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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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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도서관괴담
글쓴이: RSNA
작성일: 11-07-15 23:59 조회: 4,609 추천: 0 비추천: 0
“책은 뭘까요?”
박세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순수 인문 관련 학문으로는 타 상위권 대학들을 쉽게 압도한다는 금수(禽藪) 대학교. 하지만 강의실은 규모 면에서만큼은 협소했다. 가장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강당이라 불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수용 인원인 채 50이 되질 않았다. 그런 곳이니만큼 박 교수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근사근 물어도 맨 뒷자리에 착석한 학생도 그의 물음을 알아듣는 데 아무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이 질문은 우리가 이번 학기를 마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질문입니다.”
그의 어조는 수많은 학생들을 상대로 차분히 요점을 짚어내는 데에 있어서 탁월해, 그는 조교수직을 맡고 있는 대학원생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학부생들에게 편하게 형으로 대하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그를 박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언제나처럼 참 조용하군요. 기말고사는 짧은 에세이로 대체하겠다고 하면 좀 낫겠어요?”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일개 조교수인 그에게 수업 일정을 바꾸려면 담당 교수의 서명이 필요하기에 곤란한 일이라면 곤란한 일이었지만, 그는 매 학기 기말고사를 단문의 에세이로 대체해 왔다. 이는 한 학기에 20학점 내외로 수업을 듣는 학부생들은 다른 수업 탓에 기말 고사 수가 상당할 거란 그의 염려 때문이었고, 그의 담당 교수도 그런 사실에 꼬투리잡진 않았다. 그리고, 그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선배를 통해 그의 그러한 면에 대해 들었던 터였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인격입니다.”
세환은 그 학생이 어째서 인격이라 대답했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근거를 물었다.
“책이 인격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학생은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표현과 헷갈린 걸까?
“우린 일반적으로,” 세환이 답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고 하죠.”
세환이 그래도 잘했다며 칭찬해주고 앉히려 했지만 그 학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책으로 글 쓰는 것도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설령 책의 물리적 성격을 묻는다고 해도 그것은 개체마다 다를 것이다. 모두 종이 재질이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으며, 내용도 각기 다르다. 정보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은 재미만을 쫓고, 상위 문화를 즐긴다는 사람들에겐 직설적으로 쓰레기라 불리는 책도 수두룩하다. 펄프 픽션을 으레 통속 소설로 번역하는 것은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세환이 말하고 싶은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특히 그가 말했듯 이 질문이 이번 학기 수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만큼, 그가 수강생들로부터 기대하고 이던 것은 <금서와 이단의 역사> 수업에서 다뤄진 내용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은 여러분의 단문 에세이 주제이기도 합니다. 두 페이지 정돈데, 할 수 있죠?”
그의 수강생들은 탄성을 냈다.
“그러니까 잘 들어두세요, 수업 중에 문자 하지 말고,” 그가 잠시 고개를 숙여 손목 시계를 본 다음 눈 여겨 보고 있던 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5분 남았으니까.”
책상 밑에 휴대전화를 감추고 친구와 문자 중이던 그 학생은 잽싸게 휴대전화를 백 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 학생이 휴대전화를 백 속에 넣자마자 종소리가 울렸다. 대학 뒤편 호수 너머에 있는 탑에서 울리는 종소리였다. 사람이 직접 친다고 해도 휴대전화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틀릴 리는 없었다.
마침내 오후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 말만 하고 끝낼게요.”
그러면서도 세환은 속으로는 매일 시간을 맞춘다고 해도 항상 조금씩 늦어지는 손목시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책은 그 사람의 영혼입니다. 이 말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동안 배운 것과 접목해서 자기만의 글을 전개해 오도록 하세요.”
그 말을 흘려 들은 학생은 없는듯했다. 수업 서적을 챙기고 교실을 나가려던 그에게 질문하기 위해 한 학생이 그를 멈춰 세우긴 했지만, 질문 내용은 에세이를 작성할 때 꼭 인용해야 하는 수업 서적이 있는가 같은 것으로, 그가 그럴 필요 없다고, 원하는 글을 써 내 보라고 하자 금세 고맙다는 말만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자신의 할 일도 있는 대학원생이니만큼, 대학원생 신분으로 조교수를 하게 되면 채점만큼 귀찮은 일도 없었지만, 그만큼 기대되는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지만, 그가 그의 수강생들의 글로부터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런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책이 사람의 영혼이다란 말을 몇이나 이해할지, 그것만이 그의 주관심사였다.
그가 휴대전화의 매너 상태를 해제하자마자 문자가 도착하면서 알람 소리를 냈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으로부터의 문자였다. 남자 동창끼리의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달리 제법 신경 쓴 모습이 보이는 다소 긴 문자였다.
‘전체 문자인가?’
문자는 전자메일과는 달리 같이 수신 받는 사람이 누군지 뜨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그는 그의 동창이 누구누구에게 문자를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내용은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에 한 번 보자는 것이었다. 토요일에 확인 전화 할 테니 잊지 말고 꼭 나오라는 당부로 마무리되어 있는 글은 어딘가 강압적인 뉘앙스까지 풍겼다.
‘그 날 약속 잡은 일은 없는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나?’
그는 ‘역시 직업에 사 자 들어가는 사람은 못 이기지. 예비 검사님께서 나오시라는데 나가야지’라고 웃어 넘기며 휴대전화 달력에 일정을 적어놓는 것은 잊지 않았다.
발신자로 명기되어 있는 것은 고교생 3학년 시절 동기이자, 현재 예비 검사로서 연수 중인 서봉기였다. 예비 검사니, 연수니 해도 실전에 투입되어 있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서봉기와 특히 친하던 이른바 우등생 그룹은 세환 자신과 다른 남자애 한 명이었다, 같은 대학 부속 시설에서 근무하는. 봉기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부재중 음성답신만 반복돼, 세환은 혹시 봉기가 어째서 자신들을 보자고 하는지 아는지 대학 소속 도서관에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 경비직을 맡으면 원래 도서관 정문이나 경비실에 앉아 자리를 지키게 되지만, 금수 대학 도서관에서 그런 광경은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세환 역시 금수 대학교에서 근무한지 제법 되어 대학 도서관 역시 종종 방문했지만, 제복으로 쉽게 구별될 경비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하 씨는 근무 중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학생인지 외부인인지, 도서관 열람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듯한 한 여자가 사나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 수업 듣게 되는 날엔 당장 F 줄 텐데.’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가며 그는 답했다.
“저런, 전 주하 친구라서요. 나중에 제가 직접 연락하도록 하죠.”
“네, 그러시는 게 좋겠네요.”
그녀의 말엔 가시가 있었다. 다시 와도 딱히 뭘 기대하지 말란 어투였다. 세환은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그녀가 그렇게 날을 세우고 자신을 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차, 다짜고짜 사람 어디 있냐고 물어서 그런가?’
앞으로 도서관에 자주 들를지도 모르는 그였는데 굳이 도서관 사람들한테 밉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르바이트 파트인지, 전업 파트인지는 몰라도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후일 사서와의 관계에도 제법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주하, 도서관에서 경비직을 맡고 있는 그의 친구를 직접 만날 수 없었던 그는 답장이라도 기대하며 문자를 송신했다, 그의 친구가 도서관에 근무하며, 그의 관점에서건 아니건 간에, 책은 사람의 영혼이다란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책이란,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이야기를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합한다. 소설이라면 그에 관해 이해하기 쉬울 것이었으며, 과학 교양 서적이라고 하면 그것이 세상의, 물질의, 원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책들은, 즉 이야기들은, 집필자의 시점으로 재해석되기 마련이었다.
금수 도서관에는, 집필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그 자체인 책이 존재했다.
비유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적혀 있는 책. 그럼에도 이야기를 받아 적은 저자는 없는 책.
자료실 한 켠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금수 대학 도서관 경비직을 맡고 있는 주하는 이럴 때면 으레 생각했다.
‘칫, 여긴 왜 이렇게 쓸데 없이 넓은 거야!’
도서관에서 비명이 들여올 일이 무어 있을까 싶지만, 비명, 그것은 도서관이 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금수 대학 도서관은 사람을 잡아먹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적혀 있는 책을 뱉어냈다.
사건의 기이함에 걸맞게, 결코 사건은 비일비재한 일은 아니었지만 소문이 그렇듯 사람을 잡아먹는 도서관 이야기는 학교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다. 당한 사람은 자취를 감추게 되기에 퍼질 리 없는 소문이었지만, 마을 주민이, 혹은 방문자가 실종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도서관이라는 뉴스 보도는 괴담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학교가 세워진 연도가 연도라, 일본 병사가 사람들을 끌고 간다는 소문부터, 사람을 잡아먹는 책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 모두 뜬소문에 지나지 않아, 실종과 일반인들로서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괴서적을 연결시키는 소문은 제법 있어도, 구체적으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옮겨 적힌 책의 존재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고 있었다. 주하는 그 책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경비와 도서관과 관련된 일부 사람들뿐이라고 들었다.
도서관은 증축에 이은 증축 탓에 미로와도 같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 탓에 몇몇 구역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간혹 단전되어, 내부가 빛으로부터 차단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그나마 건물 외벽에 닿아 창이 있으면, 전등이 나가도 내부 통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건물 안쪽의 구역일 경우엔 방법이 없었다. 내벽을 짚으며 어떻게든 출입구를 찾던가, 아니면 다시 전기 공급이 이뤄지길 기다리거나.
그 탓에 금수 대학 도서관에서는 입관 시 핸드폰을 필히 지참해야 한다는 이용 규칙이 있었다. 그 이유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경비원들뿐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이 규칙은 위의 두 가지 비상탈출 방법, 즉 내벽을 짚으며 출입구를 찾는 것과 가만히 서 기다리는 것, 둘 다 사람을 잡아먹는 이 도서관에선 99.99%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신참인 주하에겐 불행하게도, 비명이 들려온 자료실은 그러한, 도서관 로비로부터 다소 고립된 장소에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경비원들은 말 그대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수시 순찰을 돌 것을 명령 받는데, 이는 이러한 사고가 꽤 잦기 때문이었다. 잦다고 해도 1주에 한 번이었지만, 대체 세상에 어느 도서관에서 1주에 한 번 비명이 들려온단 말인가? 그를 생각해 보면 이는 잦다고 말해도 충분한 빈도였다.
주하는 손전등을 든 팔을 앞으로 뻗어 시야를 확보하며 달렸다.
‘비명이 들려온 곳은 층계 복도. 그렇다면 이 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일이 터졌단 건데.’
손전등 끝을 이로 악문 채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다시 손전등을 쥐었을 때 그 끝에 침이 묻어있었으나 주하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 도서관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이기에.
“이 쪽은 보라. 빨강, 노랑 응답하세요! 방금 비명 들었습니까?”
질문의 요지는 간단했다. ‘나는 비명이 일어난 위치를 파악해야 하니 당신들이 순찰 도는 곳에서 그 곳이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먼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쪽은 빨강.”
경비원들의 또 다른 규칙, 그건 빨강, 보라, 노랑 순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긴급한 상황을 대하는 기본적인 무전기 수칙이었다.
“아무 것도 못 들었어.”
남자다운 목소리였다. 간결하게 질문에 대해서 답을 했을 뿐이었지만, 바로 뒤따라 갈 테니 어딘지 말하라고 하는 게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이 쪽은 노랑.”
아직 어딘가 앳된 목소리. 하지만 긴박했다.
“여기는 지하 3층,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하가 있던 곳은 지하 2층으로, 그는 그렇다면 지하 3층이 비명의 근원일 것이라 확신했다.
“곧 그리 갈게!”
타 도서관의 실내 정숙이란 규칙은 이 도서관의 자료실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지상부의 열람실에선 딱히 사고랄 만한 게 일어나지 않았던 만큼 열람실은 여타 도서관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고서들이 가득한 지하 자료실에선 경비원들에게 절대적인 자유 권한이 부여되었다.
주하는 계단을 달리기 보단 뛰어 내리다시피 내려가, 그의 후배인 ‘노랑’ 대원이 있다던 지하 3층의 문을 열어젖혔다. 주하는 그곳에서 도서관의 괴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이 한 도서관 이용자를 ‘습격’하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기다란 뱀, 혹은 커다란 구더기란 인상을 주는 모양새의 괴물이었다. 주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단어도 그것이었다. 괴물! 설령 그에게 있어 괴물이란 상상 속의 존재에 지나지 않아, 보다 정확히는 그것을 동물이라 불러야 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동물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그는 직감했다.
‘젠장, 어떻게 돼먹은 도서관이야!’
그는 그가 꿈꿔왔던 편안한 경비원 생활이 먼 훗날에도 이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꿈이 깨진 지는 오래였지만, 괴물의 존재를 목격하자 어째서 도서관 경비원 주제에 군필, 젊은 나이, 무술 경력 등을 요구하는 지 알게 되었다.
‘여대생, 여대생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대학 도서관 경비원 자리를 추천해 준 자신의 친구, 세환에게 상소리를 내뱉었다.
괴물은 꼬리, 혹은 머리로 여겨지는 부분에 상하좌우로 벌어지는, 반쯤 귤 껍질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구멍을 갖고 있었는데, 피해자를 그 곳을 통해 삼키고 있었다. 피해자의 비명은 더 이상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됐지만, 그가 발버둥치는 것으로 그가 아직 살아있는 상태라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뱉어!”
그는 괴물이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명령조의 외침을 뱉으며 손전등을 집어 던졌다. 몸뚱어리의 일부만을 보였단 인상을 주면서도, 그 일부만으로도 크기는 그를 압도하는 괴물이었다. 그의 위협에 꼼짝할 리 없던 괴물은 피해자를 전부 삼켜, 몸을 격렬히 떨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액과 함께 한 권의 책을 뱉어냈다.
검은색 표지의 책.
구더기 모양의 괴물이야말로 괴담의 정체였다. 환기통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만큼 그것이 괴물의 진짜 모습인지는 비록 그로선 알 수 없었지만.
괴물은 책을 뱉어내자마자 바로 환기통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주하는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경험을 하고 나자 머릿속 수많은 질문에 어느 하나 결정 내리지 못했다. 저 환기통 가까이로 다가가 책을 주워야 할까? 아니면 당장 뛰어가 괴물의 흔적을 살펴야 할까? 만약 괴물이 다시 튀어나와 나까지 삼키면 어쩌지? 이대로 괴물을 놓쳐도 되는 걸까?
순간, 뒤에서 그의 선배 ‘빨강’ 대원의 명령이 들려왔다.
“멈춰!”
주하의 선배가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그가 낸 폐쇄공간에서의 긴박한 발소리란, 제법 무겁고, 무서운 것이었다. 그가 주하를 멈춰 세운 것은 그 이전에도 섣불리 움직였다가 변 당한 경비원이 있기 때문인 걸까?
주하의 선배, 령이 멈추라고 한 대상은 주하만은 아니었다. 경비원 셋 중 막내인 경하 역시 어느새 주하 곁에서 기분 나쁜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는 환기통을 응시하고 있었다.
“방금 그건…… 뭐였죠?”
침을 삼키며, 말 그대로 꿀꺽 소리를 내면서, “글쎄”라며 말을 흘리는 게 주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둘 다 어디 다치진 않았어?”
가장 오래된 경험을 지닌 령이었지만, 여전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넓디 넓은 도서관 내부를 달리는 것은 체력에 벅찬 일이었다. 세계구급 규모의 도서관이라는 별명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지하부터 지상까지 6층은 되다시피 하는 걸.’
그마저도 경비원조차 출입이 제한된 구역을 제외한 것이었다. 주하는 이런 괴실종 사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근처 주민들이 도서관에 산책하러 오기도 하지 않을까 상상했다.
“선배…… 선배, 저 책…….”
경하가 울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놓인 책을 가리켰다. 검은 표지의 책. 전설로조차 그 존재가 희미한 그것이었다.
분명 연속 실종은 제법 세간에 알려졌던 얘기였다. 그마저도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벌어지는 일이었고,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한 채 사람들은 흥미를 잃게 되었다. 주하나 경하에게 역시 학교괴담은 시시한 전설에 불과했다. 괴물을 목격하고, 그것이 사람 대신 책을 현장에 남기고 가는 것을 보기까지는.
령이 무언으로써 경하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답한 채 주하와 경하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가만히 기다리라며 주하에게 눈빛을 보낸 뒤 령은 한 발 한 발 환기통을 향해 걸어갔다. 그 폭은 기껏해야 한 뺨에 지날 것이었다. 환기통까지의 거리는 백 수십 미터에 달했으니, 달린대도 십 수초 걸릴 거리였으니, 령이 환기통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주하나 경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책을 집어 든 령은 환기통에 잠시 눈길을 줄 뿐, 그 안에 관해선 조사라고 생각될 법한 그 어떤 것도 취하지 않았다.
‘역시 그건 좀 위험한가?”
주하가 생각했다.
“마저 순찰 돌자.”
어딘가 힘이 빠진 음색이었다. 수 년간, 그것도 근래 들어서만 십여 명이 도서관에서 자취를 감춘 것을 보아오고, 더군다나 그런 괴물이 도서관에 존재한다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입장인 사람으로서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경찰에 알리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경하가 떨며 물었다.
“도서관에 알리면 뒷처리는 도서관이 알아서 할 거야.”
령은 남을 놀릴 때면 언제나 짓던 웃음을 띠었다.

세상 모든 것이 묘사 그대로라면 얼마나 단순할까, 집무실 안에서 홀로 토로하며 금수 대학교 도서관 관장 세하는 책상에 엎드렸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 도서관은 책 대여해주는 곳. 간단하기 그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도서관은 대출/대여 이외에도 행정 및 자료관리 등의 업무 역시 관할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가 익일 오전까지 처리해야만 하는 서류들 위로 엎드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홀로 집무실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근 10년, 그녀가 한숨 쉬는 것을 들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소한 언동 하나하나에서부터 항상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는 게 그녀 주변 사람들의 평이었다.
‘학교 점등 시간까지 1시간 여…….’
흉흉한 학교 공기 탓에 금수 대학교는 10시 이후엔 관계자만 남을 수 있게 하였고, 11시 이후엔 아무도 부지 내에 남지 않도록 못 박아두었다. 만일 그녀가 서류 처리를 1시간 내에 해내지 못하면 그 모두를 집까지 가져가 집에서도 업무를 봐야 할 판국이었다.
“이령입니다.”
아,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이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들어오세요.”
도서관 경비원 고참 이령이 기다렸다는 듯 확 문을 열어젖히며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이령이 무슨 말을 하려 왔는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일하는 곳에 관련된 문제는 항상 그녀에게 두통을 안겨줬다, 비록 그녀가 대학 부지 내 도서관들의 관리를 맡게 된 것은 고작 한 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또 다른 실종인가요?”
“그렇습니다.”
령이 성큼 걸어 가 그녀의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 서류가 가득해 마땅히 책을 올려놓을 공간이 없음은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그녀 역시 그가 이른바 행정 업무에 있어 중요한 서류들 위에 검은 표지의 책을 올려놓는 데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검은 표지의 책은 위에 제출 해야 하는 행정 서류들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었다.
령은 다소 껄렁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경비원이자 그 이상의 입장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지, 갓 제대한 청년마냥 곧은 차려 자세로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켰다.
도서관장 세하는 책을 집어 들고 겉을 살폈다. 이전에 봐온 책들과 다를 바 없이 검은 표지에 무언가 딱히 쓰여져 있는 것이 없는 정체불명의 책. 그 안에는 한자 고어로 한 사람의 이름, 출생년도로 시작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하, 어째서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실종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건지.”
세하는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녀의 전임자는 도서관 업무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쳤던, 더욱이 그 시간을 대부분 금수 대학 도서관에서 보낸, 그야말로 금수 대학 도서관의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환갑 넘은 노신사였지만, 정작 그는 금수 대학 도서관에서 연속 실종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그의 경우, 단, 어째서인지 그의 일생이 적힌 책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애당초 책의 존재를 전설이 아닌 실재로써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적어 그녀의 전임자 역시 사람들에겐 연속 실종 사건의 일부로 여겨졌다.
“꺅!”
대화 도중 그녀가 비명을 지른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정장 가슴께 위로 커다란 파리가 날아와 앉은 것이었다.
“풉.”
이령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냈다.
“도서관의 중요한 업무를 얘기하는데 파리가 날아와 앉았군요.”
입을 가리면서도 웃음은 숨기지 않는 그를 세하가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
“저는 말예요,” 손을 저으며 파리를 멀리 날려보낸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을 믿지 않아요. 부관장도 그렇고요.”
그녀가 다시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령에게 밀어 건넸다. 검은 표지의 책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기밀사항이었기에, 중요한 공석(公席)에 앉아 있는 그녀는 검은 표지의 책들을 소유 및 관리할 수 없었다. 도서관 역시 그 책들을 소장하는 게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책들을 그 책에 적힌 인물의 가족에게 전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책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진다면 도서관의 유지는 불가능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백 년간의 실종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간 빈도가 1년에 한 번으로 드물다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일는지는 몰라도, 19세기 말부터 있어온 금수 대학 도서관은 한국 전쟁 시기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갖은 의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실로 어렵사리 유지되어 온 명문의 전통이었다. 괴담이 단순한 전설로 치부되지 못하도록 하는 책의 존재는, 경찰이나 각종 공권력의 개입을 끌어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개입이 실종자 수색이 아닌 다른 측면, 즉 도서관에 관한 의심으로 발현되는 것을, 관장의 위치에 있는 그녀로서는 놔둘 수 없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책을 보관 및 관리하게 되는 것은 책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경비원의 몫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검은 표지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녀가 불편해 하던 여러 사정들 중 하나였다. 도서관에 관한 권한에 있어, 관장이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주변에선 낙하산 인사라는 시선이 있어 완벽한 처신을 꾸미는 데에 기력을 소모하는데, 연속 실종 사건은 그녀의 완벽이라는 이름의 철벽을 뿌리째 뽑으려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붉게 칠해진 입술을 열어 보이지 않았지만, 령은 그녀가 이를 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근육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오기 전부터 기록되어 있는 문헌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신문 기사가 전부고, 기사들은 어디까지나 실종 사건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죠. 전설은 전설에 지나지 않아요. 책은, 납치할 사람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만든 뒤, 마치 사람이 사라지면 책만이 남는 것처럼 일을 꾸민 거겠죠.”
령은 책을 집고 나서 다시 차려 자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딱딱한 자세와는 달리 그의 언행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설마요. 모든 사실은 일어난 그대로 관장님께, 그리고 부관장님께 보고됩니다.”
“그리고 보고된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저와, 금석훈 부관장, 그리고 경비원들뿐이겠죠.”
세하는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손에 꼽을 수 있다면, 연속 실종 사건의 범인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었다. 자신을 제외한다면 남은 네 명 중 한 명이 범인이거나, 혹은 네 명 전원 공범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종된 전임자의 경우도 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다. 그가 범인으로서, 현재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으며, 어쩌면 그는 공범 중 하나인데 배신당한 것일지도 몰랐다. 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좋아요. 나가 보세요.”
령이 인사를 한 뒤 방을 나섰다.
세하는 령의 표정으로부터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만일 그가 약간의 동요만 보였더라도 그녀는 사람을 시켜 령의 뒤를 조사하게 할 참이었지만, 그의 여유로움에 그녀는 이를 갈았다.
“입단속 잘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는 그를 떠 보는 정도론 그녀가 원하는 질문에 관한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애당초 그녀가 속한 ‘기관’이 지향하는 온건한 방법은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만의 과격한 단독행동을 취할 때라 결단 내렸다.
“저나 당신이나, 관장 아씨에게 곱게 보이진 않는 모양이군요.”
관장 집무실을 막 나오던 참인 령에게 언제부터였는지 문 앞 벽에 기대 서 있던 올백의 머리를 하고 있는 키 큰 노신사가 말했다. 금석훈 부관장이었다.
“엿듣고 계신 겁니까?”
무언가의 기척을 잡아내는 데엔 자신 있던 령이었기에 자신이 알아채기 전부터 부관장이 자신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단 사실은 꺼림칙한 것이었다.
‘관장 상대하느라 진을 뺀 탓인가?’
그렇다 해도 부관장의 기척은 보통 사람의 그것관 전혀 달랐다. 움직임 하나하나에서부터 그것이 드러났다. 령이 막 닫은 집무실 문 문고리를 향해 뻗는 팔의 움직임에서조차 주변의 공기가 마치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것을 그는 알아챌 수 있었다.
“엿듣다뇨. 부관장으로서 관장 아씨를 보필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무실을 방문했더니 이야기 소리가 들렸을 뿐입니다.”
‘퍽이나.’
령은 부관장의 속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세하 관장과 령이 나눈 이야기는 밖에 알려져선 안 되는 이야기인 만큼, 혹시 모를 방문자에 대비해서라도 조용조용 나눠져 왔고, 금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장 아씨, 관장 아씨 하는 것도 실제로 강세하 관장을 그만큼 아끼기에 하는 말이 아님은, 령만큼 예리한 사람이 못 되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금석훈 부관장에 대한 소문을 접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젊은 시절부터 항상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쓴다는 얘기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가 대학 도서관 부관장 자리에 오게 된 것도 연줄 탓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그의 행실에 과연 인맥이 있긴 한 걸까 궁금해 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곧 은퇴할 시기를 바라봐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석훈은 제법 오래 부관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관장 자리에 한 번도 앉아 보지 못함에 분해 있을 때 관장의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나 싶었는데 자신보다 나이 삼십 줄 더 어려 보이는 여자가 관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십 수년 금수 대학을 위해 일해온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사람이 직장 상사가 된 것도 편치 않았는데, 거기다 여자라고 하니 옛 사고를 갖고 있는 그로선 더 답답했다.
“비슷한 처지끼리 힘이나 합치죠?”
석훈이 령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령도 제법 오래 살면서 좋아하는 일에도 좋아하지 않는 일에도 웃는 법을 익혀왔다고 생각했지만 선훈 앞에선 불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묶음으로 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세하와는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령은 세하 앞에서 보인 이른바 바른 태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며 악수를 거절했다. 석훈은 씁쓸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령은 그 웃음의 의도를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유감이군요.”
“알아줘서 고맙군요.”
석훈이 팔을 거두자마자 령은 어서 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말예요.”
‘아악! 왜 불러 세우는 거야!’
령이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증 내며 돌아보았다.
“얼마 전에 전 관장님께서 실종되셨잖아요? 제가 그거 때문에 주변인들에 대해 조금 조사했어요. 그런데 전 관장님 인간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령 씨 당신이 있더군요?”
령은 석훈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건지 초조한 심정이었지만 가만히 듣기만 했다. 섣불리 대꾸하다간 석훈이 원래 하려던 얘기를 전부 털어놓지 않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석훈은 그런 령의 생각을 꿰뚫어 본 것일까, 아니면 그는 원래부터 딱히 무언가에 대해 얘기할 심산은 아니었던 것일까. 그는 뒤돌아 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한 뒤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옥죄어 온 초조함에 석훈을 불러 세울 수 없던 령은 석훈이 원래부터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아는 척 시늉만을 해 본 것이기를 바랐다. 령은 석훈이 자신에 관한 어떠한 자료도 남아있을 리 없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도서관 등은 막 모두 꺼진 참이었다. 방문객들은 이미 한 시간 전 폐관 시간에 도서관을 비운 상태였고, 도서관 직원들도 업무를 마친 뒤 막 도서관을 나선 참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실종에 대해선 듣지 못한 채 평화로운 일상을 마친 것이었다.
‘문자 왔었네?’
주하가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한 통의 부재전화와 두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의 친구이자 그에게 도서관 경비원 자리를 소개시켜준 세환으로부터의 것이었다. 물어볼 게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고 자신 역시 세환에게 물어볼 게 있다 생각했지만, 그건 직접 만나서 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세환은 괴물의 존재를 알고서 주하에게 이 직장을 소개시켜준 것인가, 라는.
주하의 고등학교 동창 중 세환은 군 면제 판정을 받았고, 봉기는 애초에 군대와 연이 없었다. 입대를 미루고 미루다 석사 2년 과정까지 마치고 입대를 한 주하는, 제대하고 나서 구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늦게 입사 지원을 하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박사 과정을 밟을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하는 박사 과정을 밟기엔 재정적으로 생활이 여유롭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를 뒤적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주하는 금수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던 세환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4월 중순, 대학가가 활기를 찾을 때 즈음의 일이었다. 세환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의 도서관에서 경비원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세환이 주하에게 건네준 팜플렛엔 「남자 2명. 25세 이상. 군 경험 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도서관 경비가 힘들어 봐야 얼마나 힘들겠어.
도서관에서 일 한다고 하니 근무 서면서 독서도 할 수 있겠구나 주하는 기뻐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면접 때부터 불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면접관, 금석훈 도서관 부관장이 그에게 여러 질문을 건넨 뒤 마지막 질문이라며 질문 대신 한 장의 계약서를 건넸다. 석훈은 주하에게 서명하기 전에 한 번 읽어보라고 했지만, 주하가 한 눈에 보기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별 다를 게 없는 계약서에 지나지 않았다.
── 뒷면입니다.
석훈이 조용조용 웃으며 말했다.
주하는 뒷면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 걸까 궁금해 하며 계약서를 뒤집어 보았다. 계약서 뒷면엔 한 장의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습니다」라는, 일반적인 계약서에 씌어져 있을 리 없는 한 줄의 기묘한 문장이 그 내용이었다.
주하가 그 경고를 읽었다고 판단한 면접관 석훈은 한 권의 스크랩북을 그에게 보여줬다. 초, 중학생들도 다닐 법한 동네 문방구에서조차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클리어 파일이었다. 그 겉면엔 수정펜으로 영어로 스크랩북이라 필기체로 쓰여져 있었을 뿐인데, 그것에 어째선지 주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첫 장은 모 신문의 스크랩으로,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 지난 세기 초, 보다 정확히 1921년의 것이었다. 금수 대학교 도서관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에 관한 것으로, 본문 중엔 이러한 실종 사건이 이전부터 있어온 것이라는 분석이 적혀 있었다.
주하는 이러한 옛날 신문을 2011년의 도서관에 근무하겠다는 자신에게 보여주는 연유를 짐작할 수도 없었다. 이런 내용은 그 스스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의 것도 아니었으며, 세환으로부터 귀띔 받은 것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 다음 장 역시 모 신문의 스크랩으로써, 그 다음 년도의 글이었다. 발간 날짜는 첫 스크랩으로부터 약 10개월 뒤의 것이었다. 그렇게 약 1년을 간격으로 내로라하는 신문사에서 연속 실종 사건에 대해 다루길 수 년, 대형 신문사들은 결국 흥미를 잃은 것인지 더 이상 도서관의 실종 사건에 대해 기사를 싣지 않았다.
한국 전쟁 시기 기사는, 스크랩을 읽던 주하가 예상했던 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금수 대학 도서관 관내 실종 사건과 관련된 기사는 빈번히 있어와, 특히 근래 들어 빈도가 1년에 한 번에서 격주에 한 번 꼴로 급증해 그 중엔 학교 측이 폐관을 고려한다는 내용이 적힌 기사조차 있었다.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 하지만 저건 본 도서관의 실제 지침과는 다릅니다.
석훈이 눈을 번뜩였다. 그는 주하에게 근무 중 말 그대로 상시 순찰이라는 까다로운 근무 환경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다음 실종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주하는 자신의 기대가 배신되는 순간 망했다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이 일자리를 추천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교우 세환이었단 점에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뭔가 뒤가 구린 사람들이 남몰래 마을을 뜨면서 괴한 소문의 희생양이 되는 것뿐이겠지, 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신문에 나온 연속 실종 사건 기사 전부가 오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속 실종이라는 것 자체가 이른바 도시전설이고, 단순히 사람이 사라진 걸 가지고 사람들이 기존에 있던 도시전설과 그를 결부시킨 것이란 추측이었다.
── 끽해야 처음 한 두 사건이나 진짜 있던 일이겠지.
하지만 도서관 경비 일을 시작한 바로 첫날부터 그러한 주하의 안일한 생각은 무너졌다.
그 첫 날, 령은 도서관 개관 직전 주하를 불러 학교 전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금수 대학교 자체가 그러거니와, 도서관 역시 대학교와 시작을 같이해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만큼 전설 또한 다른 학교에 비해 그 수에서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타교 전설 중 일부는 금수 대학교에서 전래된 것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말하고 움직이는 동상 이야기는 물론, 건물에 나타난다는 목만 있는 여자 이야기, 호수에 산다는 용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서관 괴담. 본디 주하가 어깨 너머로 각 지역의 학교 전설에 대해 들어온 게 있을뿐더러, 주하는 부관장으로부터 경고 아닌 경고를 들었던 지라 괜한 마음에 도서관 괴담에 대해 근무일 전부터 조사를 해온 터였다.
도서관 괴담은 도서관 연속 실종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로써, 누군가가 도서관에서 실종될 때면, 그 사람의 모든 것, 즉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옮겨 적힌 책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야기는 도플갱어 이야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지, 도서관에 곧 실종될 처지의 사람 앞에 난데없이 그 괴서(怪書)가 나타난다는 판도 있었다.
수많은 학교 괴담들 중에서 안 그래도 실종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괴담이었던 지라 근래의 급격스런 실종 사건 빈도의 증가가 금수 대학교의 경비원을 늘리고자 채용공고를 낸 것과 무관하지 않음은 당연했다.
── 표정 보니 들어 본 모양이네.
령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 권의 책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표지엔 어떤 제목도 적혀있지 않았다. 정식으로 출판된 책이라기보다는 전통을 살린 고풍스런 누군가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것도 매우 두꺼운. 그는 바로 책 표지를 펼쳐 보이기 보단, 그 위에 손을 얹고 뜸을 들이며 직장에서의 첫 날을 앞둔 주하에게 물었다.
── 가장 마지막으로 실종된 사람의 이름, 알고 있어?
령은 주하에게서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천천히 표지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은 모두 한문이었지만, 주하는 그 내용을 대략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름 김홍욱. 1978년 2월 3일 출생.」
주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당시의 령이 보여줬던 반응을 떠올렸다. 능글맞게 웃으며 도서관에서 이런 것도 얘기해줬냐고 묻던 령. 경하에게서 들었지만, 경하도 처음 경비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주하와 마찬가지로 령한테 기분 나쁜 조언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경하는 한문을 읽을 수 없어 진지한 분위기는 덜했던 모양이지만, 이렇게 경험을 하고 나니 경하도 제법 충격 받았으리라 주하는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하는 제법 떨고 있었다.
‘하긴, 나나 쟤나 갓 제대했다고 해도 군대에서 그런 괴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때…….”
경하가 입을 열었다.
“그 때 바로 도서관 비워야 했던 거 아닐까요?”
경하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의도치 않게 범법행위를 저지르진 않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금수 대학교가 아무리 학계에서 발이 넓고 그 영향력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정부가 있고 법이 있는 이 나라에서 금수 대학교는 법 위에 있는 단체는 아니었다. 도서관 잠정 폐관이 싫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은닉하라는 관장이나 부관장의 지시, 그리고 그에 따르고 또 그들에게 따르라고 하는 선배 령의 언행 등은 갓 금수 대학 도서관 경비원 일을 하기 시작한 경하나 주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사건이 터지면 바로 경찰에 알리고 건물을 비워야 하는 게 맞는 걸 텐데.’
주하도 자신이 위의 지시를 따르기만 함으로써 소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닌가 책임을 느꼈다.
“경찰에 알렸겠지.”
주하는 짐작으로 대답하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사실 주하도 도서관에서 경찰에 알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령이 도서관, 즉 관장이나 부관장 등 위에서 도서관과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은 했어도, 사건이 있은 뒤 도서관에서 사람들을 내보낸다든가, 경찰이 수색을 한다든가 등의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안 그래도 선배 오시면 다시 물어보려고.”
만일 주하나 경하, 둘 중 누구라도 사람 많은 도서관에서 괴물이 나타났다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녔다면, 그 날 저녁은 언덕 위 하얀 집에서 먹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수 대학 도서관은 수십 년간 괴물의 존재를 완벽히 은폐해온 기관이었다. 어쩌면 이전에도 괴물의 존재에 대해 밖에 알려온 사람이 있었을는지도 몰랐다. 실제 사건 경위와 꼭 닮은 괴담이 어디서 시작됐겠는가? 하지만 그 말이 주하나 경하가 잘못 입 놀려도 괜찮단 보증은 되지 않았다.
오늘 있던 일이야말로 주하와 경하가 처음으로 겪은 괴실종사건의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종 사건의 주기가 최근 들어 잦아졌다는 얘기는, 앞으로도 그들은 오늘 같은 일을 제법 겪게 될 것이란 사실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둬야 할 텐데.’
이 정도면 이미 미친 사람이 도서관에 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들어놨다, 같은 얘기는 시시한 농담으로 들릴 정도라 주하는 생각했다.
‘괴물이라니. 진짜로 장난 아니라고.’
미국처럼 경비원이라고 하여 총을 휴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경찰봉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전등 혹은 맨몸으로 도서관에서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서 귀신도 잡는다는 모 군 집단을 빼면 없을 것이었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소위 땅개라 불리는 육군에 갔다 온 게 전부인 주하는, 괴물은커녕 귀신 잡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애초에 과학적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귀신이나 괴물이 사람을 잡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
‘령 선배는 왜 이렇게 늦으시지?’
주하가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았을 때, 시계는 10시 3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항상 시계가 핸드폰 시계보다 조금 빠르게 맞춰져 있어서 곧 폐관하고서 30분이 흐른 10시 반이 될 것이었다. 금수대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 면적 3할 가량을 학교 내 호수가 차지하고 있었기에, 건물간 거리는 심하게 멀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일반인이 못 걸어 다닐 정도의 수준이었고, 체대생들 사이에선 대학 부지 내를 그 정도도 멀다며 버스 타고 다니면 선배에게 혼난다는 얘기가 있기도 했다.
그와 경하는 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령은 다음 날이 주말인 토요일이기도 해 개관 시간이 정오라 점심께 출근해도 되니, 머리나 비울 겸 근처 술집에 가자고 그들에게 제안했다. 그나 경하는 내심 혼자 집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머리를 식히는 데엔 훨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번 일에 대해 선배로서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령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기에 조용히 따라가기로 했다.
“기다렸지?”
주하가 세환의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려고 하던 때에, 관장을 만나러 갔던 령이 도착하였다. 어깨엔 스포츠백을 메고 있었는데, 주하는 령이 관장에게 검은 표지의 책을 넘겨주고 왔으리라 생각했다.
“문 잠갔어?”
“아뇨.”
경하가 열쇠를 들어 보였다.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 경비실 좀 갔다 올게.”
경하는 령의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움찔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게 너무나 확연히 보여, 주하나 령이 되려 놀라 되물을 정도였다.
“왜 그러는데?”
주하나 령은 주하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든가 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경하가 화들짝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아, 아뇨.”
자신도 너무 크게 반응한 것이 부끄러웠던지 경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싱겁긴.”
령은 경하가 오늘 겪은 일 때문에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 괴물이 나오는 도서관에, 불이 다 꺼진 낡은 건물에, 아무도 없는 밤에, 해 떨어진 시간에, 발을 들이고 싶진 않을 것이었다.
도서관은 대강당과 같지 않아 수많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말이 발소리가 대강당에서처럼 울리지는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구역 하나하나가 좁은 만큼 소리가 울리는 점도 있었다. 괴물이 환기통을 이용해 이동해 다닌다면, 그것이 환기통 내부를 기어 다니는 소리는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크게 들릴 것이었다.
스윽스윽.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자기 이외의 존재가 소리를 내는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진대, 그것이 미치광이나 괴물처럼 위협적인 것이 내는 소리라고 한다면 당사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하지만 령은 이미 그런 도서관 내부의 일에 익숙해진 것인지 경비실에 금세 들렀다 나올 뿐이었다.
“뭐하러 갔다 나오신 건가요?”
“그것보다 차는 있어?”
경하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며 령은 눈을 찡긋했다.

이곳 대학교 부지에는 총 일곱 개의 주차장이 있었다. 지도상에서 드러나듯 주차장들의 위치를 점으로 표현해 이으면 국자 모양이 되는데, 학교 전설에 의하면 북두칠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회자되는 이야기인 것이, 학교 기록을 살펴보면 주차장 계획이 처음부터 그렇게 잡혀 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주차장 중에선 현재 학교 건물이 들어선 장소가 있기도 하고, 학교가 증축되면서 새로 생긴 주차장도 있었다.
일곱 주차장 중 세 곳은 교내에 있어 어느 학과 건물에나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주차 가능한 것은 교수들과 내빈들뿐. 학교 행정을 도맡아 하는 측에서는 자동차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소음, 환경 문제를 줄여 학생들에게 쾌적한 수업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행해지는 제한이라 주장했다.
다른 네 곳의 주차장은 대학 부지 테두리에 있었다. 자가용을 끌고 온 학생이나 교수 외 임직원은 다시 말해 학교 정중앙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야만 했는데, 그나마 학교가 운영하는 주차장과 교내를 오가는 무료 교내버스는 8시면 모두 운행을 중단했다.
걸으며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주하였지만, 그는 괴물에 대한 것 외엔 생각할 수 없어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든, 얼굴을 자극하든, 그다지 유쾌하게 느낄 수 없었다.
‘멀리도 세우셨네.’
주하는 걷는 방향으로 보건대 대학 부지 중앙의 호수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모양이라 생각했다.
“공사 아직도 안 끝났네요.”
경하가 물었다.
호수의 정식 명칭은 금수 호수로써, 대학 역시 그 이름을 이 호수에서 빌린 것이었다. 근처 지리 명소 중에선 가장 오랫동안 알려진 곳으로, 그 기원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전설들이 있었다. 그 중 단연 가장 널리 알려진 얘기는 악행을 저지른 이무기가 가둬진 곳이라는 얘기였는데, 하필 전설에서 용 같은 신성한 동물이 아닌 이무기를 언급하는 것은 호수의 위험성 때문일 것이었다.
금수 호수는 얼핏 보면 그냥 그런 작은 연못으로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수면 아래는 상당히 깊어 대학 내에는 잠수 동호회가 정기적으로 금수 호수에서 잠수 연습을 할 정도였다. 잠수복과 같은 제대로 된 장비 없이는 익사하기 십상인 곳이라 학생들에게는 정식 명칭이 아닌 별명으로, 식인 호수란 별칭으로 불렸다.
‘안 그래도 처음에 호수 이름 들었을 땐 근처에 가지도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주하는 어둑한 밤 호수 공기 때문인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에겐 호수 옆길을 걸을 정도로 호수에 가까이 간 것은 이 대학에 오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익사 사건의 얘기가 없더라도 공사 현장을 거쳐 지나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학교 부지 내에 교수 및 내빈의 자가용을 제외하곤 어떤 자동차도 주차를 엄금한다는 내칙에도 불구하고, 공사 차량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 늦은 시간에 업체 주차장이 아닌 공사 현장에 버려져 있었다. 그 대부분은 트럭이었다.
“도서관에 있을 때는 트럭 소리 들리지 않던데, 저 사람들은 대체 언제 일하는 거죠?”
“낮에 일하지 않나?”
도서관은 그 위치가 금수 호수로부터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방음이 잘 된 탓인지, 경하가 말했듯 주하 역시 근무 서면서 공사 소음을 겪지 못했다. 웅, 웅, 물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적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공사 현장에서 물을 사용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그것은 겨우 배수관이 해당 벽 근처에 있었던 거라 여길 정도의 잡음이었다.
공사는 몇 주째 계속되고 있었다. 공사의 내용은 대학교의 명소인 호수를 메워버리는 작업이었다!
식인 호수. 그 이명(異名)을 지우는 것은 주변에 동아줄 울타리를 치는 것만으론 부족했다고 생각한 대학은, 호수를 아예 메우기로 결정하였다. 일개 대학 부지 내 호수를 메우는 작업임에도 몇 주씩이나 걸린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공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얘기거나, 수면 아래에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굴이 있다는 얘기거나.
예전부터 명소로 여겨졌던 만큼, 잠수 동호회를 포함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어느 대학에서나 매년 호수와 관련된 사고는 일어나고, 이는 대학 음주문화와 학생들의 안전불감증 때문이지, 호수 탓이라곤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통계보다는 전설이 조성한 불안감이 더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공사 진행이 멎을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 얘기였다.
6~7주나 흙을 퍼다 날라 호수를 메우는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호수 바닥은 모습을 보일 줄을 몰랐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다른 기기로 호수의 물을 전부 뽑아낸 뒤 다시 흙으로 메우기 시작한다는 게 계획인 듯 했지만, 마치 호수 아래로 빠뜨리는 흙이 전부 어딘가로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 그 계획이 시작될 양상은 보이지 않았다.
“주중에만 일하는 것 같긴 한데,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 안에서만 사니까 못 보는 게 당연하겠지.”
령이 말했다.
“그래도 이 호수, 이렇게 메워버리면 안 될 텐데…….”
“무슨 말씀이세요?”
주하는 호수를 메워야 하는가,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도 들어온 이야기가 있던 터라 호수를 메우는 것에 찬성하는 편이었다. 굳이 금수 대학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신입생 환영회를 한다며 신입생에게 술을 먹인 뒤에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킨다는 이야기는 1년에 한 번 꼭 뉴스를 타지 않던가?
“음, 이따 술 마시면서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령이 목을 가다듬었다.
“이 호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어?”
“그냥 옛날부터 있던 호수 아닌가요?”
경하의 앳된 대답에 령이 “땡”이라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예?”
갑작스런 령의 질문에 주하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리버리한 대답만을 내놓았다.
“군기 빠져 갖고는.”
령이 피식 웃으며 다시, “넌 이 호수,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해?”라 물었다. 주하는 처음 내놓은 대답 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호수가 그냥 옛날부터 있던 호수가 아니면 뭐지?’
주하 역시 경하와 같은 대답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마땅히 령이 생각하는 모범 답안을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산이나 호수는 지각 작용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정도가 그나마 다듬어진 대답일까?
“군대 경험을 되살려봐, 군대 경험을.”
령의 농담에 경하가 어깨를 움찔했다. 주하는 그것을 보지 못했지만, 령은 역시 경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걸까 속으로 걱정해주었다.
“설마 삽질인가요?”
“그래, 그거야!”
주하의 농담에 령이 잘 맞췄다며 그를 칭찬해주었다. 주하는 설마 삽질이 답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학마다 인공 호수 하나씩 갖고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당연한 얘기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자연상의 호수와는 주변 조형을 포함한 전체적인 생김새가 사뭇 달랐다. 금수 호수는 그에 반해, 어딜 보나 자연상의 호수였다.
주차장엔 금요일 저녁에 대학 부지에 남아 있을 사람이 적은 만큼, 단 세 대의 자가용만이 주차되어 있었다. 한 대는 빨간색 소형 자가용, 다른 한 대는 검정색 중형 자가용. 그리고 또 다른 한 대는 하얀 중형 자가용이었다, 일단은.
‘차 주인 얼굴 꼭 한 번 보고 싶네.’
주하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보넷 위에 게임 일러스트가 붙여져 있던 것이었다. 더욱이 차 색깔이 흰색이니만큼 그림은 더욱 돋보였다. 일본 만화에서 나올 법한 눈이 커다란 미소녀 그림은 아니었지만, 칼을 든 채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미형의 서양 중세 남녀 한 쌍의 그림은, 특히 복장의 노출도를 봤을 때,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시동이 걸리며 게임 그림이 붙여진 보넷이 덜덜거렸다. 주하나 경하는 코팅 탓에 창 너머를 볼 수 없었지만, 조수석의 창이 열리면서 차 주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해, 안 타고?”
령이었다.

아무도 남아 있을 리 없는 대학 교정. 그것만큼이나 주변에 사는 혹은 주변을 지나가던 젊은 커플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술집조차 바글대는 사람들로 이른바 둘만의 공간은 아니었고, 그 밖의 장소들도 연애에 있어 커플을 매너리즘으로 이끌기 십상이었다.
“여기 들어오면 안 되잖아~.”
금수 대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이 남자친구한테 손을 잡아당기며 애교 반, 걱정 반인 목소리를 냈다. 타교 학생인 남자친구는 무슨 대학이 밤 11시면 정문, 후문 다 잠그고 출입을 통제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애초에 금수 대학교의 담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 그들이 옆에 불법 주차되어 있는 자가용을 밟고 올라 담을 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거 주인한테 미안하잖아~.”
“미안하긴. 불법 주차한 사람이 잘못이지.”
남자친구가 낄낄 웃으며 담을 넘자, 그녀도 애교스럽게 보이기 위해 망설이는 모습을 잠시 보이고선 한숨에 담을 넘었다. 아래서 여자친구를 받아주려던 그녀의 남자친구는, 다음부턴 여자친구더러 치마 입고 다니라고 해야겠다 내심 생각했다.
“꺄핫.”
그녀는 착지한 뒤 일부러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제대로 받아주지도 못하고~.”
남자친구를 곤란하게 만들 심산이었다. 애인을 곤란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자기한테 잘 해주겠지, 라는 계획이었다.
“바보냐. 받아주려고 했는데 혼자 뛰어내려놓고선.”
남자친구의 웃음에 심통이 난 그녀는 그의 볼을 확 꼬집었다.
“아.”
한동안 놓아주지 않으며 질질 끌고 다닐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무심결에 손을 놓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그녀의 남자친구가 목소리를 높여보았지만, 그녀는 볼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돼~.”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알았어, 이대로 호수까지 가기~.”
“뭐?”
타교 학생인 그는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학교 가운데에 호수가 있거든~? 거기 분위기 짱이다~? 그러니까 거기까지 이러고 가자, 우리 아기~? 우쮸쮸쮸.”
“아앗, 알았어, 알았어! 근데 얼마나 걸리는데?”
한 손으로는 남자친구의 볼을 꼬집고, 다른 한 손으로는 턱을 간질이며 그를 놀리던 그의 여자친구로부터, 그는 기대치도 못했던 대답을 들었다.
“이~ 십~ 분.”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
남학생이 체감상 한 삼십 분은 걸었다 느꼈을 때, 그의 여자친구가 멈춰서며 소리를 냈다.
‘아, 다 왔구나!’
“다 왔어? 다 온 거지?”
그는 기뻐하며 물었지만, 여자친구의 반응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그것이 시큰둥하다고까지 느꼈다. 평소의 애교가 없던 탓일까?
“아니, 거진 다 오긴 했는데…….”
비록 그가 볼을 꼬집힌 채 질질 끌려오느라 그들이 삼십 분은 됐다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이 걸은 시간은 십여 분에 지나지 않아, 호수 바로 옆 인공 숲까지 도달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사실 그즈음에서 볼을 놔준 뒤 젊은 남녀의 재미를 보려고 했지만,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왜 그러는데?”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은 느슨해져 있어, 그는 여자친구의 손을 포개 잡아 내려놓은 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같이 바라봐주었다.
“저기가…… 호수야?”
그도 시선 끝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반딧불인가?’
호수라고 생각되는 곳에 무언가 붉은 불빛이 날아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그보다 허공에 붕 떠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그것은 반딧불과는 전혀 달랐지만, 반딧불을 본 적 없는 도시인인 그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그 불빛은 연녹색을 띠고 있지도 않았고, 깜빡이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반딧불인가보다! 가 보자!”
그가 여자친구의 팔을 잡아 당겼다.
“어, 어어.”
신입생이라 호수에 대해 몇 번 들어본 게 전부인 그녀였지만, 그 붉은 불빛에 어딘가 꺼림칙한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그것이 어릴 때 유령 이야기에서 곧잘 듣게 되는 도깨비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저 호수 그러고 보면 별명이…….’
하지만 그녀는 남자친구를 믿고 호수로 가보기로 했다.
‘그래, 반딧불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호숫가에서 멈춰 서야만 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그녀는 주저 앉았다. 어떻게든 공포를 해소시키는 유일한 수단인 비명조차 목에서 나오지 않아 공포감을 견딜 수 없던 그녀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쓰러진 것도 알지 못한 채 눈앞의 ‘그것’으로부터 눈을 땔 수 없었다.
붉은 빛의 정체는, 분명 이야기 속 도깨비불과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그것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었다.
허공에 떠 다니는 초등학생 나이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 그 입에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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