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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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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새하얀 꽃과 고달픈 백수님!
글쓴이: 시레이아
작성일: 11-07-15 23:59 조회: 6,432 추천: 0 비추천: 0
Prologue - 새하얀 꽃과 행복한 휴일 -



“멈춰요!!! 멈춰!!! 좀 멈춰 보라니까요?!!! 우리말 못 알아들어요?!! Hey! stop please!!”

화창한 일요일 오전의 낙엽지는 언덕.
푸르른 하늘 아래 긴 생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이른바 포니테일이라는 이름의 헤어스타일을 한 소녀가 바람에게 정신없이 머릿결을 내맡기면서도 확실하게 내 뒤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난 외국인도 귀머거리도 아닐뿐더러 못 알아들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훈민정음의 은혜를 입은 부모님께서 내가 [아빠!! 엄마!!]라는 옹알이를 할 수 있는 시기까지 완벽한 세뇌교육을 시켜주신 덕분에, 난 자연스레 국어를 남발 할 수 있게 된 대한민국 국적의 순수 100퍼센트 오리지널 대한의 남아이다.
자, 그렇다면. 난 어째서 이 소녀의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답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우선 ‘나’라고 하는 녀석은 자전거를 운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현재 가파른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리고 있다. 즉, 신 내린 드라이빙을 하기 위해선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거 살짝 무리한 주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게 내 입이라는 녀석은 통칭 구름과자라고 불리는 하얀색 종이스틱을 물고 니코틴을 섭취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세요!!! 나 진짜 무섭거든요?! 고소공포증 생길 것 같거든요?! 혼자서 안전벨트 없는 제트코스터 타고 있는 기분이거든요?!!”
소녀의 불만은 줄줄이 사탕처럼 끝없이 길어지고 언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이 행동으로 추측하건데, 한 번만 더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면 분명 소녀의 이성은 산뜻하게 반 정도 날아가 타이어 없는 자동차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사춘기를 맞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래봬도 난 사회인이라는 신분을 가진 자. 이 어린 소녀에게 강제적으로 그런 가혹하고도 몹쓸 짓을 할 글러먹은 놈은 아니란 것이다!
아직 상당히 남아 있는 니코틴과의 작별을 하자니 마음 한 구석에서 검은 무언가가 역류하는 듯 했지만, 소녀를 위해 미련 따윈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종이스틱을 내뱉었다.
“에엑!!?”
소녀는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뭐에요!? 지금 ‘담배’ 피고 있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예요!? 와, 뭐 이런...!”
“진정해, 그리고 미성년자는 담배라는 단어를 함부로 꺼내면 아니 된단다. 분명 불량해 질 계기가 될 거야.”
“그런 자질구레한 이유로 사람이 불량해지면 전 세계는 날라리들로 들끓고 있을 걸요? 됐으니까 좀 멈춰 보래도요?!!!”
“무리야.”
“네?! 왜요!!!?”
간절한 부탁을 깔끔하게 거절당한 소녀는 더욱이 안절부절 하지 못 하고서 반박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무렵, 어느 덧 내리막길의 끝을 알리는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삼거리의 정면은 돌담으로 막혀있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가는 길은 각각 직각으로 곧게 뻗어져있다. 그 말은 즉, 지금 멈추지 아니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던 간에 정면의 벽에 의해 다칠 확률이 90퍼센트를 웃돌게 된다는 것이겠지....
‘모르는 것이 약이다.’ 우리나라 속담 중엔 이런 말이 있다. 확실히 옳은 말이긴 하지만서도지금의 소녀에겐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몸이든 마음이든 굳게 먹을 수 있을 테니....!
“잘 생각해봐, 네 말에 대꾸하지 않은 건 둘째 치고서 이렇게나 겁에 질린 여자아이가 부탁을 하는데도 멈추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니코틴이야 나중에 섭취해도 늦지 않고, 손과 다리는 보는바와 같이 제대로 운전을 하고 있다구. 요컨대....”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됐으니까 좀!”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
순간 소녀의 시간이 멈춰서 버린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언성은 하늘조차 갈라버릴 기세였는데,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단 한순간에 잠잠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의 정지된 시간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전거 바퀴는 계속해서 굴러가고 단단해 보이는 벽은 보란 듯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지 않은가.
“정신차렷! 저런 움직이지도 못하는 벽 하나 극복하지 못해서야 앞으로 있을 수많은 인생의 벽은 어떻게 넘길 거야? 자 부숴버릴 기세로 맘 단단히 먹어!”
“다 틀렸어.... 벽에 부딪칠 거야.... 온몸이 산산조각 나고 말거야....”
“걱정 마!!”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소녀를 향해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공허해진 소녀의 눈동자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뀌어 나를 응시한다.
“저번 달에 보험 들었으니 치료비는 걱정 안 해도 되!”
“이, 바보 ‘아빠’야!!!!!!!!!”

『쾅!!!!』
굉음과 함께 벽에 충돌한 자전거는 공중에 붕 떠오른 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낱낱이 분해되었지만 다행히 우리들은 무사했다. 자전거가 벽에 충돌하기 불과 몇 초전. 난 소녀를 업고 신속히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류인력의 법칙이 작용하여 그 가파른 내리막길을 뛰어다니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멈추는 등줄기가 서늘해질 만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 두 다리는 어떻게든 멈추어 준 것 같다.
“어때?! 놀이공원에는 데려가주지 못 했지만, 이런 위험천만한 드라이브도 이거 나름대로 롤러코스터 같아서 재밌지 않았어? 물론 이런 상황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무...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등 뒤에 업힌 소녀는 정말이지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는 듯. 가느다란 목소리와 함께 그 가녀린 몸이 파르르 하며 자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소녀의 그 모습을 본 순간,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안타까운 감정이 가슴을 죄이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노력해봤지만 결과는 고작, 요 모양 요 꼴이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이런 고물 자전거가 아닌 진짜 롤러코스터를 태어주어 저 어여쁜 얼굴에 그늘지게 할 일 없이 환한 웃음꽃을 피어주었을 텐데.... 애초에 나이만 먹을 대로 먹은 한심한 백수 따위가 여자아이를 웃게 만들 힘 같은 걸 가지고 있을 리 없지 않았던가? 뒤늦게나마 깨달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해보이겠다고 휴일까지 반납하고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재롱잔치를 한 것이었을까....?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좀 뭐하다만.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나란 녀석은....’

자신이 한심한 녀석이라는 것을 신체도 알았던 것일까? 신기하게도 나의 목은 뇌에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음에도 부끄럽다는 듯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하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무서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구나....”
“...그래요! 반성 하셔야 되요 아빠는!!”
온갖 불평과 함께 있는 대로 미움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녀는 그 한 마디를 내뱉고선 내 목을 두르고 있던 팔을 조심스레, 그러나 강하게 끌어당기었다.
“?”
고개를 돌리자 소녀는 밝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거짓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너무나 순수하고도 진실 된 웃음이었다.
“무서웠지만.... 그래도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엔 놀이동산에도 꼭 같이 가요!”
“...아아, 물론이지.”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 조그마한 유대감을 쌓는 딸과 아빠가 있다.
비록 핏줄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는 분명 평범한 가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남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이 녀석을 이해하고 이 녀석이 나를 이해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든든하고 충분히 행복하니까....


- 새하얀 꽃과 행복한 휴일 End -


제1일째 - 일상과 세상은 언제나 언밸런스!


특별한 것 하나 없고 언제나 평화로운 마을의 한 번화가.
그 내부에 위치한 공원에서 벤치의 않은 채 묵묵히 밤하늘을 보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공원은 번화가 내부에 있었기에 그만큼 규모가 커다랬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인적이 없었다. 인적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밤하늘과 공원의 벤치, 어딘지 모르는 상가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느낌의 들어본 적 없는 클래식 뿐.... 그야말로 전시회장이 따로 없었다.
아직까지는 춥다기보다 선선함이 감도는 초가을의 날씨였지만 청년은 그 드넓은 공원 한구석에서 온기는 물론, 자그마한 불빛조차도 없이 그저 홀로이 있었던 탓에 겉으로는 멀쩡했으나 마음만큼은 한겨울에 꽁꽁 언 호수처럼 횅하고도 시렸다.
“...신기하네, 공원주제에 가로등 불빛조차 없다는 게.”
안타까운 여운만이 감도는 이 고요한 정적을 깨고 싶었던 것인지.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청년은 누구도 듣지 않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고 있던 시선을 조용히 아래로 내리더니 자신이 입고 있는 와이셔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었다.

칫, 칫, 취이잇...
청년이 라이터에 불을 지피우고 그곳에 담배 끝을 가져다대자 어둡고 쓸쓸했던 공원이 잠시나마 따사로운 온기로 메워진다.
“스읍.”
청년은 담배연기를 한 모금 들이키며 다시금 밤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하늘엔 은은한 빛을 내는 별들이 미소하게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달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방구석 폐인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 녀석들과 같은 폐쇄 공간에서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들이켰던 연기를 도로 내뿜는 행위와 함께 이번에는 바지주머니를 뒤적이었다. 그러자 주머니에선 유행에 뒤떨어지다 못해, 너무나도 평범한 디자인의 색 바랜 주황색 휴대폰이 등장했다.
그가 액정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새하얀 LED불빛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한지후씨 휴대폰 맞으시죠? 당구장 야간 아르바이트생 입니다. 사장님께서 이미 말씀 드렸겠지만,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서 일을 못 나가게 되었네요... 오늘 쉬시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저 때문에 일 하시게 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사례는 꼭 할 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드러나졌다.
청년의 이름은 한지후인 듯하다.
“뭐래니, 얘는? 죄송한 줄 알면 지금이라도 나오시던가.... 난 주간담당이라 야간일은 익숙하지 않단 말이야!!!”
어이가 없다는 듯 지후는 난폭하게 휴대폰을 내팽개치고선 또 다시 담배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하아, 그 놈의 돈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지후라는 청년은 24세의 학교도 직장도 다니지 않는 별 볼일 없는 백수였다.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었던 지후의 부모님은 그가 군대에서 전역하기 바로 이틀 전, 싸움으로 인해 생겨버린 급격한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갑작스레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선 지후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술에 절을 대로 절은 아버지와 어느 한 군대 성한 곳 없는 난장판이 된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부자연스러운 집. 언제나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 묵직하고도 갑갑한 그 집의 분위기를 못 이겨 결국엔 집을 나와 혼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그다지 좋은 형편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묵고 있는 자취방의 집세를 아버지에게 대신 내주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이혼하신 어머니께서 내주실 일은 더더욱 없었다.
요컨대 자신이 일을 하여 집세를 내야하는 상황이지만.... 아무런 능력도 학력도 일에 대한 경험조차도 없는 백수인 지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아르바이트 정도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조차도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직장이 아닌 불안정한 아르바이트이다 보니 일하는 시간대가 변경 될 수도 있고 오늘처럼 쉬는 날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뼈가 빠지도록 일해도 얻는 급여는 언제나 쥐꼬리만 했고 그 쥐꼬리마한 급여는 받는 족족 전화세와 집세로 인해 전부 공중분해 되어 버리는데 과연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묶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휴일마저도 일을 해야 한다는데?!!!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고추냉이를 한 움큼 집어 들어다가 당구장 사장 면상에 냅다 스트라이크 시키고픈 기분이었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여기서 해고당하면 그때는 정말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춥다, 가슴 안쪽이 얼어붙은 것 마냥 춥다....”
짠했다.... 지후의 그 한마디는 듣는 이들에겐 눈물이 핑 돌아날 정도로 짠한 말이었다.
그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잿빛의 담배연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와 선선한 초가을의 밤의 하늘을 뒤엎으려다 유유히 사라진다. 그 보잘 것 없는 광경은 어째서인지 친근한 감이 들었다. 아마도 이 횅한 공간을 조금이나마 메웠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다시금 시선을 내려 아까 전 아무렇게나 내 팽개친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띄우고서 대기화면의 출력된 시간을 보았다.
현재 시각은 00시 40분. 아르바이트 시작 시간까진 아직 20분이나 남았다. 카페나 오락실에서 시간 때울 여비도 없는 터라 지후는 별 수 없이 이곳에서 그냥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얼마만큼이나 멍하니 있었던 것일까?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계절처럼. 깊어져 가는 새벽의 잔잔히 들려오던 클래식 소리조차도 이젠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공허한 지금의 이 기분을 누군가에게 포효하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지후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버리고서 새로 한 개를 꺼내어 다시금 불을 붙인다.
연이어 피우는 담배란 상당히 목을 따끔따끔하게 만들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런 폐쇄 공간에서 뭐라도 좀 움직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굳어져 결국엔 폐인이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잿빛의 연기가 또 다시 구물구물 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다 유유히 사라진다. 자연스레 시선은 그 연기를 ㅤㅉㅗㅈ았다. 시선에서 사라진 연기대신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눈에 비추어졌다. 아까 전과는 달리 적소하게 있던 별들도 어디론가 모습을 감춰 버렸고 어느 틈엔가 구름도 꽤나 많이 끼어있었다.
“비가 내리려나? 허, 참내. 기분 한번 상큼하네.”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담배연기를 폐 속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가 시선을 내리깔자 나른한 머리와 함께 멍해져 버린 눈의 초점이 짝을 이루어 반사적으로 정면을 향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맞은편 벤치. 어둡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앉아있는 동안에 암시가 적응된 것인지 지후는 그 물체가 벤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하지만 뭔가가 조금 이상했다. 평범한 벤치라고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집중하여 다시 한 번 그곳을 응시하자 그것은 점차 또렷해지어, 그 벤치위에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올려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레기더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쓰레기라고 하기에는 그것의 부피가 상당했고 무엇보다도 어느 바보천치가 저런 커다란 쓰레기를 짊어지고서 번화가 한복판에다가 무단투기 할 생각을 하겠는가?

[꼼지락. 꼼지락.]

그때였다. 일순간이라지만 검은 물체가 움직였다!!
바람이 불어 온 것도 아닐뿐더러 비닐봉지 특유에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었다.
확실하다. 저것은 결코 쓰레기 따위가 아니다!

‘....그렇담, 설마 노숙자 인가?’
지후는 모든 것을 토대로 추측해봤지만 추측은 단지 추측일 뿐. 실질적으론 가까이서 본 것이 아니기에 알 턱이 없었다. 궁금증이 머릿속을 뒤죽박죽 휘저어 놓자, 급기야 지후의 머리위엔 ‘물음표’라는 문구가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보통사람이 극한까지 다다른 호기심을 풀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바로, 직접 확인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무턱대고 다가가 확인하기도 애매한 노릇이고, 계속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뾰족한 수가 없을 땐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퉤엣.”
지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물고 있던 담배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그 꽁초를 짓밟아 눌렀다.
이 행위를 하는 데엔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호기심을 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후가 가진 몽골 초원보다도 드넓은 호기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게 될 테니까....

만약, 아무런 계획도 없이 평범하게 다가가서 확인을 해본다고 치자. 그런데 벤치에 있었던 것은 정말로 노숙자였고, 재수 없게도 눈을 마주친 그 노숙자가 돈 좀 달라고 징징거리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노숙자의 시점에선 ‘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있으니 다가온 것이겠지?’라는 생각과, 눈까지 마주친다면. 노숙자는 구걸의 신에게서 멋대로 돈을 받게 될 것이라는 시궁창 같은 희망을 얻게 되어 거머리처럼 들러붙고는 우리에게 돈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악의도 없는 상대를 뿌리치고서 과연 자신의 돈을 사수 할 수 있겠는가?
굳이 말하자면 당연히 할 수 있다. 다만, 돈을 안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순간부터 욕이란 욕은 모조리 듣게 되겠지만....
요컨대, 평범한 사람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 하는 것처럼 요상한 사람에게 빌빌거리며 돈 좀 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그리 흔할 리는 없을 테니까!

터벅터벅.
없어 보이는 낡은 청바지에 평범한 하늘색 와이셔츠, 이목구비는 뚜렷하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 그야말로 청년 실업자의 표본적인 모습임에도 지후의 걸음만큼은 k-1에서 우승한 챔피언과 맞먹을 정도로 매우 위풍당당 했다.
정면을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정체불명의 물체의 선이 또렷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분명....

『!?』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추어 졌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온대간대 없어지고, 지후는 딱딱한 밀랍인형마냥 굳어져 버렸다.
검은 물체의 정체는 어림짐작 했던 대로 역시나 노숙자였다. 다만 그 노숙자는 감히 예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인물이었지만 말이다.

“여, 여자아이?!!”
너무나도 뜻 밖에 상황을 맞이한 나머지 머릿속이 새하얘진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와 동시에 꼼지락 거리며 몸을 뒤집어 대던 노숙자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 버린 듯 했다.
“우웅... 추워어...... 응?”
“......”
지후의 눈동자와 노숙자 소녀의 눈동자가 마주쳐 버렸다.
지후에게 있어서 이것은 쇼킹한 일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사람을 포기하며 진행한 행동, 질 나쁠 것 같은 노숙자가 시비걸때의 상황을 대비한 해결방안, 혹시라도 노숙자가 아닐 경우에는 쿨 하게 아르바이트 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서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엘레강스한 계획이 모두 물거품으로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머릿속으로 그렸던 노숙자라는 대상이 여자아이였다는 것과 그 여자아이는 노숙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여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획은 어긋나 버렸지만, 그래도 어색한 상황인 것만큼은 뼈저리게 알 것 같아...'

분명 사람이 한명 더 늘어났음에도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적이 흐르는 것은 왜 일까....?
지후는 이 어색함을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일단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얘야, 이 늦은 시간에 여자애가 그런 곳에서 잠들어버리면 무서운 아저씨들이 업어갈지도 모른단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조차도 변태로 거듭나는 흉흉한 세상인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퍼져있으면 어떡해? 하다못해 지하철로 들어가야지!!!”
“?”

대화는 실패했다.
소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 했다는 듯, 왼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까닥거리는 것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지후가 노린 것은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렴.’으로 이어가게끔 자연스러운 대화를 성립하는 거였으나, 도리어 위기를 모면하려다 낯부끄러운 감정까지 플러스가 되어 돌아와 버렸다!!!
“......”
노숙자 소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 행동으로 인해 흐릿하게 보였던 윤곽선이 확실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어둠속임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져 보이는 새하얀 피부색의 아름다운 선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얼굴과 유리구슬을 박아놓은 듯 커다랗고 맑아 보이는 눈동자에 조금은 헝클어졌지만 확실하게 윤기 있는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외모만으로 추측하자면 나이는 얼추 14살에서 16살쯤 되지 않을까? 정말이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국보급 미모라고 생각한다. 다만 옥에 티라고 한다면, 얼굴을 제외하고는 노숙자답게 온몸에 종이박스를 두르고 있었다는 것 정도....?
노숙자 소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지후가, 제 정신을 차렸을 때엔 어느 덧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서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요즘 세상은 흉흉하다고까지 지껄인 주제에 어째서 내가 다가간 거냐?! 이러면 마치, 내가 여자에 굶주린 변태로 보일 것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미 지후의 시선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버린 것 마냥, 무의식 적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청년이 난데없이 다가와서는 자신의 눈동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청년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윽고 미소를 지었다.

“저기, 추워서 그러는데 신문지 좀 구해다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엥?”

....어느 누구도 오가지 않았던 고요함으로 조성된 밤의 공원.
그녀의 목소리가 우울하고도 갑갑한 이 공간을 무너트리고, 순진무구한 미소는 쓸쓸하고도 싸늘해진 나의 마음을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준다.
단한번의 대화조차도 오가지 않던 소녀가, 겨우겨우 내던진 한 마디는 고작 ‘신문지 좀 구해다 주시지 않으시겠어요?’란다....
노숙자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돈이나 먹을 것이 정석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단지, 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문지 같은 것을 부탁 할 줄이야....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당황해하는 내 모습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빙긋이 미소만을 지어보이며, 친절하면서도 무척이나 담백한 설명을 덧 붙여주었다.
“제가, 가출을 했거든요.... 무턱대고 뛰쳐나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잠은오고 그냥 자자니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이불대신 종이박스를 이용해 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따듯하지가 않더라구요.... TV에서 보면 노숙자분들이 꼭 신문지를 덮고 자던데, 그게 효과가 좋은가 싶어서 저도 한번 해보려구요~”
노숙자가 아닌 가출소녀였어? 뭐, 어느 쪽이든 간에 좋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지만....
“얘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잘 못했다고 빌어라. 분명 부모님도 이해해 주실 거야. 모두가 네 나이 때 그런 엇비슷한 경험을 하며 어른으로....”
“네...?”
소녀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하며 고개만을 살짝 기울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돌아갈 집도 부모님도 안 계신답니다. 2년 전에 모두 병으로 일찍 여의셨거든요....”
“...아, 미안.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제가 걱정되어서 해주신 말씀이잖아요? 전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환했던 미소가 뿌옇게 끼인 안개마냥 점차 흐려지자 괜스레 멋쩍어진 지후는 뒷머리를 긁적여댔다.
“하지만 이상한 걸? 거주하는 곳도 없으면서 어떻게 가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응? 어라... 듣고 보니 그러네요? 가출이라기 보단 저, 단순히 도망쳐 나온 것 같아요.”
“도망쳐 나온 것 같다니.... 그러니까 너, 집 없다면서?!”
“...집은 있어요. 다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뿐이죠.”
소녀는 멍해지는가 싶더니 전신에 두르고 있던 박스를 하나씩 떼어 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벗겨지지 않던 것인지 안절부절 못 하고 있기에 별수 없이 그것을 거들어 주었다.
이윽고 모든 상자를 제거하게 된 그녀는 자유로워진 팔을 이용해 스커트를 훌훌 털어내고,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애써 웃어본다.
참으로 쓸쓸한 미소였다. 아까 전 보여주었던 미소가 마치 거짓말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그 힘없는 미소를 마지막으로 한 동안, 어떠한 대화조차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토독. 토독.

자그마한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것은 점차 거세어지더니 사정없이 대지를 두들겼다.
선선했던 초가을의 저녁의 공기가 급격하게 차디차지고, 빗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마냥 쉬지 않고 지면위에서 연주를 한다.

그 차가운 빗속에서 두 사람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네요....”
두 사람 중, 소녀 쪽에서 먼저 짧은 감상을 말했다.
“그러게, 신문지는 필요 없을 것 같군.”
비에 젖어 앞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은 지후가 대꾸하듯이 답하였다.
그는 한손으로 달라붙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하아....”
어째서인지 지후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 숨을 내쉬더니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라라라~ 따단~! 따라~! 다. 단!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한. 묵직하면서도 애절한 멜로디가 나오는가 싶더니, 그것은 곧장 멈추었고. 대신,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지후니?!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네 녀석 때문에 퇴근을 못하고 있잖아!!!”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 오늘 일, 못 나갑니다.”
“뭐, 뭐라구!?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 제 멋대로 안 나온다고 말하면 다인 줄 알아? 하다못해 무슨 이유라도 대고서 그런 말을 해야지! 하여튼 너, 지금 당장 안 나오면 모가지 인 줄 알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로 일 그만두겠습니다.”
“......엇!? 자, 잠깐! 지후야!!! 그럴 땐 잘 못 했다고 빌고서 당장에라도 뛰어와야 하는 것이 정상이잖아!? 너 모가지래도?!! 24살씩이나 먹고서 또 다시 백수가 되는 거라구!!”
사장이라는 작자는 왠지 모르게 필사적이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그,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잘 알아들었으면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해! 오늘만 특별히 용서해 주는 거야!!!”
“...2주일간 일한 급여, 통장으로 넣어주세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켁?! 야! 지후야, 잠까...”
산뜻하게 자기 할 말만을 내뱉고서 휴대폰 전원을 OFF시킨 지후.
한편,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당최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소녀는 다시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지후는 씁쓸히 웃어 보이며 그녀에게 오른손을 건네주었다.

“한지후라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자고갈래?”

그의 한마디로 인해, 소녀는 그제 서야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건넨 손을 쉽사리 잡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 또한 마찬가지겠지. 자칫 잘 못해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은 가출소녀이기에 경찰에게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소녀는... 처음에 보여주었던 순진무구하고도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움켜쥐었다.

"[백지아]라고 해요. 지후씨!"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고 하염없이 쏟아진다.
차가운 빗줄기가 끊임없이 머리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춥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주 잡은 두 손의 온기가 만발하는 꽃처럼 따스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처음 보는 이의 손을 부여잡은 새하얀 소녀와 신원조차 확인 할 수 없는 그녀를 위해 일까지 내팽개친 바보 같은 청년.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들의 언밸런스한 인연은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일상에서부터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 일상과 세상은 언제나 언밸런스!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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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설쓰는 백수 시레이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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