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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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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연하는 어떻습니까?
글쓴이: 나제온
작성일: 12-07-30 17:52 조회: 2,384 추천: 0 비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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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러브레터라는 걸 받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글씨체, 하얀 편지지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수 냄새, 그리고 수줍고도 격식 있는 말투. 처음엔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뺨을 꼬집어봤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는 나에게 이런 걸 보낸 여자애가 어떤 여자애일지 상상하며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다.

마침 날씨도 최고였다.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며 햇빛이 밝게 내리쬐는, 말 그대로의 봄 날씨. 고백을 하기에도, 고백을 받기에도 이 이상의 환경은 없다. 누군가 나에게 장난치고 있는 게 아니길 빌며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약속장소인 학교 근처의 공원으로 달려간 나는 마침내 나에게 편지를 보낸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비단같은 긴 흑발에 보석같은 눈동자. 고양이같은 눈매에 하얗고 부드러워보이는 볼. 판에 박힌 표현이라 죄송하지만, 틀림없이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소녀였다.

하얀 티 위에 검은 가디건을 걸치고 붉은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소녀는 당당하고 곧은 자세로 서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셨군요, 오빠.”

그 목소리도 얼마나 예쁜지 마치 성우가 낸 목소리같았다.

“아, 응……. 혹시……. 그 편지, 네가 보낸 거니?”

공원에는 나와 소녀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착각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으니 소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오빠에게 러브레터를 보냈어요.”

“그랬구나.”

확인을 받은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어쩐지 너무 솔깃한 이야기다 했어. 태어나서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본 적 없는, 인기 없는 남자의 표본인 이 내가 러브레터라니 말이야.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너 초딩이지?”

“네.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소녀도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시원스럽게 대답해주니 오히려 내 기분도 후련해졌다.

“용건이 뭐냐?”

“편지에 쓰여 있지 않던가요? 아니면 직접 제 입으로 듣고 싶으신 건가요?”

“일단 그 편지는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네. 아무튼 용건을 말해라.”

내 말에 소녀는 작게 소리 내서 웃더니 몸을 숙여 나를 좀 더 높게 올려다보는 자세로 말했다.

“반했어요, 오빠. 저랑 사귀어주세요.”

쓸데없이 목소리가 요염했다.

“거절한다.”

“어째서요?”

그런 걸 물으면 곤란하다. 이 소녀에게 페도필리아나 로리타 콤플렉스에 대해 설명해주고 나는 그런 취향이 없으며 이런 취향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기 때문에 네 고백은 농담으로도 받아주지 못한다, 라고 말하기엔 눈빛이 너무나도 순수했으니까. 나같은 어른에겐 이런 소녀의 순수함을 지켜줄 의무가…….

“오빠는 페도 아닌가요?”

순수하지 않았다.

“아니야.”

왜 거기서 로리콘이 아니라 페도라는 단어가 나오는 거지……. 단어 선택에 공포마저 느껴지는군.

“오빠라면 저의 이 미성숙한 육체에 반할 줄 알았어요.”

“뭘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며칠 전에 오빠가 분명히 거리에서 ‘와아! 로리 최고─!’하고 외치는 걸 봤거든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킬만한 대사를 하는군.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적 없어. 진짜 없으니까 멋대로 날조하지 말아줘. 위험해.”

“오빠는 주위에 페도라는 것을 들키는 걸 두려워하시는군요?”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페도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말아줘.”

이 여자애는 대체 어디에서 이런 위험한 단어를 알게 된 거지. 왜 날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는 걸까. 지금 나는 초딩한테 괴롭힘당해서 울어버릴 것 같단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부서진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왜 나에게 반했다는 건데?”

이 이상 위험한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나는 먼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유가 필요한가요?”

“필요하지.”

“좋아요. 알려드릴게요.”

소녀는 즐거운 듯 웃으며 눈을 감았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저는 커다란 개가 무서워요. 정말 무서워요. 그래서 골목길에서 커다란 개랑 마주쳤을 때는 너무너무 무서워서 울 뻔 했어요. 그런데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시던 오빠가 개를 유인해주셔서 저는 그 틈에 골목길을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말을 끝마친 소녀가 눈을 떴다.

“기억나시나요?”

“어…….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

정확히 말하면 그냥 개랑 놀기 위해 부른 거지만.

“……근데, 그게 끝이야?”

“설마요. 더 있어요.”

소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다음 날의 일이에요. 저는 어떤 이유로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요. 괴롭힘이래봤자 폭력같은 건 아니고 둘러싸여 욕을 듣는 정도였지만 말이죠. 그런데 또 어디선가 나타나신 오빠가 다가오시더니 아이들을 윽박질러 쫓아내주셨어요.”

소녀는 다시 눈을 떴다.

“기억나시나요?”

“어……. 그런 일도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그날 선생한테 잔소리를 들어서 화풀이로 근처 초딩들한테 소리지른 것 뿐이지만.

“그게 끝이야?”

“네, 이게 전부에요.”

소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별 것 아닌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정말 기쁜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오빠에게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페도니 로리니 심한 소리 해서 죄송해요. 오빠를 만난 게 너무 기뻐서 장난을 쳐버렸어요. 사과드릴게요. 부디 저랑 사귀어주세요, 오빠.”

“…….”

너무 행동이 조신해서 대답하기 힘들다. 차라리 애들답게 가벼웠으면 나도 그냥 가볍게 대답해줄텐데 얘는 왜 이렇게 조숙한 거지? 나는 한숨을 쉬고서 무릎을 굽혀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지만, 역시 그건 안되겠어. 좀 더 크면 찾아오렴.”

내 대답에 소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쩔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무겁네.

“……역시 그런가요.”

소녀가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응?”

“그래도 저는…. 포기할 수 없어요.”

뭐라고 말해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뭔가 배에 닿았다 싶더니 화끈하면서도 찌릿한 그런 고통이 뒷골을 내달렸다. 아프고 뭐고의 문제를 떠나 그냥 그냥 의식이 뚝 끊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정신이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전기충격기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였다.

1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두운 방 안에 갇혀있었다. 철로 만든 문과 손바닥만한, 높이 있는 창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방 안. 그것도 그냥 방치된 것도 아니라 철제 의자에 묶인 상태로 방치되어있었다. 발목에 한 번, 양 손목을 뒤로 돌려 한 번, 배에 한 번. 총 세 번이나 묶은 이 자세는 영화의 인질극에 나오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 지금 초딩한테 납치된 거야?”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일단 말해봤다. 맙소사, 설마 초딩한테 납치당할 줄이야. 근데 초딩 주제에 뭐 이렇게 프로페셔널하게 감금해놓은 거냐. 아니, 것보다 지금 나, 입에는 아무것도 안 묶여있구나.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이봐요?”

혹시라도 창문 밖에 누군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외쳐봤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초딩 고백을 거절했더니 납치당하다니, 이런 건 농담거리도 못되는데.”

얼마나 과격한 녀석인거지.

그때, 갑자기 철문이 열리더니 나에게 고백했던 소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문 옆에 손을 가져갔다. 그곳에 스위치가 있었는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이 밝아졌다.

“일어나셨네요, 오빠.”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철문을 닫았다. 철컹, 하고 닫히는 저 문이 마치 나의 미래라도 된 것 같아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싶다.”

“네? 후후, 오빠도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정말 모르시는 건 아닐텐데. 좋아요. 설명해드릴게요.”

소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오빠는 저에게 감금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데…….”

사람을 감금했다는게 그렇게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었나? 저렇게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었다면 나도 진작에 사람 하나 감금해봤어야했는데……. 가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벌써부터 정신이 이상해졌나.

“아니, 그러니까 왜 감금된 건지 그게 궁금하거든.”

“알고 계시잖아요?”

뭘 알고 있다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어쩔 수 없네요.”

소녀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가슴을 펴고서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오빠를 조교하기로 했습니다.”

“……네?”

내가 방금 뭘 잘못 들었나.

“조교한다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당연한 걸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왜 그런 말을 하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거지? 지금까지 18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상식이 한 순간에 파괴당하는 기분이 든다.

“어…. 조교라는 건 그거지? 교수 밑에서 연구와 사무를 돕는 직위나 또는 그 직위에 있는 사람.”

“아니요, 말하자면 저에게 복종하도록 만드는 거죠.”

“알 것도 같지만 머리가 이해하길 거부하고 있어.”

알고 있지만 알고싶지 않아. 이해하고 있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아. 이해하는 순간 내 멘탈이 산산조각 나버릴 거라고 직감이 경고하고 있다.

“정말 오빠는 현실감각이 없네요.”

“사람을 감금하고 있는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여기서 진짜 현실감각이 없는 게 누군데. 이건 이미 언어폭력이다. 초등학생의 혀가 어째서 이렇게 독한 거냐. 이 녀석,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 건가? 지금 나는 초등학생한테 괴롭힘 당해서 울어버릴 것 같다고.

“알고 있어? 이건 범죄야, 범죄. 걸리면 인생 종치는 거라고.”

“아, 그거 알고 있어요. 결혼식 때 울리는 축복의 종이죠?”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보통 거절당해도 포기할 수 없으면 다음에 다시 재도전하는 거 아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내가 널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 순간 나는 로리콘이 되는 거지만 적어도 감금당하는 것보단 낫겠지.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소녀는 뺨을 붉게 물들이더니 몸을 비비 꼬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럼쟁이거든요. 차인 다음 몇 번이고 끈질기게 고백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면서 차인 다음 전기충격기로 상대방을 기절시키고 납치 감금하는 건 가능한 거냐. 뭐 이렇게 무서운 부끄럼쟁이가 다 있냐. 초등학생 때 이러다니, 커서는 대체 어떤 여자가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구나.

“걱정 마세요. 조교라고는 해도 무서운 짓은 하지 않으니까요.”

감금만 해도 충분히 무서운 짓인 걸 왜 이 애는 모르고 있는 걸까.

“단지…….”

소녀는 갑자기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오빠를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오빠…….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오빠…….”

지금까지는 그냥 웃어넘기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런 행동을 하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건 초등학생이 할 말이 아니잖아. 뭐야, 이거. 냄새 맡지 마. 목덜미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지 마. 농담 안 하고, 너 지금 진짜 무섭거든. 기절하고 싶어진다고.

“하아, 하아, 하아…….”

왜 숨이 거칠어지는 건데.

“지, 진정해. 지지지지, 진, 지지진, 진정해.”

“후후, 왜 그렇게 당황하시는 거에요? 오빠가 더 진정해야할 것 같은데요.”

내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내 이마에 이마를 맞댄 소녀는 뺨이 발갛게 물든 채 눈빛도 흐릿하게 변해있었다.

“좀 떨어져줄래?”

“겁먹었어요? 후후, 귀여워라.”

초딩 주제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지금은 그딴 건 상관없어. 울고 싶어졌다. 아니, 울거야. 울어버릴 거라고. 누가 제발 나 좀 이 무서운 초딩에게서 구해주세요.

“걱정 마세요, 오빠.”

왠지 모르게 겁에 질린 내게 소녀는 귓가에 대고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도 언젠간, 저를 좋아하게 될테니까.”

목소리가 또 쓸데없이 요염했다.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소녀는 내 뺨에 입을 맞추더니 내 위에서 내려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해대는구나.

“오빠, 배고프시죠?”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얼마나 기절해있었던 거지?

“식사를 준비했어요.”

그렇게 말한 소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응?”

손가락을 왜 튕기는 거지? 식사를 준비한 거하고 손가락에서 딱 소리나는거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설마 손가락을 튕기기만 하면 음식이 생기는 건가? 뭐야, 그게. 너는 설마 램프의 요정이라도 되는 거냐.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철문이 열리더니 밖에서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서빙 카트를 밀면서 안으로 들어오셨다. 백발섞인 회색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 오른쪽 눈에 외눈안경. 마치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집사?”

“역시 오빠세요. 눈치 채셨군요.”

“설마 너, 부잣집 아가씨였어?”

집사 할아버지가 서빙 카트를 나와 소녀 바로 앞까지 가져오자 소녀는 카트를 덮고 있던 덮개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지 비싸보이는 스테이크가 나왔다. 초딩이 준비한 식사래봤자 편의점 샌드위치나 도시락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구나.

“오빠가 상상하시는 부잣집 아가씨라는 게 커다란 저택에 살면서 집사와 메이드를 거느리는 걸 말하시는 건가요?”

소녀는 놀라고 있는 내 모습이 만족스러운 것처럼 말했다.

“으음, 아마도.”

“오타쿠들의 상식이네요. 기분 나빠요.”

“…너, 나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물론 좋아해요. 안심해주세요. 저는 오빠가 아무리 구제불능의 안여돼 오타쿠라도 사랑하니까.”

“아니, 안경도 안 쓰고 여드름도 없고 돼지도 아니거든. 은근슬쩍 사람의 외모를 왜곡하지 말아줄래?”

“오타쿠라는 건 부정하지 않으시네요.”

이 녀석, 꼬맹이 주제에 왜 이렇게 악랄한거지…….

“상관 없잖아요? 어차피 여긴 집사님과 저와 오빠밖에 없는데요. 누가 오해할 일도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왠지 아까부터 누가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니, 정말 누가 지켜보고 있긴 하구나. 저 천장 구석에 달린 감시카메라가.

“아무튼 질문에 대답해드리자면 그래요, 오빠. 제가 바로 오빠가 꿈꾸시던 만화에나 나올법한 부잣집 아가씨 로리입니다.”

“로리라는 건 굳이 안 붙여도 되는 거 아냐?”

“로리는 희소가치잖아요.”

“아니, 범죄지.”

로리가 스스로 로리라고 말하는 것도 기분이 묘해지는 광경이다. 대체 이 아이가 어디에서 이런 이상한 지식을 손에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시대는 이렇게까지 흉흉해졌나. 정말 말 그대로 말세로군.

“그것보다 식사에요, 오빠.”

소녀는 접시 옆에 놓여져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능숙하게 이용해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스테이크를 써는 거야 누구나 할 줄 아는 일이겠지만 그 단순한 동작에서도 뭔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게 부잣집 아가씨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자.”

소녀는 잘게 자른 스테이크 조각을 포크로 찍어 내게 내밀었다.

“아앙, 하세요.”

“뭘 하라고?”

“아앙, 하시라구요.”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초딩에게 떠먹여주기 같은 걸 받아야 하는 거지? 물론 손발이 묶여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서요.”

꺼림직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걸 굳이 연인끼리 하라는 법도 없잖아. 그냥 여동생이 떠먹여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럼 되는거야. 이 녀석은 내 여동생인 거다.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친 내게,

“아앙, 하세요. 여보.”

소녀는 귀신같은 추가타를 가해왔다.

“뭐…….”

이런 무서운 녀석이 있나. 기껏 남매간에 하는 장난 같은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끝냈는데 여기서 그런 이상한 호칭을 덧붙이는 건 반칙이잖아.

“아, 아앙…….”

일단 배는 고팠기 때문에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불편하네요.”

그거야 그렇겠지. 남에게 떠먹여주는 건 편한 일이 아니다. 나도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가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렇네. 그럼 팔 좀 풀어줄래? 내가 직접 먹을테니까. 먹고 나서 다시 묶으면 되잖아.”

“그런 게 아니에요. 오빠에게 먹여드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리가 없죠. 다만 익숙하지가 않아서 실수로 포크를 오빠 눈에 찌를지도 모른다는 것 뿐이에요.”

“어떻게 실수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냐.”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냥 고의적 가학행위잖아. 겨우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 내게 어째서 그렇게 심한 말을 계속 하는 거야. 왠지 아까부터 콧잔등이 시큰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러니까, 여기선 이렇게 하는 거죠.”

소녀는 방긋 웃고서 포크로 찌른 스테이크를 자기 입으로 가져가 입에 물었다. 본인이 먹는 건가. 먹여주는 게 귀찮다고 그냥 굶으라니, 뭐 이렇게 잔인한 애가 다 있담. …이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건 소녀를 얕보고 있던 나의 짧은 생각일 뿐이었다.

소녀는 놀랍게도 입으로 스테이크를 문 채 나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했다.

“어? 응?”

그리고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얼굴을 멈췄다. 뭘 하고 싶은 거지, 이 애는. 아니, 알 것도 같지만 알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몰라요,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건…….”

바로 그때 집사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할아버지. 이 애를 말려주세요. 아가씨가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집사가 해야할 일 아니겠습니까.

기대의 눈길로 바라보는 내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입으로 먹여주기’로군요.”

“네?”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설명해드렸습니다.”

누가 그딴거 설명해달라고 했습니까, 할아버지. 대체 뭐하자는 거야. 내가 정말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게 아니라 내가 왜 초등학교 6학년한테 입으로 먹여주기를 받아야 하는 거냐고. 안 돼, 여기엔 처음부터 내 편따윈 아무도 없었어.

“진정하고 들어봐. 역시 그건 좀 아니야. 나는 스테이크 맛 첫키스따윈 하고 싶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소녀는 입에 물고 있던 스테이크를 씹어서 꿀꺽 삼켰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아직 키스해본 적 없으세요?”

“아.”

내가 내 무덤을 파버렸구나.

“그건 기쁜 이야기네요. 후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직접 드시게 해드릴게요. 집사님, 오빠의 팔을 풀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집사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 참, 집사 할아버지는 굉장히 세시니까 팔이 자유로워졌다 해서 싸우려고 하시면 안 되요. 오빠만 다칠 뿐이니까요.”

“싸울 생각도 없었어.”

나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예의바른 젊은이니까. 그런데 뭐야, 그 설정은. 만렙 집사 할아버지냐? 진짜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설정이잖아.

팔이 자유로워진 나는 스스로의 긍지를 지키며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스테이크를 다 먹고 물까지 마신 뒤 내 팔을 다시 묶은 할아버지가 서빙 카트를 가지고 나갔지만 소녀는 아직까지도 방 안에 있었다.

“너는 밥 안 먹어?”

“저는 이미 식사하고 왔답니다. 후후, 다음엔 같이 먹을까요?”

소녀는 즐거워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건 역시 안 된다. 아무리 어린아이라 해도 이런 걸 걸리기라도 했다간 회초리 정도론 끝나지 않는다. 내가 봐준다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저기, 있지.”

“네. 말씀하세요, 오빠.”

“너, 정말로 날 좋아하는 거야?”

“물론이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요, 오빠. 사랑하고 있어요.”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러면, 나를 이렇게 감금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좋아할수록 소중하고 정중하게 대해줘야 하는 거잖아.”

“오빠를 아프게도 안 했고, 맛있는 것도 먹여드렸고, 곧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대해드릴 예정이에요. 충분히 소중하고 정중하게 대해드린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영양분을 공급받아서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진정된 건지 난 아까까지는 떠올리지도 못하던 걸 말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나의 생활이 있고, 주위 가족들도 있어. 내가 행방불명 되어있으면 가족들도 슬퍼할 거라고. 환경이 좋거나 맛있는 걸 먹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야. 넌 지금 내 자유를 빼앗고 있어.”

“자유…요?”

“그래. 그리고 네가 날 좋아하게 됐다는 이유……. 그런 걸로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역시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이렇게 감금당해서 정신이 이상해져서 널 좋아하게 된다고 치자. 그럼 그 나는 네가 좋아하는 나와 동일인물일까?”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앞의 이 아이는 보통 초등학생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가 내게 반한 건 널 구해줘서인데, 넌 나를 감금한다면 그건 정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잖아.”

“아…….”

소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 눈을 바라보던 소녀는 시선을 피하듯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저, 그런 건…….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오빠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에…….”

“풀어줘.”

“하, 하지만 오빠를 풀어드리면, 오빠는 절 싫어하실 거잖아요? 절 피하실 거잖아요? 상대도 안 해주실 거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야, 자기를 납치한 여자 따위, 누구라도……!”

그 표정이 너무 당황스러워보여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아서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꼬마애 장난에 진심으로 화내면 어른이 아니지. 나는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딩 장난에 진짜로 화낼 정도로 애도 아냐. 네가 날 납치했다고 해서 피하거나 하진 않아.”

“꼬마…애요?”

소녀는 충격 받은 듯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화나냐?”

“네, 분하네요…. 저, 오늘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게 전부 꼬마애 장난으로 받아들여진 건가요?”

정말로 분한 건지 소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연한 일이잖아. 난 로리콘이 아니니까. 정 화나면 분발해봐. 나를 반하게 만들어보라고.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사실은 소녀의 행동은 효과가 좋아서 꽤 당황하고 혼란에 빠졌었지만 나는 애써 허세를 부리며 어른의 여유를 흉내냈다. 그러자 소녀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 오빠를 조교하는 건 포기할게요.”

“현명한 선택이야.”

참 다행인 일이다. 정말로 이 이상 초딩한테 조교당했다간 내 정신은 가루가 되서 복구불가능한 수준이 되어버릴테니까.

“전, 반드시 오빠를 로리콘으로 만들겠어요!”

“…….”

하지만 저것도 그리 듣기 좋은 말은 아니로구나.

“나는 네가 클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지만 말이야.”

내 말에 소녀는 그저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다시 철문을 열고 집사 할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집사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고서 내 몸을 묶고 있던 밧줄들을 풀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나는 그동안 굳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풀기 시작했다.

“오빠, 각오하세요. 저, 진심이니까.”

“그래. 얼마든지 받아주마. 열심히 해.”

방을 둘러보자 의자 뒤, 방구석에 가방이 보였다. 가방을 맨 나는 소녀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도 모르네. 너, 이름이 뭐니?”

“정연아에요.”

“연아…. 이름 좋네. 내 이름은…….”

“알고 있어요. 이현성 맞죠?”

하기야 나한테 러브레터까지 보내고 납치까지 할 정도인데 내 이름은 진작에 알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님, 오빠를 저택 바깥으로 안내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안내를 받아야 할 정도인가. 이 방은 저택의 일부인 모양인데, 대체 얼마나 넓어야 안내를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럼 잘 있어라, 연아야.”

“네. 안녕히 가세요, 오빠.”

그 뒤 나는 상상 이상으로 넓은 저택에 놀라면서 집사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저택을 나올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명 근처를 지나다니면서 대체 어떤 부자가 저런 집에 사는 거지? 하면서 구경했던 곳이었다. 누가 사나 했더니 이런 초딩이 살고 있었구나.

나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이……. 우와.”

다행히도 며칠이 지났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고백 받은 바로 다음 날 새벽 한 시 정도였지만, 대신 전화와 문자가 몇 통이나 와있었다.

[오빠 어디야?]

[오빠 왜 안 와?;;]

[오빠 보고싶어....]

[오빠 빨리 들어와ㅠㅠ]

그것도 전부 여동생에게서.

평소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거나 독서실에 가지도 않는 내가 이렇게까지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건 드문 일이었으니까. 방임주의인 부모님과는 달리 여동생은 나에게 상당히 어리광부리며 집착하는 성격이었다.

“이거 돌아가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부모님이야 ‘네 인생 네가 사는 거지’하시면서 하루 정도 사라진 것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지만 여동생은 분명 무슨 일이었는지 물을 게 뻔하다. 초딩한테 납치당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뭔가 변명 거리가 있어야 할텐데. 그건 지금부터 집으로 가면서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일단 가자…….”

어쨌든 그렇게 나는 하루 만에 감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아직 나는 앞으로 나에게 찾아올 아수라장을 예측조차 못하고 있었다.

2

“킁킁….”

“뭐해?”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킁킁대던 소녀는 내 말에 얼굴을 떼고 나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다른 여자의 냄새가 나.”

“너는 개냐?”

뜨끔하면서도 적당히 흘려 넘기는 나. 그런 나를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이 트윈 테일의 소녀가 바로 내 여동생인 이서린이다. 벌써 중학교에 입학했건만 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계속할런지…. 하지만 그 개 코가 정확해서 더 무섭다.

“오빠, 설마 이 나를 내버려두고 다른 년이랑 놀다 온 건 아니겠지?”

“누가 보면 네가 내 아내인 줄 알겠다.”

“오빠랑 결혼하겠다는 내 어릴 적 꿈은 아직 변하지 않았어.”

“그딴 꿈은 빨리 바꿔버려.”

초등학생 때까지야 그러려니 했다지만 중학생이 되서도 그대로인 건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흘겨봤다.

“오빠, 지금 내 인생의 최종 목표를 무시하는 거야?”

“확실히 말해주지. 그런 게 최종 목표라면 네 인생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

“어째서?”

“첫째로 우리나라에서는 친남매끼리의 결혼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내가 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말한 이야기인데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묻다니,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재능이로군.

“괜찮아. 뉴질랜드로 가면 해결될 거야.”

“그건 동성애 결혼이야.”

이 녀석은 뭘 착각하고 있는 거지.

“아, 그랬지. 맞아, 일본. 일본이었어!”

“그건 우리가 의붓남매일 경우지. 친남매간의 결혼이 허용되는 나라는 내가 아는 한, 지금 이 시대 어디에도 없어.”

“아아, 이런 고지식한 시대에 태어나다니……. 우린 불행하구나, 오빠.”

“아니,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친남매끼리의 결혼이 가능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상황이 됐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이 시대는 고지식한 게 아니라 상식적인 것이란 것을 서린이는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너는 다른 의미로 불행하다.

“그리고 은근슬쩍 넘어갔지만 내가 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건 어떻게 된 건데.”

내 지적에 서린이는 움찔하고 멈추더니 곧 실실 웃으면서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것도 문제 없어. 누구든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 생각을 고치게 되어있으니까.”

“너는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왜 내 여동생은 오빠에게 목숨의 위협을 가하면서까지 결혼하고 싶어하는 거지. 왜 나는 여동생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하는 거지. 아니,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왜 이 녀석이 내 여동생인 거지.

“흥. 그런데 오빠, 무슨 일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벌써 새벽 두시가 다 되간다고. 무지무지 걱정했단 말이야.”

“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뭐라고 대답해야 얌전히 넘어갈까. 아직까지도 마땅한 변명을 생각해내지 못했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여자애가 떨어지더니 내가 이 세계를 구할 용사라고 하더군. 나는 내가 세계를 구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을 깨닫고 여자애에게서 전설의 검과 전설의 갑옷을 받아 마왕을 해치우고 온 거야. 이해가 되니?”

“응.”

놀랍게도 서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 여자애가 누군지 말해줘. 잠깐 죽여버리고 올 테니까.”

“네가 신경 쓸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잖아.”

어째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자체에는 관심도 없고 그렇게 여자애라는 부분에만 온 신경을 쏟는 건데.

“괜찮아. 나는 오빠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어.”

“그거 참 고맙구나. 아무튼 여자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려서 넌 그 여자애를 죽일 수 없어.”

“아쉽네.”

“그러니까 누굴 죽일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잠이나 자렴. 잘 자.”

“응. 잘 자, 오빠!”

나는 서린이에게 손을 흔들고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비록 초등학생에게 납치당했다가 풀려나고 여동생이 누구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결국 성공적으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이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학교에서 졸아버려서 선생님께 혼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별 문제 없이 종례시간을 맞이했다. 정말 사람의 신체라는 것은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다. 어떻게 종례 전까지는 그렇게 졸려 죽을 것 같다가 종례를 끝마치자마자 정신이 그렇게 맑아질 수가 있는 건지.

새삼스럽게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어제 나에게 고백한 초딩, 연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보통은 차인 바로 다음 날 찾아오지는 않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초딩의 행동력은 얕볼 수 없다. 혹시 교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나가기 힘들어지는군.

잠시 설명하자면, 이때의 나는 연아의 행동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에다가 집착 증세까지 보이는 그 소녀의 행동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납치까지 당해놓고, 감금까지 당해놓고도 아직 상식선 안에서 그 소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즉시 뼈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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