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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E무기 승천기!
글쓴이: 유우
작성일: 11-07-15 23:59 조회: 5,459 추천: 0 비추천: 0
E무기 승천기 !

내심 걱정이 많이 됐다. 혹시 바이러스라도 있으면 어쩌지?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땡 잡았네.”
엄마의 갑작스런 저녁 심부름에 기분이 별로 안 좋았었던 고등학교 2학년생, 백록담군은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무려 32기가짜리 USB를 길바닥에서 주운 것이다. 그것도 텅텅 비어있는 녀석으로 말이다. 슬라이드형식으로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이었다.
바이러스 없음! 불량섹터 없음! 그래. 땡 잡았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이상한 파일이 하나 있긴 했지만 포맷해서 날려버렸다. EMG.EMG라니, 이건 뭐 쥐? ……. 미안. 잘못했으니까 책 덮지 마라. 하여튼 요새는 클라우드니 뭐니 온라인 저장 서비스가 나왔지만, 스마트폰도 개인용 컴퓨터도 없는 나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이것도 엄마 노트북이니까.
“~♪”
휘파람을 불었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며 질색을 하시는 아버지는 현재 장기 출장을 가셨다. 어머니는 방에서 장동빈앓이를 하고 계신다. 전리품을 사용할 곳은 정해져있었다. 바로, USB재생이 지원되는 거실의 3D TV다. 초창기 3DTV라서 인터넷 따위는 안 되지만, USB인식 재생 기능은 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니가 출근을 한 이후, 컴퓨터가 집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우리 집. 이 USB는 내게 구원이자, 희망이자, 새 인생인 것이다. 지옥이 예상되었던 여름방학을 천국으로 바꿔줄 것이다.
“내가, 옵티머스 원이다.”
“해적왕이 될꺼야! 어? 잠깐, 나 조니 댑인데?”
“윙 가르디움 레비오사!”
상상만해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느긋하게 집에서 영화를 보며 방학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자주보는 월화드라마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동빈이형이 활약하는 시간은 밤 10시에서 밤 11시 까지. 그 때가되면 이 노트북을 돌려 드려야한다. 지금은 10시 40분. 어머니가 정신없이 동빈이형에게 빠진 사이, 우선 엄마의 영화폴더를 USB로 옮겼다. 어머니의 영화폴더에는 다양한 최신영화가 포진되어 있었다. 그리고 애니매이션폴더. 우리 어머니, 만화 편집자다. 덕분에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도 컴퓨터에 널려있었다. 그림 파일도 TV로 열리나? 흠. 잘 모르겠지만 일단 챙기자. 닥치는 대로 자료를 USB로 옮겼다. 어느새 USB의 20기가 이상이 채워졌다. 이것만해도 굉장히 만족스럽군. 굉장한 성과다. 며칠은 버틸 수 있겠는걸? 희희낙락했다. 충분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사나이라면,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내게 남은 시간은 10 여분이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왜냐고?
…….
야구 좋아하세요?
헤헤.
…….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부끄럽잖아. 알지? 너라면 알아줄거라 믿는다.
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엄마도 찾기 힘든 시스템 폴더에 깊숙이 숨겨둔 비장의 폴더 ‘할미새사촌’을 열었다. 열면서도 시야를 확보하여 거실의 엄마가 오지 않는지 느껴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할미새사촌에는 그간의 나의 애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헤…….”
아아. 보고 싶었어 히X미, 제시X, 혜X이! 미리보기아이콘에서 다양한 자세를 잡고 계신 여성분들을 한 번의 드래그로 고이 모셔서, USB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받기만 하고 제대로 알현할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는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받아놓고도, 채 10초을 감상하지 못했다. 그래서는, 거사를 치르지 못 한다! 무슨 거사냐고? 헤헤. 왜 이러시나 아마추어처럼.
하여간, 동빈이형의 수비를 믿으며 USB로 파일을 옮겼다. 차오르는 녹색 바가 이렇게 느리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제발, 이 폴더를 열고 있는 것만으로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어머니가 오시면 바로 esc>alt f4를 하기 위해서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매의 눈빛으로 거실의 동향을 살폈다. 응. 동빈이형, 잘 하고 있어. 그래, 거기서 대사 한 마디 날려서 우리 엄마 스턴 좀 걸어줘!
그러는 사이 히X미와 제시X가 무사히 USB에 안착했다. 후, 후후. 좋아. 완벽해. 이대로만 가면 내일부터 시작되는 방학은 사하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변하는 거야. 코끼리 똥에서 물을 찾는 베어그릴스가 아니라, 지폐를 포스트잇으로 사용하는 빌게이츠가 되는 거야! 내가 말 해놓고도 잘 알 수 없는 비유를 지껄이며 녹색 바를 주시했다. 젠장, 파일이 생각보다 크다. 모공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화질인건가?
10시 58분. 슬슬 위험한 시간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15초라는 문구를 보고 안심했다. 1분이면 다 옮기고 이 위험한 폴더를 지우고 어머니에게 웃으며 컴퓨터를 돌려드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지! 그러니 어서 끝나라. 끝나라. 끝나라. 좋아. 끝나간다. 잘하고 있어.
하지만 역시나 윈도X즈. 시간은 훼이크다! 라는 말을 오늘도 열심히 실천해주었다. 15초……. 20초……. 30초……. 시간을 달리는 파일이었다. 신기하게도 남은 시간이 자꾸만 늘어났다.
“이러지마, 왜 그러는거야?”
동빈이형도 슬슬 마지막 대사를 날리고 있었다. 안 돼. 시간이 얼마 없어. 정말 이러지 마라 윈도X즈야. 흠. 드라마는 저 다음 여자가 뺨 때리고 끝날 것 같다.
“다 알면서. 다 알면서 왜 거짓말을 했어! 왜! 날 가지고 논거야!?”
상대 여배우도 열연 중이었다. 좋아. 평소라면 예고편이 나올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좀 길었다. 특별편인가?
그러는 동안 다행히 시간을 역주행하던 소녀, 혜X이도 무사히 내 USB에 안겼다. 파일 안착을 확인하자마자, 하드웨어 안전제거를 누르고 USB를 뺐다. 그리고 할미새사촌과 이별을 고했다. shift-delete! 사라져라. 흔적도 없이!
“다 끝이야. 다 끝났다고! 네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어! 내가 말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하나도 없고!”

아, 역시 뺨 맞았네.
“이 나쁜 놈…….”
우두커니 서 있는 동빈이형과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이 회색으로 바뀌며 드라마가 끝났다. 그리고 주제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의 작업도 무사히 다 끝났다. 후후후.
“그대를 사랑하기에 말할 수 없음을 왜 알지 못 하나요. 그대는 왜 몰라주나요.”
애절한 노래가사가 엄마의 심금을 울린다. 나의 심장은 흥분으로 떨린다. 오오. 지금당장이라도 이 USB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진정해라. 두 개의 심장처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코드를 뽑고 노트북과 충전기를 어머니에게 들고 갔다.
“아들, 넌 아니? 현진이가 어떤 심정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방에서 듣고 있었니?”
현진은 동빈의 작품 내 이름이다.
“네. 현진이형도 정말 가슴이 아팠겠죠. 모든 사실을 다 알고도 그녀에게 말하지 못 했잖아요. 그녀를 위해서 말이죠.”
엄마는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다주었을 때보다 더더욱 환하게 웃으며 나를 확 끌어안았다. 이런 엄마다. 소위 말하는 동빈앓이.
“우리 아들도 감동해서 그런지 얼굴이 빨갛구나. 어서 이빨 닦고 자렴. 내일도 학교 가잖니?”
“네. 어머니.”
일찍 자고 싶어 미치겠다. 그래야 내일을 어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설렘에 잠이 잘 안 왔다. 드디어 나의 사랑스런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작달막한 노트북 화면이 아닌 거대한 화면에서 말이다.
너희의 코에 박힌 블랙헤드까지도 알알이 사랑해주겠다고 다짐하며, 록담군은 잠들었다.


오오, 흔들린다. 세상이. 흔들린다. 채 잠이 깨지 않아서 흐릿한 시야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부탁이다. 담아. 일어나렴. 이대로 널 깨우고 있다간 엄마가 지각하잖니.”
부드러운 어조와는 달리 나를 양팔로 끌어안아서 흔들고 계신 어머니의 양 팔이 보였다. 만화편집자를 하시기 전에는 미즈 코리아셨다. 보디빌딩을 하셨다는 말이지. 지금도 운동 매니아고. 한마디로 겨우 60키로인 나를 붙잡고 흔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엄, 마아, 일, 어어, 났, 어어, 요.”
흔들거릴 때 마다 발음이 새긴 했어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내려놓아 주셨다.
“아침은 네가 사온 빵. 알지? 아, 그리고 오늘부터는 하루에 5000원씩 저녁비를 줄게. 모아서 탕수육을 먹든 매일 짜장면을 먹든 자유니까 알아서 잘 챙겨먹어!”
오오 5000원! 비록 짜장면 값이 4500원인 시대지만, 평상시 용돈이 제로에 가까운 나로서는 솔깃한 이야기였다. 작년 여름 방학 용돈은 4000원이었는데 무려 25프로가 인상되었다.
“엄마, 사랑해요!”
위선이라고는 아마도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하고도 착한 고등학생의 태도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정말로 기뻐보였다.
“마음에 들었어! 하지만 아부해도 금액은 늘어나지 않아.”
칫. 역시 알고 계셨나.
“그럼, 엄마는 먼저 간다. 저녁 되도록 챙겨먹고. 엄마가 오는 8시까지 집에 들어오는 거, 알고 있지? 그럼 다녀온다. 아, 햄스터 밥 주고.”
“네 다녀오세요.”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여기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전설이 시작된다. 우리집에, 여신들이 강림하시는 거다. “핸드폰을 놓고갔네~”하는 어머니가 다시 올지 몰라 귀를 곤두세웠지만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다. USB를 꺼내든다. 하얀 USB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좋아. 어서 등짝을 보여라 3DTV!
3DTV의 구멍들이 보이는 매끈한 등짝을 살폈다. HDVI.? 이건 아니고, 아. 이거다. 네모난 구멍을 찾아서 USB를 꼽아 넣었다. 그리고 쇼파 위의 리모컨을 집어, TV를 켰다.
“오오오…….”
USB를 인식한 TV는 자동으로 USB재생 모드로 옮겨간 모양이다.

SOXY 3DTV USB모드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할미새사촌


어제의 전리품들이 화면에 표시되었다. 좋아. 존슨. 흥분하지마. 침착해. 아직 아침이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이걸 학교 가기 전에 꼽은 이유는 하나 뿐이야. 잘 작동이 되는가. 그러니까 굳이 할미새사촌이 아니라 영화폴더를 열어서 확인만 하자고. 재생확인만 하는거야. 잘 알고 있지?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을 마친 후, 정연한 나의 논리 아래 할미새사촌 폴더를 열었다.
“헉,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무서운 위력이다. 할미새 사촌. 나는 분명히 영화를 누르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열었지? 그리고 이성과는 관계없이 히토X를 선택하고 확인을 눌렀다.

……꾹.
‘히X미와 함께하는 방과 후 즐거운 야자시간.avi’

PLAY
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해당 포맷은 지원되지 않습니다. 동영상 재생은 MPEG, MPG형식의 파일만 지원됩니다.’

뭐라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
…….

안 돼. 절망적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제시X의 수육은 소스에 찍어먹어요.avi’
‘X진이와 가정교사 선생님의 뜨거운 학구열.avi’

A! V! I!

avi.

전부 AVI였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해줘! 이건 아니잖아. 나의 불타는 마음을 어떻게 잠재우란 말이야! 이 멍청한 TV! 스마트하지도 않으면서 USB기능은 폼으로만 달았네. 어휴.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각형 같으니라고. 확 부숴버릴까 하는 충동도 들었지만, 그 뒤에는 어머니에게 내가 확 부서질 것이 확연히 보였기에 참아내었다. 모닝 빵을 입에 쑤셔 넣으면서 머리를 식혔다.
“침-착-해. 침-착-해.”
마치 장대높이뛰기 2차 시도를 하기 직전의 운동선수처럼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혔다. 침착하자. 그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니야. 단지, 오늘 있을 일이 하루 미뤄질 뿐이야. 별 문제 없어. 내일은 화요일. 월화드라마 ‘말할 수 없는 비밀’ 의 방영일. 어머니의 경계심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 침착하자. 아, 영화폴더에는 MPG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상위 폴더로>
Angel’s baby.avi 600M
**와이맨 세컨드 클래스.avi 1.2G
Optimustrans3.2011.720p.BRRip.XviD.AC3.avi 1.4G
tanggggeled(나쁜젤)(1280x720 Evid.MG5).emg 1.7G
옆집아저씨.mpg 577M
월 E –디즈니 가족영화.egg 590M
파란모자의 진실.720p.BRRip.XviD.AC3.avi 1.4G
…….

대부분 avi였지만 다행히도 mpg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응. 좋아. 전혀 문제없이 말끔히 돌아가는군. 그래. avi도 지원해주면 얼마나 좋아? 안 그러니 TV야?
우걱. 우걱. 꿀꺽.
그러면, 혹시 만화는 나오나? 헐. 의외로 이건 또 나오네. 대체 지원하는 포맷의 기준이 뭐야 이거?
치카치카치카.
애니도 거의 다 avi구나. 이것 참 곤란하네. 완전 옛날 것만 mpg잖아. 쳇.
그렇게 학교길 준비와 3DTV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다보니 금세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USB를 뽑았다. ……? 뭔가 위화감이 있는데. 어째 USB가 조금 부풀어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 두꺼워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조금 찜찜했지만 시계를 보니 당장 나가야할 시간이었다. 일단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괜히 들고 다닐 필요는 없는 물건이니까. 근데 왜 부풀어 오른 거지?
의문점을 뒤로 하고 학교로 향했다. 에라. 일단 갔다 와서 생각하자. 아, 햄스터 밥 주고 가야겠다. 급한 마음에 먹이가 든 봉투에서 한 움큼 가득 쥐어서 먹이통에 넣어주었다.
“햄돌아, 햄순아 밥 먹어라.”
찍찍. 찍찍.
쳇바퀴 도느라 정신이 없는 녀석이 햄돌이. 얌전히 구석에서 쉬고 있는 녀석이 햄순이다. 이래 뵈도 이미 몇 번이고 자식들을 분양 보낸(?) 장수햄스터들이다. 자기 새끼를 먹는 버릇도 없고, 우리 집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녀석들이다. 귀여운 것들.
햄돌이가 정신없이 달리고, 햄순이가 느릿느릿 밥통에 입을 대는 동안 물을 갈아주었다. 그리고 학교로 향했다.
보충수업은 국어, 영어, 수학, 과탐. 철저히 모의고사를 대비한 과목구성이었다. 기억하는 거라곤 그것뿐이다. 보충 수업 시간 내내, 머릿속은 오늘의 계획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어머니가 집에 도착하시고 샤워하시는 동안 미리 다운을 시작해놓고 트레이에 숨겨둘까? 아니, 어머니라면 눈치 채실 수도 있다. 온라인 고스톱만 하시는 어머니들과는 다르게, 컴퓨터로 하루 종일 작업하시는 분이시기에 위험성이 너무 컸다. 보류. 그렇다면 역시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이 IT강국이라는 점이다. 다운로드 속도 하나는 따라올 곳이 없는 나라지. 암.
그렇게 머릿속에 온갖 계획을 세웠다. 그런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야, 한라산. PC방 가자.”
두산이었다. 백두산. 성이 같다는 이유로 급격히 친해진 녀석이다. 이 녀석은 내 이름을 자신과 세트로 바꿔놓는다. 난 네놈하고 세트이긴 싫은데 말이다.
“오늘은 안 돼. 할 일 있거든.”
“뭐, 또 PC실 가게? 아무리 집에 컴퓨터도 없고, 돈도 없다지만 17살 청춘이 너무 슬프지 않냐?”
“그 담배연기공장에서 보내는 청춘도 별로 멋있어보이진 않는데.”
“…….”
두산이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가만, 가만? PC방……. PC방……?
“야. 천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의 별명을 불렀다. 저 녀석이 백록담인 나를 한라산으로 부르듯이, 나는 백두산인 저 녀석을 천지로 부른다. 기분 나쁘면 천치.
“왜. 간다고?”
“아니, 넌 정말 좋은 친구야.”
그리고 천지의 손을 두 손으로 꾹 잡았다.
“?? 뭔 개소리야. 야, 손 놔. 이 놈이 갑자기 게이로 각성을 했나. 야. 가지마. 가지마. 딴 애들이랑 가련다.”
두산이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게다가 평소에는 용돈 한 푼 없이 지내왔지만, 오늘은 무려 5000원이나 되는 자금도 있어. 완벽하다.
PC방에서 그런 류의 동영상을 받는 것도 상당히 리스크가 크지만, 엄마가 하루 종일 쓰는 컴퓨터에서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고 생각되었다. 응. 5000원에서 과감히 1400원 정도는 사용해 줄 수 있다. 우리 집 앞 PC방은 1시간 700원이거든.
자, 그러면 계획을 세워보자. 담배냄새가 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탁기 안의 옷을 다시 꺼내서 펴서 입자. 괜히 새 옷을 입거나 교복으로 가는 것보다 낫지.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 내실 테니까, 갔다 와서 바로 갈아입고 세탁기에 다시 넣자.
왜 이리 처절할 정도로 엄마를 무서워하냐고? …….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을 해 줄게. 왜 용돈이 없이 지내는지, 컴퓨터도 없는지.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어느 PC방에 갈지, 어떤 자료를 받을지 생각하다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덜컥. 띡띡띡띡띡띡. 띠로리롱~.
현관문이 열렸다. 신발장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믿을 수 없게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우리 집에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정상이다. 신발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도 아니다. 뭐지.
아아아아…….
게다가 심지어 목소리도 들렸다.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애처롭고, 가녀리며, 구슬펐다. 대체 무슨 일이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신발장에 있던 우산을 집어 들었다. 제일 크고 긴 녀석으로 말이다.
아아아아…….
소리는 내 방에서 들려왔다. 도둑인가? 유령? 괴물? 일단, 뭐든 나타나면 후려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내 방에 들어섰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배고파아아아아아…….”
……. ?!!???!
실오라기 한 장 걸치지 않은 소녀가 내 방에 쓰러져 있었다. 하.하.하.하. 별거 아니잖아? 나체의 소녀다. 할미새사촌에는 얼마든지 있지……. 있지? 나체의 소녀? 순간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소녀는 내 책상과 침대 사이의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살짝 녹색 빛을 띤 긴 검은 머리. 그 사이로 보이는 백옥색의 매끈한 등. 그리고 가녀리면서도 매끈한 다리와 가녀린 팔. 너무 아름다워서,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배애고오파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 아름다운 뒤태에서 기괴한 신음소리가 들려왔기에 조금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일단 저 뒷 모습을 좀 더 바라보고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완만한 굴곡도 바라보고 싶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뇌에 백옥색 피부가 완전히 각인될 때 즈음에,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참 기괴한 자세였다. 머리는 바닥에, 다리는 책상에 올린 채로 엎드려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기괴하게 책상에 걸쳐있던 다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아아아…….응? 이 냄새는…….”
그리고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햄돌이와 햄순이의 우리를 발견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맛있겠다아.”
풀린 눈으로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던 여자아이는, 한 손으로 햄돌이를 집어 들었다. 어? 어? 잠깐. 야. 잠깐. 기다려. 뭐 하는 거야! 여자아이는 갈라진 가느다란 혀를 낼름 거렸다. 혀? 가느다란? 갈라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잠깐 기다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
뛰쳐나갔다. 하지만 햄돌이는 안타깝게도 통째로 여자 아이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꺄압.”!
꿀꺽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뱉어내뱉어내뱉어내!”
“읍? 읍읍읍? 으아햐아압?”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주저 없이 여자아이를 들어다 침대에 엎드려 매친 후, 정신없이 등을 두들겼다.
“이, 이게 뭐하는 거야! 빨리 햄돌이 뱉어내!”
“읍? 크업. 켁. 켁. 켁.”
“토해내! 당장 토해내!”
“슈이이. 헥. 배. 고픈. 데에”
“일단 뱉어내! 뭐하는 거야! 너 누구야! 랄까 남의 햄스터는 왜 집어 먹고 있어!? 아니 그보다 왜 햄스터를 먹어?!”
마치 10년 동안 묵언수행을 마치고 처음 말을 한 사람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근데 이 녀석, 피부는 이렇게 고운데 뭔가 때릴 때의 느낌이 이상하다.
……. 그래 이건 마치 ‘비늘’을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음식, 먹었는데, 왜. 때려요! 꺅. 슈이이! 그만, 그만, 그만 때려요! 알았어요. 뱉을게요. 잠깐만요!”
그 말에 정신이 든 나는 손을 멈췄다. 아무리 당황했다지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생면부지 처음 본 아이를 이렇게 정신없이 때리다니. 그것도 알몸인 여자애를. 엄청나게 무안하고 머쓱해져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여자아이는 몸을 일으켜 세웠고,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이거, 다시 생각해보니 굉장히 민망한 상황이잖아? 다 벗은 소녀와 한 방에 있다는 이 시츄에이션 말이야.
그렇게 망상을 하는 동안, 토악질 소리가 들렸다.
켁. 켁. 우에엑.
응. 역시 취소. 아무리 알몸인 여자아이라도 토하는 여자아이 앞에서는 흥분이 되질 않는구나. 하여간 여자아이는 토악질을 하더니 햄돌이를 꺼냈다. 햄돌이는 눈이 @모양이 되어 있었고, 굉장히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일단 휴지를 뽑아서 대충 말아주었다. 죽지는 않은 것 같네. 휴.
“너 대체 뭐야?”
조금 민망하기에 살짝 위쪽을 보면서 말했다. 안 그러면 보여 버린단 말이다. 여러 가지가. 소녀의 몸은 마르긴 했지만 나올 곳은 잘 나왔고 들어갈 곳은 잘 들어가 있었다. S라인이라는 게 바로 이런 몸을 말하는 걸까 싶었다. 전체적으로 좀 작았지만 말이다.
“저요? 전 이무기에요오.”
이무기?
“이무기면, 그 뭐냐. 용이 된다는 그거?”
“네……. 슈이익. 제 혀 보세요. 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이무기라 말한 소녀는 혓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노래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뱀이다~ 뱀이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핫. 확실히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뱀이라고!?
………………. 끄응.
“슈이? 왜 쓰러지는거에요!? 일어나요! 저기요!”

………….
………….
………….

“슈이이…….”
핫.
쉭쉭거리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내가. 쓰러졌었나? 시계를 보니 아직 5시였다. 머리는 차가운 게, 꼭 목침을 벤 것 같은 느낌인데…….
“슈이. 일어났네요. 괜찮아요?”
……. 내 머리 위로 두 개의 봉긋한 봉오리와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 기절할까. 아니, 기절하는 척 할까. 뱀이라는 사실만 잊어버리면 기념할만한 내 생애 첫 무릎베개인데. 잠깐 눈을 감고
“슈이이. 묵이 배고파요…….”
그 말과 함께 쉬익 소리가 들렸다. 참자. 기다리자. 좀 더 만끽하고 싶기도 했고, 적응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뱀. 뱀이다. 뱀 혀를 가진소녀. 아니, 송곳니도 좀 길던데. 소위 말하는 메두사인가? 아니, 이무기랬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것 참.
낼름낼름.
“히아아아아악!”
“배고파요오. 밥 주세요오.”
“알았어, 알았으니까 햝지마!”
“슈이이이…….”
황급히 일어서다가 머리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닿은 것 같지만, 기분 탓 이야. 기분 탓 일거야. 아직도 솔직히 놀라서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뱀? 이무기라고 했지? 어디서, 왜 나타났어?”
매섭게 추궁하는 나를 보며 여자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 저기, 일단 뭔가 먹고 말하면 안 될까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애처로운 눈빛으로 부탁을 하는 여자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나 여자 사귀어 본 적 없다. 쳇.
“좋아. 대신 먹을 거 먹고 나면 질문에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어?”
백옥색 피부의 여자 아이는 응응! 이라는 효과음이 들릴 것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나보다.
……. 솔직히 이대로도 충분히 좋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거 입어.”
엄마의 옷을 내줄까 하다가 엄마의 옷장을 열었다가 괜히 일이 복잡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내 츄리닝을 꺼내서 던져 주었다. 그리고 거실로 향했다.
냉장고를 뒤져봤다. 우리 집 냉장고는 작다. 사는 사람이라곤 엄마와 나 밖에 없고, 엄마는 요리를 싫어한다. 결론적으로 집에 있는 것이라곤 계란, 햄, 잼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흠. 계란이나 햄 정도라면 괜찮으려나? 적당히 계란과 햄을 꺼내서 부엌으로 들고 갔다. 적당히 굽기 위해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러자 트레이닝 복을 입……지 않은. 왜!? 입으라고 옷 줬잖아!
“쉬이익. 좋은 냄새. 잘 먹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 주신 것도 맛있게 잘 먹었어요.”
먹었냐! 그건 먹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더니 날계란을 집어서 그대로 입으로 옮…… 야. 잠깐. 적당히 좀 해라. 야. 야. 야. 잠깐! 마치 유투X의 엽기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우와아. 날계란이 쏙쏙 들어가고 있어. 야. 잠깐 아무리 그래도 이거, 계란. 스톱. 야? 그보다 저 목에 걸린 거 내 츄리닝 맞지?
“야?”
이봐? 어이? 잠깐? 헤이? 걸?
나의 마음 속 외침은 아랑곳 하지 않고 차례차례로 계란이 사라져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말릴 힘조차 나지 않았다. 어. 어? 잠깐.
“야 잠깐 그건 통째로 먹으면 안 돼!”
“응?”
스X햄을 통조림 채로 삼키려는 소녀를 겨우 말렸다. 이 녀석 정말 위험한 녀석이잖아.
“이건, 이렇게…….”
스윽……. 딱.
“와아……. 고기다!”
“뚜껑을 따서 먹……. 야, 이것도 되도록 익혀 먹는 게 좋……. 에라 맘대로 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무기는 햄을 통째로 삼켰다. 순식간에 계란 10개들이와 햄 2개가 사라졌다. 더불어 츄리닝도. 무서운 녀석. 아무래도 남은 5000원은 계란을 사기 위해 쓰일 것 같구나. 어휴. 그나저나 츄리닝 먹어도 안 체하나? 뱉어내게 할까?
“맛있어요. 정말 맛있어요!”
그러냐. 맛있냐. 내 츄리닝 맛있냐 이 녀석아. 그리고 혀에 닿지도 않고 넘어가던데 이무기는 미각세포가 목에 달렸냐.
“헤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슈이이…….”
“야, 잠깐!?”
대답해준다던 약속은? 어이!? 이무기는 동그랗게 몸을 말더니 잠자기 시작했다. 이거 원. 정말 돌아버리겠네.
“야, 최소한 침대로 가 줘. 아니, 사실 자면 안 된다고 생각해. 야. 뭐 이따위야. 나보고 어쩌라고 이러는 거야!”
결국 이무기소녀를 침대로 옮겼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가벼워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피부는 차갑고 비늘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이 녀석. 정말로 인간이 아니구나.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깨우기 위해서 몇 번 불러보았지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몸으로 누워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이불을 덮어주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다. 너무 많은 사태가 일어나서 그런 것 같았다. 바람도 쐴 겸 계란도 살 겸 잠깐 나갔다 오기로 했다.

슈퍼까지 가면서 생각을 해봤다. 저 녀석은 대체 뭘까. 이무기. 이무기? 이무기. 디 워에 나왔던 그 녀석 말인가. 그런데 왜 여자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런 곳에 나타난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나 엄마가 알고 있을까 싶어서 핸드폰도 들여다 봤지만 온 국민의 애인인 김선미팀장님의 문자밖에 없었다. 나는 오늘도 3000만원까지 가능한 남자다.
제길,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예쁜 여자아이가 갑자기 굴러 들어왔다. 그리고 그 여자 아이는 이무기다. 이런거지? 좋아. 별 거 아니……긴 개뿔.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막막하다. 막막해. 진심으로 막막하다. 여러 가지로 너무 막막한 것이 많았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설명하면 될까?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제와 오늘. 이상한 일이라곤……. 아. 아! USB. 그래. USB! 그 USB가 이상해. 그래. 그 USB를 살펴보자. 그게 최우선이다.

“와아. 여기 물이 너무 시원해요. 좋아요. 슈이이.”
…….
이무기는 내가 계란을 사오는 동안 어느 샌가 일어나서 욕조를 당당히 사용하고 계셨다. 차마 반쯤 열린 욕실의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무시하고 책상 안의 USB를 꺼냈다. 이 녀석이 문제야. 유심히 쳐다본다. USB는 어제와 달리 볼록 튀어나온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 뿐, 별다른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 역시 USB는 컴퓨터에 연결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컴퓨터가 없다. 제길, PC방에 가야되나? 아니, 일단 TV에 다시 연결해보자. 파일 탐색기 기능이 있으니까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슈이이이이이~ 슈이이이이~ 뱀이다~ 뱀이다~♪”
그 노래. 네가 부르니까 진짜 의미심장하다. 근데 저런 노래도 아는 녀석이 왜 음식에 대한 상식은 없지? 쌓여만 가는 의문들을 풀기 위해, TV 등짝에 USB를 꼽았다. 아까와 같이 바로 인식을 하고 USB 모드로 전환되었다.

SOXY 3DTV USB모드

EMG.EMG 32G


……!
아침만 해도 있던 파일들이 모두 사라져서 EMG.EMG라는 파일로 변환되어 있었다. MPG파일 밖에 재생이 안 된다는데, 과연 재생이 될까? 철자가 좀 비슷한 것도 같은데 안 봐주나? 흠. 일단 실행을 눌러보는 게 낫겠지. EMG. 이 무 기. 라는 걸까? 그럼 I M G가 더 맞지 않나. 모르겠다. 나 영어 3등급이다. 누를까, 말까. 일단 눌러나 볼까. 근데 괜히 바이러스 같은 거면 어떻게 한담.
“저기요. 저기요~.”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문제의 이무기양이 나를 불렀다. 그래, USB도 미심쩍지만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빠르겠다. USB를 보여주면서 물어보자. 근데 쟤 나체인데. 눈이라도 가리고 들어가야하나.
“왜 불러.”
“저 좀 도와주세요오.”
등짝에서 USB를 거칠게 뽑아내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USB를 내밀고, 왼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왼손가락이 벌려지는 느낌이 들어서 애써 손가락에 힘을 주어서 틈을 조였다. 유혹에 약한 짐승. 그대이름은 남자니라.
“이거, 알고 있…….”
“저, 너무 간지러워요. 이것만 도와주시면 대답해드릴게요.”
……. 그래. 딱 한 번만 더 속아준다.
“뭘 도와주면 되는데?”
“저, 이것 좀 벗겨주세요.”
벗겨? 너 다 벗었잖아? 호기심>인내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왼손가락이 장력에 의해 떨어져나갔다. 오오. 과학의 신비.
힉.
눈앞에는 비늘로 된 옷을 몸에 두른 이무기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는 살색에 무늬도 거의 티가 나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꽤나 크고 선명한 비늘이다. 그거다. 인어공주. 다른 점이 있다면, 꼬리는 없다는 점이겠지.
“거의 다 벗겨졌는데, 허벅지에서 꼈어요. 슈이……. 슈이이이이이이! 안 빠져요. 슈이. 이것 좀 벗겨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무기는 욕조에서 몸을 베베 꼬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마치 그 모습은 팬티스타킹을 벗으려는 모습처럼 보여서 말이다. 그리고 탈피한 피부는 더더욱 하얗고 매끈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게. 좀……. 그래. 대단히 자극적이었다. 왼손을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와. 야한 거 보고 코피가 나는 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구나. 분명히 나는 건장하고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실제로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 피나요? 왜 그래요? 다쳤어요?”
이봐. 이무기씨. 걱정을 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일어서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야. 그나마 물에 가려져 있던 백옥빛깔 이무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단 말이다. 내 비구내출혈은 기세를 더했다. 너무. 자극이. 심해. 아니,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지만. 아까는 놀랐던 상황이고, 조금 정신 차리고 보니까 이건, 뭐랄까. 혜x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질 것 같아…….
“이리……. 아니, 제가 갈게요. 어디 보여줘 봐요.”
사람 좋은, 아니 뱀 좋은 이무기는 그대로 오른 다리를 들어서 욕조를 넘었다. 아니, 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저건, 그래. 불길한 예감이 마구마구 들었다.
아. 아. 아앗!”
이무기는 마치 꽉 끼는 청바지를 입은 채 움직이려는 사람처럼 중심을 잃으며 내 쪽으로 쓰러져왔다. 이무기가 넘어지면서 부딪힌 샴푸들이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나는 피할 새도 없이 이무기에게 플라잉 바디프레스를 당했다. 나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제발, 엄마가 오기 전에 깨기만을 빌면서 말이다.




“어휴,저거 봐요. 어쩔꺼여? 아주 사고를 쳐도 제대로 쳤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세상 교육을 좀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했던 모양이에요.”
“잠깐 내려가서 이야기나 좀 해주는 것이 어떻소? 저대로는 록담이가 너무 안쓰럽네 그려.”
“에휴, 청룡. 얼마 전에 견우와 직녀가 인터넷 채팅하려다 걸려서 3년간 호되게 당한 것을 잊었소? 정해진 자들 외에는 인간세계에 간섭을 할 수 없어요.”
“에잉……. 그래서 여의주도 유에시비인지 뭔지의 형태를 갖추고 동영상도 넣어서 보냈구먼. 말짱 허사였어. 걸리지 않게 잠시만 다녀오겠소.”
“어휴……. 딸내미 아끼는 마음은 알겠지만 적당히 하소. 청룡. 괜히 걸리면 징계감이여.”
“허허. 어차피 우리 아이가 자라면 은퇴할 몸인데 징계가 뭐가 두렵겠나. 내 수명도 머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며 푸른 용은 모습을 감추었다. 자리에 남은 현무는, 한숨을 쉬며 인간계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시험은 곱절로 고생길이 텄구먼! 내 아들도 시험이 가까운디, 이걸 보고 있자니 불안해서 못 쓰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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