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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2분의 1
글쓴이: mooon
작성일: 11-07-15 23:59 조회: 4,195 추천: 0 비추천: 0
1.
겨울도 어느새 끝자락이지만 아직도 이르게 찾아오는 밤은 부지런하게 자신의 색으로 밤하늘을 물들인다.
검푸르게 물들던 하늘이 일시에 검은 장막을 내리는 것처럼 색을 바꿨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달빛에 의지해 지붕에서 지붕으로 소리 없이 뛰어넘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어려움 없이 적의 모습을 쫓는다.
점차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 밑으로 그림자가 지나갔다.
초저녁부터 쫓겨온 적은 상당히 소모된 듯이 보였다. 움직임이 점차 직선적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젠 그마저도 굼뜬 움직임이었다.
한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대기가 일렁이더니 이내 그림자의 모습이 사라진다. 망설임 없이 품에서 병을 꺼내 내용물을 뿌리자 확 하는 불꽃과 함께 다시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 교과서적인 움직임이 신경 쓰인다. ‘사냥’은 몇 번이고 해왔지만 이렇게 고지식한 패턴의 적은 처음이다. 적을 상대하는데 있어 교범에 실린 내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재주 좋게 힘을 활용해 이쪽이 알고 있는 지식을 역이용하는 것이 추세라면 추세였다.
덮쳐오는 박쥐 떼를 향해 마늘을 던지자 대부분이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 한 마리 만이 방향을 돌려 비틀비틀 하강하기 시작한다. 어느 것 하나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함정일 가능성을 떠올렸다.. 마스터가 개별 행동을 취한 것은 어느 정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까.
박쥐는 주택가를 지나 한적 진 공터의 어둠으로 자취를 감췄다. 공터 너머로는 4층 정도 되는 구조물이 2개, 그 뒤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즉 적에게는 막다른 곳이라는 뜻이 된다. 이곳은 학교라는 시설로 이 시간에는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방패나 먹잇감이 전혀 없는 이상 어지간한 함정을 파 놓았어도 큰 위협은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됐다.
그저께 입국하면서 지급된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 버튼을 누르자 평소 귀에 익은 찬송가 대신 무기질적인 신호음이 울렸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신호음의 음색이 어딘가 불길하다.
그러고 보니 마스터도 새로운 것을 지급 받았었다. 평소 본업보다 휴대전화 게임에 열성을 쏟아 붇는 그녀이기에 어쩌면 지급 받은 것은 내팽개쳐두고 원래 휴대전화만 소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럴듯한 느낌이 드는 추리를 애써 부정하고 있을 때 신호음이 끊겼다.
전화기 너머에서 열의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전화 너머로도 전해진다.
우하하핫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
불길한 예감이 커져간다. 마스터가 열의에 차 있다면 그녀가 속한 상황이 본업 쪽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 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조금씩 불길함이 커져만 간다.
“으, 으핫. 아 잠시만요. 진실이 너희를…..뭐야 너냐?”
마스터는 인사를 하다 말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진실 속에서 내가 왔노라. 또 마신 건가.”
“아, 잠깐만. 오빠! 여기 곱창 일 인분 더요!”
마스터의 들뜬 너머로 무언가 대화가 오가고 다시 그녀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살짝 달아오른 공기가 전화 너머로도 느껴진다. 이건 술집이군. 어느 나라든 이 특유의 분위기는 변화지 않는 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사냥감을 몰아넣는 것이 아니었나.”
“…..”
불길한 침묵.
“어엉? 뭐라고? 곱창은 못 먹겠다고?”
곱창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걸로 봐서 마스터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타국 문화에 진절머리를 내던 모습과는 다르게 술이 들어가자 금새 친화력을 발휘한 모양이다. 덧붙여 그녀는 사족을 못쓸 정도로 술을 밝히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술이 약하다.
“푸하, 역시 여행은 좋아. 안 그러냐?”
안되겠군. 지원은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나는 빠르게 단념했다.
“단독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판단컨대 표적의 무력화만 놓고 본다면 마스터의 지원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 됐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으니, 먹은 건 모두 토해내도록 만들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이 나라에도 미성년자에 대한 음주 규제가 존재하나?”
“어엉? 당연한 거 아냐? 너도 곱창 맛을 보면 한국 문화에 푸우욱 빠지게 될걸?”
“…..잘은 모르겠지만 규제가 존재한다면 또 일반인에게 힘을 쓴 셈이군. 이 일도 빠짐없이 보고 할 테니 그리 알도록.”
마스터는 반쯤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보고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뭐?! 보고? 뭘 보고 하겠다고? 안돼. 보고는 안 된다. 오빠! 소주는 언제 나오는데요?!”
흥분한 목소리가 울린다. 이미 만취도는 팔구 능선을 넘어선 것 같지만 내일 회수하는 게 힘들어 지지 않도록 적당히 마시라는 별 효력 없을 조언을 덧붙였다.
대답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대화 아닌 대화를 지속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인사말을 보냈다.
“우리는 진실의 바위다.”
답변은 없었다.
휴대전화를 품에 넣고 어둠이 내리 깔린 공터를 지나 건물 앞에 섰다.
“학교라…..”
자신이 아는 학교와는 인상이 달랐다. 학교란 자고로 배움의 장이며, 때문에 항상 비명과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밤이면 더 요란해지는 곳이었으나 이곳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드문드문 구름에 가려져있던 달이 조금씩 완만한 형태를 드러낸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달은 마물에게 힘을 부여한다. 실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달빛을 받으며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밤새 학교 안을 뒤졌지만 목표는 찾지 못했다. 학교내의 움직임이라곤 순찰을 도는 경비원뿐이었고, 증발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적의 모습은 자취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수색을 포기하고 마스터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 2시경. 적을 놓친 것 같다는 설명을 구구절절이 반복하고 간신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근처까지 도착하는데 다시 30분. 학교 안에 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마스터가 학교 안의 수색을, 내가 학교 밖에서 혹시나 있을 탈주에 대비해 잠복하고 다시 3시간이 흘렀다. 아무래도 적은 특수한 타입인 듯 동족인 그녀 조차 전혀 꼬리를 잡지 못했다.
검붉은 하늘이 차차 푸른 빛을 품기 시작할 때쯤 마스터가 학교 안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그녀가 얘기한 대로 2층의 한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 앞에 위치한 교탁에 앉아있는 마스터가 보인다. 늘 상 보는 신경질 적인 표정이지만 지금은 초조한 빛까지 띠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 ‘사냥’은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처럼 맹수의 사냥, 사람으로 치면 암살과 비슷해서 적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숨통을 끊는 것이 정석이다. 단숨에 제거하지 못하면 상처를 입고 살아남은 야수와 같이 날뛰며 주변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번 적 같은 경우 닥치는 대로 사람을 포식해 학교 전체가 놈의 요새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공교롭게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을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던 참이라 마스터의 태만에 의해 사건이 커진 것이 밝혀질 경우 그녀의 처우가 어떤 방향으로 치닫게 될지는 뻔했다.
거의 혈안이 된 마스터가 다급하게 꺼낸 방안은 내가 학교에 잠입해 일이 커지는 것을 밤까지 억제하자는 것이었다.
마스터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했다.
“괘, 괘괘 괜찮을 거야. 그 놈도 어차피 해가 떠있는 중에는 야, 얌전히 있지 않겠어?”
“그랬으면 좋겠지만…..내가 잠입해 있으면 오히려 불씨를 키우게 될 것 같은데. 마스터 말대로 나도 철수해서 상황을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무, 뭔 소리야! 그냥 내버려둔 채로 밤이 되면 백만 대군이 덤벼올걸?!”
좀 전에 자신이 한 말과 전혀 상반되는 말을 태연하게 입에 담았다. 반론하려는 차에 마스터가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필살기…..그래! 필살기를 쓸 때가 온 거야!”
절호의 비책이라는 듯 손을 탁 치는 모습을 보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필살기 말 인가.”
마스터가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단순한 강령술이다.
“알았지? 제일 처음 보이는 놈한테 들어가서 들키지 말고 하루를 보내. 그러면서 뭔가 일어날 조짐이 있으면 민간인인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막아.”
혼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존재인 나는 비교적 간단하게 다른 육체에 녹아들 수 있다. 몇 번째인가 나를 부숴먹은 마스터가 피해를 수복하는 과정의 고단함을 참지 못하고 고안한 것이 다른 육체에 나를 씌어 그대로 써먹는 것이었다.
익힐 때부터 별다른 효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국한적인 상황에서는 의외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허나 필살기에는 터무니 없는 약점이 있다.
존재의 유지에 기초가 되는 자아는 당연히 육체의 원 소유주가 더 강하다. 도저히 주도권을 빼앗을 수 없을 뿐 더러 내 존재 자체가 그 육체에 말 그대로 녹아 들어 버릴 우려도 존재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무시하고 본인의 만족을 위해 실험을 강행하려 했던 마스터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나를 가엾게 여겨서는 아니고 써먹을 육체가 없다는 극히 당연한 이유였다.
교단에 신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당연히 둘만의 비밀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여기서 부활할 줄이야. 나는 가벼운 오한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적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실험도 거치지 않은 수단을 강행할 필요성을 모르겠다.”
“강행할 필요성이라니! 내가 잡혀 들어가면 너도 끝이야! 인생 종치고 싶어?!”
“인생이라니…..”
분명히 없어도 됐을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적의 존재가 세간에 드러나는 일이면 마스터는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예방 가능한 사태였다면 더더욱 벗어날 길은 없다.
“…..”
생각해보면 분명히 다른 방법은 없다. 누군가 막지 않으면 학교는 하룻밤 사이에 적의 성채로 변할 것이다. 수습이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우리나 적의 정체가 세간에 드러나는 것을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이곳은 유동인구만 천 명을 헤아리는 곳이다.
“자아를 처음부터 놓고 시작하면 어떨까?”
“자아를…..?”
“가장 문제가 되는 게 그거잖아. 아이덴티티라고 하던 가. 그건 완전히 넘겨줘. 승산 없는 곳에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그러니까 조종하려 들지 말고 유도 하는 식으로 힘을 빌려주란 말이야.”
분명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성이다. 그 점에 대해서 완전히 포기한다면 거부반응은 꽤 억누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것도 이론에 지나지 않고 전인미답의 영역이기에 무엇 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는 주제에 마스터가 결의에 차서 말했다.
“안되면 우린 끝이야. 절대로 해야 되.”
그 말대로다. 이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알았다. 낮인데다 오히려 적이 눈치채지 못하는 만큼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아. 마스터가 한숨 놓았다는 듯이 거창하게 한숨을 내쉰다. 새삼 마스터의 충혈된 눈동자나 흐트러진 매무새에 시선이 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술이 약한 마스터가 나름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여기까지 고민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몸은 어떤가?”
“몸이라니?”
“새벽까지 마신 거 아닌가?”
마스터가 한 순간 굳는가 싶더니,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후우, 타고난 술꾼인 나한테 이 정도야 우습지.”
충혈된 눈동자나 후들거리는 다리가 단순히 위기감 때문만은 아닐 터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나는 학교 근처에서 눈 좀 붙일게. 틈틈이 보고 받을 테니까 메일로 보내.”
마스터는 하품을 하더니 안개로 모습을 바꿔 사라졌다.
“그럼 나는 한 명을 잡아야겠군.”
학교에 대해서는 사전 조사로 어느 정도 참고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학급은 수 십 개로 학생과 교사는 학년별로 나뉘어 분류된다. 마스터는 되는대로 들어가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한 반에 묶여 있게 되는 학생보다 교사를 택하는 것이 활동 범위가 넓어 지므로 유리할 것이다.
밖을 관찰하기 위해 가장 높은 4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층 정도를 지날 때였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익숙한 긴장감이 등뒤를 스친다. 거의 본능적으로 귀퉁이를 돌아 노출을 최소화한다. 내다본 복도에는 여전히 서늘한 공기만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뭐였지.
갈고 닦은 감이 무언가를 경고한다. 아니 애초에 감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재구축해서 떠오르는 순간적인 판단이다.
예리해지는 감각이 흐릿한 쇠 냄새를 포착했다.
적이다. 마스터를 호출하려다가 그만뒀다. 좀 있으면 해가 뜨는 시각에 마스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계단 난간을 지나 복도에 섰다. 별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바람을 타고 희미한 쇠 냄새가 비릿하게 퍼져간다. 잔향을 쫓아 나아가 어떤 교실 앞에 섰다. 3-3이라는 문패. 문은 플라스틱제의 미닫이 문이다. 뿌옇게 처리된 창 너머로 별다른 기색은 없다. 적은 이미 떠났다는 걸 직감했다. 그저 몇 번이고 경험한 죽음의 냄새만이 자욱하게 깔려있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푸르스름한 교실 가운데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맞춰져 있었을 책상 들이 파문을 그리듯 동그란 모양을 그리며 나뒹굴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붉은 웅덩이가 실제로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철제 의자 하나가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서있다.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의자 아래로 의자 다리를 움켜진 남학생이 보인다.
다급한 숨소리가 필사적으로 공기를 갈구하고 있다. 출혈량으로 보건 데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허나 아직 숨이 붙어있다.
즉, 살릴 수 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스터와 작전을 세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피해자가 나타났다.
적의 습성을 생각할 때 보통 이런 피해자는 나오지 않는다. 굳이 이런 식의 상황을 만든 것은 이 쪽의 수가 적에게 드러났다는 것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건 백이면 백 적이 던진 미끼로 봐야 한다. 그렇게 판단을 내리면서도 쉽사리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지나쳤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소년의 몸이 한번 크게 경련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살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적은 태연하게 되살아난 학생을 습격해올 것이다. 제대로 된 반격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희생자가 나오면 마스터는 처벌된다. 나도 그 뒤를 따르게 되겠지.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포기가 옳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일단 이 소년을 살린다 하더라도 제 2의, 3의 습격을 막아낼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희생자는 늘어나고 처벌 또한 과중 될 것이다.
“….어쩔 수 없군.”
파문이 멈춘 붉은 웅덩이를 밟아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하다못해 임종이라도 지켜주기 위해 다가가 무릎을 꿇다가.
눈이 마주쳤다.
경악에 휩싸인 표정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뿐 만이 아니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눈동자에서 의식의 빛이 빠져 나간다. 그 빛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무의식 적으로 철제의자를 뽑았다. 서서히 꺼져가던 기세를 되살려 솟구치는 핏방울에 손을 가져간다. ‘필살기’로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이 빛에 감싸였다.

2.
정적에 휩싸였던 것이 거짓말처럼 학교는 이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단아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등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교사의 몸을 빌어 교내를 수색, 순찰한다는 계획이 머나먼 꿈처럼 느껴진다. 현 상태로는 수색은커녕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 조차 고역이다. 그저 간신히 의지를 붙들고 있을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실에서는 이쪽을 바라보며 수근 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야, 쟤 눈이 왜 저래.”
“…..그거 아냐?”
“…..학교에서까지 저렇게 티를 내야 되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알고 있더라도 섣불리 대응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여력도 없다.
왜냐하면.
순간 의식이 꺼졌다.
시야가 새까맣게 물드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책상이 눈 앞에 있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뭔가 사방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마스터가 아침 예배 때마다 불평하던 심정을 통감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려는 의식 조차도 금새 수마에 침식되어 사라진다.
졸리다.
단순히 졸음이 어떻고 하는 수준의 수면욕이 아니다. 거의 혼절에 가까운 의식의 단절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원래 인간의 수면욕이란 이 정도인가?
치명상을 억지로 눌러 막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피드백인가?
필살기의 부작용인가?
대충 떠오르는 이유만 해도 여럿에 복합적인 문제일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졸음이 사고를 방해한다. 그저 다 포기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 눈꺼풀에 스멀스멀 옮겨 타기 시작한다.
안돼. 지금 눈을 감으면 죽는다. 잠에 빠지든 원래 자아가 몸을 차지하든 간에 그 뒤로는 손쓸 도리가 없어진다.
나는 황급히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 쓰던 것이 아닌 내가 지급받은 것이다. 다급하게 마스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큰일이다. 졸려서 임무 속행 불가능.’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현 상황을 알렸다.
아침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호언하는 그녀라면, 무언가 해답을 제시해 줄 지도 모른다. 그런 얄팍한 기대감에 의지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위험한 지경이라는 것에 새삼 놀랐다.
곧이어 답장이 도착했다.
‘닥쳐, 내가 아침잠 방해하지 말랬지. 또 보내면 죽여버리겠어.’
“…..”
…..보고하라고 하지 않았나. 눈꺼풀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이성이 본능에 완전히 잠식되기 직전,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 하정현.”
명찰에 쓰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리기까지 수 초가 필요했다.
“…..뭐냐.”
간신히 대답한다. 그나마 입을 여니 조금 의식이 뚜렷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최대한의 의식을 끌어 모아 몸을 긴장 시킨다.
적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 제발 적이어야 한다.
“…..아니, 하도 안색이 안 좋아서…..괜찮으냐?”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주저하며 상태를 묻는다.
명찰에는 김태민이라고 적혀있다.
단정한 머리 스타일 하며 깔끔한 차림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반 회장의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회장을 뽑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답 없이 녀석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까. 5초인지 5분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이 녀석이 적이라면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목덜미에 그 기다란 송곳니를 박아 넣-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냥 상태를 보러 온 학생인 것 같다.
“….왜, 왜 그래? 너 눈이 완전히 새빨간데?”
뚫어져라 쳐다보자 당황한 모양이다.
“일단 양호실에 가자. 선생님께는 내가 말씀 드릴게.”
그러면서도 배려를 잊지 않는다.
이 녀석은 회장이 맞는 모양이다. 비슷한 오지랖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필요이상으로 말을 섞을 필요는 없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감사의 표시만 나타냈다.
“저리 꺼져, 혼자서도 충분하다.”
교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뭐지, 이 반응은?
태민의 안색이 시퍼래진다.
“무, 뭐라고?”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건가. 나는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최대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꺼지라고 했다, 변질자.”
교실이 얼어붙었다.
태민은 별다른 대답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분위기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
뭐지, 뭔가 잘못됐나?
마스터에게 특훈을 받았기에 내 한국어는 거의 완벽한 수준 일터. 이 분위기는 무언가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겠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국의 문화라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심정이 가슴을 채운다. 애초에 계획 자체가 즉흥적이라 성공 가능성도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의식도 한없이 멀어지려고만 한다.
진지하게 sos메시지를 보낼까 고민하는 찰나, 적막한 교실의 침묵을 깨고 뒷문이 열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여학생이 불쑥 나타났다. 이 반에 자리잡고 졸음과 싸우면서 누군가에게 시선을 빼앗긴 것은 처음이었다.
또박 또박하며 활기찬 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경쾌한 걸음 걸이 마다 기다란 머리칼이 물결친다.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인상의 이목구비에도 불구하고, 창백한 살결이 가련한 인상을 주는 여학생이었다.
심장이 울렸다.
단순히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 아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마스터…..도 어느 정도는 이런 느낌을 가지게 한다. 생명이 깃든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포식자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압도당하고 만다. 그것은 생물체 본연의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고 마력일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강한 것을 바라보는 경외감은 생존 본능을 가진 것이라면 누구나가 당연하게 품게 되는 것이다.
교실에는 조금 전의 어색한 침묵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인간의 무리를 압도하는 적의 존재감만이 농밀하게 공간을 매웠다.
경쾌한 발걸음이 점차 늘어지며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나는 적이 바로 앞에 설 때까지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알아차렸나, 당연하다. 간과했다. 인간의 몸으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들 저런 것에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완전히 적의 노림수에 걸려들었다.

나는 대체 무슨 근거로, 이 소년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감겨오는 뱀처럼 나긋나긋한 손길이 목을 감싸온다. 서늘한 옷깃이 목을 스치는 감각이 따갑다. 무릎에 무게가 느껴진다 싶더니 다음 순간 붉은 눈동자가 눈 앞에 있었다.
먹힌다. 절망적인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도, 드러나지 않은 쪽 손으로 휴대전화를 잡은 것은 순전히 훈련의 성과였다.
알려야 한다. 마비되려는 의식을 채찍질하며,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13번을 누른다. 곧장 문제 발생이라는 메시지가 출력될 것이다. 이제 이것을 보내기만 하면-
다음 순간 적의 반대쪽 손이 품을 파고 들었다.
얼굴은 이미 밀착이라고 할 정도로 가깝다. 목 언저리에 작게 보이는 두 개의 구멍이 새까맣다.
손은 봉쇄당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양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가 없다. 마스터에게 알리지 않으면 위험하다. 낮인데 이 활동성. 보통이 아니다. 하다못해 내가 당한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다면 마스터는 내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 억지로라도 몸을 뒤틀어 틈을 만들려는 찰나.
통 하는 소리가 나는 가 싶더니, 멈췄던 시간이 풀렸다.
교실에 활기가 돌아온다.
시선을 들자 돌돌 만 공책을 들고 있는 김태민의 뚱한 표정이 있었다. 약간 붉은 안색으로 시선을 부자연스럽게 돌리고 있다.
“너….너희들, 하, 하하 학교에선 자, 자제하랬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상황을 모르겠다. 지금 이 녀석이…..막은 건가? 공책으로? 나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공황 상태에 빠진 나에게도 아랑곳 없이 적이 입을 열었다.
“아이참. 오늘은 같이 학교 가는 날이었는데.”
간드러진 목소리였다.
“전화는 안받아서 걱정 되지, 쓸쓸한 맘을 달래며 학교 왔더니 뻔뻔하게 앉아있잖아?”
“…..그래서?”
태민이 조용히 되물었다.
“못했던 모닝키스를 해야지!”
갑작스레 적이 내 뺨을 핥았다.
이 한방에.
키, 키키키 키스라며?!
라고 따질 의식이 소멸했다. 졸음인지 기절인지, 혹은 죽음인지 제대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의식의 단절 속에서 평생 최고의 속도로 메시지를 이어서 타이핑했다.
‘문제 발생, 적은 강령자와 매우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보임. 아니 사실 잘 모르겠음. 적이 맞는데 적이 맞는지도 모르겠음. 한숨 잘 테니 어떻게든 해두도록.’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마지막 문장을 치는 순간 평생 느낀 적 없었던 해방감과 통쾌함이 느껴졌다.
이것이 책임 회피인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왠지 모를 만족을 느꼈다.
의식이 끊겼기에 뒷문이 폭발하듯이 날아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2-1
1교시가 끝나고 박살 나듯이 한 뒷문을 어떻게든 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엄명이 있었다. 전학생은 하필이면 나를 지목했다.
“에…에에. 뭐 안될 거야 없지만.”
조심스럽게 수현이의 눈치를 살핀다. 자신의 자리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어 어떤 표정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같이 등교하지 못해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약속을 까먹었지? 수요일에 데리러 가는 건…..언제부터였지. 여하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이거 때문에 차이면 어떡하지? 물론 그래도 싸다. 대체 어떤 변명을 하리요. 애초에 나에게는 과분한…..
“아, 빨리 가자고.”
전학생이 짜증을 냈다.
내가 머슴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에 조금 울컥했다.
전학 온 애는…..이름이 뭐였더라. 여하튼 여자애다. 작은 몸집임에 어딘지 모르게 활발한 것이 애들 느낌이 난다. 앞장 서서 걷는 모습이…..귀엽다면 귀여운 인상이다.
“너 지금 무슨 생각 했어?”
동그란 눈동자가 날카로워지며 이쪽을 바라본다.
어린애 특유의 감인가?
그렇지만 기묘한 박력이 있다. 가슴께에 밖에 오지 않는 신장으로도 당당하게 나를 마주 본다. 그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수현이를 떠올리게 해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물론 둘은 전혀 인상이 다르다. 수현이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미인 이미지라면 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뭔가 인형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어, 어?”
“너 지금 키 작다고 생각했지?”
“…..아니.”
미묘하게 날카롭다.
“그래, 그 녀석도 처음엔 그랬어.”
“그 녀석?”
뭔가 대화가 어긋나고 있다.
“닥쳐, 따라오도록.”
“…..”
이게 말로만 듣던 안하무인인가. 그렇지만 왠지 거절하기도 두려워져 녀석을 따라 나섰다. 걸쳐져 있기만 한 문을 지나 전학생은 성큼성큼 복도의 인파를 뚫고 나아간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서늘한 복도에도 전학생은 거리낌없이 쭉쭉 걸어간다. 덜덜 떨리는 이빨을 악물고 간신히 따라 잡았다. 어디 가는 걸까. 문을 어떻게 하려면 우선 경비실 같은 곳이라도 가야 할 텐데. 전학생이 위치를 알 리가 없을 텐데.
복도 끝 층계에 다다른 전학생은 내려가는 계단 말고 올라가는 계단에 섰다. 꼭대기 층이기에 위는 옥상이고, 옥상은 현재 개방되어 있지 않다. 철창에 기대 이쪽을 내려다 보며 선 모습이 묘하게 어울린다.
복도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층계는 조용하다.
창문에서 내리쬐는 빛을 받아 검은 머리칼이 밝은 갈색으로 빛난다. 인형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스라한 빛 속에서 전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에, 에헴. 잘 들어.”
“…..어.”
문을 어떻게 고칠지 설명할 셈일까?
“지금 이 학교는 위기에 처해있어.”
“…..허어.”
동화 속 공주님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용의 위협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그러니까, 이 학교는 현재 몹시 위험한 상황이야.”
“허어.”
“학교를 구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너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어.”
안돼,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자, 잠자코 들어! 나라고 이런 설명 하고 싶은 줄 알아?!”
안하무인의 박치기가 작열했다.
거의 몸을 날린 박치기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볼품없이 쓰러진다.
아프다. 이 녀석 몸집은 잡은 데 이 충격은 대체 뭐지.
전학생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섰다.
약간 헝클어진 머리칼이 정갈한 인형의 모습에 조금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어쩐지 전에도, 이 모습을 봐왔던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위험한 건데.”
속는 셈치고 물어보기로 했다.
전학생은 한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학생은 입을 열려다, 다시 입을 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닫고, 다시 열고, 말했다.
“…..니 여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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