어두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 민혁은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음……?"
침대의 중앙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민혁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더블 침대도 아니고 일인용 침대에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딱 이런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한 침대에서 두 명이 나란히 누워있을때 느껴지는 온기와 무게감, 그리고 혼자 사는 소년만이 느끼는 위화감과 이질감. 어둠속에서 민혁은 손을 움직여 주머니속에 넣어둔 휴대폰을 찾았다.
알람용으로 쓸 때가 대부분이라 잠들 때는 항상 들고다니는데, 다른건 몰라도 스피커 성능 하나만큼은 좋아서 기종을 바꾸지 않고 몇 년 정도 쓴 것 같다. 폴더형 휴대폰의 덮개를 열어젖힌 민혁은 옆을 슬쩍 비춰보았다.
"누구세요……?"
너무나도 뻔한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도플갱어."
핸드폰 디폴트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광원 속에서 '그것' 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대답했다.
"아, 그래요……?"
납득해버렸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인사까지 나누고 잠들어버렸다.


침대의 가장자리에 있는 민혁의 얼굴로 아침 햇살이 비춰들었다.
누군가 미리 열어두기라도 했는지 활짝 열려진 창문은 어느새 신선한 아침 공기로 후덥지근한 내부를 환기하고 있었다.
약간은 서늘한 아침공기, 그리고 이상하게 볼 주변이 따뜻해졌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미묘한 감각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후아……."
"후아…?"
서늘한 공기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체온, 그리고 침대 매트리스가 약간 내려간듯한 무게감. 무엇보다 바로 옆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는 살과 살의 마찰성 다분한 간섭.
따뜻한 체온도, 무게감도, 그리고 알게모르게 불어오는 숨소리도 모두 그곳에서 느껴졌다.
그러니까, 바로 옆자리에서.
"뭐,뭐야 이거…아니, 이 사람……."
이상태로 잠들었던 것일까. 서로 고개를 마주본채, 편안한 표정으로 기분좋게 자고있는 소년이 있었다.
잠결이라 그런지 조금은 흐트러진 삐죽한 앞머리, 그리고 귀를 덮고있는 끝이 삐죽한 생머리. 별로 특징같은건 찾아보기 힘든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약간은 진한 쌍커풀이 조금은 매력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 민혁과 같은 침대에서 기분좋아보이는 아침잠을 자고있다.
"……."
어…, 하고 잠깐동안 짧은 신음소리를 내던 민혁은 머리맡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폴더가 열려진채로 절전모드가 되어있었는데, 작동시켜보니 아침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30분은 늦었다.
"일단 아침부터 먹어야… 아니지!! 누구야 이 사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민혁은 이불을 확 걷어치우며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자고있는 소년을 노려보았다.
어제의 기억을 곰곰히 되새기며 민혁은 새벽쯤에 물을 마신뒤 곧바로 잠들었던 때를 기억해냈다. 그러니까, 잠들기전에 봤었던 것 같다.
"그땐 너무 피곤했었나…일단 신고해야지! 설마 숨어 사는 도둑일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설마가 진짜일 줄이야! 불법침입에 절도, 그리고 집주인과 함께 불법으로 동침을…무단 동침은 어떤 범죄에 속하더라?"
성추행? 성희롱? 인권침해?
어느쪽을 생각해도 좀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일단 같은 남자끼리니까 기본적으로 이성과 이성에 해당하는 성범죄가 적용될리는 만무하고, 애초에 나이대도 비슷해보이는 소년이 다른 소년과 같이 잤다고 해서 성범죄에 속할 이유같은건……
"충분히 있어! 설마 호모같은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어제 밤에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짓을 한거야?!"
빠르게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불법 침입자를 노려보는 민혁. 그런 죽일듯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쿨쿨 잘만 자고 있는 상대방은 심적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설마 내가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한건 아니겠지? 아닐거야. 나같은 녀석을 노릴 여자도, 남자도 없는걸!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 잡고 무슨 할 짓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건 왜일까, 코를 훌쩍이며 눈을 비비면서 민혁은 휴대폰의 버튼을 입력했다.
"신고해야지. 호모든 불법침입자든 숨어사는 도둑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집에 있으면 곤란하다고!"
같이 자는건 더더욱 곤란하고!
다급한 마음에 몇번이고 112를 잘못 누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통화에 성공했다.
-네, 중앙 경찰서입니다. 아침부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예? 당황하지말고 제대로 말해보세요. 뭐 아침 댓바람부터 강도라도 들었답니까?
"비,비슷한건데…그러니까, 그거에요!"
-뭔데요?
"숨어사는 호모가 멋대로 저와 무단동침을 했어요!!"
-…….
뿌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통화상 들려오는 잡음일까.
한참동안 대답이 없다가 곧 피곤에 절은듯한 경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쪽 말은 웬 정신나간 변태자식이 멋대로 집에 처들어와선 숨어 살다가 오늘은 같이 잠을 잤다?
"비,비슷해요!"
-비슷하고 자시고 그게 말이 됩니까?! 경찰이 무슨 마약 처먹고 헛소리 지껄이는 정신나간 놈 맞장구나 처주는 직업인줄 아십니까! 새벽부터 출근해서 기분 더러운데 이딴 장난전화는 뭐하러 합니까!
"장난전화가 아니라 진짜에요!"
-거 아침부터 욕나게오게 하시네, 그렇게 사람이랑 통화 하고싶으면 114로 전화걸어요! 거기 아가씨들 목소리가 여기보다 더 죽이니까!
새벽부터 출근한 불쌍한 근로자의 처절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찢을듯이 민혁의 귓가를 때렸다.
그렇게 윽박지른 경찰은 한마디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민혁은 허탈한 심정으로 힘없이 휴대폰을 떨궜다.
확실히 정신나간 소리라는건 알고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3종 범죄를 이리도 친근하고 가까이, 그리고 눈에 띄게 저지르는 범죄자는 보기 드물테니까.
범죄자와 동침이라니, 헛웃음밖에 안나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우선은 식칼이라던가 창고에 박아둔 야구방망이라도 들고오는게 현명한 판단일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3종 범죄자 처단 방법이 무려 서른가지가 넘게 떠오르며 두통까지 유발했다.
"신고가 안먹히면 내가 때려잡아야지."
어느새 이불을 돌돌 만채 에벌레 고치같은 형상으로 자고있는 상대방은 아침 햇살이 드리워져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았다.
민혁은 옆방으로 냅다 뛰어가서 구석에 박아둔 야구방망이를 들고왔다.
"일단 불법침입죄로 한대!"
사람을 때린다는건 엄청난 죄책감과 뒤책임이 따르는 것이지만, 이런 경우 민혁은 애써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며 주저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퍼엉! 하고 충격에 이불이 조금 퍼지는 소리와 어딘가 통통한 부분을 때린 것 같은 감각이 짜릿하게 손을 타고 올라왔다.
"찰지...아니, 난 S 속성 같은건 없는데…근데, 안 일어나네."
일반인이라면 자다가도 두들겨 맞으면 번쩍 눈이 뜨이는게 정상이건만, 이 정체불명의 소년은 그 얇은 이불로 어떻게 방어라도 한건지 잘만 자고있다.
"설마 자다가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타입같은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깊은 잠을 자는 타입이다. 늦게 자든 일찍 자든 한번 잠들면 수면의 포근함과 평안함에 둘러싸여 도통 헤어날줄 모른다는 궁극의 늦잠형 타입. 적어도 학생으로써는 실격인 타입이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지."
수도권 지역은 아직 5월이라해도 제법 더운건 사실이다. 하지만 환절기가 완전히 지나간건 아닌지 기온의 차이가 어느정돈는 있다.
때문에 기본적인 세면이라던가 목욕의 경우 차가운 물보다는 따뜻한 물로 해야 감기에 걸리지않는다.
"침대를 좀 버리겠지만, 어차피 한번쯤은 청소해야했으니까."
민혁의 손에는 얼음장같은 수돗물이 한가득 담긴 대야가 들려있었다.
"침대로 씻는 김에 선풍기도 씻어버리자!!"
아침의 기상을 알리는 일갈성과 함께 시원한, 어떤 의미로는 죽도록 차가운 냉수가 큰 대야를 떠나 얇은 이불로 허술한 방비를 펼친상대방의 몸을 덮쳤다.
흡사 해일이 사람을 덮치는 한 장면을 보듯, 한번에 쏟아진 물세례는 면 소재의 이불 틈을 빠르게 투과했다.
아마도 틀림없이 이불을 덮고있는 이의 몸에 빠짐없이 냉기가 침투했으리라.
"으음……."
반응이 있었다.
'꺠어난 것 같으니까 이제 따끔해서 혼을 내서 쫓아버리면 되겠지.'
사실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알고보면 불쌍한 법이다.
쫓아보내긴 할 지언정 신고까지는 역시 심한 감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민혁이기에 그는 나름대로의 최선책을 택했다.
"저기요? 일어나봐요!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와선 남의 침대에 같이 자는건 무슨 경우에요!"
사람에게 무언가 잘못했다는걸 알렸을때는 먼저 따끔한 한마디가 한 수 먹고 들어간다.
무조건적으로 소리만 빽뺵 질러대봐야 오히려 배째라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기때문이다.
"아, 그랬지. 여긴 내 침대가 아니었지."
"그럼 침대가 있었단말이야?! 아니, 그보다 침대가 있으면 당연히 집도 있다는 얘기인데……?"
당황한 민혁을 앞에 두고 정체불명의 소년은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왜 2층 침대로 올라가는건데요!!"
"그야 여기가 내 침대니까."
"절대 아니야! 거긴 제 여동생 자리거든요!
"지금은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잠깐, 그걸 댁이 어떻게 알고있어요?"
"그야 너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뭔가 미묘하게 들어맞는 논리이다.
확실히 민혁의 집에는 가족 사진은 여기저기 한두개씩 놓여있어도 정작 있어야할 가족들은 없다.
남이 보면 마치 큰 사고를 겪어서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고인이 되버린 듯한, 그런 느낌마저 줄 수 있는 휑하니 비어버린 집구석 때문에 그런 논리정돈 간단하다.
"아,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왜 여기 있는지나 말해봐요! 지금 이거 불법 침입에 라면 훔쳐먹은 절도죄까지 적용되거든요?"
"서른 개 밖에 안 먹었어."
"라면 갯 수가 중요한게 아니거든요……."
"3주 밖에 안 있었어."
"여기 숙박 시설 아니거든요!"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태연한 표정으로 침대에 메달려있는 이 소년을 상대하고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게, 여간내기가 아니다.
신고 당하거나 몇 대 두들겨 맞고 쫓겨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어쩜 저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건지 민혁은 소년의 얼굴이 철판으로 만들어진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우…머리야…, 좋아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신고도 안 할테니까 당장 나가요. 누가 보면 엄청 오해한다구요."
"아까 엉덩이를 때린 걸 봤어도 충분히 오해했을거야."
"역시 머리통을 칠 걸! 으으…두통이…, 알았으니까 좀 나가요, 나가!"
무표정으로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태연한 그의 모습에, 민혁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침대에 메달려있는 소년을 떼어놓았다. 전생에 매미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찰싹 달라붙어있는게 떼어내는데 애 좀 먹었다.
"난 나가면 안돼."
이번엔 바닥에 큰 대자로 누우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여기 우리 집이거든요. 그렇게 나가기 싫으시면 교도소에서 평생 계시던가!"
들어오는 사람 안 말리고 나가는 사람 아쉬워하는게 교도소다.
일이란 일은 잔뜩 하고 삼 시 세끼 넉넉하게 식사도 제공하니 그 얼마나 훌륭한 숙박시설인가. 역시 이런 사람은 그런 곳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이제야 겨우 존재인식에 성공했는데…이대로는 못 나가."
"존재…뭐요?"
혹시 4차원적으로 약간 이상한 모습을 보여서 교도소 대신 언덕위 하얀집이라도 들어가고싶은 것일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민혁은 소년을 바닥에서 떼어내는 것을 멈추고 물었다.
"그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다 체하는 소리에요?"
"존재인식. 그러니까 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정신감응을 막고있던 세계의 흐름과 대다수 인간들의 고정관념, 그리고 또 다른 자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두려움을 없앤 것을 말해. 흔히 말하는 통하는 사람들끼리 텔레파시 비스무리한게 성공한거라고 보면 돼."
"역시 교도소 말고 정신병원이 어울릴 것 같네요. 가까운 정신병원이 몇 번이더라…114 누나 목소리가 죽여준다고 했으니까 한번 전화해봐야겠네."
바닥에 달라붙은 껌처럼 납작하게 누워있는 소년을 뒤로 하고 민혁은 도로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의미심장한 말은 계속되었다.
"그 애도 올거야. 어느 쪽이든간에 존재인식에 성공하면 자동적으로 그 정보가 할당되어 본체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니까. 자동 처리 시스템 같은건데, 일반인들은 느낄 수 없는 본체와 우리들 사이에 연결된 가느다란 끈 같은 것으로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지식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 물론 어느 한 쪽이 원하지않으면 차단도 할 수 있지만."
"아아, 잠깐만 기다려봐요. 114 누나 목소리좀 더 듣고 병원에 연락해볼게요."
"……."
민혁의 느긋한 태도가 뭔가 마음에 들지않았는지 무표정했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막 민혁이 통화를 끝냈을까. 바닥에 바짝 엎드려있던 소년은 어느새 민혁의 뒤에 서서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으 노려보는 듯한 어린이의 눈빛이, 그의 눈동자를 단숨에 꿰뚫어보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뭐,뭐에요?"
원래 이런 무서운 눈빛을 하고있어야할 사람은 저 쪽이 아니라 이 쪽일텐데.
뭔가 미묘하게 엇갈려버린 처지를 탓하며 민혁은 알게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고등학생이긴 해도 그는 격투기라던가 전문 운동같은건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이 갑자기 저런 무서운 눈빛을 해대며 한껏 분위기를 내면 이상하게 휩쓸리기 마련이다.
"이건 정말 심각한거야. 후회하기 싫으면 잘 들어둬."
"심각하다니…, 그런 정신나간 얘기가 어딜 봐서 심각하단거에요. 애초에 그 쪽이 우리집에 멋대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더 심각한 얘긴데 되려 화를 내면 어쩌자는……!"
"최악의 경우 네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어."
"…예?"
주변 사람이 다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멋대로 집에 침입한 사람이 난데없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얘기들만 잔뜩 늘어놓다가 갑자기 주변인을 거론한다.
뭔가 앞뒤가 안맞고 그럴 이유같은 것도 없다. 심지어 이 얘기를 믿을 수 있을만한 타당한 근거라던가 명분 마저도 없다,
민혁은 애써 신경쓰지 않는 것 처럼 말했다.
"그런걸로 겁 줘봐야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일단 병원에 연락해뒀으니까 얌전히 실려가던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나가요. 괜히 이상한 얘기 꺼내지 말고."
"아니, 듣지 않으면 진짜 후회 할거야. 그리고 내가 이 집을 나가서 너와 떨어지면 더더욱 후회하게 될 거야."
"아, 진짜…보자보자하니까.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상한 얘기들을 늘어놓는지는 모르곘는데, 어쩌다 맛이 갔는지는 몰라도 정신나간 소리는 병원에나 가서 해요!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질수도 있다니, 그런 말은 요즘 같은 시대에 협박범들도 안할 말이네요! 그리고 그 쪽이 나가도 전혀 후회할 일 없으니까 당장 나가요!!"
처음 볼 때부터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민혁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독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민혁의 격한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의 소년은 움직이려 하지않았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이상한 소리는 계속 되었다.
"우리들도 응당 책임져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본체인 너에게 먼저 말해두는거야. 우리들이 아니면 제일 먼저 표적으로 노려질 것은 너일테고, 설령 우리들이 잘 지켜낸다고 하더라도 네 주변인들이 다치겠지. 그렇기때문에 내가 없으면 후회 할 거란 얘기야."
"그러니까 전혀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애초에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느니, 주변인들이 위험해진다느니 삼류소설을 쓰고있는거에요? 외계인? 괴물? 테러리스트? 도플갱어?"
"그래, 도플갱어."
속사포처럼 욿어대는 민혁의 말에 장단을 맞추든 태연한 대답이 들려왔다.
"도플…뭐요?"
"도플갱어.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잊어버리다니 놀라운 기억력이네."
어제 도훈에게서 들었던 도플갱어를 무심코 말해버렸는데, 설마 이런 대답이 나오리란 생각은 못 했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민혁이 말을 이었다.
"도플…갱어라면, 어제 도훈이가 얘기했던 그거 같은데…, 그보다 도플갱어라면 진짜도 있을거 아니에요. 그 진짜가 누구에요?"
"그야 당연히 너지."
순간 민혁은 너지 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는가 하고 외국인을 잠깐 연상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설마 저는 아니죠?"
조심스럽게 질문한 민혁은 부디 '걱정마, 너지라는 사람이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오길 바랬다. 단지 그뿐이다.
"너 말고 여기 누가 있는데?"
"그렇다는건 그 쪽이 도플갱어라는거?"
"말했잖아. 내 본체가 너고, 네 도플갱어가 나. 즉, 우린 서로 연대관계라는거지."
"서로 남남인 주제에 멋대로 연대관계 같은거 갖다붙이지 마요! 그리고 도플갱어랑 진짜는 아주 닮았다던데, 저랑 그 쪽이랑 하나도 안 닮았어요."
확실히 눈 앞의 소년과 민혁이 닮은 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민혁의 경우 관리도 별로 안하는터라 약간 좋지않은 피부, 전혀 관리하지않아 미용실에서 잘라주는대로 다니는 헤어스타일, 거기다 범생이마냥 쓰고다니는 검은 뿔테 안경. 그 안경이 절반은 가리고있는 그저 그런 이목구비.
그런 반면,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고있는 이 소년은 축 내려간 스트레이트 머리가 이마와 귀를 덮고있었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적셔진- 머리 밑으로 보이는 희고 고운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거기다 눈은 매섭게 살아있어 약간은 카리스마틱한 느낌을 주는 그런 타입의 소년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혀 닮지않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내가 도플갱어라는 사실은 확실해. 도플갱어는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 부터 본체와 같은 외형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본체가 특정한 조건이나 환경, 혹은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해서 외형에 변화가 생겼을 경우 도플갱어와 약간 모습이 다르기도 해. 그리고 존재인식 감응에 성공한 시점부터 넌 이미 본체 확정이야."
"확정이라니, 내가 무슨 죄지은 것 도 아닌데…잠깐만. 특정 조건이나 환경, 행동에 따라 외형이 변화되었다면…나도 잘만 했으면 저렇게 변했을수도 있다는건데, 인생을 헛살았어!!"
친구들이 잔뜩 꾸미고 놀 때 이상하게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결국 제대로 관리할 겨를도 없었고, 관리 할 줄 도 몰랐다.
이런 화장품이 좋고 저런 세척제가 좋다. 어떤게 어디에 좋은건지, 어떤건 어디에 쓰이는 건지 셀 수 없는 화장품과 피부미용 상품들이 공허해진 머릿속을 속속 스쳐지나가고, 미용실에서조차 주문 받기를 포기한 막잘라 스타일만 고수하며 살아왔던 것이 천추의 한처럼 느껴졌다.
관리만 잘 했었어도! 하고 악을 쓰며 바닥을 맹렬한 속도로 구르는 민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도플갱어는 말을 이었다.
"글쎄, 외형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문제는 존재인식 성공했느냐 못 했느냐이지. 물론 난 성공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소년은 머리에 묻은 물기를 가볍게 털어냈다.
"그럼 그 존재인식 이란건 뭔데요? 전 아직도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하나도 모르곘거든요, 도플갱어고 뭐고 "
"본체와 그 본체의 도플갱어가 서로 존재를 느낄 수 있게끔 각인시켜주는 일종의 정신적 작업이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서로 이어주는거라고 보면 돼. 평소에는 서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각각의 면에서 서로 반대되는 면을 우연찮게 목격했을시, 혹은 특정한 조건을 달성했을시에는 자동적으로 서로의 존재가 뇌에 각인되어 인식이 가능해지는 현상이지. 나같은 경우에는 본체인 너의 기를 느꼈고,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함께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존재인식 감응 작업을 시도했었지. 그리고, 아마도 기억상으로는 어제 성공한 것 같아."
아, 그렇구나.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민혁을 보며 소년은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해했나?"
"정신과 상담원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생각뿐이네···."
"뭐, 4차원적인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정체도 모르는 불법 침입자의 이상한 말을 태연하게 믿어주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있는 것도 엄청 이상한거라구요."
자신을 도플갱어라고 소개한 알 수 없는 괴소년의 말은 극히 현대지향적인 민혁으로써는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많았다.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뢰감과 관대함은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경찰이나 병원에서 데려가는 것만 기다리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관심마저 이미 동이 나버린 상태이다.
애초에 이런건 굳이 알려고 애써봐야 좋은게 하나도 없는 법이다. 오히려 정상인의 머리에 독을 푸는 격이랄까. 여러가지 의미로 정신건강에 폐해를 가져올 수 있기에 차라리 무시하는게 더 현명하겠지만, 일단은 처리가 급선무이다.
"자,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시간이 찾아왔어요."
"무슨 시간?"
"그거야…엉덩이를 걷어차이고 쫓겨나는 퍼레이드라던가, 우락부락한 남간호사들한테 양팔이 붙들려서 죄수처럼 강제로 트렁크에 처박혀서 병원으로 수송되는 시간이죠."
비위 맞춰주면서 정신나간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이젠 한계다.
"절대 못 나가. 아니, 안 나갈래."
'이런 씨…,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정신병원 앰블런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 역시 직접 데려가서 제일 구석 병실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좋은 보금 자리를 마련해줄테니 냉큼 따라와요!"
"2층 침대?"
"2층 병원!!"


* * *

어린이 날.
3·1운동 이후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해 1923년 5월 1일, 색동회를 중심으로 방정환 외 8명이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비로소 어린이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없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제정한 기념일로, 일단은 매년마다 하루는 놀 수 있는 법정 공휴일이다.
그런 즐겁고 뜻깊은 날에,
"젠장. 휴일부터 뭐 이딴 경우가 다 있어."
앞서 말했듯 전문계 학생이라고 무조건 띵가띵가 놀기만 하는건 아니다.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라면 1학년 첫 학기부터 따놓을 수 있는 자격증은 미리 따두지 않으면 안되고, 머리가 안되면 몸으로 떼우는 기술같은걸 배워두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몸으로 떼우는건 공업계열의 학교들이 대표적이지만, 일단은 전문계 학생인 이상 한두가지 정도의 기술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모처럼 공부 좀 하려고 했는데……."
사실 일이란건 편한게 가장 좋은거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몸으로 떼우는 일보다는 비교적 편한 일자리. 이것이야말로 사회인들에게 있어선 로망과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거기다 민혁도 사실 몸으로 떼우는건 자신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격증 정도는 면접관 앞에서 최소 열 장 이상은 뽑아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격증이란건 돈 뽑듯 뽑는게 아니니 아무리 놀기 좋은 공휴일이라도 공부해두지 않으면 따기 힘든 법이다.
"그런데 이 망할 도플인지 도발인지 하는 녀석 때문에…아, 머리 아파."
묵직한 가방의 내용물을 대충 되짚어보며 현관을 나섰다.
그 도플갱어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반 강제로 집에서 끌어낸 뒤 얌전히 기다리라고 말해두었다.
"자, 따라와요."
"행사장이라도 가게?"
"정신병원 환자들이라도 행사는 하겠죠."
뒤따라나서는 그의 말에 대충 대꾸하면서 민혁은 묵묵히 길을 걸었다.
이제 아침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바깥은 벌써 어린이 날 행사로 여기저기 시끄럽다.
멀리서 들려오는 공설운동장이나 체육센터 등에서는 길다란 플랜 카드를 메달고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등이 몇 개나 눈에 띄었다.
"어버이날은 신경도 안쓰면서 어린이날은 엄청 시끄럽네."
사실 허울 좋게 기념행사같은 걸 개최하는 것이지, 자세히 살펴보면 다 상술인 셈이다.
거대한 체육센터나 공설 운동자에 수십 개나 되는 노점상과 허가받은 정식 상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고, 당연히 그런 큰 행사에 수 천에 달하는 가정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은 뻔하니,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중 자릿세만 받아먹어도 이득을 보는 것은 윗사람들이요, 관리자들이다.
"쯧…, 그나저나 공휴일이라고 환자 안 받는건 아니겠지. 아니, 응급환자라면 받아주려나…그런데 정신질환에서 응급환자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결국 뒤따라오는 괴상한 소년이 부디 병원 앞에서 게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켜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곧 신경쓰지 않았다.
공휴일이라고 병원 문을 안 열면 여러가지 의미로 문제가 있고, 환자를 받지 않을 경우에도 병원 측이 더 안 좋은 입장이 될 뿐이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가는 환자들을 막을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열었네."
버스도 안타고 30분을 힘겹게 걸어온 결과, 문이 열려있긴 했다.
다만 정말로 환자들과 축제라도 간 모양인지 병원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뭐, 날도 날이니까 당연한가. 하긴…의사들이라도 놀고 싶을 때가 있겠지."
운 나쁘게 비번이라도 맡은건지 카운터에는 잔뜩 부풀어오른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있는 간호사가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오늘 만큼은 환자가 오지않았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쪽은 오늘 받아주지 않으면 곤란한 환자가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저기요, 접수 좀 하고싶은데요."
"오늘 김선생님 안계시는데…아이 참. 일단 접수자의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집주소와 간단한 서류 작성 부탁드릴게요."
첫 말은 못 들은 척 하며 민혁은 접수 용지를 뒤의 소년에게 내밀었다.
"적어요."
"뭘?"
"방금 한 말 못들었어요?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 적어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용지를 들고있자 소년은 곧 이해했다는 듯이 접수 용지를 작성했다.
"다 적었어."
"좋아요, 여기 있어요."
용지를 건네주면서 무심코 곁눈질로 이름을 본 민혁은 성까지 '강' 씨로 같다는 걸 확인했다.
'도플갱어니 뭐니 하는건 거짓말이지.'
아까부터 자꾸 신경쓰였던 말이긴 하지만 지금은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민혁은 이 정체불명의 소년을 어서 병실에 처박아넣고 조용히 공부하러 가고싶은 생각 뿐이다.
하다못해 공부는 안하더라도 이런 소중한 휴일을 저런 괴짜에게 희생 할만큼 됨됨이가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접수 완료 했습니다. 지금 대기자가 한 명도 없으니까 바로 저 쪽 방으로 들어가셔서 진료 받으시면 됩니다."
접수 용지를 본 건지 만 건지 접어서 서랍장에 넣으며 간호사는 한 쪽 방을 가리키며 안내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들어가봐요."
"어딜?"
"진료실요. 얌전히 진료 받아보고 문제없으면 집에 가던지. 물론, 있으면 병실행 이겠지만."
"같이 들어갈거야?"
"병실은 절대로 사양이고, 전 여기서 기다릴테니까 일단 들어가기나 해요."
약간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은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이 때를 노렸다는듯 민혁은 재빨리 병원을 빠져나왔다. 아까부터 정상인 자신이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도, 괴짜랑 같이 편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도 여간 탐탁치 않았던지라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다.
"그럼 이제 도서관 가야지~."
축제고 뭐고 학생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공부다.
기술도 배우려면 공부가 필요한 법이고, 살아가는 지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정보, 남들로부터 무시받지 않기위해 필요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당연 공부라는 노가다가 뒤따라주어야 한다.
병원을 빠져나와 시끄러운 시내를 한참 걷다가, 근처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않는 도서관을 기억해내고 지름길로 들어섰다.
복잡한 상가와 고층 건물들 사이에 거미줄처럼 엉키고 섥힌 골목길들 뿐이지만, 십수년을 살아온 민혁에게 있어서 그 골목길들은 그저 지름길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복잡하고 좁은 지름길을 선택한 이유는 혹시라도 방금 전 떼어놓고 왔던 괴짜 소년이 뒤쫓아올지도 모른다는 걱정때문이기도 했다. 다른건 몰라도 그런 창피하고 난처한 상황이 오면 정말로 골머리 썩는 것이다. 범죄도 저지르려면 완전 범죄를 저지르라고, 인연을 끊는 것도 끊으려면 확실히 끊어두는게 좋다.
"인연이랄 것도 없지만서도."
괴짜와의 인연이라니, 차라리 거지가 그것보단 낫겠다.
궁시렁 궁시렁 거리면서 한참동안이 좁고 어두운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던 민혁은 곧 목적지에 다다르자 걸음을 빨리 했다.


* * *


그때.
고층 건물, 정확히는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뻗어있는 골목길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어떤 소년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는 이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다크하다는 느낌의 검은 정장과 구두,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어딘가 살짝 수상해보이기 그지없는 한쌍의 남녀가 말없이 밑을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쇼트 컷의 머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덮칠까?"
"아직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좀 더 지켜보는게 낫지 않겠어?"
약간 회의적인 말투로,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쇼트 컷의 여자가 의미심장한 의견에 보류를 표했다.
사무적인 여성 특유의 딱딱하고 높낮이 없는 여자의 말에 사내는 낮은 신음성을 내며 침묵했다. 그런 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좀 더 인내심을 길러봐. 슬슬 공복기가 왔다는건 알겠지만 그럴수록 더 침착해야한다는거 몰라?"
"그건 나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때때로 참기 힘들 때가 있다는건 너 역시 잘 알텐데. 더군다나 너도 나와 마찬가지 아닌가?"
"너와 동급으로 취급받다니, 우리들 사이에서도 남녀 평등의 세대가 오기라도 했나?"
"그런 얘기가 아닌데 말이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고 그의 말을 잘라버린 여자는 골목길의 끝에 거의 다다른 소년의 뒷모습을 시선에서 놓치지않으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핧았다.
"다른 녀석들에겐 방해하지 말라고 미리 일러뒀으니 저녀석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어."
"그렇군. 하지만 그녀석들은 역시 본체가 위험하니 오겠지."
"쓸데없는 걱정을. 붙어있던 녀석은 한 명 뿐이었으니 같이 처리하면 문제 없어. 다수의 상대로 살아남는 도플갱어는 매우 드물지."
인간 역시 그러하듯.



어둠속을 내려다보는 어둠이, 어둠속에 잠긴 빛을 동경하기라도 하듯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노라 하면, 그것은 꽤나 불쌍해보일지도 모른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빛과 어둠, 인간과 도플갱어, 그리고 저 소년과 자신들.
어느 것 하나 공통점은 없이 서로 대조적인 삶을 살아온 존재들 답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려하지도, 간섭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까이 오면 죽여야지."
"뭣? 잠깐. 기다려!"
여자의 만류를 뿌리친채 사내는 힘껏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사자는 토끼 한마리를 사냥하는데에도 전력을 쏟아붓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전력은 결코 인내심에 올 인 한 것은 아니겠지.
"사냥감이란건 자고로 덮치고 봐야하는거라고!"
고층 건물 옥상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듯 근육질 다분한 거구의 사내가 어두운 골목길 한가운데로, 정확히는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혜성처럼 떨어져내렸다.
쾅!! 고양이도 아니고 인간이 두 발로 완벽한 자세를 잡은채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져내렸다면, 그것을 눈 앞에서 바라본 이의 반응은 어떨까?
"우,우와아아앗!"
'그래, 놀라주는 맛이 있어야지.'
소년은 경악스런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새된 고함소리를 내뱉었다.
역시 사냥감이란건 사냥꾼의 만족감을 채워주기 위해 관능적인 몸짓, 매력적인 목소리까지 환상적인 두 박자의 장단을 맞춰줘야하는 법이다.
"스,스턴트맨!! 스턴트맨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우와, TV에서 봤던 것 처럼 정말 뒤에 아무것도 안 메달고 있네!"
그런데 관능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아저씨 스턴트맨 맞죠? 지금 종이랑 펜 꺼내줄테니까 사인좀 해줘요! 와, 세상에 대체 몇 층 높이에서 뛰어내리신거야. 이 건물이면…5층은 훨씬 넘을텐데. 진짜 대단해요!"
전혀 다른 의미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소년은 보기만 해도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A4용지와 볼펜 하나를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건네주면서도 뭔가 잔뜩 동경하고 있는 듯한 반짝거리는 눈빛, 마치 '나 팬이에요' 라고 열렬하게 부르짖는, 소위 빠돌이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
"사인해줘요 사인! 설마 도시에서 스턴트맨을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아, 사인 다 하면 기념촬영 같이 해도 되죠? 친구들한테 자랑도 하고싶거든요."
게다가 이 인간 소년은 아무런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 하고 오히려 순수하게 '열광' 하고 있었다.
그때,
-뭘 하는거야! 끝낼거라면 차라리 빨리 끝내버려! 미련 곰탱이처럼 죽치고 있을거야?
파트너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인간이 연락수단용으로 쓰는 휴대전화나 무전기 같은 것이 아닌 도플갱어들 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정신감응. 인간들이 말하는 소위 텔레파시와도 비슷한 것인데, 한가지 단점은 서로의 정신을 감응하지 않았다면 같은 도플갱어라도 연락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 외에는 타인이 도청할 수도, 외부의 소리에도 전혀 제약을 받지 않으니 훌륭한 연락수단이 되었다.
-아, 걱정하지마. 이 꼬마, 확실히 혼자다.
-혼자고 자시고 그 꼬마를 빨리 처리하지않으면 녀석이 알아채고 올 지도 몰라. 제거대상 우선순위는 항상 본체라는거 잊었어?!
-알겠다.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다.
사냥감이란게 천천히 가지고 노는 맛도 있어야 사냥감인 것이다. 이름 그대로 목적에 충실해주는 것 또한 사냥꾼인 것 처럼.


* * *


난데없이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거구의 사내의 등장에 민혁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그 사내를 스턴트맨으로 인지했다.
실제로 눈 앞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보기 힘들다는 그 스턴트맨을, 무려 착지한 상태에서 아무런 상처도 없이 보았으니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어서 사인해주세요! 사진도 찍고 빨리 공부하러 가야하거든요."
그래서 사인을 부탁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약간 당황해하는 것 같았지만 인기 스타란 원래 튕기는 맛도 있어야 하는 법. 이정도는 당연한거겠지 하면서 민혁은 더욱 들이댔다.
"그럼……."
결국 예상했던 대로 못 이기는척 거구의 스턴트맨은 곧게 뻗은 민혁의 팔을 잡았다. 뜬금없이 왜 종이가 아닌 팔을 잡는것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아어?"
어느센가 몸이 부웅 떠있었다.
팔에는 끌어당기는 듯한 억센 손아귀 힘과 갑작스런 움직임에 타는듯한 마찰로 째질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에 민혁은 세상이 180도 회전하는 것을 고속카메라로 보듯 볼 수 있었다.
"우오아아악!"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딱 이런 것일까.
중학생때 마지막으로 타본 롤러코스터의 배가 확 당겨지는 듯한 아찔한 기억이 떠오르며 민혁의 몸은 투포환처럼 날아갔다.
그렇게 날려가 벽에 처박히자마자 들려온 우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는, 벽에 금이 간건지 뼈에 금이 간건지 분간할 수도 없을만큼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
척추 부분을 세게 부딪친건지 찌르는듯한 격통과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한 느낌에 입을 벌리니 한웅큼이나 피를 토해냈다.
열심히 공부해도 코피조차 안 나오던 자신이 스턴트맨한테 사인해달라고 했다가 그대로 잡혀서 날아갈 줄이야, 차라리 이게 연출이라면 그나마 안심은 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맨이나 연출자는 어디에도 보이지않는다.
"연출…같은게 아니야. 저 사람 진심으로 던졌어……!"
애 하나를 유도선수 마냥 잡아서 냅다 던져버린 거구의 사내는 안색 하나 변하지않은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처박혀있으면 분명히 죽임 당한다! 잠들어있던 본능이 깨어나고 생존 욕구가 몸부림친다.
일방적으로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어딘가 부러졌을지도 모르는 몸을 겨우 일으킨 민혁은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다.
"움직이는건 이 쪽에서 더 좋은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상관없지만 어디 한 두대는 부러졌을텐데, 아주 못 움직일 정도로 무리하진 않는게 좋을거야."
"큭…대체 무슨 이유로 다짜고짜 사람을 집어던진거에요!"
"호오, 말은 할 수 있나보군. 죽이기전에 쓸데없는 말 같은건 해주고싶지 않지만, 그래도 짧았던 인생을 한 순간에 끝내자니 억울한 면도 꽤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하나 말해두자면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고, 그냥 타겟이었다는 것 정도만 말해두지."
"그게 무슨……."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속이 보이지않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말했다.
단지 타겟일뿐이라고, 그저 운이 좋지않았을뿐이라고 사내는 그리 말하는 듯 했다.
"뭐야…아침부터 별 이상한 녀석이 꼬인다 싶더니 이젠 이상한 스턴트맨 아저씨까지 꼬이는거야……."
하지만 이런 불평도 지금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는다. 우선은 이 거구의 사내로부터 벗어나는게 우선이다.
충격때문에 제대로 말을 듣지도 않는,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어디선가 따뜻한 액체같은게 흘러내리고 있는 몸뚱아리를 질질 끌면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쳐나갔다.



옥상위에 있던 수상해보이는 남자 말고도 그 소년의 뒤를 쫓고있는 이는 또 한 명 있었다.
위치도 하필이면 건물들 틈바구니 사이에 끼어있는 도서관인지라 정문같은건 없고, 죄다 좁고 넓은 골목들만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그 골목길의 한 곳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소년이 있었다. 저 멀리 다른 골목길로 사라져가는 소년과 체격적으로는 상당히 비슷해보이는 또래의 소년이다.
후드에 가려진 단정한 스트레이트 흑발이 깔끔하게 5 : 5 가르마로 나뉘어있었다. 묘하게 눈만 가리는 격이 아닌가 했지만 본인은 시야 확보에 별다른 지장이 없는지 머리를 올리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소년을 시야에서 놓치지않는 것 뿐이니까.
"그건 그렇고…참을성이 어지간히도 대단하시군."
도망친 소년을 뒤쫓아간 남자와는 달리 옥상에 있는 여자는 여전히 움직임을 보이지않고 있다.
쫓아가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남자 혼자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모습에서 여유가 흘러넘치는 듯 했다..
하지만 여자 역시 쫓아가고싶은 마음이 어지간히도 있었는지 알게모르게 어떠한 기운을 잔뜩 뿌리고 있었다.
'살의인가. 굶주린 돼지같은 놈들.'
살의.
모든 도플갱어들이 본체와 접촉하지 못 했을 경우, 혹은 접촉하기 전까지 특정 기간동안 인간을 죽이고싶은, 정확히는 먹어치워버리고싶은 그런 기운이 본능적으로 뿜어내는 살의이다.
그것은 같은 도플갱어들이라면 예외 없이 누구나 느낄수 있을정도로 매우 친숙하고 자연스러우며, 또한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이기에 결코 무시하고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도 저 소년과 접촉하기 전까지는 수없이도 많은 살의를 느껴왔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본체라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 저 소년에게서도 살의를 느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과도 같아서 그것을 잊을만한 격렬한 고통이나 희열, 그외에도 공복감을 채울 수 있을만한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지 않으면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라면 30개가 그렇게 배부르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든 저들이든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살의를 느끼고, 또 그 살의 이겨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마음을 정했으면 막기 힘든 것이 도플갱어. 지금은 애써 억누르는듯한 기색이 역력해보이지만, 쫓아간 사내가 사냥에 성공했을 경우 주저없이 본색을 드러내겠지.
그러니 막아야한다.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도플갱어가 자신의 본체를 잡아먹으려는걸 가만히 내버려두겠어."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뒤늦게 쫓아와서 공격당하는 것 까진 막을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늦진 않는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본체와 도플갱어는 하나의 작은 실과도 같은 끈으로 연결되어있는 연대 깊은 관계. 도플갱어가 죽는 것 쯤이야 본체에겐 아무런 해가 되지않지만, 그런 반면 본체가 죽게 되면 도플갱어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된다.
일전에 자신이 알고지내던 도플갱어가 그런 예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었는데, 고통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던 것이 똑똑히 기억났다.
"세상살이 참 힘드네…아니, 애초에 신이 불공평한거지. 인간만 잘 해주는건 명백만 차별이라니까……."
일단은 저 여자에게 들키지 않고 남자를 뒤쫓아가 처리하는게 급선무이다.
어느 한쪽이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을 기점으로 도플갱어끼리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벌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그런 개싸움에 1 : 2 로 싸우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 본체를 좀 더 이용해 저 둘을 떨어뜨려놓는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위험한 일에 본체를 말려들게 했다간 서로 신상에 그리 이롭지 않으므로 최대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이유로 일일 베이비 시터가 되야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향해 최단거리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움직였군."
옥상 위에 있던 여자 역시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어쓴지 목표물이 이동을 시작하자 자신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애들 장난에 놀아줄 마음같은건 처음부터 없었다.



"경찰! 경찰에 가야해!"
좋지 않은 상태로 격하게 움직이다보니 여기저기 찢어지고 부러진 상처들이 더욱 극심한 격통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멈추면 죽는다. 지금 뒤에는 당장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거구의 사내는 설렁설렁 여유롭게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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