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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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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정복하겠습니다!!
글쓴이: 마에
작성일: 11-07-14 16:15 조회: 2,067 추천: 0 비추천: 0
정복하겠습니다!!

프롤로그
침략당하다.


그 날은 다른 날과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띵동~!
‘어, 이 시간에 누구지?’
시계를 보니 거의 자정에 가까웠다. 이 시간에 내 자취방에 올 사람은 없을 텐데? 조금 경계하며 현관문 틈새로 밖을 살폈다.
한밤의 방문자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눈의 결정 같은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왕관 같은 모자에 신비하게 빛나는 백의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서있었다.
혼혈인지 아니면 염색인지 머리칼은 투명한 은발,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마치 인형처럼 예뻤다.
“저기. 아무도 없어요?”
금방이라도 울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녀가 문을 콩콩 두드렸다. 그걸 보자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찌릿찌릿해져서 참을 수 없었다.
“네, 나갑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순간 소녀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울상을 짓던 소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부시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와, 다행이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아아, 눈부시다. 연애라고는 인연도 없는 내게 이런 미소녀가 눈부신 미소를 지어 주다니 감격이다.
“그런데 누구시죠? 이 시간엔 무슨 일로?”
“아, 그게 아직 이곳 말이 익숙지 않아서…… 잠시만 기다리세요요.”
여자애가 모자를 벗더니 그 안에 손을 넣어 뒤적뒤적 작은 책을 하나 꺼냈다. 겉표지에는 점성술에서나 쓸듯한 별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누르슴한(마치 살가죽처럼 보이는) 페이지로 이루어진 기괴한 책이었다. 소녀가 한 번도 본적 없는 문자가 적혀진 페이지를 펼치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한자 한자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흠흠, 저는 악의 제국 카리코의 황제 아리만-앙그라마이뉴(Angramaiyu) 아비타 3세. 지금부터. 당신과 이 집을 정복하겠습니다.”
“악의 제국……? 정복……?”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불현 듯 정신이 번쩍 들며 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봐요, 방금 뭐라고…….”
순간 소녀가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검고 길고 그 끝엔 샛노란 불꽃이 파직파직 위협적으로 번뜩이는 아주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소녀가 눈을 질끈 감더니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에잇!”
소녀의 키가 작아서인지 그것은 정확히 내 급소(?)를 향해 뻗어왔다.
자, 잠깐! 거, 거긴 안돼!
파지직!
수만 볼트의 강력한 전류가 내 거시기를 관통!
“끄아아아악!”
쿵!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내가 눈을 떴을 땐…….
난 한 마리 괴인(怪人)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흉악하고 거대한 집게발을 가진 집게발 괴인이…….
“으아아아아아악!”


1. 악의 제국의 황제와 정의를 동경하는 집게발 괴인

다음날 아침.
“으아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손! 내 손이 왜 이래!”
내 오른손이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흉측하게 생긴 붉은 집게발이 있었다.
치, 침착하자. 준. 이건 꿈일 거야. 나는 그레고리 잠자(*카프카作 ‘변신’의 주인공)가 아니잖아. 혹시나 꿈일까 하는 생각에 뺨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냐?
꼴깍.
설마 그럴 리가 없지만. 난 시험 삼아 내 오른손 아니 이젠 집게발로 변한 그것을 한번 움직여 보았다.
찰캉! 찰캉!
그러자 프레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육중한 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위력은 웬만한 사람 목은 단숨에 댕겅해버릴 것 같다.
“히익! 소름 돋아!”
등이 식은땀으로 촉촉이 젖어갔다. 분명 어젯밤 까지만 해도 내 손은 평범한 오른 손이었다. 대체 내게 하룻밤 만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란 말인가.
그때 바로 내 옆의 이불이 꿈틀꿈틀 거렸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사람 모양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나도 모르는 입주인이 내 방에 있었나?
아니 근데 이 방은 나 혼자 살잖아! 있는 힘껏 이불을 확 걷었다.
“우웅~.”
잠들어 있던 은발의 소녀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아함, 좋은 아침이에요. 잘 잤어요?”
그녀가 졸린 눈으로 날 올려다 보며 방긋 웃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으윽, 마치 귀여운 고양이 같다.
“으, 응. 좋은 아침…… 이 아니잖아!”
아차, 하마터면 소녀의 미색에 홀려 순간 이 참혹한 현실을 잊어버릴 뻔 했다.
“너 누구야! 왜, 왜 내 방에 있어?!”
“에에에~!”
소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말도 안돼요! 절 잊다니! 어젯밤 저한테 정복당한걸 잊으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마치 연인 같은 대사를 하며 소녀가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으윽! 수, 숨결이 목에 닿잖아. 이거 너무 가깝다. 위험해! 그런데 잠깐. 정복당해?
순간 어젯밤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저는 악의 제국 카리코의 황제 아리만-앙그라마이뉴(Angramaiyu) 아비타 3세. 지금부터. 당신과 이 집을 정복하겠습니다.”

비록 벌레하나 못 죽일 것처럼 무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 이 소녀는 내 급소를 전기 충격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한 실로 잔혹한 강도였던 것이다. 게다가 말하는 걸 보아하니 어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게 틀림없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경찰!’
잽싸게 침대 맡에 있는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간 소녀가 눈을 매섭게 빛내더니 쓰고 있던 모자에서 뭔가를 꺼냈다.
번쩍!
눈이 타들어갈 듯한 샛노란 섬광이 번쩍였다.
“으아…….”
섬광이 관통한 침대는 멀쩡했지만 그 위에 있는 내 핸드폰은 시커먼 숯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소녀가 아직 은은하게 샛노란 빛이 감도는 총(겉보기에는 장난감처럼 보였다.)을 촛불 끄듯 후 불었다.
“이 영지는 제 점령 하에 있어요. 다른 곳과의 정보 교류는 용납할 수 없답니다~.”
부들부들!
소녀가 경련 일으키듯 몸을 떠는 날 보더니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악의 제국 카리코의 황제인 이 몸의 힘에 두려움을 느끼셨나 보군요. 후후, 걱정 마세요. 제 말만 잘 들으면 해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난 폭발했다.
“너,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약정이 무려 28개월이나 남았는데! 너 뒤질래!”
소녀가 움찔하며 뒷걸음 쳤다.
“네, 네?”
“젠장! 망할 별정 통신에 속아서 약정의 노예가 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내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소녀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괴물이야! 사람 살려!”
“누가 괴물이냐!”
평소의 난 무척 예의바르고 착한 남자로 통용되는 사람이지만(우리 엄마가 보증한다.) 화가 나면 아주 조금 물불을 안 가리고 이성을 잃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때의 내 얼굴을 보고 야수니 도깨비니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쿨한 난 그런 말들을 깨끗이 무시하며 살고 있다.
“꺅!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잡아먹지 말아요!”
“멀쩡한 사람을 식인종 취급하지 마!”
“히에엑!”
겁먹은 토끼 같은 얼굴로 귀를 막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소녀를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해졌다.
에잇, 짜증나!
“하아, 화 안낼 테니 하나만 물어보자.”
자칭 악의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빠끔히 고개를 들며 내 눈치를 보았다.
“저, 정말 화 안낼거에요?”
“그래.”
누그러진 내 모습을 보자 녀석이 활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네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회복이 지나치게 빠르다. 이 여자.
“내 손 혹시 네가 이렇게 만든 건 아니겠지?”
녀석에게 집게발로 변해버린 내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조금은 부정해주길 바랬다.
“네, 제가 만들었어요! 맘에 드세요?”
소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볼을 붉혔다.
“사실 괴인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어요. 아잉, 부끄러워라.”
마치 첫날밤을 보낸 새색시 같은 표정으로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라고!
“역시 너냐! 끄악! 내 손! 당장 원래대로 돌려놔!”
“꺅! 화 안낸다고 하셨잖아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괴인님의 얼굴은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누가 괴인이냐! 그리고 무서우면 당장 돌려놓으란 말이야!”
“히잉, 그건 불가능해요. 한번 괴인으로 개조하면 원래대로 돌릴 수 없어요.”
울컥 울컥. 생긴 건 절세의 미소녀지만 이 여자 보면 볼수록 화딱지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난 필사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아까부터 괴인, 괴인. 그 괴인이란 게 대체 뭐야?”
소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괴인은 하찮은 영장류를 아득히 초월한 진화의 정점(頂点). 두려움을 모르는 잔혹한 포식자. 우리 악의 제국 카리코의 첨병에서 공포와 파괴를 뿌리는 위대한 병사랍니다.”
이 여자.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생각 같아선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하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찰캉! 찰캉!
내 집게발이 움직였다. 현실은 이거다.
우울하다. 절망스럽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혹시 나는 이제 평생 가위밖에 낼 수 없게 살아가야 된다는 건가.
“흐윽,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아, 별건 아니고요.”
소녀가 상큼하게 웃었다.
“저와 함께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를 정복해요.”
정말 상큼했다.

* *

히어로(Hero).
초능력이나 남과 다른 뛰어난 능력으로 악에 맞서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영화나 만화의 존재로 치부하지만 사실 히어로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 말을 하면 나를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허나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나는 진짜 히어로를 본적이 있으니까.
어릴 때 나는 히어로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다.
난 기억한다. 지옥의 업화처럼 치솟는 불꽃을 헤치고 나를 구하러 와준 히어로를. 그의 휘날리는 검은 망토와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쓴 멋진 마스크까지 생생히.
비록 그날 그를 본 목격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지만 맹세컨대 그것은 절대로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한때 나는 그와 같은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철이 든 후 그런 꿈은 접었지만 그래도 정의를 동경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은 악의 제국 뭐시기의 괴인 따위는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어둠속에 웅크린 채 원치 않는 감금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여전히 집게 발 상태인 내 오른 손 때문이다.
사흘 전.
“크크크, 인류 멸망? 좋아! 그럼 너부터 멸망시켜주겠다! 이리 와!”
“꺄아아악! 사람 살려!”

인류멸망, 지구 정복의 헛소리를 지껄인 소녀는 폭주기관차처럼 화를 내는 내 기세에 겁을 잔뜩 먹고 도망쳐버렸다. 조막만한게 도망치는 건 어찌나 빠른지 실로 한줄기 바람 같았다.
‘제길, 바보같이.’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 사이코를 그대로 도망치게 둬서는 안됐었다. 잡아서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아니면 고문을 하던지 해서라도 내 손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강구해야했었다.
‘앞으로 어떡해야지?’
핸드폰이 부서져서 알 순 없었지만 학교나 알바 가게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은 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야돼. 계속 이럴 순 없어.’
꼬르륵!
내 고민과는 별개로 몸은 정직했다.
위를 쥐어짜는 듯한 허기에 냉장고를 열어보았다지만 안은 텅 비어있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에 먹은 라면이 남았던 마지막 식량이었나 보다.
‘나가야 되나.’
방안이 안보이게 꽁꽁 가려놓은 커튼을 걷자 밖의 풍경이 보였다. 대략 초저녁쯤인가. 마음 같아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나가고 싶었지만 참기엔 배가 너무 고팠다.
집게발이 안보이게 일단 트레이닝복 상의로 그것을 칭칭 감았다. 이렇게 하면 겉보기엔 운동을 한 후 더워서 상의를 벗은 걸로 보일 것이다. 내 바람에 불과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며 근처 마트에서 주머니를 털털 털어 식료품을 샀다. 이 정도면 일주일 어떻게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다. 하다못해 앞으로 일주일 남은 월급날 이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좋았을 텐데.
“후우.”
일주일 치 식량이 담긴 봉투의 무게는 제법 상당해서 왼손 하나만으로 들기엔 힘이 들었다. 게다가 거의 온종일 굶은 탓에 체력도 없다랄까.
‘좀 쉬었다 갈까.’
마침 근처에 있는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공원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예닐곱 정도 되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비둘기에게 식빵을 던져주며 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쉬면서 마트에서 산 빵으로 허기 정도는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살금살금.
그때였다. 신문지를 눌러쓴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척 보기에도 수상 그 자체.
“설마?”
불현 듯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이 근처에 치한이 출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으드득! 내가 아무리 이런 상황이라도 치한은 용서 못한다. 특히나 저런 어린애를 건드리는 것은 쓰레기 중에 최악의 쓰레기다.
나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제법 큰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곤 조심스레 그 신문지를 뒤따랐다.
“헤헤, 마시쪄?” “구구구~.”
신문지 치한. 만약 네가 해맑게 웃으며 비둘기에게 식빵 조각을 뿌려주는 저 여자애에게 마수를 뻗는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근데 어라? 어째 이 신문지 낯이 익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무척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반짝이는 은발과 저 눈에 띄는 미모는 분명…. 틀림없다. 내 손을 이 꼴로 만든 원흉!
저건 치한보다도 더 질이 나쁘다. 설마 저런 해맑은 아이에게도 손을 댈 생각인가!
탐욕스런 눈동자로 군침을 줄줄 흘리며 인류멸망, 지구 정복을 노리는 민폐녀가 여자애에게 마수를 뻗었…….
아니? 왜 벤치에 있는 식빵 뭉치를 잡지?
“어? 언니 모해?”
순간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여자애와 민폐녀의 눈이 마주쳤다. 구구? 비둘기들도 일제히 민폐녀를 응시했다. 그러자 민폐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미안해요오오!”
그리고는 식빵 뭉치를 품에 안고 잽싸게 도망치는 게 아닌가.
나도, 아이도, 그리고 비둘기들도 멍하니 멀어져가는 민폐녀를 보았다.
뭐냐, 쟤…….


* *

도망친 민폐녀를 발견한 건 공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놀이터였다. 놀이터의 미끄럼틀 옆에는 커다란 냉장고 박스가 안 어울리게 서있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소녀는 안심한 듯 박스 안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갔다.
“우웅, 역시 집이 최고에요.”
집? 노숙자도 발로 차버릴 것 같은 저 박스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박스 안에서 철썩 편한 자세로 엎드린 채 아이에게서 훔친 식빵을 꺼냈다. 소녀가 군침을 질질 흘리며 감격스런 얼굴로 입을 벌렸다.
“앙~ 잘 먹겠습니다~!”
와구와구. 햄스터처럼 볼이 미어질 듯 식빵을 쳐묵하는 소녀. 그걸 보자 왠지 기운이 쭉 빠졌다.
저게 정말 내 손을 집게발로 만들고 인류 멸망, 지구 정복을 지껄이던 얘가 맞나.
“우읍! 켁켁!”
얼씨구. 가지가지 한다. 가슴을 두드리며 괴로워하는 소녀에게 생수 병을 건넸다.
“…마셔.”
벌컥벌컥!
“푸하~!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미개한 지구인이지만 조금 쓸모가 있군요. 보답으로 인류 멸망의 대업을 시행할 때 제일 마지막으로 멸망시켜드리겠……. 꺅!”
내 얼굴을 보자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놀란 달팽이처럼 박스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난 소녀가 숨은 박스를 발로 쾅쾅 두드렸다.
“나와. 안나오면 이거 확 부숴버린다.”
오들오들 애처롭게 떨며 민폐녀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었다.
“화, 화 안낼거에요?”
“그건 네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지! 당장 내 손 원래대로 돌려놔!”
상의로 칭칭 감아 놓은 내 집게발을 녀석에게 내밀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괴화된 걸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은 없어요.”
녀석이 슬그머니 내게 시선을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별로 돌려놓고 싶지도 않다 뭐……. 힘들게 만들었는데 아깝게.”
어쭈? 다 들리거든.
“당장 돌려놓으란 말이야!”
찰캉! 찰캉!
집게발을 녀석의 박스에 마구 휘둘렀다. 과연 엄청나게 예리한 집게발. 싹둑싹둑 잘도 잘라진다.
“꺄악! 안돼요! 부수지 말아요!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겨우 발견한 제 스위트 홈이란 말에요”
“스위트 홈 같은 소리 한다!”
녀석이 내 바지가랑이를 움켜잡고 울먹였다.
“아악! 기다리세요! 원래대로 돌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대신 다른 방법이 있어요!”
움찔. 난 가위질(?)을 멈추곤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다른 방법?”
“네! 틀림없이 마음에 드실거에요! 그러니까 제발 멈춰요! 흐에엥!”
별로 믿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소녀가 눈물 콧물 범벅인 흉한 얼굴로 박스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훌쩍. 내 스위트 홈에 흠집이 생겼어. 이제 시집은 다 갔어. 불쌍해.”
“계속 헛소리 지껄이면 확 부숴버린다. 빨리 뭐든 해봐.”
“여기 앉아서 오른 손을 저한테 내밀어보세요.”
“이렇게?”
소녀의 말대로 바닥에 앉은 채 집게발을 내밀었다. 녀석은 내 집게발의 끝을 양손으로 잡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속눈썹이 참 길다. 며칠동안의 노숙 생활로 꾀죄죄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소녀의 타고난 미는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소녀의 선홍빛 입술이 움직였다.
그것은 내가 단 한번도 들어 본적 없는 기괴한 울림의 언어였다.
소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샤라락. 신비롭게 반짝이는 그녀의 은색의 머리칼이 내 뺨을 스쳤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내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멍해졌다. 분명 머리의 나사가 한두 개 빠진 게 분명하지만 소녀에게는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쪽.
소녀가 내 집게발에 입술을 맞췄다.
딱딱한 갑각의 피부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소녀의 입술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아, 너무나 부드럽고 따스하다. 마치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헉, 정신 차려!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 이 민폐녀가 한 짓을 떠올려보라고!
파아앗!
순간 눈부시게 새하얀 빛이 내 집게발을 감쌌다.

* *

난 내 오른 손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집게발 대신 분명히 평범하게 다섯 손가락이 달린 인간의 손이 있었다. 정말 원래대로 돌아온 거야? 아아, 투박한 내 손이 어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는 처음이다. 눈물까지 나려고 하잖아. 이거.
“휴, 표정을 보니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물론이지!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긴 뭐가! 이렇게 하면 잘 할 수 있잖아! 고마워!”
난 감격했다. 비록 손이 집게발로 변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지만 이제 무사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찰캉! 찰캉!
뭐냐, 이 거슬리는 육중한 소음은. 그것은 분명 내 오른 손에서 들린 것이었다. 아니 원래대로 돌아온 내 손에서 왜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인가. 이상하게 여겨져 내 오른 손을 만져보았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크고, 딱딱하고, 날카로운 집게발의 질감이 잡힌다.
“자, 그럼 됐죠? 그럼 전 이만…….”
슬그머니 도망치려는 녀석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쥐었다.
“어이, 잠깐. 겉보기만 돌아왔지 전혀 해결된 게 없잖아.”
내 손은 겉보기엔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것은 완벽한 속임수였다. 내 집게발은 건재했던 것이다. 소녀의 설명으로는 방금 전 내 손에 환영 마법을 걸었다고 하는데 그런 해리포터 같은 판타스틱한 설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내 손이 그대로란 거다!
소녀가 웃으며 손사래 쳤다.
“에이, 사소한 건 대범하게 넘어가세요. 자고로 속알맹이보단 겉모습이란 말도 있잖아요.”
“순진한 얼굴로 현실에 찌든 말 하지 마! 닥치고 속알맹이도 완벽하게 원래대로 돌려놓으란 말이야!”
“아무리 그러셔도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한계란 말이에요! 남은 마력을 다 긁어모아서 해준 건데 고맙게 여기진 않고 너무해요!”
“너무해? 한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와서 급소를 전기충격기로 지지고 내 손을 이따위로 만든 네가 지금 그게 할 말이냐!”
“꺄악! 아파요!”
녀석의 목을 팔로 조르며 티격태격 하고 있을 때.
“어머, 준아. 여기서 뭐해?”
낯익은 단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교복 차림의 어른스러운 인상의 소녀가 보였다.
“마, 마리 선배?”
그녀는 내가 다니는 대명고의 학생회장이자 한학년 선배인 윤마리였다. 마리 선배로 말하자면 용모단정, 문무겸비, 그야말로 이 시대의 대표적 엄친아로 대명고의 마돈나 같은 존재다.
이런 분과 내가 연이 닿아 있는 이유는 하나. 내가 바로 학생회에서 서기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글렀다. 이런 집게발로 서기 업무를 어떻게 처리 하냐고.
마리 선배가 말했다.
“학교를 삼일이나 빠져서 걱정했잖아. 전화도 통 안되고.”
“미안해요. 사정이 있어서 그만.”
“휴,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그런데.”
마리 선배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내가 목을 조르고 있는 민폐녀를 보았다.
“이분은 누구시니? 혹시 여친?”
“아, 아니에요!”
녀석을 확 밀어젖히며 맹렬히 부정했다. 행여나 오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고백하자면 사실 마리 선배는 내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여친이라니요! 저는 이 분의 주인님이에요!”
잠깐, 한참 설명중인데 분위기 깨지 마라, 이 민폐녀!
“주, 주인님?”
민폐녀가 오만한 자세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마리 선배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래요. 괴인님은 몸도 마음도 모두 내게 정복당한 노예! 한마디로 은밀한 부위에 난 털끝 하나까지 위대하신 이 몸의 소유란 겁니다! 그러니 함부로 꼬리치지 말아요! 이 가슴만 큰 더러운 암퇘지!”
“으아악!”
녀석의 머리를 주먹으로 빠악 후려쳤다. “우갹!” 미소녀 같지 않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민폐녀가 꽈당 넘어졌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너 죽을래!”
“아우우, 아파요…….”
혹이 커다랗게 난 머리를 움켜쥐며 녀석이 원망스런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어쭈, 이게 뭘 잘했다고!
“하하, 재, 재밌는 친구분이네.”
애써 웃고 있지만 마리 선배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선배가 어디서 저런 말을 들어봤겠는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내일은 학교 빠지면 안 돼. 준아. 알았지?”
“네에.”
멀어져가는 마리선배의 발걸음이 어쩐지 비틀거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건 눈의 착각일까.
바드득! 혈압이 치솟는다. 이 민폐녀가 감히 내가 완소하는 마리 선배에게 무슨 막말을! 게다가 뭐? 누가 누구의 노예냐!
“너 이 자식!”
이를 갈며 내 뒤에 있을 민폐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이게 웬걸.
없다.
“헐.”
헥!헥! 저 멀리서 냉장고 박스를 머리에 이고도망치고 있는 민폐녀가 보였다.
“으앗!”
게다가 녀석의 입에는 내가 산 식료품 봉투가 물고 있다. 이 자식! 네가 개냐!
“너 거기 안서! 잡히면 죽어!”


놓쳤다. 결국 놓쳐버렸다.
쥐알만한게 빠르긴 엄청 빠르다. 생긴 건 어리바리하게 생긴 주제에 야생에서 돌아온 늑대소녀 같은 운동신경이었다.
꼬르르륵!
“아아, 배고프다…….”
계산대 책상에 털썩 주저앉은 나.
내가 있는 곳은 바로 교외의 편의점이었다. 이곳은 내가 알바를 하고 있는 곳으로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어 손님의 왕래가 비약적으로 드문 그야말로 최고의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삼일간의 무단결근은 당장 모가지 당해도 할 말이 없었지만, 점장님께 손이 발이 되게 빌어 잘리는 것만은 면했다. (물론 그에 대한 협상카드로 최근에 알바를 그만둔 대학생형 대신 앞으로 두 달간 야간 파트를 담당하게 됐지만. 아아, 아제 난 잠은 다 잤다.)
그 망할 민폐녀에게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산 식료품을 도둑맞은 난 바야흐로 음식물 섭취를 하지 못한지 24시간을 육박해가고 있었다. 주위에 먹을 것투성이인 환경 탓인지 더 배가 고픈 것 같다. 아아, 천장이 노랗게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한 가닥 희망은 있었으니.
그것을 아는가. 편의점 알바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당당히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것을!
난 충혈된 눈으로 시계를 노려보았다.
앞으로 몇 분 후면 새벽 두시! 조금만 참으면 이제 곧 폐기할 김밥과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으윽. 일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한침한침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다.
“돼, 됐다!”
비로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약속의 시간이 왔다. 나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매섭게 김밥과 샌드위치를 잔혹하게 낚아챘다.
크크크, 먹어주겠다. 너희들의 껍질을 갈가리 찢고 밥톨 하나 남기지 않고 너희들의 모든 것을 먹어치워주겠어!
내가 그런 야망에 불타고 있을 때였다.
하악! 하악! 타다닥!
급하게 달리는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편의점 을 지나갔다. 얼핏 보긴 했지만 은발의 실루엣은왠지 낯이 익은데?
“앗!”
분명 틀림없었다. 바로 그 민폐녀였다. 큭, 어떡하지. 편의점을 잠시 비우고 녀석을 쫓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 강도라도 들면…….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뭔가가 잔영처럼 편의점 앞을 휙 지나갔다.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깊게 눌러쓴 남자였다.
‘뭐지 이 상황.’
바보라도 정황상 저 남자가 소녀를 쫓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난다.
“설마 치한?”
난 근처에 치한이 출몰했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그땐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인적이 드문 장소에 심야의 시간에 소녀를 쫓는 바바리코트의 사내는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하하, 괜찮을거야. 보통 여자도 아니고 내 손을 집게발로 만드는 녀석인데. 뭐 여차하면 전기충격기도 있을테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 시킬 리가 없잖아 젠장!
난 편의점을 박차고 그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민폐녀가 걱정되어 이러는 게 아니고 그저 내 손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 가는 거니까!
하지만 둘이 너무 빠른 탓인지 그만 놓쳐버렸다. 갈림길에 서있는 가로등이 불안하게 깜박거렸다.
“큭, 어디지?”
꺄아아악!
그때 찢어질 듯한 소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니 사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귀를 통해 들리는 비명은 아니었다. 마치 머릿속의 뇌를직접 강타하는 듯한 비명이다.
“이쪽이냐!”
하지만 난 의구심을 품을 생각도 못하고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달릴수록 음산한 기분이 드는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칫! 갑자기 웬 안개가!”
이래서야 달릴 수가 없잖아. 나도 모르게 오른 손을 안개를 향해 휘저었다.
그때였다.
찌지지직!
무엇인가 찢어지는 괴음과 함께 거짓말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던 안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난 보았다.
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그들의 모습을.
“케엑. 케에엑…….”
민폐녀, 아니 그 은발의 소녀가 잿빛 코트를 걸친 사내의 손에 목이 졸린 채 허공에 떠있었다.소녀의 눈은 새하얗게 뒤집혀 있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이자식! 당장 멈추지 못해!”
사내의 어깨가 잠시 움찔 움직였다.
“이상하군. 분명 결계를 쳤는데 어떻게 이 안에 들어온거냐.”
마치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음성.
가까이에서 본 사내는 최소한 2미터는 훌쩍 넘어보일 정도로 엄청난 거구였다. 꿀꺽.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어서 걔를 놔줘!”
스윽. 사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날 노려보는 사내의 눈동자는 마치 흉악한 야수처럼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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