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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아라시스 탐험대!
글쓴이: 와플D
작성일: 11-07-15 16:15 조회: 1,791 추천: 0 비추천: 0
*아라시스 탐험대!


장르 : 7-Colored Fantasy
테마 : 꿈
주제 : 바보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Episode1 구성

Chapter1. 하수구 투덜대며 탐험하기 (완성)
Chapter2. 시장길 허세부리며 탐험하기 (초본 완성)
Chapter3. 백화점 흑심 품고 탐험하기 (초본 완성)
Chapter4. 시계탑 똘똘 뭉쳐 탐험하기 (구성 중)


★★★★★★★★★★★★★★★★★★★★★★★★★★★★★★★★★★★★★★★★★★★★★★★★



Episode1 Prologue
-저는 먼치킨입니다-








...여긴가?

케이티 양에겐 말하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이 정도로 우울한 분위기라면 보나마나 침울해 할 것이다. 예전에 사막을 몇일 동안 가로질러 갔을 때도 완전히 다운되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평상시라면 그녀가 좀 얌전히 있어 주길 바라겠지만, 역시 축 처져 있는 그 애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

물론, 그녀를 데려오지 않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약속이다! 꼭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는 거다!‘

약속이라.
미안하지만, 난 별로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 아니다.

자주 잊어버리게 되니까.

특히, 그것이 소중한 약속일수록.



-쏴아아...

겨울에 내리는 소나기라.

오늘 같은 날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천둥번개까지 쳤으면 최고겠지만.

게다가 불빛이라거나 인적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거리까지. 이렇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이상적인 송별회장은 처음이다. 그래, 굳이 이런 풍경까지 그 애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시계탑.

수많은 길들이 한꺼번에 교차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가 10m쯤 되는, 그렇게 크진 않지만 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듯한 시계탑.

긴바늘과 짧은 바늘은 정확히 12시에 서로 교차한 채 멈춰 있다.

고장 난 건 아니다.
하지만 멈춰 있다.

“...누구냐.”

누구냐고 물었다.

시계탑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가,
길거리에 그저 가만히 서있는 나에게.

버릇없는 녀석.

“이런 3류 만화 같은 장면에서는 보통 악당이 먼저 자기소개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악당이라. 그렇군. 지금의 나는 결국 악당인 건가.”

자신이 악당이라는 사실을 이제 와서야 깨달았다.
별로 머리가 좋은 녀석은 아닌 것 같다.

“좋다.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Uerbach Yanchenski(우르바후 얀첸스키). 가이아식 흑마법의 계승자이자 흑마술 길드의 마스터다. 목적은...”

“아아. 목적 같은 건 이미 알고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그건 제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꽤 건방진 녀석이군.”

건방진 녀석이라고 했다.
왜 내가 해야 할 대사를 자꾸 빼앗는지 모르겠다.

“뭐, 관심이 없다면 그걸로 좋다. 그 대신 널 위해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남자가 자신의 양 팔을 벌렸다.

시계탑 위에 없던 십자가가 하나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다 헤져 버린 검은 색 천을 뒤집어 쓴 채로. 까마귀라도 몇 마리 얹혀주면 영락없는 유령의 집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까악 까악.

“지금의 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

-쏴아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몸에서 저절로 발산되는 기 때문에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버릴 정도니까.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니. 부탁이니까 그런 거창한 수식어는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쪽에서는 그것보다 한층 더 높은 단계의 수식어를 붙여야 하니까. 초등학생이 ‘무지개 반사’라고 하면 ‘블랙홀 반사’로 맞받아쳐야만 할 것 같은 유치한 상황처럼 말이다.

“...아직 네 소개를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 내 소개를 듣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느긋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사람이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 이름은 라크. 여행가이자 아라시스 탐험대에서 ‘가장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직책을 맡은 대원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초록색 모자를 좀 더 깊숙이 눌러썼다.

“저는 먼치킨입니다.”

-쏴아아.

빗소리가 한층 더 무거워진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더 이상 아무 여한도 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녀석의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망가트려 버린다.
건방진 녀석.

아무래도 조용히 송별회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뭐, 좋다. 시작해 볼까.”

남자가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젠 그냥 까만 점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높은 곳을 쳐다보면 고개 아프잖아. 차라리 저대로 하늘에 박혀서 별이나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차라리 보기에라도 아름다워 보이니까. 반짝 반짝.

“Let me recall the creature that only the One can tame it, to bring the ultimate Chaos to this Ironical world!!"

하아.
이런 최첨단 시대에 저런 진부한 영창이나 내뱉고 있다니.
이래서 어정쩡한 정통파들은 마음에 안 든다.

뭐, 그래도 효과는 탁월한 것 같다.

-구오오오오....

보랏빛 하늘이 갑자기 갈라진다. 아니, 찢어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하늘이 찢어져서 생긴 공간으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난다. 머리끝부터 천천히,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연상시키게 하는 순수하게 검은 피부.
활화산 근처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뜨거운 입김.
거대한 산도 한입에 물어뜯을 것 같은 날카롭고 거대한 이빨.

지옥의 흑룡이라고 부르면 되려나.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 한 번의 포효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릴 수 있을 것 같은 위압감이다. 확실히 이런 비 내리는 겨울밤에는 어울리는 장관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감상뿐.
솔직히 기대 이하다.

“당신. 아무래도 먼치킨이라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모양이니 친절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막 머리가 완전히 빠져나온 용을 향해 주먹을 쥔 채 팔을 쭉 뻗는다.

머리속으로 검 하나를 상상한다. 그냥 적당하게, 저 용의 목을 한 번에 벨 수 있을 만한 크기로. 그 정도의 크기라면 디자인은 복잡한 것보다는 심플한 게 좋겠지. 손잡이는 필요없다. 직접 손으로 잡을 것도 아니니까. 그냥 곧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칼날의 형상이면 충분하다.

“하나. 먼치킨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

주먹쥔 손을 쫙, 하고 펼친다.

난데없이 공중에 검이 하나 나타난다.
짠~ 하는 느낌으로, 정확히 내가 상상한 크기와 모양의 검 하나가.

“뭐, 뭣이...”

겨우 이정도로 당황하고 있다.

솔직히 위력만으로 따지면 저 흑룡이 몇 배는 더 강할 터인데. 저 인간은 지금 자신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자기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힘을 가진 녀석들이란.

어쨌거나 시간을 끌고 싶진 않다.
저 흑룡이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와 버리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절반이 날아가 버릴 테니까.

녀석의 몸통이 절반쯤 이쪽으로 넘어왔을 쯤, 형식상 짤막한 영창을 한마디 중얼거린다.

“싹-둑.”

내 팔로 허공을 베듯이 안쪽으로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뒤를 돌아선다.

싹둑, 이라는 느낌으로 용의 머리가 손쉽게 잘렸을 것이다. 물론 난 뒤돌아 서 있으니까 그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사실 만화에서 정의의 히어로가 필살기로 악당을 물리친 뒤 적에게서 등을 돌린 채 승리의 포즈를 취하는 건 멋있어 보이려고만 그러는 게 아니다. 명색이 히어로인데 적이 피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는 건 여러모로 안 좋지 않을까.

나도 한 손으로 모자를 움켜잡은 채 적당히 승리의 포즈를 취해 본다.

짠~

...어쩐지 싼 티 나는 히어로가 된 기분이다.

하아.

내 탓이 아니다. 저쪽에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도 저런 맥없는 용 따위나 소환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정말이지 한숨밖에 안 나온다. 부탁이니까 좀 더 격에 어울리는 짓을 해 줬으면 좋겠다.

“...역시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건가.”

알았으면 반성하고 다음번엔 좀 더 나은 걸 보여주길 바란다.

다시 뒤를 돌아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용의 모습은 이미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다. 의외로 뒤처리가 깔끔한 사람인 것 같다.

“Bernansterdo Brusveteinsignita..."

영창에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바뀌었다.

처음 듣는 언어이다. 설마 생소한 주문이라면 먹혀들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THEDESTO!"

잠시 뒤, 이번엔 구름 위에서 비와는 다른 뭔가가 잔뜩 쏟아진다.

호오.
꼭 보라색 유성우가 내리는 것 같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참신한데.

“크하하하! 도시 전체로 퍼져나갈 이 수백만 마리의 저주받은 영혼들을 그대 혼자서 어떻게 막아 보이겠는가!”

위험하다.

저것들은 분명 내가 아닌 도시 사람들을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내가 저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한눈파는 사이에 끝장을 낼 생각인 것 같다. 그런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들먹거리면서 저질스러운 계략이나 쓰려 하다니. 한 순간이나마 감탄한 내가 바보 같다.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다.

머뭇거릴 새 없이 곧바로 손가락을 하나 펴서 보랏빛 유성우 쪽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또다시 있으나 마나한 영창을 하나 중얼거린다.

“자, 가자.”

그쪽이 수백만이라면 이쪽은 수천만이다.

수천만 개의 반딧불을 연상케 하는 작은 구체들이 짠, 이라는 느낌으로 나타난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별 건 아니고 그냥 빛의 파장이 다른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들일 뿐이다. 스케일이 클수록 단순한 것이 좋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는 듯 보이다가,
무지개 빛 은하수처럼 일제히 질서정렬하게 지상으로부터 솟아오른다. 지우개로 지워나가듯이 깔끔하게 보랏빛 유성우들을 지워 나간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어, 어떻게...”

“둘. 먼치킨에겐 계략이나 함정 따위 통하지 않는다.”

유성우를 말끔하게 지워버린 반딧불들은 일제히 방향을 돌려 우르바후란 녀석을 향해 달려든다.

“큭! 이렇게 된다면!”

남자가 그렇게 외치며 자세를 바꾼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양팔과 양발을 벌린 채 짠~ 하는 느낌일 것이다. 이번엔 영창도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조금은 자기 힘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깨달은 것 같다.

...아.

허공에 갑자기 원형의 작은 구멍이 생겨난다.

정말로 작은 구멍뿐이지만, 구멍 너머로는 빛 한 점 없는 무한의 어둠뿐.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흡입력으로 내 반딧불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내 입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수식어를 나오게 하다니, 이번엔 마음에 들었다.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다. 구멍은 지상의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려는 기세로 조금씩 커져 간다.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지체했다간 도시가 통째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네 녀석이라고 해도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 버리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

하아.

너무 야속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피 곧 있으면 떠날 사람을 재촉해서 어쩌자는 건지.

뭐, 좋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니까.

초록색 모자를 벗어서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거라도 남기지 않으면 그 애가 분명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찾아다닐 것이다.










'약속이다! 꼭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는 거다!‘





...그 아이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드는데.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가볍게 점프, 하는 느낌으로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정확히 블랙홀의 한 가운데를 향하여.
블랙홀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눈앞이 완전히 새까매진다.
꽤나 장황한 연출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블랙홀의 경계에 닿자마자,



아무런 영향도 없이 가볍게 통과해 버린다.
평범한 커텐을 통과하는 느낌으로.
다시 잿빛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블랙홀은 그냥 환영이었다는 듯이.

아니, 나의 존재 자체가 그저 환영인 듯이.

“대, 대체 어떻게!”

차가운 비가 그대로 얼굴에 부딪힌다.

이제는 녀석의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란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에 도달했다.
멈추지 않고 녀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간다.

“네 이노오오오옴!”

무언가 어둠의 화살 같은 것들이 무수히 이쪽을 향해 쏟아진다.
하지만 화살은 내 몸을 그대로 관통하여 스쳐 지나갈 뿐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미 이쪽 세계에서는 존재감을 너무 많이 잃었으니까.
이곳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대로 순식간에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미안하지만...





너는 남고 나는 떠난다.






“어 어떻게...”

“셋. 먼치킨은...”

녀석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는,

이 순간까지도 먼치킨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지 못한 녀석에게 마지막 하나를 알려준다.


'약속이다! 꼭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는 거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는 그 말 한마디를.





“먼치킨은,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




-Chapter 4. 시계탑 똘똘뭉쳐 탐험하기 中



★★★★★★★★★★★★★★★★★★★★★★★★★★★★★★★★★★★★★★★★★★★★★★★★



Project 'WINDMAJOR' Series No.1

Seven-Colored Fantasy





...제 꿈이 뭐냐고 뭐냐고 물으셨습니까?




Written by Waffle:D
'Will Accomplish Flight For Lunatically-imposibblE Dream'





그거야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행복해 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아무도 더 이상 고독해 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영원히 타락하지 않을 완벽한 세계를 만드는 거다.






모두가 한껏 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 멋지지 않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출 때까지~Yeah!




서로 싸울 일 없이 모두가 친구되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대의 꿈에게 바치는 무지개 빛 판타지~


아라시스 탐험대!
~The Venturers of Arasys~



★★★★★★★★★★★★★★★★★★★★★★★★★★★★★★★★★★★★★★★★★★★★★★★★


Episode 1. 여기 두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


Chapter 1.




-웅웅웅웅~

아으,
얼굴이 다 갈라지고 있어.
정말로 칼바람이 따로 없잖아.
이 도시는 초겨울밖에 안됐는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설마 헬멧을 쓰지 않은 대가가 이정도로 심할 줄이야. 그래도 내 소중한 금발 머리가 헬멧 따위 때문에 눌려 버리게 둘 순 없잖아? 기사단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2달 동안 겨우 어깨 아래까지 기른 소중한 머리인데. 헬멧 대신 스쿠터 앞에 방한 유리라도 붙여 주면 얼마나 좋아? 하여간에 이 도시는 여자 기사들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다니까. 으, 이젠 눈이 시려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겠어. 고글이라도 하나 장만해야 하나.

-웅웅웅웅~

아니, 그보다 우선 두꺼운 방석이 먼저지. 이 호버 스쿠터는 승차감이 너무 기분 나쁘단 말야. 꼭 진동모드로 울리는 거대한 핸드폰 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라니까. 허벅지도 가렵고, 시야가 흔들려서 집중도 안되잖아. 바퀴수가 적은 게 이런 좁은 골목에선 효과적이라고 해도 아예 없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공중에 떠다닌다고 해서 별로 빠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면에서 30cm 이상 날지 못하게 하는 법규 때문에 딱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겉모습이 귀엽다고 해서 실속이 좋은 건 아니라니까.

-웅웅웅웅~

하아. 정말 마음 같아서는 순찰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이불 속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고 싶은데. 대체 나 같은 엘리트 기사를 왜 이런 지저분한 마을의 치안대에 배속시킨 걸까? 이건 명백히 인력 낭비라고. 정말 계급 높은 기사들은 다들 머리 나쁘고 게을러빠진 대머리 아저씨들인게 분명해.

-웅웅웅웅~

아, 드디어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주 못 본 사이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버렸네. 하나같이 빨개 벗고서 저렇게 촘촘히 모여 있으니까 마녀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살발하잖아. 그나마 잎이 잔뜩 있었을 때는 정말로 멋졌는데.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마을에선 유일하게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니까 조금 반갑긴 하네.



빼곡하게 심어진 나무들 바깥쪽을 따라 돌다가 곧 광장 입구를 발견했다.

잠시 스쿠터를 멈춰 세우고는,
허리에 차고 있는 기사용 PDA를 꺼내서 무전기 기능을 켰다.

“작은집, 여기는 초롱새 이상!”

-지지직...

잠시후 'Voice Only'라는 화면이 뜨면서 소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작은집, 이상.”

“여기는 초롱새! 현 시각 순찰구역인 A-2 중앙광장에 도착하였음. 지금부터 순찰업무를 이행하도록 하겠음, 이상~”

“여기는 작은집, 수신완료. 교신 끝.”

“여기는 초롱새! 소패, 그렇게 무정하게 끝내 버리는 게 어디 있어! 내가 그렇게 싫은 거야? 이상!”

“여기는 작은집. 근무 중 PDA로 사적인 대화는 자제할 것. 이상 교신 끝.”

“너무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우리가 고작 이런 사이었니?”

“여기는 작은집, 한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 하면 상부에 보고해서 봉급을 삭감해 버리겠음. 좋은 말로 할 때 농땡이 피울 생각 말고 헬멧 제대로 쓰고 업무에 충실히 임할 것. 이상 교신 끝.”

치.
같은 치안대 동료에게 그렇게 차갑게 굴다니.
하여간에 정 떨어지는 아줌마라니까.

다시 스쿠터를 몰아서 광장 안으로 향했다.



...으으.

너무 휑한데. 거의 초원 수준이잖아? 콘서트 장 10개는 가져다 붙여놓은 듣한 크기에 사람은 100명 정도 되려나? 도대체 이 공원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크게 지은 걸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말야. 게다가 눈코입 없는 석상이랑 대충 쓰레기를 붙여 만든 듯한 조각품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저거 가져다가 팔면 코트 한 벌이나 제대로 살 수 있을까? 하긴, 그 정도 값만 되었어도 주변에 좀도둑들이 벌써 가져다가 팔아먹었겠지.

뭐, 어쨌든.
결국 여기 찬바람 쌩쌩 부는 중앙광장이 오늘 내 순찰구역이구나.

하아....





...좋아.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하압!
자! 그럼 유리엘!
기왕 이렇게 된 거 기분 좋게 웃으면서 하는 게 좋잖아?
오늘도 기합 넣고 열심히 해 보는 거야! 아자~!

-웅웅웅웅~

아, 마침 저쪽에서 나이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있다!
좋아!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인사하는 거야!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이렇게 추운 날에도 공원에 나오셨네요!”

“왜, 나 같은 노인네는 추우면 집에서 잠이나 쳐 자야 하는 법이라도 새로 생겼나 보지?”

“아, 아하하, 그런 뜻으로 한 말이...”

“GPD! 서민들 등이나 쳐 먹는 에미 없는 기사단 녀석들 같으니라고.”

아, 등 돌려 피해 버렸다?

치. 뭐야, 내가 대체 뭘 어쨌다고.

확 감기나 걸려 버려라.

...
자, 자! 이러면 안되지, 유리엘! 자, 웃자, 웃어~!
이 정도로 풀이 죽을 나 유리엘이 아니란 말씀!

-웅웅웅웅~

좋아, 이번엔 한참 사춘기처럼 보이는 10대 남자에 두명 발견!

“얘들아~ 담배는 20살이 넘은 뒤에 피어도 좋지 않겠니? 기왕이면 10대의 열정적이고 건강한 몸을 오래오래 유지하는 게 좋잖아?”

“뭐어? 담배 연령 제한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괜히 우리에게 시비야?”
“어이, 아줌마. 기사라고 깝죽대다간 큰일 나는 수가 있어?”

아, 아줌마?! 누구 보고 아줌마래! 이래 봐도 이제 21살의 창창한 나이에, 키 반올림하면 180cm 몸무게 반 내림하면 50이라고! 그리고, 그리고...

하아.
마음씨 좋은 내가 참아야지.

확 암이나 걸려 버려라.

-웅웅웅웅~

...

그래, 난 잘 하고 있는 거야.
잘 하고 있어, 유리엘! 이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그냥 오늘은 운이 좀 없었을 뿐이잖아? 겨우 이정도로 무너질 순 없단 말이지~! 좋아, 한번더 힘을 내는 거야! 아자!

앗! 양손에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가는 아줌마 발견! 이건 절호의 찬스!

“아주머니! 제가 짐 좀 들어 드릴...”
“왜, 또 과다 적재라고 벌금 매기려고? 아니면 운전면허 빼앗는 걸로도 모자라서 걷기 면허증까지 뺏어가게?”

“아, 아니 저...”

“흥! 우리 같은 가난한 놈들 거 뺏을 힘 있으면 범죄자들이나 제대로 잡으라고, 이 밥벌레 세금벌레들아!”

바, 밥벌레라니...

으, 왜 나한테 괜히 화풀이야.

가다가 소매치기나 당해 버려라.

...

풀이 죽어 버렸다.

-웅웅웅웅...

왜 다들 우리 기사단을 싫어하는 걸까?

머리는 좀 나빠도 아라시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그리고 보니 우리 기사단이나 이 공원이나 닮은 점이 참 많구나.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그런데 결국 사람들 세금만 왕창 뜯어먹는다고 미움이나 받는 것도.

-웅웅웅웅...

멀리서 한 아이가 신난 듯 정신없이 달리고 있네.

아이들은 저렇게 티 없이 웃을 수 있구나.
억지로 웃는 것조차 힘든 나와는 대조적이어서 조금 질투심이 드는데.

앗, 아이가 넘어졌다.
조심 좀 하지.

아, 갑자기 울기 시작하잖아!
서둘러 아이가 있는 곳까지 스쿠터를 몰아갔다.

“꼬마야, 괜찮니?”
“우와왕! 아파...”

“자, 자 괜찮아! 언니가 호~해줄게.”

호버스쿠터 뒤에 배치된 비상약으로 꼬마아이의 무릎을 소독한 뒤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그러자마자 꼬마가 갑자기,

“얘, 얘야! 아...”

도망가 버렸다.

배은망덕한 애 같으니라고.

가다가 한번 더 넘어져 버려라.





...뒤에서 불쾌한 시선이 느껴지는데?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

“...”

바로 앞의 3인용 나무벤치 한 가운데에, 왠 남자가 앉아 있었다.

모자를 눈썹이 가려질 정도로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대충 20대 중반 정도 되려나? 저 완전 촌스러운 초록색 여행용 모자만 아니었으면 꽤 멋있는 얼굴일지도 모르겠네. 아니. 모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잖아? 너저분해 보이는 외투랑 다 헤진 바지가 영락없는 노숙자 꼴이네. 게다가 꼬마들이나 두르고 다닐 법한 저 알록달록한 목도리는 민망하게 뭐하러 하고 있는 건지.

그보다 이 남자,
왜 계솔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야?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그만 쓸데없는 소리를 해 버렸다.

“저기요, 눈앞에서 아이가 다쳐서 울고 있으면 달래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예? 아아,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응? 지금 이 남자 뭐라고 지껄인 거야? 갑자기 짜증이 확 나는데?

...자, 자! 유리엘, 미소! 미소! 화 내봤자 좋을 거 없잖아?

억지로 웃으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 이렇게 신사적으로 생기신 분께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되죠~. 아무리 그래도 아직 꼬마인데 넘어졌을 때 아무도 안도와주면 얼마나 서럽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상상 남의 도움만 받으면 결국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예에?! 에, 에이, 그래도 상대는 아직 어린 애인데.”

“넘어졌을 때 서러운 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아이라고 너무 봐주기만 하다가는 다 자라서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 될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하, 그래서 당신은 주위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도 절대로 안도와 주겠다는 거죠?”

“저는 그저...”
“아니요? 당신은 친구가 죽어가도 구경만 할 사람이야, 당신 같은 인간에게 친구가 있을 지나 모르겠지만!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아마 완전 엉망진창인 세상이 되어 버릴걸?”

흥! 뭐 이딴 사람이 다 있어!

일부러 발에 힘을 주어 타박타박 걸으면서 내 스쿠터가 세워져 있는 곳까지 되돌아갔다.

“저기, 잠시만.”

등 뒤에서 남자가 갑자기 불러 세웠다.

“혹시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없습니까?”

...

설마 수작 부리는 거야?
최악이네.

그대로 180도 돌아서서,
그 바퀴벌레보다도 못한 인간에게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죄송하지만 당신 같은 인간쓰레기 말종 바퀴벌레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진지하게...”

“그리고 한번만 더 저에게 말 거시면 공무방해죄로 감옥에 쳐 넣어 버릴 테니까 입단속 부탁드리겠습니다~?”

“...”

...흥.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재빨리 호버스쿠터에 다시 시동을 걸은 뒤 페달을 밟았다.




-우웅웅웅... 위잉~ 위잉~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흥! 잘났어, 정말. 노숙자 주제에. 하긴 성격이 그 모양이니까 20대가 하릴없이 저러고 있는 거겠지! 저런 유치뽕짝인 목도리랑 바보 같은 초록모자나 쓰고 그러니까 친구 하나 없는 거라고!

-위이잉~! 휘익! 쿵!

분수대 근처에다가 스쿠터를 집어던지다시피 해서 내렸다.

그리고는 분수대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솨아아...

흥. 진짜 자기가 뭐라고.

우는 아이 하나 달래 주는 게 그렇게 나빠?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냐고.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인사 좀 했다고 욕먹고, 애들에게 친한 척 했다고 협박이나 당하고, 짐 좀 들어주려 하니까 밥벌레 취급이나 당하고. 내가 뭐 자기네들 시간을 빼앗기나 했어, 아니면 반말을 했어? 그냥 다 같이 웃으면서 지내자는 건데 손 한 번 흔들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뭐 누구는 심심해서 억지로 미소 지으면서까지 이러는 줄 아냐고.

그리고! 자기네들이 뭔데 우리 치안대 기사단을 욕해? 우리가 없으면 너네들이 집에서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 같아? 게다가 말야 왜 높으신 양반들이 잘못한 걸 우리들에게 뭐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세금을 걷어, 아니면 법을 바꿔? 우리도 위에서 시키는 바보 같은 명령이나 따라야 하는 피해자라고. 아니, 그보다 자기네들은 뭐 얼마나 잘났길래 우릴 비웃는 거야? 고작 이런 마을에서 빈둥거리며 사는 주제에. 능력이 없으면 성격이라도 좋던가. 하긴 이도저도 다 안 되니까 윗마을로 못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겠지. 하여간에 남에겐 관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주제에 하나같이 전부 인상이나 쓰고 다니고. 그래서 이 마을이 이렇게 찬바람 쌩쌩 부는 거라고.

...아니, 나쁜 건 나 한사람이겠지. 그래. 내가 나쁜 년이지, 이 나이 되도록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바보 같은 꿈이나 꾸고 말야. 뭐? 미소로 다른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기? 치, 웃기고 있네. 자기 자신조차도 행복하지 않은 주제에.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이런 유치하고 쓰잘데기 없는 꿈은 비웃어 버리겠다.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그렇게 당했으면서 아직도 꿈이랑 현실도 구분 못하다니. 현실은 이렇게 차가운 곳인데.

...하아.

무의식중에 분수대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여자가 한명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웃는다.

억지로 미소 지어 본다.

이렇게 웃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건 꿈에 걸고 맹세한 일이니까.

그런데,

물에 비치는 자신의 미소가 왜 이렇게 낯설까.

...










바보냐!










누군가가 소리질렀다.

나에게?

...

....

-푸드덕.

여기저기에서 비둘기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분수에서 ‘솨아’하는 물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체 몇 번을 설명해야 알아듣는 거냐!”

뭐, 뭐야, 왜 여자아이가 막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거지?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소리가 난 분수 반대편을 향해 서둘러 스쿠터를 몰았다.

뛰어서 한 바퀴 도는데 5분도 넘게 걸리는 거대한 분수대 반대편에 도착하자마자 어렵지 않게 고함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10대 남짓한 여자아이가 분수대 위에 서서는,
양 팔을 자신의 허리에 댄 채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탐색대가 아니라 탐험대다! 돈을 받고 남의 잔심부름 따위나 해 주는 녀석들과는 다르단 말이다!”

으으, 무슨 어린애 목소리가 저렇게 크지?
게다가 말투가 거친 게 완전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괴팍한 왕 같은데.

상황을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스무 명쯤 되는 구경꾼들의 제일 뒤에 스쿠터를 멈춰 세웠다.

빨간 머리를 보라색 구슬이 달린 머리끈으로 양 갈래로 묶은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몸집보다도 커 보이는 성인용 갈색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말괄량이 골목대장의 느낌이랄까?

“또 할 말 있냐? 없지? 그럼...”

여자아이가 당당한 표정으로 자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탐험대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

...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괜히 내가 다 미안해지네.

“뭐야, 없냐? 정말 없냐? 이 도시엔 겁쟁이들밖에 없는 거냐!”

여자아이가 다시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을 노려다 보았다.
하지만 결국 구경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야! 누구 마음대로 도망가는 거냐! 멈추지 못해? 아직 내 이야기는 안 끝났단 말이다!”

다들 듣는 척도 안하는데.


뭐, 미안하지만 나도 근무중이라 놀아줄 시간은 없으니까.
다시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치,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거기 임마! 누가 멋대로 시동 걸라고 했냐!”

-뜨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여자아이가 정확히 이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어떠냐! 우리 탐험대에 들어오는 것이?”

“아하하, 저, 저기 나는...”



“꼬마야, 괜히 어른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놀아라.”

“...꼬마?”

다행히도 누군가 그렇게 말해준 덕분에 여자아이의 시선이 옮겨졌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일이 커지기 전에 이만...

“누가 감히 꼬마라고 지껄이는 거냐!!!!”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열기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착각, 인가?

어느 새 자기 몸집보다도 거대한 양날도끼를 들고 있는 여자아이의 몸 전체로부터, 활화산처럼 뿜어진 엄청난 양의 푸른 불꽃이 광장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져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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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wind Village, Central Fountain Square, Maze of sewer
이 이야기는...여기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Chapter1.
하수구 투덜거리며 탐험하기

Can Only See your front while you're running...Just stop there
★★★★★★★★★★★★★★★★★★★★★★★★★★★★★★★★★★★★★★★★★★★★★★★★



...?

왜 이렇게 조용하지?

조심스레 감았던 눈을 떠 보았다.

꺅?!
아직도 불꽃이 사라지지 않았잖아!

아니,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건가?
마치 공중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라도 난 듯이.


게다가 그 주변을 춤추듯이 맴돌며 날아다니는 건...



목도리?



“And so the flame by the devil will be extinguished by the pure vaccum... Nosirp Muucav."

아! 아까 그 초록색 모자의 남자다!

내 앞에서 남자가 무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오른 손의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불꽃과 목도리가 한꺼번에 빨려 들어가 버려서는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나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웅성웅성...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부, 분수가 완전히 말라 버렸어...”
“바, 방금 죽을 뻔한 거 아냐?”
“일단 빨리 여기서 나가자!”


아, 사람들이 갑자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잖아!
일단 진정시켜야 해!

“여, 여러분! 일단 진정하시고...”

“너라면 진정하게 생겼냐!”
“기사단 녀석들은 대체 이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뭘 한 거야!”



...


흥,
이 마을엔 정말로 겁쟁이밖에 없잖아.




...



참! 난 대체 가만히 서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일을 수습해야 하잖아! 우선 여자애를 쫒을까? 근데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잖아! 치안대 본부에 연락을 할까? 연락한 뒤에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니, 치안대에다가 연락하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잖아! 보나마나 일단 본부로 돌아오라고 할 게 뻔한데!

아, 그리고 보니 저 초록 모자의 남자, 아직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잖아? 좋아, 저 남자라면 뭐라도 알고 있겠지!

“저기요!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예?”

“방금 그 푸른 색 불꽃 말이에요! 빨간 머리의 여자애가 내뿜어서 당신이 막아준!”

“예에?”

“장난치지 말고 빨리 상황 설명 좀 해 줘요!”

“저기,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남자,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끝까지 멍하니 서 있잖아!
“계속 그렇게 시치미 땔 거에요! 빨리 수습 안하면 아까 그 여자아이가 또 어디에서 이런 짓을 벌일 지 모른단 말이에요!”

“아까 그 여자아이라면, 혹시 빨간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네에! 탐험대 대원을 모집하겠다고 설치고 다니던 그 여자애!”

“...아.”

“이제 기억이 좀 나요? 아니, 이봐요! 그러니까 그렇게 무관심하게 대답하고 말 일이 아니라니까요! 빨리 그 여자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 쫒아가야 할 것 아니에요!”

“쫒아 가는 겁니까.”

“아, 진짜! 답답하게 좀 굴지 마요! 지금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으으, 어쩌지? 치안대에 연락해서 GPS로 여자아이 위치 확인해 달라고 하면 한 시간 넘게 걸릴 텐데!”

“위치라면 제가 대충 알고 있습니다.”

“네? 정말로?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그야 그 여자아이 머리끈...아니, 그 여자아이의 불꽃의 파장을 쫒으면 됩니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해요? 그럼 뭐해요! 빨리 쫒아가야지! 자, 일단 제 스쿠터에 같이 올라타요!”

곧바로 스쿠터에 올라탔다.
남자는 내 뒷자리에 뒤돌아서 나와 등을 마주 댄 채 앉았다.

“...저기요, 그렇게 앉으면 스쿠터에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서커스단에서도 인정해 줄 정도로 균형 잡는 데에는 소질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뒤돌아 앉아서 제 허리나 붙잡으시죠?”

“죄송합니다. 제가 남의 몸에 손을 대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아, 진짜! 무슨 남자가 그렇게 변명이 많아! 마음대로 해요! 바로 출발할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위잉, 위이잉, 위이이이잉!


“자, 어디로 가야 하죠?”

“저기 동쪽 방향으로 간 것 같습니다.”

“동쪽이요? 알았어요!”

-위이이이이잉~!

...대체 뭐였을까,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서 지나치게 말도 능숙했고. 게다가 그 불꽃, 남자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분명 광장 전체를 태워 버리고도 남았을 텐데.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신종 로봇인가? 하지만 로봇이 뭐 하러 탐험대나 모집하면서 혼자 돌아다니겠어? 아니면 혹시 외계인? 괴물? 악마?

“저기 말입니다.”
난데없이 등 뒤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네?”

“이 마을, 원래 이렇게 지저분한 곳이었습니까.”

“원래나니요, 그게 무슨 뜻이죠?”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아까 그 광장이 나오길래 굉장히 멋있는 도시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광장에서 나오자마자 갑자기 풍경이 180도 변해 버려서 말입니다.”

“혹시 이 도시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나요?”

“실은 오늘 아침에 들어왔습니다.”

“그럼 역시 잘 모르시겠구나. 네, 맞아요. 이 마을은 원래 이런 마을이에요.”

“어쩐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들. 좁은 골목. 여기저기 널부러진 쓰레기들. 고양이 사체. 지저분한 낙서.

하긴,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이런 것들뿐이니 누구라도 질색할 만하지.

“...뭐, 쉽게 말하자면 아까 그 광장은 눈속임이에요.”

“눈속임 말입니까.”

“네, 눈속임. 원래 아라시스라는 도시가 중요한 시설들은 대부분 중앙 쪽에 몰려 있고 외곽쪽에는 빈민층들밖에 살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 처음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마을 중에서도 가장 외곽에 위치한 여기 프레윈드 마을을 거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도시의 이미지라는 것도 있으니까 입구 바로 앞에다가 저런 거창한 광장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주변에 나무들을 두껍게 심어서 마을이 보이지 않도록 말이죠.”

“아, 그렇습니까.”

“뭐,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런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라요. 광장 끄트머리에 도시 중앙부로 텔레포트 시켜주는 시설 보셨죠? 도시에 처음 들어오는 여행객 같은 사람들은 원래 정문에서 기사단 요원이 한명 붙어서 도시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곧장 그 시설로 안내해 주는데. 그래주지 않았던가요?”

“아...뭐, 그쪽도 바빠 보여서 말입니다.”

“흥, 바빠 보이긴. 보나마나 땡땡이 치고 있었던 거겠죠. 하여간에 같은 기사단이라지만 정말이지 다들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니까요? 어쨌든 도시 안쪽은 그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라시스 대도시라고 하면 그냥 살기 좋은 도시로만 아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윗마을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 연구직에 종사한다거나 그 외의 능력이 되는 사람들뿐이고, 나머지 평범한 주민들은 이런 외곽 지역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고 있다니까요.”

“그렇습니까.”

“저도 원래 이 마을 사람은 아니지만 이 마을 치안대에서 근무 중이라서요. 온 지 두 달 정도 됐는데 아직까지도 도무지 이 마을에 익숙해지지 않는 거 있죠? 더러운 위생 상태며, 사방에 사기꾼이랑 좀도둑들이 설치고 다니고. 그리고요, 무엇보다도 어이가 없는 건... 잠깐! 이렇게 한가롭게 수다나 떨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그렇습니까.”

“아, 진짜!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었는지조차 까먹고 있었잖아!”
“저는 별 말 안했습니다만.”

“아, 몰라요! 빨리 집중이나 해요! 아직 그 애 찾으려면 멀었어요?”

“거의 다 왔습니다. 아, 저기 다리 주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리?
아, 그리고 보니 어느새 헤븐스티어 강 근처까지 와 버렸네.

속도를 늦춘 뒤에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이 근처가 확실해요?”

“아마 다리 밑에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리 밑이요? 거긴 지저분한 강물밖에 없는데. 대체 그 아이는 사람 한 명 없는 그런 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아마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반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리 근처에 호버스쿠터를 세우고는 내렸다.
남자 역시 내려서는 모자를 고쳐 썼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음... 여자아이를 혼냅시다.”

“예? 혼내다니요?”

“잘못했으면 혼내는 게 당연한 거지 않습니까.”

“저기요? 지금 그거 진심으로 한 소리에요? 광장 하나를 통째로 태워먹을 뻔했던 아이라고요! 아직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다짜고짜 혼낸다는 게 말이나 되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진지하게 좀 해요!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계속 그렇게 무관심한 표정이나 짓고서! 지금 일부러 장난치는 거지!”

“전 항상 진지합니다, 아마도.”

“자꾸 헛소리만 할래요? 아무튼 이렇게 해요. 우선 밑에 가서 여자아이와 대화를 나눠 본 후에 큰 문제없으면 치안대 본부로 데리고 가는 거에요.”

“치안대 본부로 말입니까.”

“네. 설령 정말로 그냥 사고였다고 쳐도 내버려 두면 위험한 건 사실이잖아요. 일단 치안대에서 보호하고 있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냥 말로 잘 타이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 말 어디로 듣고 있는 거에요? 내버려 두면 또 아까처럼 그런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니까요?”

“아직 어린 아이지 않습니까.”

“...뭐, 느닷없이 치안대로 데리고 가면 겁먹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버려 둘 순 없는 거잖아요.”

“그럼 차라리 제가 당분간 돌보고 있겠습니다. 어쩌피 저는 여행가이니 딱히 바쁜 일도 없고 말입니다.”

“나쁜 생각은 아닌 거 같은데...아이 잘 볼 자신 있어요?”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역시 안되겠어요. 당신같이 이상한 사람에게 맡겼다간 괜히 더 겁먹을지도 몰라. 차라리 제가 당분간 돌볼게요. 치안대에다가는 적당히 미아라고 둘러대면 어떻게든 되겠죠, 뭐.”

“과연 그 애가 순순히 당신과 함께 지내려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으으...하아. 아무래도 우리 둘이서 이야기해 봤자 끝이 안날 거 같아요. 일단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죠.”

“예, 알겠습니다.”

“아, 잠깐만! 만약 우리가 내려갔는데 그 애가 갑자기 덤벼들면 어떻게 하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만일의 가능성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럼 차라리 저 혼자 내려가 보겠습니다. 저라면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당신 혼자서는 아이가 오히려 더 겁먹을 지도 모른다니까요? 그럼 이렇게 해요. 제가 먼저 내려가서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 볼 테니까 당신이 제 뒤에서 백업해 주세요. 알았죠?”

“예, 알겠습니다.”

...뭐, 이래저래 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날 도와주려고 하다니.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광장에서 있었던 일은 그냥 용서해 줄까?

자,
아무튼 지금은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한 가지만 집중하자!

“그럼 저부터 내려갑니다!”

좋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대로 5m 정도 되는 다리 위에서 강가 쪽으로 뛰어 내렸다.

그 다음 곧바로 내 레이저 소드를 꺼내들어 우선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여자아이는 다리 밑의 하수구로 이어지는 길목 옆 자갈밭에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 걸까?
좀 가여워 보이는데.

아무래도 우선 위로부터 해 줘야겠어.

“얘, 괜찮니?”

"..."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들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아, 저, 저기? 늦었냐니, 뭔가 사람을 착각한 거 같은데...”

“시끄럽다! 잘못을 했으면서 변명부터 하려 하다니! 네 녀석 같은 겁쟁이들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탐험대가 만만해 보이더냐!”

“저기, 서, 설마 내가 탐험대인가 뭔가 하는 것에 참여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냐! 그럼 참가하지 않겠다는 소리냐!”

“아니 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케이티 양, 그런 식으로 난동을 피워놓고 도망쳐 버리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어느 틈엔가 내 바로 뒤에 착지한 남자가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덕분에 여자아이는 거짓말을 들켜버린 아이처럼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시끄럽다! 녀석들이 자꾸 짜증나게 하니까 겁만 주려고 했던 거다! 네 녀석이 없었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으으, 어쩐지 아까보다도 훨씬 화가 난 거 같은데.

“이제 어쩌죠?”

내 뒤의 남자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하냐! 바로 입단 시험을 치러야지!”

꺅! 뭔 애가 저렇게 귀가 밝아!
그보다 입단 시험이라니?

“케이티 양, 그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조금 지나쳤습니다.”

“닥쳐 닥쳐 닥쳐! 둘 다 입 다물고 따라와! 함께 직접 탐험하면서 평가해 주겠다!”

“자, 잠깐! 그런 말 해놓고 무작정 하수구로 들어가면 어쩌자고!”

“...따라갑시다.”

“당신도 무작정 따라가려 하면 어떻게 해!”

“따라오라지 않습니까.”

“우릴 시험해 본다잖아! 괜히 큰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렇다고 여기 가만히 있으면 저 아이가 더 화낼 겁니다.”

“아무튼 저 안은 안돼! 저 안에는 저, 쥐...아니, 아무튼! 그럼 이렇게 해요! 전 여기서 치안대랑 연락하면서 상황을 중계할 테니까, 당신이 들어가서 아이를 달래보는 거에요. 어때요?”

“흐음. 좋은 생각인 거 같습니다. 아,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만.”

“정말? 그게 뭔데요?”

남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단검인가? 와, 칼날이 번개 모양으로 굽어 있는 게 엄청 비싸 보이는데.

“그걸로 뭘 어쩌실 생각이신데요?”

“이렇게 할 겁니다.”

남자가 단검을 든 손을 앞으로 뻗어서, 내 목에 가져다 대었다.



...어?

“무, 무슨...”

“그냥 제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굳이 치안대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시니 저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다, 당신, 갑자기 왜 이러는...윽!”

다, 단검이 한층 더 강하게 목을...

“얌전히 쫒아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저항하시겠습니까.”

★★★★★★★★★★★★★★★★★★★★★★★★★★★★★★★★★★★★★★★★★★★★★★★★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터벅, 터벅, 터벅, 터벅.

...

어둡고, 춥고, 습하고, 음침하고, 더럽고.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남자의 말을 너무 쉽게 믿은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오지랖 넓게 쓸데없는 짓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을까.

...

이래저래 벌써 세 시간 째.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무작정 걷기만 하는 케이티라는 여자아이와, 내 등에 단검을 들이밀고 있는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 사이에 끼어서 쉬지도 못하고 마냥 걷기만 했다.

...

바로 등 뒤에서 단검으로 찌르고 있어서 탈출할 생각은 섣불리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주머니에서 PDA를 꺼내 본부에 연락을 취하는 것도 무리고. 결국 세 시간동안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치안대 본부 쪽에서 낌새를 눈치 채고 도와주러 올 거라는 기대마저도 희미해져 버렸다. 세시간 동안이나 중간보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을 해 오지 않은 것이다. 이러니까 기사단이 사람들에게 미움이나 받는 거라고.

...

하아. 너무 오래 있다 보니까 이젠 긴장감마저 풀려 버렸어.
그냥 어떤 식으로든 좋으니까 빨리 좀 끝났으면...

-찍찍.

응? 바닥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

“꺄악! 쥐, 쥐!”

“사람을 잡아먹진 않으니까 무서워할 거 없습니다.”

“싫어어! 쥐라고 쥐! 여기서 나갈래엣!”

“자꾸 난동 부리시면 머리카락 베어 버립니다.”

“너너너, 내 머리카락에 손 끝 하나라도 건드리기만 해봐!"

"알았으니까 빨리 갑시다.“

“이 배신자! 짐승! 인간쓰레기! 바퀴벌레! 나중에 우리 치안대가 몰려와서 체포되면 묶어놓고 몇 시간 동안 발가락 간질이기 고문을 해 주겠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진짜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으으!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역시 기회를 봐서 저 바퀴벌레 인간에게 한 방 먹인 뒤 도망치는 게...

“혹시 저를 쓰러트리고 도망가겠다는 한심한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말입니다.”

-뜨끔!

“응? 아, 아하하, 무슨 소리일까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조금이라도 쓸데없는 짓을 했다간 대머리가 되는 주문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대머리가 되는 주문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해보셔도 말리진 않겠습니다.”

“너, 너, 정말로 내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절대로 가만히 않있겠어!”

“예, 예. 아무 짓도 안할 테니까 빨리 갑시다.”

“이, 이 신사도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바퀴벌레 인간!”

“자, 자, 알았으니까 빨리 갑시다. 이렇게 느리게 가다간 놓쳐버리겠습니다.”

으으! ...하아.

몰라, 이젠.
너네들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타박, 타박, 타박, 타박.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당신, 대체 이러는 목적이 뭐죠?”

“탐험이라지 않습니까.”

“아니, 저 여자애 말고 당신 말야!”

“저는 단지 평범한 여행가일 뿐입니다.”

“호오, 그래서 평범한 여행가들은 원래 불쌍한 여기사를 납치하면서 돌아다니나 보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게다가 광장에서는 그런 사고까지 낼 줄은.”

“당신, 지금 내가 누구 이야기 하는지도 모르고 있지?”

“도시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자꾸 딴소리 할래? 그리고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뭐, 아무튼 서로 운이 없었다고 칩시다.”

역시 이 바퀴벌레 인간과 저 케이티라는 여자아이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구나.
그것도 하나 제대로 눈치 못 채다니, 난 정말 바보야 바보.


“당신들, 사실은 순진한 도시 사람들 뒤통수나 쳐서 돈 뜯어 먹으려는 사기꾼들이지?”

“사기꾼입니까.”

“아니면 좀도둑이겠죠. 어쨌든 꿈 깨시죠? 여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그나마 여기가 도시 외곽이니까 만만해 보이는 거지,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숨 쉬는 것조차 눈치 봐가면서 쉬어야 할 걸요?”

“숨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합니까.”

“거짓말 같으면 직접 가보시던가요. 다들 자기 일에만 더럽게 민감해 가지고는 괜히 지나가던 사람에게 도둑이라고 덤태기 씌워서 징역 1년이라도 먹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지 않는다니까요? 고작 쓰잘대기 없는 것들만 연구하면서 뭐 그렇게 비밀들이 많은지. 다들 하나같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도 안하는 게 꼭 징그러운 뻔데기 같다고요.”

“번데기입니까.”

“아무튼 모르는 사람들은 다들 당신 같은 외지인에겐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요. 대체 저희들끼리 세금 나눠 먹는 게 뭐가 꿈 장려 프로젝트라는 건지. 그런 뻔데기 같은 인간들 도울 여유가 있으면 그 돈으로 저같이 부모 없고 하루하루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 좀 도와주면 안 되나?”

“부모님이 없습니까.”

“...엄마는 제가 10살 때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빠는 여기서 좀 떨어진 판도리아라는 도시로 출장을 가셨다가 ‘판도리아 셧다운’ 사건에 휘말리면서 함께 실종되어 버렸어요. 당신도 그 사건 알죠? 1년 전에 일어났던.”

“힘드셨겠습니다.”

“힘들다기보단 그냥 저도 참 지독하게 운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죠. 부모뿐만이 아니라니까요? 제가 1남 3녀의 셋째인데 말이죠, 남매끼리도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지 뿔뿔히 흩어져 버린 거 있죠? 첫째 오빠는 무슨 정의를 수호하는 자가 되겠다면서 갑자기 뛰쳐나가 버리고. 둘째 언니는 연구실 새로 장만했다고 여기서 한참 먼 곳으로 이사 가서는 뻔데기 놀이나 하고 있고. 여동생은...여동생은 죽은 엄마 살리려고 흑마술을 배워 보겠다면서 이상한 아저씨나 쫒아가 버리고.”

“그거 참 안됐습니다.”

“뭐, 괜찮아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똑같은 거지. 다만 저같이 아직까지도 꿈이니 뭐니 하면서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만 괜히 사서 고생이지만요.”

“꿈입니까.”

“네, 꿈이요. 역시 꿈이라는 건 정말 멍청한 거 같아요. 그런 거 이룰 수 있을 리 없는데 말이죠. 제가 봐도 한심하다니까요? 결국엔 지쳐서 포기해 버릴 거면서 괜히 기분만으로 들떠서는...”

-콰앙!

꺅!

까, 깜짝이야!
갑자기 케이티가 멈춰 서서는 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시끄럽다!”

윽, 왜 갑자지 또 화가 난 거지? 내가 뭔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쳇!”

아, 갑자기 발걸음이 아까보다 두 배쯤 빨라졌잖아!

“가, 같이 가!”

하아. 내가 좀 수다스럽다고 자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어린애에게까지 시끄럽다고 혼날 줄이야.

그보다 방금 저 애가 주먹으로 친 부분, 가까이서 보니까 움푹 들어가 버렸잖아?
으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런 힘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거 아십니까.”

바퀴벌레 인간이 등 뒤에서 다짜고짜 물었다.

“뭘 말이에요?”

“달리고 있는 도중엔 자기 앞에 있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네? 갑자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그건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에?!”

“좋아! 드디어 쓸 만한걸 찾았다!”

까, 깜짝이야.
어느덧 거리가 꽤 벌어져서 멀찌감치 서 있던 케이티가 앞에서 갑자기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 앞에는...

뜬금없이 보라색 문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자, 빨리 가 봅시다.”

“아, 알았으니까 밀지 좀 마!”

으, 대체 저 문은 정체가 뭐야? 문 전체에 이해할 수 없는 글자들이 잔뜩 씌여져 있잖아. 게다가 문 앞에는 출입 금지라는 팻말도 걸어 놨고.

“뭔 문이 이렇게 요란해?”

여자아이가 불길해 보이는 그 문을 발로 쿵쿵 걷어찼다.
너, 그러다 저주 걸려도 모른다고.

“그만큼 문 너머에 있는 게 위험하다는 뜻이...”

-쿠웅!

꺅! 뭐, 뭐야!
난데없이 여자아이가 도끼로 문을 두 동강 내 버렸잖아!
그대로 다시 한 번 발로 차자 결국 문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쳇, 싱겁군.”

“...아아.”

“무, 무슨 짓이야! 왜 뭔지도 모르는 걸 함부로 부수는데!”

“시끄럽다! 겁쟁는 질색이다!”

그리고는 흙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다짜고짜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아.
정말이지 대첵 없는 꼬마라니까.

“우리도 들어갑시다.”
“...응? 우리? 시, 싫어! 내가 왜 저런 데를 들어가!”

“자, 자. 빨리 들어갑시다.”
“밀지 마아!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바퀴벌레 놈아!”

...
문 안쪽엔 20평 남짓한 방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수많은 책과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어서 세 사람이 가만히 서 있기에도 비좁았다. 미약하게나마 방안의 어둠을 밝혀 주고 있는 보라색 램프 주위로 수백권의 낡은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벽에는 거의 도배했다시피 수많은 수식들과 마법진 비슷한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뭐냐, 이 보물상자 같이 생긴 건?”
“야! 남의 상자를 함부로 열어 버리면!“

“흐음, 꽤나 흥미로운 연구를...”

“당신마저 남의 책을 함부로 뒤적거리면 어떻게 해!”

이 인간들 도대체 상식이라는 거 가지고 있기는 한 거야?

“저, 저기 여러분? 아무래도 여기는 다른 사람의 서재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헤집고 다니는 건 실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빨리 나가야...”

아무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있어...

“헤에...”

“세계 자체에 의한 거부력을 이용한 차원 이동, Demensional Exile...대체 이 이론을 어떻게...”

케이티라는 여자아이는 수정 해골 비스무리한 걸 이리저리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바퀴벌레 인간 역시 독서 삼매경에 빠진 듯했다. 여기가 고대 유적지 같은 곳이라면 몰라도 엄연히 문명화된 도시라고. 그렇게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절도행위라는 것도 몰라? 하아. 도대체가 말이지...

...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이건 오히려 찬스잖아!

여기서 나가자마자 10m 정도만 뛰면 바로 사다리가 나오겠지? 그러니까 최대한 조용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면 눈치 채기 전에 나갈 수 있을 거야!

좋아, 이틈에 슬금슬금...

-파직.

“내 서재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꺅!

갑자기 문 앞에 보랏빛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남자가 나타났다! 난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거야!

“다시 한 번 묻겠다. 내 연구실에서 무얼 하고 있던 것이냐.”

“아하하! 죄,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우연이라. 이번에도 우연인가. 아니, 이쯤 되면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역시 그의 직접적인 개입이 아니더라도 이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정말 정말 죄송했습니다! 절대로 고의로 들어온 게 아니니까 용서해 주세요! 저, 저희는 아무것도 못본 걸로 할 테니까!”

“미안하지만 이곳에 한번 들어온 이상 쉽게 내보내 줄 순 없겠군.”

“아...네?”

“이렇게 된 거, 서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저기요! 그렇게 야속하게 말하지 말고 이야기라도 좀...”

“시끄럽게 조잘대지 말고 덤벼!”

꺅! 갑자기 뒤에서 여자아이가 뛰쳐나와서는 다짜고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보랏빛 후드의 남자는 도끼에 닿자마자 안개처럼 흩어져 버렸다?

“잠깐만! 멋대로 가버리면 어떻게 해요!”

“쳇. 설마 겁쟁이처럼 도망친 거냐?”

“너는 왜 한참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시끄럽다! 겁쟁이처럼 징징대지 좀 마라!”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저 바퀴벌레 인간, 이런 상황에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고 있어!

“본인은 다른 곳에 있을 겁니다. 방금 그 환영은 단지 함정을 발동하기 전에 저희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소환한 것뿐입니다.”

“응? 하, 함정이라고?”

“아마도 공간 자체를 비틀어버리는 디멘셔널 트랩일 겁니다.”

“뭐, 뭐야 그 쓸데없이 거창한 이름을 가진 트랩은!”
드디어 책을 덮어버린 이쪽을 빤히 쳐다보며 무심하면서도 빠른 말투로 말했다.

“지금 바로, 처음 입구까지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

다시 케이티를 선두로, 우리 셋은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른 쪽이다! 이번엔 왼쪽!”

“화, 확실해? 너 설마 지금까지 우리가 왔던 길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거야?”

“뭐? 탐험대가 되겠다는 녀석이 고작 이정도 길도 못 외운다고 말하려는 거냐!”

보, 보통 외울 수 없는 게 정상이지 않나? 세 시간동안 걸으면서 갈림길만 수십번은 나왔을 텐데, 혹시 그냥 내 머리가 나쁜 거야?



“쳇. 그나자나 왜 꼭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나가야만 하는 거냐?”

케이티가 달리면서 짜증난 듯이 말했다.

“...예? 아, 그야 그 출구가 아니면 원래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명색이 차원의 마법이니 말입니다.”

“거짓말이지! 차원의 마법이라니, 그런 건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운이 없었습니다. 하수구로 통하는 수많은 문들 중 하필이면 저희가 들어온 입구만이 그 방과 연결되어 있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저희가 그 방에 강제로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도 조용히 보내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

케이티가 달리면서 말없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자책하고 있는 건가?
흥, 이번엔 정말로 반성 좀 하라지.
그러니까 남의 걸 함부로 건드리면 벌 받는다고.

“어쨌든 결국엔 우리가 들어온 입구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거야?”

“함정은 옵션일 뿐이고, 원래 목적은 차원의 마법 관련 실험을 수월하기 위한 이공간의 형성인 것 같습니다. 즉, 저희는 지금 그 마법사가 실험을 위해 만든 이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계라고? 하지만 여긴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하수구 안이잖아!”

“그야 현실을 모방하는 쪽이 더 만들기 쉬우니 말입니다. 새하얀 종이에 처음부터 그리고 색칠하는 것보다는 미리 그려져 있는 밑그림에 색칠만 하는 게 더 훨씬 더 쉽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뭐, 차원마법이라는 것이 달리면서 설명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리 없잖습니까. 물론 이해해서도 안되는 거지만 말입니다.”

어쩐지 이 남자, 살짝 화가 난 것 같은데?

“어쨌든 저희들에게 중요한 건 한 가지 사실뿐입니다. 처음의 그 입구가 아니면 원래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



원래 세계로 나갈 수 없다.
여기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뭐야, 그게.

너무 허무해 지잖아.

내가 20년 동안 살아온 인생이나 꿈같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그럼, 내가 지금까지 고민하던 것들은 대체 뭐가 되는 거지?



“조금만 더 참아라! 이제 거의 다 왔다!”

아, 정말! 이쪽은 나도 기억해! 저 모퉁이만 돌면 드디어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그 입구가 나올 거야!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말야. 뭔가 땅이 갈라진다거나 괴물이라도 튀어 나올 줄 알았는데. 나도 참, 괜히 겁먹었잖아. 아하하~ 그럼 그렇지. 세상에 차원의 마법이라는 게 존재 할 리...

?!

뭐, 뭐지 저건?

입구 바로 앞에, 들어왔을 땐 분명 보지 못했던 거대한 보라색 벽이 하나 떡하니 버티고 서 있잖아!

“저, 저런 게 대체 어디서...”
“크윽...”
“아아. 정말이지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

벼, 벽의 표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잖아?
아무리 봐도 평범한 벽으로 보이진 않는데,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카오틱 월(Chaotic Wall), 흑마법의 종류 중 하나입니다.”

“흑마술이라고? 그건 20년 전쯤에 실존하지 않는 마법이라고 증명되었잖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원래 세계와는 다른 이계의 공간이라고.”

“...”

케이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조각을 하나 줍더니,
벽에 대고 있는 힘껏 던졌다.

-치지직!

아, 돌이 벽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버렸다?!

“앗, 따거!”

응? 갑자기 케이티가 손등을 움켜쥐었다!
아, 피가 나고 있잖아! 설마 벽이 그런 거야?
복수하는 벽이라니, 그런 건 만화책에서도 본 적 없다고!

“괜찮아? 손 잠깐 이리 줘봐. 지혈이라도...”

“신경쓰지 마라!”

홱, 하고 몸을 돌려 버렸다.
...하여간에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제 어쩌죠?”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거야.

“...”

“저기요! 그렇게 멍하니 있을 거에요? 어떻게 해야 하냐니까요!”

“...”

아, 진짜! 이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뭐하는 거야!
왜 또 가만히 서서는 아무 반응도 안하는 건데!

안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일단 나라도 뭔가를...

“비켜라.”



...?

“어?”

-부웅!

꺅! 난데없이 무언가 묵직한 게 벽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크왁!”

아, 다시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제, 젠장...”

뭐야, 방금 그거 케이티였어?!

“하앗!”

아, 다시 벽에 달려들잖아!

-콰앙!

“크와악!”

아, 아까보다 더 멀리 튕겨져 버렸잖아!
그런데도 또 일어나서 달려들려고 하고 있어!

일단 케이티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 앞에 섰다!

“잠깐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시끄럽다!”

“꺅!”

케이티가 날 옆으로 거칠에 밀어버리고는 벽 앞에 가서 선 후,
갑자기 다리에 힘을 단단히 준 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쿵! 쿵! 콰앙! 쿵! 쿵!

“그, 그만해! 봐, 벽에 흠집도 하나 안나고 있잖아!”

“젠장, 젠장젠장젠장!”

-쾅! 쿠궁! 쾅! 쾅! 쾅!

“이봐요! 당신도 좀 말려 봐요!”

“...”

또, 또 공원에 있었을 때와 똑같은 상태잖아! 바로 눈 앞에서 아이가 울고 있는데도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던!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크핫!”

아, 결국 케이티가 다시 튕겨져서는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크윽...제기랄...”

아, 그렇게 당했는데도 또 일어나려고 하잖아!

안돼, 이대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빨리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뭘! 대체 뭘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냐고!

이럴 때 나는, 나는...






-




...?

여긴...어디?

꿈속?

눈앞에,

거대하고 둥군 거울이 하나 나타나서는...

거울에 비친 건, 나?

하지만, 내 머리는 저렇게 길고 아름다운 은빛이 아니잖아.

내 얼굴도 저렇게 아름답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 같은 거, 난 지을 줄 모르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이는 미소...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거울 속 그 누군가도, 나를 따라 거울에 손을 대었다.

대체 너는...

-너의 미소 속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단다.

...엄마?

-너의 미소는 사람들의 슬픔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단다.

거짓말.
그거, 거짓말이잖아.
엄마가 그 말을 하는 바람에 난 지금까지 계속 힘들기만 했는걸.

-넌 잠시 지친 것 뿐이야.

맞아. 난 지쳤어.
그러니까 더 이상은 무리야.

-그런 말 하지 말아줘. 슬프잖아.

하지만 무리인걸.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심지어는 내 꿈이 지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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