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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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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귀신이多!
글쓴이: 구월
작성일: 11-07-15 23:59 조회: 4,475 추천: 0 비추천: 0
귀신이多!

0.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거야.’

1.

그것이 시작된 것은 8월 중순. 방학도 다 끝나가던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습한 날씨였다. 나는 탈탈거리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쯔음엔, 그리고 날씨가 이렇게 찌뿌둥 할 땐 항상 그렇듯이 기분은 찝찔했다. 손에 들린 만화책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냥저냥 볼만한 러브 코미디였는데, 그림체도, 여주인공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여름밤 특유의 끈적한 공기 속에서 나는 숨죽여 책장을 넘겼다. 부모님은 안방에 계시는지 바깥은 조용했다. 야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고등학생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화책 속의 여주인공은 슬슬 샤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서비스 신이 다가옴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그때였다.
그런 평온한 순간의 일이었다.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타닥. 나는 반사적으로 만화책을 덮어 문제지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방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17년간 고도로 숙련된 대對 부모님 방어 전략이었다. 하지만 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음, 뭐지? 잘못 들었나? 혹시 TV소리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선풍기 소리 때문에 청각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발가락을 뻗어 선풍기의 전원을 꺼버렸다. 하지만 거실 쪽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 조용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만화책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다시 한 번 그 소리가 들려왔다. 착각이 아니었다.
깊고 낮은 소리였다.
나는 거의 던지듯 만화책을 책상 밑으로 숨겼지만 이번에도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사실 방문이 열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앉아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거실 쪽은 확실히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뒤편의 창문을 향해 다가섰다. 누가 술에 취해 자동차 경적이라도 울리고 있나 싶었다. 다분히 자기기만적인 생각이었다. 왜냐면 그건 결코 경적 소리일 수 없었으니까.
그 따위의 시덥잖은 소리일 리가 없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에 속한 것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커튼을 젖혔다. 커튼을 젖히는 순간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긴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자동차 경적이거나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자체가 꿈일 거라는 일말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하지만 세계는 나를 배신했다.
걷혀진 커튼 뒤에서, 결국 나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사실 눈이 마주쳤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는데, 그것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안구가 달려있어야 할 곳은 텅 빈 구멍 뿐이었다. 그 눈도 없이 창백한 얼굴은 뭔가를 외치듯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있었다. 그 입에서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으라라라랏?’ 혹은 ‘우아아아아!’ 같은 덧없는 외침을 지를 수도 없었다. 인식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현실에 몸이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욕하던 멍청한 등장인물들이 이제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내 몸이 왜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걸까.
불행하게도 사태는 점점 더 안 좋게 흘러갔다. 그 창백한 머리통의 쩍 벌어진 입에서 까맣고 축축해보이는 혓바닥이 뛰쳐나온 것이다. 그것은 진득한 타액을 질질 흘리며 똑바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통풍을 위해 창문을 열어둔 사실이 이렇게 후회 될 수가 없었다. 창문 따위가 저 초현실적인 존재를 막아줄 수 있을까 하는 사실은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몸은 여전히 굳어있어서, 나는 도망칠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불행하게도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을 온 몸으로 느껴야했다.
그 때 였다,
“…….”
퍼석 하는 소리가 났던가?
아니,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문 저편의 머리통이 두 쪽이 난 것은 틀림이 없었다. 완벽한 일도양단.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반으로 갈라져 텅 빈 내부를 보여준 머리통은 이윽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언제 맡아도 고약한 냄새야.”
기다란 채찍을 우아하게 회수해 어깨에 걸친 소녀는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다.
바깥으로 삐친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소녀였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허공에 발을 딛고 서있었다.
“흐음. 인간이 있었네. 적성이 있나 본데, 재수가 없었구나. 그냥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렴.”
소녀는 나를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볼썽사납게도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소녀에게 할 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

“자?”
신희는 허리를 숙이며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엎드린 채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난 죽었어. 시체한테 말 걸지 마.”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은 컨디션이었다. 쉬는 시간 10분이라도 제대로 수면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흐응, 시체란 말이지. 어디, 이렇게 하면 부활하려나?”
신희는 그렇게 말하며 내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남자의 몸이 여자로부터의 자극에 민감하다는 것을 백분 활용한 아주 비겁하고 치사한 전략.
가느다란 손가락이 귓불의 두툼한 부분을 부드럽게 자극하더니 서서히 귓바퀴를 따라 올라왔다. 간질이는 것도 아닌, 쓰다듬는 것도 아닌, 그 중간쯤의 미묘한 터치. 나는 그 섬세한 손길에 정신이 그만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소용없어. 귓불 정도 내주는 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러니 좀 자게 내버려 둬. 피곤해 죽을 것 같아….”
신희의 손이 멈추었다. 난 눈을 감은 채로 안도감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저 무법자가 왠일로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흐으응….”
“야.”
“하아아….”
귀 언저리를 자극하는 따뜻한 바람. 신희가 불어넣은 입김이었다. 전신이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뒷머리가 곤두섰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굴복할 순 없지.
“소용없어. 진짜로 잘 거야.”
쳇,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입김이 사라졌다.
잠시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일단은 졸려움이 더 컸다. 나는 아득히 먼 잠의 세계로 정신을 날려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으어억!”
나는 귓불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신희의 손이 잡아 끄는데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까치발을 들어서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었다.
“역시 너는 이게 제일이구나. 아무리 부드럽게 대해주면 뭘 해. 이렇게 아픔을 동반해야 정신을 차리는데. 자, 살려주세요. 라고 말해 봐.”
“아우우으아!”
난 분명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려 했다.
“응? 뭐라고?”
“사, 살려으아아!”
귀와 혀는 사실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내가 17년이 지나도록 한국어 하나 제대로 못뗀 멍청이거나.
“이쯤에서 놓아줄테니 말 잘 들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신희는 손을 놓았다.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쳐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신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긴 머리카락이 잘 어울려 ‘정통파’ 미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녀. 하지만 그 정통파라는 것은 사실 ‘정신이 통째로 파괴당한’의 줄임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내게서만) 받고 있는 그런 소녀.
신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고있던 체육복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저 녀석은 언제나 저 차림이다.
“솔직히 털어놔 봐.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무슨 일이야?”
“그냥 졸려워서 그런거야.”
난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신희는 가소롭다는 듯이 내 이마를 툭 건드렸다.
“목소리에 불안함이 한가득인데 뭘.”
귀신이 따로 없군. 하긴, 내 숨소리만 듣고도 내 컨디션을 알아맞출 녀석이니까.
난 잠시 고개를 떨구고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퀭한 눈을 들어 신희를 쳐다보았다.
“가위 눌렸어.”
“가위?”
“그래. 가위.”
너무도 생생하고, 너무도 또렷해서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런….
“무슨 내용이었는데? 꿈 속에서 바람이라도 피다가 나한테 걸렸나?”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였다. 저 녀석은 가끔씩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바람이라는건 우리가 사귀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행위인 거 알지?”
신희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흐음, 하고 소리냈다.
“그런 난점이 있었네. 그럼 우리 사귈까?”
“날 바람피게 만들려고 사귀자는 거야?”
“응, 사귈까?”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날 바람피게 만들려고?”
“응, 사귈까?”
심장이 주책맞게 뛰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아무 생각없이 신희가 건넨 농담에 질질질질 끌려다니는 나.
신희는 내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농담은 그만두고, 도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약해빠진 녀석인 건 알았지만 가위 정도에 이렇게 퍼져있을 줄은 또 몰랐네. 많이 안 좋은 꿈이었어?”
많이 안 좋은 꿈이었냐…라.
최악이었지. 그보다 더 나쁠 순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지. 그 꿈의 가장 더러운 부분은 그게 사실 꿈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쩔까.
신희에게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것은? 그것도 없는 것이 될까?
나는 마음을 굳혔다.
진실을 알고 있는 편이 만에 하나 사태에 있어 유리하다. 우리는 언제나 한없이 약한 인간이지만, 완전히 무지한 인간과 진실의 편린이나마 알고 있는 인간은 분명 다르다.
나는 우선 그것들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소리를 들었어.”
“소리? 무슨 소리.”
이걸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나는 머릿속으로 그 소리를 떠올렸다. 그 깊고 우울한, 느리고 처절한, 그것들의 비명소리를.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아아아…아?”
순간 등골이 쭈뼛해졌다. 이 소리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어제의 기억이 아니다.
분명 지금의 현실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교실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들려오는 이 소리. 이게 왜 교실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지금 이 소리야! 드, 들려?”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신희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뭐가?”
“아아아하는 소리 말이야. 안 들려? 이렇게 큰데?”
“으흠, 그렇군. 이 귀여운 Mr.뜸부기 같으니라고. 날 놀래키려는 수작이면 소용없다는 걸 미리 말해두겠어.”
“장난하지 말고! 이 소리가 진짜 안들려?”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이렇게 선명한데?
하지만 신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패닉상태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교실 안의 그 누구도 이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교실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소리가 들리는 것은 오직 나 뿐인 것처럼. 그리고 저 머리통이 보이는 것은 오직 나 뿐인 것처럼.
“젠장.”
나는 창문 너머의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눈알 부분이 텅 비어버린 창백한 얼굴. 그것이 뭔가를 찾듯 교실 안 쪽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2년 전의 그날 처럼. 어젯밤의 그 순간처럼.
난 숨을 멈추고 기도를 시작했다. 이대로 그냥 사라져라. 날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버려라. 하지만 천천히 좌우로 얼굴을 돌리던 그것은 기어코 나를 발견했다. 착각일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저 쫙 벌어진 입의 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간 것 같다.
오한이 난다. 갑자기 교실이 한밤중처럼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머리통의 쫙 벌어진 주둥이에서 까만 혓바닥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교실의 유리창을 무시하며 스르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교실 안의 모든 구성원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을 노리고 달려드는 칠흑의 뱀.
그 새까맣고 끈적끈적한 살점은 어느새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마른침을 삼키거나 하다못해 눈이라도 깜빡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몸이 어젯밤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잘 버텨왔는데, 2년이란 시간을 피해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구나. 나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그 순간,
푸쉬식. 기적처럼 혓바닥이 사라졌다. 혓바닥 뿐 아니라 그것과 연결된 창문 저편의 머리통까지 푸르스름한 연기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가위에 눌린듯 꼼짝하지 않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유로워진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쳐다보았다.
당연하게도 갈색머리의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짚은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뭐라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는 발을 굴러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지배배 떠드는 교실 안의 학생들, 내 책상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는 신희, 그리고 망연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
나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2년 전의 악몽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

“한 밤중에 창문 저편에 나타나 혓바닥을 내뿜는 얼굴이라. 재밌는 이야기네. 네이트 판에 한 번 올려 봐. 톡 되면 싸이 투데이가 엄청나게 올라가거든.”
옥상 외벽에 앉아 다리를 까닥이며 내 얘기를 듣던 신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비꼬지 마. 농담하는 거 아니야….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그렇지. 실화라고 주장하는 편이 독자들을 더 무섭게 만들 거야.”
“아니, 난 진짜 실화야. 그것도 어젯밤에 있었던 일.”
신희에게는 어젯밤의 이야기만을 해주었다. 2년 간의 모든 이야기를 다 설명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이유도 없었으니까.
바람이 불어 신희의 머리를 흐트려놓았다. 신희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후 불어 넘겼다.
“그래 그래. 다들 자기는 진짜 실화라고 주장하지. 으음, 그러니까 차라리 너는 아예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밝힘으로서 너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면 어떨까?”
“…….”
“아, 맞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 상 중요한 부분에서는 하이라이트를 넣고 글씨를 빨간 색으로 바꿔 봐.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되거든. 가독성이 높아진다고 하던가,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하던가.”
“아니, 그러니까….”
“그리고 톡 되면 내 싸이도 홍보 좀 부탁할게. 알겠지?”
“…….”
갑자기 귀신 따위는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나 마이 페이스인 인간과도 10년을 지내왔는데, 등장하기 전에 친절하게 ‘아아아아아’ 소리까지 내주는 녀석이라면 그게 귀신인들 무슨 대수이랴.
…물론 그것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 전혀 없지만.
“주신희 양. 나 지금 심각해.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너 심각한 거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싫어.”
“……?”
신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 외벽은 좁았지만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서있을 정도의 공간은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건물은 4층 짜리지만 떨어지면 죽는건 4층이나 40층이나 똑같다.
“손.”
신희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나는 주저없이 그 손을 마주잡았다. 평소라면 좀 부끄러워하거나 튕기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겨우 손가락 몇 개를 쥐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신희의 안전이 확보되고 나서야 겨우 아래쪽을 내려다 볼 마음이 생겼다. 역시나 아찔한 높이였다.
신희는 외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그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귀신이라고.”
신희는 문득 생각난 듯이 그렇게 말했다. 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옥상의 모퉁이에 도착했다. 신희는 발을 요령있게 움직여 옥상의 코너를 돌았다.
“넌 가끔 너무 이상한 말을 해.”
“…….”
“귀신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9월 모의고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진 거야.”
“…….”
“꼭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 걱정은 태산이더라.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야. 아, 공부를 열심히 안 하니까 걱정이 태산인건가?”
신희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타난 코너 앞에 멈춰섰다.
“말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마. 이상한 거짓말이나 해대고.”
“거짓말 아니야.”
“너 미워.”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거 난처하게 되버렸군. 아무래도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해야 내 말을 믿어줄까.
단순히 신뢰도를 회복하고 싶은 것 뿐이 아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나를 알고 지내는 이상, 나와 함께 있는 이상,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상.
“믿지 않아도 좋아. 대신 이거 하나만 약속해 줘.”
“뭘?”
“항상 조심할 것.”
잠시 멈칫 거리던 신희는 눈썹 사이에 얇은 주름 두 개를 만들어냈다.
“뭘 조심해? 몸가짐을? 아,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구속하려고 들면 안되지.”
“농담이 아니야. 항상 조심해. 특히 혼자 있을 때는 더더욱.”
신희는 발끝으로 땅을 톡톡 건드렸다.
“겁주려는 거면 별로 소용없다는 걸 미리 말해두겠어.”
“겁주려는 것도 아니야. 좀 믿어라. 그리고… 니가 기독교였던가?”
“천주교.”
“그럼 묵주같은 거라도 들고 다녀. 집에 마리아 상은 있어?”
“그게 니 취향이야? 묵주 스타일? 와, 거 참 특이하네.”
“…….”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던 신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 내가 장단 한 번 맞춰준다. 그런데 이 체육복에 묵주 같은게 어울릴까 모르겠네. 뭐, 어색한 부분은 미모로 커버하면 되겠지만.”
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신희는 여전히 이걸 장난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지난 2년간 얘기할 시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내 안일함이 문제였을 뿐. 코 앞에 닥친 일을 당장 납득하라고 들이미는 건 어쩌면 폭력에 가까울지도 모르지.
아무튼 묵주를 들고다녀 준다는 얘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물론 묵주 정도로 목숨을 담보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그 날 내 목숨을 구해준 것은 2천원 짜리 십자가 목걸이에 불과했다. 지금도 내 목에 걸려있는 이 목걸이 말이다. 그 저주받은 날에도 나는 이 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그녀는… 그녀는 나를 향해….
“저게 뭐지?”
나는 신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신희는 여전히 외벽 위에 올라선 채로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먼 곳에 있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목을 내밀고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로.
그런데 그 표정이 이상했다.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공포였다.
옥상인 관계로 사방은 탁 트여있었고, 그렇게 활짝 열린 시야 저편으로 가연산이 보였다. 신희의 시선이 붙잡힌 곳은 바로 그 산이었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가연산은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희는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벌어진 입, 떨리는 눈빛, 자신도 모르게 내는 ‘아….’ 하는 신음성.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한 사람 특유의 모든 징후가 그녀에게 떠올라 있었다.
아차.
난 아직도 신희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이 문제였다.
지금 신희의 눈에는 내 눈에 비치는 것과 같은 세상이 보일 것이다.
잊고 있었다. 2년간의 평화에 젖어 잊고 있었다. 나와 신체의 일부를 접촉하고 있으면 그 순간 만큼은 나와 똑같은 체질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는 고개를 돌려 가연산 위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머리’들이 떠올라있었다.
머리들은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동시에 입을 벌렸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뻔했다.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ㅇㅏ

나는 손을 들어 귀를 막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그 대신 난간 뒤로 쓰러지려고 하는 신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신희는 맥없이 내 품으로 떨어졌다. 이미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나 또한 기절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지난 2년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겨우 버텨온 인생이다. 여기서 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거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다시 이 세계에 붙들어 놓던 한 줄의 말.
난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신희를 등에 업었다.
“보이지 않는 건 없는거야. 이 좆같은 귀신들아.”
기회는 단 한번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공포를 읽을 수 있다. 내가 도망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저 개미떼 같은 것들은 전부 나를 향해 달려들 것이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신희를 업은 손을 고쳐잡았다. 옥상 입구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마지막으로 머리통들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세계가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거야.’
난 옥상의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선명할 정도로 놈들의 적의가 느껴졌다. 오금이 저리는 느낌. 발이 얼어붙는 느낌. 허벅지 안쪽이 아릿하게 수축되는 느낌.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평소에 눈을 감고 움직이는 연습을 많이 해둔 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누굴 업고 뛰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등줄기를 따라 절로 땀이 흘렀다.
하지만 난 결국 넘어지지 않고 옥상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대가리들이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이쯤이면 됐겠지 싶어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신희의 무게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계속 차오르는 숨이 너무나 거슬렸다. ‘그것’들은 사람의 숨소리를 좋아하니까. 허파가 터져라 헉헉거리고 있는 나는 아마 그것들에게 있어 최고의 먹잇감이 아닐까.
나는 한 번에 몇 개 씩이나 되는 계단을 뛰어내리며 대책을 강구했다. 어디보자, 집에 가는 길목에 교회가 하나 있었지. 교회는 제법 유용한 피난처이다. 나는 그곳을 1차 목적지로 삼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까지 계속 뛸 수 있을까?
신희는 점점 너무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변하고 있었다. 기절해서 늘어진 사람을 짊어지고 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겁한 내 본성이 내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녀를 버려.’
심지어 난 신희의 엉덩이 밑에서 깍지끼고 있던 손을 거의 풀 뻔했다. 난 그런 인간이다.
“퉤.”
난 복도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어깨를 움직여 얼굴의 땀을 훔쳐냈다.
“그녀는 보여. 보이는 건 있는 거야.”
내 지난 2년에서 신희를 빼놓으면 뭐가 남을까. 앞으로도 똑같다. 난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그것’들에게 이미 인식당한 상태다. 양호실에 눕히거나 다른 녀석에게 맡기는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고민이 너무 길었군. 난 다시 한 번 이를 악물며 복도를 따라 내달렸다.
복도는 길고 어두웠다. 아직 오후 1시도 되지 않았을텐데, 너무나 어두웠다. 이것도 다 저 머리통들이 만들어내는 지옥화(化)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 어두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겠지.
복도를 달리다가 마주치는 녀석들은 죄다 내 흉흉한 얼굴에 놀라 몸을 피했다. 감히 무슨 일이냐고 묻는 녀석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제법 편하게 1층 현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저 현관을 나서면 활짝 트인 개활지, 그러니까 운동장으로로 나가게 된다.
나는 입술을 핥으며 어깨로 현관의 유리문을 밀었다. 등에 업힌 신희에게서 흘러나온 땀과 내 몸 자체에서 나온 땀으로 나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계속된 달리기로 숨 또한 가빠져 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정말로 이 숨소리를 좋아한다.
인간의 체취, 인간의 숨소리, 그리고 내가 가진 적성.
완벽한 표적이로군. 그런 인간이 저렇게 노출된 운동장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망설임에 할애할 시간을 전부 도망에 사용해도 부족하다. 하지만 난 망설였다. 도저히 저렇게 넓은 공간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나는 건물 현관에서 학교 정문까지의 거리, 그러니까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그 도주로의 거리를 가늠했다. 방향만 잘 잡으면 눈을 감고도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장애물도 없고 바닥도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으니까.
“후욱.”
난 마지막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때였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였다. 그녀가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착각할 이유는 없었다. 세상 속에서 표표히 빛나는 저 이질적인 존재감, 손에 들린 검은 채찍,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갈색 단발머리.
나는 그 태평한 모습에 묘한 안도감과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2년만의 재회였다.
“너!”
그녀는 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분명 인간이 자신을 부를 거란 자각도 못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난 좀 과감해지기로 했다.
“관리자!”
그 단어면 충분했다.
“……?”
내 예상대로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숨을 씩씩 몰아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는… 어제 그….”
“시끄럽고. 너 말야, 관리자면 관리자답게 굴어. 너 때문에 일반인 한 명이 죽을 뻔 했어.”
난 일반인이란 단어에 강세를 두며 신희를 고쳐 업었다. 갈색머리의 관리자는 주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 주제에 관리자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난감한 질문이었다.
“저 새끼들한테 물어보던가.”
난 눈짓으로 현관 안 쪽을 가리켰다. 내가 달려온 길을 따라 수백 마리의 머리통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관리자는 입술을 깨물고는 들고 있던 채찍을 허공에 내리쳤다.
“흥…. 잡귀들인가.”
여전히 거만한 태도였다. 힘이 있는 것들은 항상 저 모양이다.
난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코 앞에 관리자와 귀신들을 두고 눈을 감으려니 좀 선뜻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이 싸움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저 갈색머리라면.
10초가 지났을까.
나는 눈을 떴다.
내 예상은 정확했다. 갈색머리는 마지막 남은 머리통을 깔끔한 솜씨로 양분하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푸르스름한 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지옥화(化)가 소멸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적성이 높은 누군가는 관리자들처럼 저기서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내 적성은 조금 다른 쪽으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의 관리자는 채찍을 갈무리하고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녀의 눈의 신희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일반인은?”
꼴에 관리자는 관리자라 이건가.
“안 죽었어. 그런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나랑 접촉한 상태에서 저 새끼들을 봐버렸거든.”
갈색 머리는 내 어깨 위에 축 늘어진 신희의 이마를 만졌다.
“근처에 쉴 곳이 있나.”
“우리 집.”
“그곳으로 가지. 게이트를 열건데, 도착점은 네가 설정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정도야 2년 전에는 내 손으로도 열던 물건이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구차한 생을 이어가고 있지만….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옆으로 물러서는 관리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게이트 앞에 섰다. 그리고 단숨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고 나는 내 방 안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익숙하지만 낯선 감각이었다. 2년의 공백은 내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난 일단 신희를 내 침대 위에 눕혔다. 신희는 여전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을 정리해주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으니 안심하여라. 충격을 받았을 뿐이니.”
뒤를 돌아보니 관리자가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내가 설정한 도착점을 정확하게 따라왔군. 확실히 관리자다운 능숙함이었다.
“옷을 좀 갈아입히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어?”
관리자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너희는 암수 구분이 있는 생물들이었지. 그것도 엄격하게. 좋아, 도와주겠다. 새 옷을 다오.”
나는 침대 밑의 서랍을 열고 적당한 티셔츠와 츄리닝 한 벌을 관리자에게 건냈다.
“난 뒤돌아 있을테니까, 좀 부탁할게.”
관리자는 내게서 옷을 받아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섰다. 뒤 쪽에서 관리자가 신희의 옷을 벗기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말야. 인간. 궁금한게 있는데.”
“뭔데.”
“관리자에 대한 것은 어떻게 알았지?”
“궁금해?”
“으음, 적성이 있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지만. 관리자에 대한 건 도대체 어떻게?”
“여길 봐.”
한창 신희의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고 있던 관리자는 내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발견하고는 경악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홉떴다. 하지만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내 행동이 더 빨랐기 때문인데, 난 십자가 목걸이를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가져다 댄 것이다.
관리자는 그대로 신희 위에 축 늘어져버렸다. 나는 십자가 목걸이를 다시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관리자치곤 멍청하군.”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2년 전과는 다르다. 2년 전처럼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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