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Q&A
[공지] 노블엔진 홈페이지가 …
[꿈꾸는 전기양과 철혈의 과…
《노블엔진 2017년 4월 2차 …
[리제로 10 + 리제로피디아] …
[Re :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 3급 매니저, 치유담당 초파랑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 1급 매니저, 츤데레담당 델피나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위증즐가.
글쓴이: 악명높은
작성일: 12-07-31 23:56 조회: 3,128 추천: 0 비추천: 0
1화. 배고픈 남자들.

*

난 아직 알게된게, 아무것도 없어.
흔히들, 낙오자라고 부르지.

*

날이 좋았다.
나는 밴치에 널부러진채로 파랗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저 그렇게 계속 누워있었다. 배가 고팠고, 여기저기가 가려웠고, 몸이 찌뿌둥했다. 무엇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숙취였다.
한참을 그렇게 널부러져 있었다. 태양이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것을 보고만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뉘엇뉘엇 넘어갈때까지 지켜본 결과 알게 된것은, 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는것 가지고는 배가 불러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는 해가 마저 기우는 것을 보고 일어났다. 한낮의 햇빛을 가득 받은 몸은 얼얼하고, 후끈해서 어지럽기까지 했다. 아니 어지러운건, 아직 술이 꺠지 않아서. 혹은 너무 배가 고파서. 일지도 모르겠다. 몇번을 휘청이고야 간신히 똑바로 선 해가 저문 방향과 반대방향쪽으로 천천히 돌아선다, 그리고 하늘 너머의 한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공기에선 습한 냄새가 났다. 오늘 밤엔 비가 올 것 같다. 가을이었고, 가물었다. 비가 오는건 좋은 일이다. 천장이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비오는 가을밤은 입이 돌아가도록 춥다. 제대로 먹어두거나, 마셔두는 것이 좋다.
그래, 그러니, 가자.
"...가려고요?"
"그래."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떼려고 한순간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떨구고 씁쓸하게 웃는다. 다시 땅에 닿은 내 발을 보며, 나는 한층더 씁쓸하게 웃는다.
"잘도 찾았네."
뒤돌아 섰다. 여자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헤괴한 핑크색 커다란 티샷쓰 밑에 팬티인지 바지인지 구분이 안갈 짧은 청바지를 입었다. 그 모자 밑에는 허옇고 둥글둘글해서 너구리나, 곰 같은 인상에 길잃은 개새끼 같은 눈을 해서, 개미한마리 죽이지 못할 인상을 하고 앉아서, 중지 끝에는 연필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나이는 이제 고등학생이나 됐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중학생은 아닐거고, 아직 사회에 나간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일부러....?"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 말한다. 흐려진 말꼬리 뒤에 있는 책망의 말은 아마. 이 귀여운 아가씨를 피해서 이곳저곳 다닌 것을 말하겠지.
"엉."
나는 한숨처럼 한마디 내뱉는다. 표정이 급격하게 안좋아졌다. 보고 있는 내 기분도 별로 좋진 않지만, 떼어낼때는 과감해야한다. 나는 뒤를 돌아서서 다리를 살짝 굽힌다. 이제 정말 가자.
"저, 저기, 잠깐만요. 이거, 받아요...."
그녀는 그런 내 기색에 당황하여 황급히 백을 뒤진다. 화장품 따위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절그렁 거리는 소리. 나는 여전히 뒤돌아 슨채 휘파람을 불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마치 개가 묻어놓은 뼈다귀를 찾는듯한 움직임이었다.
"자...요."
한참을 뒤져서, 결국 그녀는 원하는 것을 찾은듯 했다. 그 손끝에는 소주병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소주병을 잡은 조그마한 손이 정말 희다. 나는 그 소주병을 거칠게 받아들며 그 손에 대해 생각했다. 잘먹고 잘배운, 잘큰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좋은 손이다.
"이런건 어디서 구했어."
나는 병뚜껑을 대충 뒤로 던지고 그대로 원샷을 한뒤, 입가에 흐르는 술국물을 소매로 쓱쓱 닦아내며 묻는다.
"그게, 저기 밑에 가게에서, 샀어요."
내가 들이키는 것을 자못신기하다는 듯이 보며, 그녀는 바닥만 본채 우물쭈물 대답한다. 술 먹는거 처음보나. 어쩌면 미성년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술병을 잠시 내려다봤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술은 죄가 없고, 어쩄든 난 목을 축인거다. 이 한없이 여려보이는, 잘자란 학생이 술을 어떻게 사왔을지, 같은건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어여 들어가고, 학원 늦겠다."
나는 돌아서서, 발목 부근 인대를 꾹꾹 누르며 충고한다.
"아저씨!"
내 등뒤로 그녀는 아주 큰소리를 냈다. 뱃속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소리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귀를 막을만큼, 큰 소리였다. 내가 얼떨떨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스스로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왜?"
"아, 그게, 저기, 그게....예."
그녀는 '잠시만요' 하고 양손을 꾹 마주쥔채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고 몇번 심호흡을 반복한 뒤에, 결심한 듯 가방을 다시 부시럭 거렸다. 그리고는 종이다발을 꺼내 내게 내민다. 나는 얼떨결에 그 다발을 받아든다.
첫 페이지에는 대한민국 유일의, 진짜 영웅을 찾아서. 라는 제목과 학번, 이름. 그리고 대학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대학생이었구나. 새내기인가. 아직 의무교육의 물이 안빠진게 확연히 느껴졌다.
나는 페이지를 쓱쓱 넘긴다 엉망인 형식, 통일되지 않은 용어들, 그리고 조잡한 문단 구성들을 대충 넘기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겼다.
"잘썼네. A-."
나는 이대로 그녀가 충실히 완성한다면 받을만한 학점을 입에 담았다. 다녀본적은 없지만, 교수라면 꽤 알고 있으니까. 그 비슷한 흉내라면 낼 수 있다.
"아, 아, 아뇨. 그게, 저기, 아니라."
그녀는 황급히 내게서 종이 다발을 뺏어들더니, 파파파팍 페이지를 넘겼다. 정신없는 동작. 그리고는, 다리가 끊어진 사진을 내게 내밀었다.
"저, 여기, 있었거든요."
살다보니, 별일을 다 겪는데. 예를들면 나라에서 세금 수백억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다리가 어느날 아침 뚝 끊어지거나 하는 일이 그렇다. 거 지나가던 사람들은 무슨 죄를 졌다고.
"그게 왜?"
"...아저씨죠? 이 사람."
신문 스크랩인 듯한 그 흑백 사진은 두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는 다리의 끊어져 떨어진 조각,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다리에서 떨어져 내린 자동차를 들고서 하늘을 날고 있는 한, 사람같이 생긴것.
"이게 누구임?"
"아저씨잖아요."
"난 모르는 사람인데."
거참, 할일도 없는 사람이다. 새벽같은 시간에 자동차들고 하늘이나 날아다니고. 벌받나.
"...진짜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나는 어꺠를 으쓱한다.
"아저씨를 제외하면, 이런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 거 뭐시기냐, 슈퍼맨, 이런 친구는 못하나."
TV광고에서 봤는데, 쌈박질도 잘하고 사람도 잘 구하고, 번듯한 직장에서 밥벌이도 하고, 괜찮은 친구더마.
"그건, 영화잖아요."
"또 모르지."
난 낄낄 웃었다.
"...자꾸 그럴거에요?"
"넌 안재밌냐? 난 아주 재밌는데."
계속 낄낄 웃는다. 아니, 아예 배를 잡고 뒹굴었다. 그렇게 까지 웃기진 않았지만, 왠지 웃다보니 계속 웃겼다. 부끄럽네.
"너, 너무 해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약간 물기마저 띄우고는 그녀는 중얼거린다. 아차, 이거 일났네.
"울지마라, 울지마. 뚝, 뚝, 호랑이가 잡아간다. 어흥~."
나는 염병했다. 스스로가 싫어졌지만, 여자는 웃었다. 아직도 눈물 맺힌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
"우, 웃긴걸 어떻게 해요."
그녀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떻게든 억누르며 말한다. 콜록, 콜록 하고 기침을 몇번내뱉으며 그녀는 간신히 진정했다.
"역시, 아저씨였어요."
그녀는 나를 빤히 보다가, 그렇게 결론을 냈다.
"뭐가."
"그떄도 겁이 많아서, 울었거든요. 기억 안나세요?"
나 아니라니까 그러네.
"지금이랑 똑같이 달래주셨잖아요."
"옛날부터 여자랑 애가 우는건 질색이었거든."
나는 채념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나한테 뭘 원하는데."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그녀의 핫팬츠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치마였으면 좋았을 각도인데, 아니 어린애 팬티같은거 올려다봐도 하나도 기쁘지 않지만.
"그, 글쎄요."
그녀는 내 채념한 태도에 당황한듯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살핀다. 누가 있는지를 보기보다는,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는 듯한 그런 움직임이었다.
"여긴 없어, 널 기다리는 기사놈은 500 m 밖에 있으니까, 그놈한테 물어보던지."
아까부터 통화를 몇통이나 해대는 통에, 얼렁 보내고 싶었다.
"아, 아니에요."
그녀는 눈을 꾹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그야 기특한 모습이지만.
"그, 그게, 고맙다는, 그러니까, 말을 하고 싶었어요."
몇번이고 멈추고, 고치며 그녀는 말을 이어나간다. 맞는 말을 찾기가 힘든건 알겠는데 듣고 있는 나는 속이 터져서 그냥 휙 날아가버릴까 고민했다. 결코, 저런 말을 듣기가 거북한건 아니다.
"누구한테?"
"당연히 아저씨죠!"
그녀는 머리털이 솟아오를 기세로 왁! 소리쳤다. 그러고는 소리를 지른것이 부끄러운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쭈그리고 앉아서 올려다보니 그 부산한 동작들이 너무 선명해서, 눈이 부실지경이다.
"그래, 받아주마. 니 고마움."
나는 일어난다. 그리고 바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늘 저 멀리를 바라본채로. 땅에는 흙먼지와, 약간의 구덩이 그리고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그 여자가 있다.
"아저씨, 고마워요!"
뭐가 그렇게 필사적인지, 힘껏 외친다. 그야말로 하늘 너머까지 들리게. 시끄러워, 그런 말할거면 핫팬츠 말고 짧은 치마 입고 와서 해, 눈요기라도 하게. 나는 다시 하늘을 박차고 날아간다.
자유롭게, 아니, 도망치듯.

*

-부글부글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왔다.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 틈에 거품이 맺혀 부풀었다. 작은 무지개가 거품 표면에 맺혔다가, 끈적하게 터졌다.
마치, 바다속 아주 깊은 곳으로 끌려간 무언가의 단말마 같았다.

15일 오전 8시 5분께 인천시 옹진군 자월도 북방 3마일 해상에서 인천항을 떠나 대산항쪽으로 가던 부산 선적 유류운반선 4천 191t 두라 3호가 원인을 알수 없는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고로 선원 3명이 숨지고 1등 항해사등 8명이 실종됐다. 사고 선박에는 한국인 선원 11명과 미얀마 선원 5명(총 16명)이 타고 있었으며, 5명은 사고 직후 출동한 해경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배는 대산항에서 선적한 휘발유 6만 5000톤을 인천항에 하역한 뒤 대산항으로 돌아가던 도중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킨것으로 알려졌다.

유조선 사고의 실종자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물고기 뱃속에라도 들어간듯 했다.

*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나는 다리밑에 누워서 그 소리를 들었다. 자동차 바퀴밑에서 비는 촤아악, 촤아악하는 흥겨운 소리로 바뀐다. 강에 부딛히는 빗방울의 소리는 서로 부딛혀서, 아주 웅장하고 낮은 소리가 된다. 그런것을 들으며, 나는 비내리는 강물 밑에서 떠내려오는 흙탕물 속에 먹을것을 찾아다닐 물고기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는 낚시 금지가 아니니까, 몇마리 잡아다가 매운탕이라도 끓여먹으면. 맛있겠지. 하지만 냄비도 없고, 버너도 없고, 심지어 양념하나도 없다. 아니, 정확히는 양념하나 살 돈도 없다. 빈털털이다. 일을 안하니, 먹을 수가 없구나. 나는 강물 바닥에서 바쁘게 생업에 종사할 물고기들을 부러워했다.
"설마 죽기야 할까."
그래, 다행히도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먹지 않기를 몇년. 어쩌면 몇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먹지 않고, 오로지 술만 마셨지만 아직도 안죽었다. 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가까운 문제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슬슬 들지만, 배고파 죽을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 목말라 죽을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 아파 죽을것 같은것 따위. 당연히 죽지 않는 것으로 정해져있다.
"나는, 슈퍼 히어로니까."
나는 다리 밑에 팔을 걸고 메달려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그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부러워하며, 중얼거린다.
"슈퍼, 히어로니까."
술이, 마시고 싶었다.

꿈을 꿨다. 그날 오후, 나는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천천히, 아마 아이스크림 막대기라도 물고 있었던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날 있었던 그 충격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충격적인 일, 이라는 것은 멀쩡했던 다리가 끊어진것. 이 아닌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닌 것. 이었다. 끊어진 다리에서 떨어져내리는 차를 받아들고, 안에 있던 여자아이까지 구해낸 어떤 신비로운 인물. 인명피해가, 없었다더라. 대단하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어떠한 종류의 자부심 마저도 느껴졌다.
TV에서도 연신 나에 관한 이야기만, 물리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종교 지도자는 천사라고 했다. 졸지에 천사가 되니 기분이 묘했다. 경찰청장은 감사패를 보내고 싶다고 했고, 이례적으로, 정계에서는 침묵했다. 나는 아이스크림 바를 씹으며 길거리에 전시된 TV를 한참동안 봤다. 그렇게 그날이 지나갔다.
놀랍게도, 다리가 끊어진 일은 그렇게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건설회사, 관련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있긴 있었지만, 사상자가 없는점, 그리고 국민 여론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점등을 들어 날치기로 처리되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그냥 넘어갔다.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21세기에 나타난, 슈퍼 히어로라는 인물의, 업적이었다.

"시파..."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다리밑에서 깨어났다. 볕이 강물에 반사되서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대체 왜, 그런 꿈을 꿨지."
강물에 희미하게 비치는 모습을 물끄럼히 보며, 묻는다. 물을 것도 없이 어제 그 여자를 만난 탓이다. 탓, 이라니. 그렇게 거창한게 아닌데. 그냥, 생각이 날만했을 뿐이다.
"어이구, 머저리."
스스로의 머리통을 펑펑 두들기며 다리 난간에 올라탔다. 간밤에 내린 비로 하늘이 맑게 개서 아주 멀리까지 보였다. 어제 내린 비로 수위가 좀 확보된 강이 찬란할정도로 빛난다. 하늘이 그려낸것 같은 그 작품을 본 내 감상은,
"배가 고프군."
하지만, 일하지 않은자 먹지 못하는 법이다. 누가 공짜 술이나 좀 줬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옛날 생각 안나는 사람으로.
"...멍청하긴."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중얼거리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해가 질떄까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강물이 계속 흘러서, 어제보다는 괜찮았다.

밤이 되자, 다시 술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는 다리 밑을 벗어나서 하늘로 뛰어오른다. 보통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진탕 마실 기회가 나는데, 제일 좋은건 술판을 벌이고 있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발견하는 일이다. 걔들 술을 뺐는건, 굳이 따지면 슈퍼히어로 다운 일이다. 나는 그런 애들이 모일법한 장소를 꽤 많이 알고 있고, 내가 한번 갔던 장소에는 안올법도 한데 애들은 매년 태어나는지 늘 그 장소에는 술거리들이 있곤 했다. 아, 애들이 매년 태어나는건 원래 그랬던가. 한 백년 전에는 안그랬던것 같기도 한데.
내가 애를 낳아 길러본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얘들아, 형왔다."
내가 고급 주택가 근처에 확보된 녹지에 착륙하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에 왁스와 화장을 떡칠한 아이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다 냄새 맡고 왔으니까, 숨기지 말고. 형 귀찮게 하지마라."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을 살짝 밟아 예쁘게 구긴뒤 발끝으로 차서 저 너머의 쓰레기통에 쳐박아주며 말한다. 깡통이 귀옆을 스치고 간 아이의 왁스로 치켜세운 귀옆머리가 공원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야, 튀어!"
나를 아직 잘 모르는 녀석들인지, 마치 경찰이나 공원 관리인을 상대하듯 일단 도망치고 본다. 술병 잘그럭 소리가 아주 상쾌한 책가방을 든 아이들이 사방팔방으로 뛴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이, 처음 외친놈의 뒤로 천천히 걸어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 뒷덜미를 들어올려줬다. 발이 땅에서 떨어졌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달리고 있는것이 꽤 호감이 든다. 재밌고.
"어이, 젊은 친구."
"예...?"
목소리가 마치 선풍기를 앞에 틀어놓은것처럼 훌륭하게 바이브가 들어갔다. 이 친구 나중에 R&B가수를 하면 대성하겠어. 얼굴도 이만하면 규칙적으로 생겼고. 얼굴이 좀 크긴 하지만, 성형외과 의사가 괜히 있는건 아니지.
"애인 있나?"
"없는, 데요."
짜식, 사람이 됐군.
"그럼 어머니를 외치면서 출발."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나는 씩 웃어줬다. 외치게 될거야. 나는 힘껏 땅을 박차고 오른 뒤 쿨하게 손을 놓았다.
"어머니!!!!"
나는 한 8초정도, 인생에 그렇게 간절히 불러본적이 없을 정도로 간절하게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떨어져내린 그 친구의 목덜미를 잡아 다시 바닥에 내려줬다.
"핸드폰 꺼내라."
"네?"
불만스러운듯, 싫은 듯 나를 본다. 그럴 수 있지.
"어머니!!!!!!!!!"
나는 한 16초 정도, 전생에도 그렇게 간절히 불러본적이 없을 정도로 간절하게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떨어져내린 그 친구의 발목을 잡아 다시 바닥에 내려줬다.
"꺼낼게요..."
울지마 새꺄, 남자가. 근데 이 판데기는 뭐여.
"야, 핸드폰 꺼내라니까 어디서 이런 장난감을 꺼내고 있어."
"핸드폰인데요."
울먹거리며, 겁먹은듯 말한다.
"이 자식이 아직 뜨거운 맛을 덜봤나. 어디서 형을 속이려 들어. 버튼도 없는데 무슨 핸드폰이라고."
"스마트 폰, 처음보세요?"
"........."
사실, 핸드폰도 몇번 본적 없다. 그건 어떻게 선도 없는데 전화가 되는거지. 보이지 않는 실이라도 감겨있나.
"됐고, 방금 도망간 녀석들 중 아무녀석한테나 연락해라."
나는 녀석이 능숙하게 빈판을 두들겨서 전화하는 것을 흥미롭게 본다. 거, 세상 참 휙휙 변하네. 나중에는 막 하늘도 날라다니겠어. 속으로 조금 낄낄대고 웃었다.
"응, 나야. 어떻게 할까요?"
연락이 된 뒤에 밑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나에게 묻는다.
"줘봐. 응, 형이다. 얘 내가 잡았거든. 얘가 니네 이름이랑, 학교랑, 다 알지? 내가 얘 필적으로 유서한장 쓰게 해서 아파트 옥상쯤에서 떨어뜨리면 너희 다 어떻게 될까?"
나는 크크크크, 하고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되묻는다. 전화기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난다. 농담으로 들리나.
"아, 떨어지기 전에 큰 소리로 너희 구호를 외쳤다는 것과, 노동자의 자유여 영원하라, 라고 평소에도 말하고 다녔던것, 그리고 자본에 의해 억압당하는 인민의 권리를 위해서라면 한몸 희생할 수 있다고 굳게 결의한 점등을 강조해서, 비록 만취상태긴 했지만 단순실족사가 아닌 고결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지게 해주기야, 할게. 형만 믿어라."
웃음소리가 커진다. 조롱하는 소리. 도발마저 섞인다. 농담이 안통하는 친구들이네. 나는 조금 맥이빠진다.
"야, 너, 써라. 얘들이 쓰란다."
나는 핸드폰에서 귀를 떼고 웃었다. 그리고 목덜미를 살짝 들어올렸다.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자 안색이 새파래진다.
"저, 전화한통만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니껀데, 니가 못할게 뭐냐.
"야이, XX새끼들아 니네가 날 팔어? 이 XX 새끼는 완전 갔다고. 제정신이 아냐. 어머니를 부르게 했다니까. 뭐? XX 새꺄 니가 그럼 대신 죽을래? X자식들 내가 니네 이름은 꼭쓴다. 뭐? X같은 소리하고 있네 X만한게, 야, 야, XX 내가 XX 핫바지로 보이냐? X새끼 너 내가 오늘 넘기면 아주 죽여버릴거야 X새끼, 웃냐? 웃어? XX 새끼가, 야 너, X새끼, 진짜 죽여버린다."
"마, 자중해라."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욕이라는 언어를 가진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욕설을 퍼붙는 학생에게 어른으로서의 한마디를 해줬다.
"자중 같은 소리하네, 자X같은 놈이!"
허, 이놈봐라.
"너 한번만 더 형한테 욕질하면 니 X을 뽑아서 후X에 쑤셔넣어줄테니 그렇게 알아라."
"죄송해요."
녀석은 즉각 사과했다. 실로 남자였다.
"그래서, 어쩔래?"
"쓸래요. 한명도 안빼놓고."
"좋은 생각이야. 때로는 영웅적인 죽음이 필요할때가 있지."
자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장당한 동지들도 꽤 많으니까 말이지. 나는 낄낄대고 웃었다.
"지, 진짜 죽이실, 거세요?"
"야, 아파트 옥상 정도에서는 떨어져도 안죽어."
최소한 나는.
"...."
새파랗게 질렸다.
"짜식이, 농담이지 당연히. 요즘 세상에 학교 폭력과 자살을 조장해봐라, 출판이 되겠냐."
안되겠지. 우리는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들어서, 굴러다니는 돌이나 좀 차며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자, 이름 다 적었냐. 그럼 그중에서 부모님 몰래 술쳐먹는 애들 이름 동그라미 쳐라. 그리고 그 옆에 집주소랑 번호도 좀 쓰고."
그는 복수의 의미를 담아, 부담없이 썼다. 몇몇은 모르는지 그냥 비워뒀지만 한명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래, 이제 들어가보고, 아아아아, 술은 내놓고 가고."
자못 아쉽다는 얼굴로 술병을 꺼내 내게 넘긴다. 짜식이. 술은 나중엔 싫어도 먹을 수 밖에 없는게 대한민국인데, 뭘 어려서부터.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병따서 쭉 들이킨다. 이 맛도 없는걸, 뭐 그리 어린 나이부터 찾는지.
"자, 그럼 진짜 슈퍼히어로 다운 일을 좀 해볼까."
나는 리스트를 쭉 읽으며, 제일 비싸보이는 주소를 찾아서 서울의 밤거리를 날아올랐다. 결론만 말해서, 남의 집 아들 딸들의 가정 교육에 대해 조언 몇마디를 한 결과, 소주 몇병이 생겼다. 남는 장사다. 비록, 남의 집 아들 딸들의 치부를 남김없이 털어낸 까닭에 몹시 띄꺼운 시선으로 봐지긴 했지만, 부모 마음이 다 그런거지.
세상 사는게 다 그런거지.

*

경찰차가 불을 뿜었다.
본네트 위로 떨어진 주먹은 앞바퀴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정도로 강렬했고, 엔진은 한순간의 강렬한 불꽃을 피어올리고 증기를 비명처럼 토해냈다. 2인 동승하고 있던 경찰들은 그 압도적인 폭력 앞에 공포탄이 장전된 총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벌벌 떨었다. 싸이렌이, 그것의 얼굴에 붉고 푸른 음영을 드리웠다.
"고기다."
그것은 완전히 함몰된 본네트 위로 올라서며 씩 웃는다. 혀로 입술을 햝아내는, 입맛을 다시는 듯한 웃음이었다. 사람, 같기도 했다.
- 2번 순찰차 응답하세요. 2번 순찰차!
"더 와라, 고기."
와드득, 뼈가 이빨사이에서 부스러지는 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다. 사이렌이 너무나도 큰 공포에 정신이 나간것 처럼 울어댔고, 무전기는 곧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날 밤, 해당 지구대의 경관 5명을 포함한 총 30명의 인간이, 잡아먹혔다. 순식간이었고, 뼛조각 하나 없이 꺠끗이 먹었다.
악몽같은 포식.
경찰은 의문의 실종으로 결론지었다.

*

놀이터에 앉아서 양주를 땄다. 방금전까지 여기서 여자랑 합의 없는 좋은일 하려고 했던 양아치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고, 수업료로 받은 것이다. 술맛이 쌉싸름하니, 고급스러웠다.
"아가씨, 집이 어디야."
나는 반나채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피해자 여성에게 묻는다. 와서 같이 한잔하고 싶다면 술을 나눠줄 의향도 있었다. 개같은 일을 당했으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마셔도 세상이 용서하겠지. 하지만 아가씨는 대답이 없다.
"...읍읍읍..."
재갈이 물려있었다. 거참, 나머지 한쪽도 으깨놓을걸 그랬네. 완전 호로새끼들이었구만.
"풀어줘?"
"...읍읍! 읍읍읍..."
못 알아듣겠다.
"풀어주길 원하면 고개를 세로로 끄덕이고, 다른 모든 것이면 가로로 저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가 세로로 크게 끄덕여진다. 나는 최대한 안보려고 노력하면서 제갈을 손톱으로 잘라냈다. 스타킹이었다.
"거참,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으깨놓을까."
아니면 뽑아서 넣어줄까. 재갈로 물려줄까.
"고맙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 잠깐만 기다려."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는 그놈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틀고 바닥을 박차려 했다.
"가지 마세요! 저만 두고..."
운다. 아, 제발, 울지말라고.
"울지마, 울지마, 뚝, 뚝! 울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가. 어흥!"
나는 염병을 했다. 아가씨는 기가막힌듯 날 좀 보다가, 말이 없어졌다. 울음은 그쳐졌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아, 역시 그놈들을 쫓아가야해. 찝찝하잖아. 그게 문제라니까.
"...저, 바로 근처에 살아요. 편의점에 잠깐 물건 사러 갔다가."
다시 울먹인다.
"한잔 할래?"
나는 다시 염병할까, 하다가 그냥 술병을 들어올렸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제빠르게 술병을 넘겨받았고, 눈을 꾹감고 쭉 들이켰다.
"캬-하. 좋네요."
그녀는 딸꾹, 하고 어꺠를 들썩였다. 한방에 완전히 취한듯 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뺐어든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바닥까지 비울듯 했다.
"저... 무서웠어요."
"그렇겠지."
나는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떨리는것을 보며, 경건하게 동의해줬다. 그녀는 무서워할 권리가 있다.
"...고마워요."
"별로."
내 무뚝뚝한 대답에 그녀는 꽤, 실망한듯 했다.
"한잔만 더..."
간절히 애원하는 눈. 나는 주고 말았다.
"캬-하."
바닥을 들어냈다. 양주 한병이, 단 두모금에 아작이 난것이다. 나같이 직업 없는 사람이 양주를 구할 확률은, 1년에 몇번정도인데. 야속했다.
"집, 가야지..."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일어나, 비틀비틀 걷는다. 반나체의, 만취한 30세 여자. 방금전의 호로자식들이 아니라도, 선량한 남자를 시험에 들게할만한 모습이다.
"집 어디야. 데려다줄게."
반쯤은 내 책임이기도 하니까.
"저, 혼자사는데..."
웅얼웅얼거리는 목소리로 헤실헤실 웃으면서도, 경계하는 표정.
"집앞까지만 데려다줄테니까. 그 다음엔 알아서 들어가라고."
"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과장되게 대답한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이걸 어떻게 데려간다.
"업어줘요~ 어부바~."
염병하네. 나는 쌀포대처럼 들쳐맸다.

혼자 살고 있다는 그녀의 방은, 넓었다. 살풍경할 정도로 넓은 방에 적은 가구. 벽에는 유화, 벽걸이 TV. 밥차려먹은 흔적이 없는 고급스러운 부엌. 나는 그녀의 웅얼거리는 부탁에 따라 어떻게든 속옷을 찾아 던져주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넘겨주고, 침대 밑에 앉았다. 나가려고만 하면 울먹거렸기 떄문에 방법이 없었다.
"저, 기자에요. 기자."
"그래."
"그것도 일간지 기~자. 좋겠죠. 이히히."
"그렇겠네."
"골드 미스라고요. 화려한 싱글!"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충 느낌은 알것 같았다. 이 방 풍경 같은것이겠지.
"저, 공부 진~짜. 지인짜 잘했어요."
"장하네."
"동기중에서도 일등으로 취직했는데."
"훌륭해."
"승진도 제일 빨랐거든요."
"대단하군."
"흐헤헤헤."
웃는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아, 진짜 미치겠네.
"저기, 직업이 뭐에요."
한참을 울다가, 뚝 그치고 묻는다. 꿈속에 있는듯 웅얼거리는 어조였다.
"없어."
"푸흐흐흐."
웃는다.
"천사에요?"
갑작스러운 질문.
"왜?"
"날아다니잖아요. 슝-. 힘쎄고. 정의의~ 편이~고!"
정의의 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였겠지. 나는 굳이 따지자면 술을 정당하게 뻈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뭐, 해석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고 아마 이 여자는 기독교인이겠지. 천주교랑은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도 불렸었지."
그쪽 교인인 사람들에게.
"지금은요?"
"아무렇게도 안불려."
좋은 일이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럼, 뭐해요?"
"말했잖아. 아무것도 안해."
"그럼, 백수? 부모님집에 얹혀살아요?"
천사의 부모님은 누도대체 구냐. 하느님? 아니면 부모님도 천사인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집도 없어."
"아~ 그럼, 노숙자?"
"그렇겠네."
생각외로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그럼, 여기서 같이 살래요? 나, 빨래 잘해요."
그거 대단한 장점이네.
"됐다."
"그럼, 특별 서~비~스. 밥도 사줄게요."
이쯤 취해도 해주겠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것이, 이 아가씨의 좋은 면을 잘 느낄수 있게 해줬다.
"일없다."
"저, 일간지 기자라니까요~. 완~전 능력있는데!"
화를 낸다.
"어여 자라."
나 가게.
"저, 자면, 이상한짓, 할거죠?"
"안해, 절대 안해."
"이히히히."
웃는다.
"용서해줄게요."
뭘 용서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자고 가요."
"어여 자."
이 아가씨가 잠드는데, 꽤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몇번이고 되풀이 되는, 그런 이야기를. 그래도 해가 밝기전에 나는 하늘을 날수 있었다. 자유롭게, 아니, 도망치듯.

*

꺠어났다. 늦게자서 그런지 해가 다 져가는 시각이었다. 나는 꼬르륵 거리다 못해 끊어질것 같은 배와, 갈라지다 못해 타는것 같은 목마름을 어떻게든 달래머 밴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풀이라도 뜯어먹을까, 싶다.
"염병은..."
안먹어도 안죽는데, 그런 추태를 부릴것 까지는 없잖아. 아무리 영락했다고 해도, 그래도 명색이 슈퍼히어로인데.
해가 저물어가고, 술은 고프고. 하지만 오늘도 술거리를 찾아나서기에는 너무 부지런히 살았다. 일주일에 벌써 두번이라고. 벌받는다.
"...역시 받는군."
나는 두눈을 양손바닥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멀리서 숨가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아, 안녕하세욧!"
긴장으로 디스토션이 잔뜩 들어간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여어."
나는 손바닥을 눈에서 떼고 대충 흔들어 인사를 한다. 오늘은 베이지색 가디건에 엷은 꽃무늬가 들어간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이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어우러져서 아동복 같아보였다. 스스로도 그것을 아는지, 약간 과할정도로 어른스러운 향수를 뿌리고, 색조화장도 꽤 공들여 했다.
"그...."
내가 멍하니 그녀를 보고 있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어쩔줄 몰라한다. 뭔가 내게 기대하는 듯, 혹은 내 눈치를 보는듯 하다.
"그게...."
"야, 그런데. 이마에 땀방울 아직 남아있다."
"넷?!"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서서 황급히 가방을 뒤져 손거울과 손수건을 꺼낸다. 손수건이 땀으로 흠뻑젖어있었다.
"농담이야. 없어."
"너, 너무해요...."
그녀는 추욱 늘어진 어조로 말하고는 힘없이 손수건과 손거울을 가방에 넣고는 내게 돌아선다.
"뭐, 그래, 오늘은 무슨 용건이냐."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차마 보고 있기 힘들어서 말을 얼버무리며 용건으로 들어간다..
"용건...이요."
그녀는 손가락을 꾸물꾸물하며, 나를 물끄럼히 본다. 괜히 내가 죄지은것 같다.
"그, 그러니까, 용건, 말이죠..."
간절하게 올려다본다.
"그, 게..."
고개를 숙인다. 드러난 귀가 몹시 붉었다.
"꼭, 있어야되요?"
응, 꼭 있어야돼. 라고 말하면 울겠지. 그리고 난 아주 나쁜놈이 되겠지.
"아냐, 없어도 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토해내듯 말한다. 손수건이 다 젖도록 뛰어온 애한테, 어떻게 거절의 말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것으로 이제 도망가기는 다 틀렸다. 는 생각도 했다.
"그, 저기, 옆에...앉아도 될까요."
마음대로 해라.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어깨를 으쓱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해가 느릿하게 지는, 가을의 오후였다. 평화롭고, 좋구나.

평화, 하나도 안좋아.
나는 그녀와 그저 말없이 앉아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뜰정도의 시간 동안 말이다. 그녀야 그저 멍하니 시간 흘러가는걸 보다가, 잠깐 나를 보고 헤실헤실 웃다가, 다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하면서 휴가 기분을 내면 되겠지만 나는 저기 300M 밖쯤에서 쌍안경 들고 한쪽만 이어폰 꽂고 첩보물 분위기 내는 기사놈 하나와, 그녀의 가방안에서 5분마다 한번씩 울고 있는 핸드폰이 신경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밥은, 먹었냐."
"아저씨는요?"
안먹었지. 한 10년. 아마 그 이상.
"어여 들어가서 먹어라."
"그, 폐가 아니라면 같이 드시지 않겠어요?"
"너나 많이 먹어라."
나는 거절의사를 명확히 밝힌다. 그녀는 그런 내 얼굴을 잠깐 보더니, 에헤헤, 하고 웃었다.
"그...럼 저도 오늘 저녁은 다이어트, 할까봐요."
그거야 니 자유다만. 니 핸드폰에 전화하고 있는 사람이나, 기사나 이런 사람들은 결코 원치 않을것 같은데.
"아저씨는, 늘 하늘만 보고 있잖아요..."
"뭐 대충 그런 셈이지."
"아저씨한테는 저 하늘이 다르게 보이나요?"
손을 뻗어서 구름에 걸려있는 달즈음을 가리킨다.
"별로, 물론 너가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지만, 하늘은 그냥 하늘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저씨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하늘을 계속 본다고 주장하던데..."
그녀는 여전히 달에 손가락을 가리킨채로 작게 중얼거린다.
"글쎄."
"또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다고 그러고요..."
나에 대한 연구는, 동화작가와 신학자가 모여서 하고 있는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냐."
"진짜 그런가요?"
장난스럽게 아이처럼 웃는다. 그 천진난만한 미소 때문에 나도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냥, 힘좀 쎄고, 튼튼하고, 오래 사는, 사람일 뿐이야."
정말 그것뿐이야. 나는 정색하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괜히 딴청을 피우며 말한다.
"사람은 날아다니지 못하는걸요."
살포시 웃으며 그녀는 말한다. 마치 애써부정하는 내가 귀엽다는듯 했다. 기분은, 나쁘진 않았다.
"그런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그런 나를 보고 뭐가 그리 웃겼는지 웃음이 터진다. 배를 부여잡고 눈물까지 내비칠정도로 꽤 성대한 웃음이라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될때까지는 몇분 정도가 걸렸다.
"야, 전화 받아라."
나는 기사가 초조해 죽을려고 하는 것을 안쓰럽게 보다 못해, 결국 가방을 가리키며 말한다.
"전화요...?"
"그래, 가방안에 있잖아."
그녀는 살짝 흠칫한듯한 얼굴로 나를 봤다가. 아주 곤란한듯 가방을 뒤적인다. 그리고는 착신 내역을 확인하고는 세상이 끝난듯이 축쳐졌다.
"왜 그래?"
"혼날거에요..."
그거야 그렇겠지.
"저, 그게, 가볼게요."
그녀는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며 못내 아쉽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그 거동에는 초조감과 불안이 가득해서 위태위태했다.
"차까지는 내가 데려다주마. 각오 단단히 해."
"네?"
나는 그 허리를 부여잡고 땅을 박찼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와아!"
처음에는 눈을 꾹 감고 팔다리를 바동거리다가도 어느정도 고도에 올라가 속도가 안정되자 감탄성을 내뱉는다.
"아름다워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그 기사가 기다리는 외제차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입 조심해, 혀깨문다."
"네? 아읏!"
깨문다니까.

'이걸 칠수도 없고' 라는 표정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는 기사에게 그녀를 양도해주고, 나는 다시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늘은 술을 한잔도 못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뱃속의 회충이 끔찍할 정도로 발작을 해대는 터라 나는 또 시가지를 날았다. 가능하면 덜 지치는 공기좋고 물맑은 심산 유곡으로만 다니고 싶지만, 동물들은 술을 담그지 않는 터라 뺐을 수가 없는게 문제다.
그따위 생각을 하며, 나는 가로등이 점점이 켜있는 골목들을 훑어나간다. 회사가 끝나고 회식시간즈음 되었는지 고기집 마다 테이블을 내놓고 와이셔츠를 걸친 배나온 사람들이 그 앞에 둘러 앉았는데, 건배 올리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온 천지에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들을 한눈으로 흘려보며 못먹어 등가죽에 붙을 지경인 내 뱃가죽을 몇번 쓰다듬었다.
저들은 정당한 대가를 치루고 고기를 먹으니,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
나는 고도를 높힌다. 술과, 고기와 사람이 닿지 않는 곳으로 한참을 올라간다. 멀리, 어쩌면 가까이 사람들을 가득 채운 밤 비행기가 날개와 몸통 윤곽에 점멸등을 키고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잘 날아다니네."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이 날아가는 것을 보다가, 다시 내려왔다.
"...잘까."
나는 붉은 십자가를 켜둔 교회 옥상에 누워서, 하늘을 좀 보다가 눈을 감았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낮동안 받은 온기를 하늘에 다 빼앗긴 교회 옥상은 몹시 차가웠다. 슬슬 노숙자들이 얼어죽을 시기가 오고 있었다. 내 알바 아니지만.

*

서울 외각, 모텔촌에서 조금 벗어난 'XX가든' 강변에 경관 좋게 조성된 나쁘지 않은 고기집이다. 고기는 수입산을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팔거나, 김치와 쌀을 중국산을 쓰거나 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도의에 맞게 장사해서 그냥 주인 내외와 그 식솔들이 먹고 살만큼 벌어들였다.
평일 오후엔 불륜 커플이나, 동네 주민들이. 주말엔 가족 동반이나 대학생 무리들이 들려서 고기와 술, 그리고 식사를 한다. 10시에 가게를 열어서 손님이 다 빠질때까지 장사를 했는데, 평일엔 10시즈음이면 불을 끄고, 주말엔 그보다 두세시간쯤 더 열때도 있었다.
평일, 저녁 9시 즈음, 한 손님이 들어왔다. 더벅머리에 파카와 청바지를 입었는데, 둘 모두 끝이 헤지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꼈다. 다행히도 냄새는 나지 않았기에 주인은 안으로 들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볼것도 없이 바로 서빙하는 아르바이트 생을 불렀다. 아르바이트 생은 동네 주민의 아들로, 군에서 제대를 한 후 대학에 복학하기 전까지 평일 야간에 일을 돕고 있었다.
"고기, 제일 싼걸로 많이 주쇼."
"제일 싼거...면, 생고기입니다, 손님. 얼마나 드릴까요?"
"많이 주쇼."
"그러니까, 몇인분이나 드릴까요?"
"글쎄, 이 가게에는 얼마나 있나?"
"얼마든지 있습니다, 손님. 1인분, 150그람에 6천원입니다, 손님."
"핫나, 둘, 서이, 너이.... 대충 스물. 좋구먼."
"네?"
"제일싼 고기가, 많구먼."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그때, 아르바이트 생은 초소근무를 서다 딱 한번 본, 살쾡이를 떠올렸다. 그 새파란 눈, 육식동물만이 가질 수 있는 날이선 식욕.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 손님이 아르바이트 생의 머리통을 물어으깼기 때문이다.
뇌수가 비산하고, 고기와 뼈를 씹는 소리. 자지러지는 비명, 도망치려다 잡힌 사람은 그대로 고기가 되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도, 고기가 되었다. 아직도 성실히 고기를 굽고있는 불판에 튀긴 살점이, 그대로 치익- 하고 익어서 기름기를 흘렸다.

*


귀가 먹먹한 소리에 깼다.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걸음 소리, 숨소리, 웃는 소리, 그런 소리들 사이에 깼다. 소음이라고 까지는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단순히 나는 남들보다 귀가 좋을 뿐인 것으로, 내 기준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어스름하게 동터오는 하늘을 보다가 시선 끝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눈이 갔다.
새벽 예배일까. 나는 계절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날자와 요일에 밝지 못하지만, 주일이 아닐까 싶다. 일요일 새벽부터 참 부지런하다. 어떻게든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고 몸을 몇번 뒤척여봤지만 소리들은 전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옷에 엉겨붙은 서리만 바스러졌을 뿐이다.
"제길."
이렇게 일찍 일어나면 벌레도 더 잡아야되는데. 나는 머리를 벅벅 긁고 일어나서 십자가 옆에 기대고 섯다.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하늘이 묽게 퍼져있다. 교회에서는 벌써 예배를 시작했는지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엄숙하게 들린다. 엄마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교회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희끗한 머리를 하고 깔끔하게 다림질한 양복을 꺼내입고는 주차정리를 하는 노인도 보인다. 통기타를 메고 어슬렁어슬렁 들어가는 더벅머리 청년과 그 옆에서 농을 하며 걸어가는 바짝 깎은 머리의 청년도 보인다. 한껏 맵시를 부린 가을 옷을 입고 도도한듯 걷는 아가씨도, 그것을 흘끔흘끔 보며 머리를 만지는 여학생도 보인다. 그 옆에 손이라도 잡아볼까 쭈뼛쭈뼛 걷는 왁스바른 머리의 남학생도 보인다. 주일 아침부터 다들 성스러웠다.
"가자."
나는 교회 천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힘조절에 실패했는지 바닥이 살짝 페이고, 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밑에서 하느님을 부르는 말들이 들린다. 아니, 나랑 그 양반은 별 관계가 없는데. 나는 쓰게 웃으며 다시 하늘을 박차고 튀어나간다.
자유롭게, 아니 도망치듯이.

포획당했다.
딱 그런 생각을 했다. 하릴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데, 갑자기 소방헬기 한대가 덮쳐들었다. 피하기야 했지만, 기분은 나빴고 어떤놈이 운전했나 그 얼굴이나 좀 볼까 해서 옆자리에 탔더니.
"오랜만이네요, 오라버님."
여동생이 있었다. 이제 백, 한 수십세쯤 되었을텐데 10대 초반으로 밖에 안보이는 가느다란 팔다리 하며 굴곡 없는 몸매.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얼굴. 가증스러운 나의 여동생님 되시겠습니다.
"...나, 도망가면 안될까."
"쏴버리세요."
-탕.
나는 이마에 납작하게 눌러붙은 총알을 긁어서 띄어내며 어설프게 웃는다. 말한마디에 바로 발포하다니, 니들은 게슈타포냐. 나는 내 여동생님의 좌우에 강철같은 얼굴을 하고는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두놈에게 눈을 흘겼다.
"아프잖냐."
"엄살 피우지 마세요. 핵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직접 히로시마까지 가셨던 분이시잖아요?"
당시엔 어렸지. 참고로 몹시 뜨거웠다. 아 저정도면 잘하면 죽겠다. 싶을 정도로.
"오라버니는 단순 호기심이셨겠지만, 저는 외교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느라고 엄청 힘들었어요."
눈을 살짝 내리감고 뽐내듯, 기가막히다는듯 말한다. 뭐 고생이야 했겠지만.
"뭐, 어쩌겠냐."
나는 씩 웃으며 어꺠를 들썩였다.
"어쩌겠냐니요! 오라버니가 늘 그런식이시니까 제가 고생하는거잖아요!"
화낸다.
"쓰다듬어 줄게, 올치 올치."
나는 동생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가벼운 느낌이 드는 밝은 밤색의 허리를 넘는 긴 머리. 예전에는 댕기를 땋았었지만 그건 관둔듯 그냥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뭐, 이 녀석도 머리 스타일의 자유는 별로 없을거고.
"오, 오라버니도 참..."
주변의 보디가드들을 흘끔흘끔 보며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결국 응석 부리듯 손에 머리를 맡겨온다. 이 녀석,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1세기가 넘는 세월을 살아왔을까. 오빠로서는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그래, 잘 지내냐."
"오라버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뭐."
그냥 그날 그날 살아가고 있지.
"...아직도 식사를 안하시나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흠..."
턱에 손을 얹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정말로, 간식도 드신적 없으신가요?"
"안 먹었다니까."
"혼 안낼테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안 먹었대두."
"흠..."
더욱 뚫어져라 쳐다본다.
"거짓말은 아니신것 같네요."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우리 여동생은 그 귀엽고 어린 얼굴에 세상 다산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인간기준으로는 대충 다 살긴 했으니 그런 표정 못지을것도 없지만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건은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혹은 내가 어떤 호기심을 보이길 원하기라도 하듯 중얼거리고는, 손뼉을 짝하고 한번 마주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자, 오라버니, 이걸 보시겠어요?"
단순히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것은 아니었던듯, 양옆의 돌덩어리들이 절도있게 서류철을 꺼내 넘긴다. 내 앞에 내밀어진건 위성사진이다.
"오라버니의 눈에는 보이시겠죠."
아, 뭐. 보이지만.
"이게 뭐?"
최근 만난 두여자와 대화하고 있는 위성사진들이다. 위성으로 나를 추적하고 있는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해상도가 좋게 나올 줄이야. 막 확대하면 점점 더 화질 좋아지고 그럴것 같다. 기술의 발전은 놀라워.
"젊은 애들은, 좋지요?"
우리 여동생은 마음속 깊은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듯 말한다.
"..."
너 같은 애들이 호스트바에 가서 '이 가게에서 제일 어린애로 데려와!' 라고 소리치는 거였구나. 오빠로서는 심히 가슴이 아프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나요!"
"아니 그냥. 역시 사람은 외모만으로는 알 수 없구나. 싶어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건가요."
아무것도 모르는듯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되묻는다. 아닌가. 아니었나. 호스트바 실장의 싸다구를 날리면서 당연히 두명을 데려와야지 어디서 배워먹어서 한명만 데려왔냐고 고함을 지르거나 하지, 않았나.
"둘다 딱히, 어려서 구한것도 아니고."
여자라서 구한것도, 아니고.
"하지만, 최근 좋은 분위기..."
"아니, 그건 니 착각이다."
나는 여동생의 머리를 마저 쓰다듬어주고, 일어났다.
"네가 지금의 나에게서 뭘 기대하는지, 알것도 같지만. 단순히 고기를 못먹었을뿐. 난 그때랑, 하나도 변한게 없어."
나는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하늘 쪽으로. 땅이 한없이 넓고 평평하게 보일때까지, 계속, 떨어져내리듯 치솟아 올랐다.

*

"연결해."
박차고 나가는 충격이 가시고, 문이 닫히자 여동생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표정이라는 기능에 낭비할 에너지가 없다는 듯한, 실용주의 적인 얼굴이었다.
"넵."
그런 급격한 표정변화에도 양옆의 바윗덩어리 같은 남자들은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위성전화를 연결해 진상한다.
"용의자 X는 그가 아니었다."
위성 전화 너머에서 들리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즉,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그렇게 한마디를 하고 바로 끊어버린다. 끊기기 직전까지 들려오던 수많은 소리는 헬기 로터소리 사이에 파묻혔다.
"돌아간다."
"넵."
헬기는 그 자리에서 선회해서, 맹렬히 날아간다.
"혹시, 그 자가..."
헬리콥터를 운전하던 심복한명이 문득 입을 연다. 바위덩어리들의 안색에 음영이 약간 드리웠다.
"계속 말해."
"대교 때의 그 '날아다니는 남자' 입니까."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
"그렇게 알고 있는게, 장수에 도움이 될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물론, 그것도 너무 많이 알았지만."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허공을 살짝 쥐었다. 철판이 우그러지는 소리, 강화플라스틱이 깨지는 소리 사이로 뼈와 고기덩어리가 으꺠지는 둔탁하고 질퍽한 소리가 섞였다. 헬리콥터가 조정을 잃고 마구 회전한다.
"내가 이 고기를 먹을 동안, 드라이브는 네가 맡도록."
그녀가 희고, 작고, 부드러운 손을 살짝 움직이자 형체도 알아볼수 없게 망가진 머리를 달고 있는 조종사의 몸이 스르륵 날아 들어온다. 오른쪽에 앉아있던 바위덩어리는 탈수기처럼 돌아가는 헬리콥터 안에서도 날렵하게 자세를 잡아 조정간을 잡고는, 깔끔하게 원 궤도로 돌려놓는다.
그런 그도 부조종사용의 헤드셋을 눌러쓰기전까지 뒤에서 들려오는 뼈째로 부숴먹는 공포스러운 소리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은 하나도 안변하셨을지 몰라도, 저는 변했답니다. 오라버니."
핏덩이가 묻어 붉고 요염하게 빛나는 입술을 붉은 혓바닥으로 햝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

여동생과 헤어진 뒤 한동안, 나는 둥둥 떠다녔다.
날씨가 조금더 추워질 정도의 시간을 땅에 발을 딛지 않았던것 같다. 확신할 수 없는건, 떠다니다가 자다가 추락을 몇번했었는데 땅을 박차고 올라왔는지 그냥 하늘을 박차고 올라왔는지가 기억이 안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계속 떠다녔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계속 무시해온 결과 더 이상은 떠있을만한 힘도 없어져서 결국 땅에 추락했다. 말그대로 추락이라서 성대하게 떨어져내린 결과 어느 지방도로의 아스팔트를 뚫고 깊게 파묻혀서 꼼짝도 못하게 되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전력으로 날아다니거나 한것도 아니고 겨우 떠있었을 뿐인데도 이꼴이라니 나도, 갔나. 파묻힌채로 하늘을 보며 나는 조금 웃었다. 내가 하늘에서 추락하다니 물고기가 물에 빠져죽는것 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토사가 수미터는 치솟을 정도로 장렬한 추락이었기에 누군가 보러 오겠지, 라고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해가 질때쯤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도 도로라고 뚫려있으니까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겠지. 여전히 태평했지만 조금 초조함을 느끼고 있긴 했다. 안먹고 안마셔도 안죽는다고 큰소리를 쳐놓기도 했고 실재로 죽지도 않겠지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만큼의 힘이 모일려면 정말 뭐라도 먹거나 마셔야한다, 즉, 먹거나 마시지 못하면 이곳에 영원히 봉인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거 끔찍한데.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하늘을 떠다니며 한일이라고는 계속 잠을 잔것 밖에 없지만 땅에 쳐박혀서도 나는 결국 계속 자는것 외에 할만한걸 떠올리지 못했다. 이래서는 하늘에 있는거나 땅에 있는거나 큰 차이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니 조금쯤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돌아가는 소리였다. 도로교통안전공사인가, 시설관리공단인가, 어쩄든 모두를 위해서 일하는 곳에서 '이 길은 위험하니 다른데로 돌아가라' 고 푯말이라도 세워놨으리라. 차들은 내가 묻혀있는 이곳을 빙둘러서 지나갔다. 하루에 두번쯤은 버스가 지나갔고, 가끔 승용차나 경운기도 있었다. 그 표지판 앞에서 사람들은 선량했다.
나는 꺠어있을때는 계속 하늘을 봤고, 잘때는 계속 꿈을 꿨다. 아무리 꿔도 지치지 않을만큼 많은 꿈들이 있었다. 백년, 인간의 세대로치면 3세대가 넘는 세월동안을 인간의 곁을 맴돌며 살아온 삶이었다. 꿈꿀것이 적을리가 없었다.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고, 그랬다. 몇일일까, 슬슬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공기가 차가워졌다. 술에서 이렇게 깨본게 얼마인지 모를만큼 정신이 맑게 돌아오자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이 쉴세 없이 떠올랐다. 술이 정말 마시고 싶었다. 나는 억지로 손을 뻗어서 토사의 내벽을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것이 있으면 기어서라도 올라가면 되리라. 몸을 파묻고 있던 토사나 자갈같은것은 계절의 변화와 몇번의 비로 씻겨내려가고 바스라져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번을, 한참을 더듬자 간신히 손에 걸리는것이 있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가 간신히 잡힌 돌부리를 바스라트리고 말았다. 힘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꽤 침울했다가, 이정도 힘이면 그냥 토사에 손을 꽂아가면서 올라가면 되지 않냐는걸 깨달았다. 아스팔트 밑에는 자갈과 시멘트가 콘크리트가 되지 못한 느낌으로 희멀건하게 섞여있어서 타고 올라가기 좋았다. 한, 5미터정도 기어올라가자 간신히 지상이었다. 초겨울의 투명할정도로 맑은 하늘은 더없이 넓었고, 내가 파묻혀있던 구덩이 앞에는 누가 봐도 제사상이라고 할만한 상차림이 차려져있었다. 영정사진이 없고 대신 거울이 하나 올려져있는것이 조금 특이할까.
나는 그 거울을 잠깐 내려봤다가, 흙먼지로 도저히 사람꼴이 아닌 자신에 꽤 놀라고는 제사술로 올려져있는 양주를 꺼내들었다. 시바스 리갈이었다. 좋은 날에는 좋은 날을 기념하는 방법이 있는 법이지. 나는 일본군 군가를 흥얼거리며 겨울비가 올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는 비가 내렸다. 구름이 두껍게 낀, 차가운 겨울 비였다.

*

내가 없는 한 계절 사이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는지 사람들은 몸시 움추려있었다. 직접 물어보거나 한건 아니고 대충 그런 기운이라던가 분위기 같은것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없는 꼬마들은 여전히 술판을 벌여댔고 내가 술을 못먹어서 말라 비틀어질 일은 없었지만 확실히 그 빈도가 줄어든건 체감이 됐다. 독재 이후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움추러든것은 처음 보는데 이게 바로 그건가, 경제 위기. 무서운 일이다.
"그게... 잘... 지내셨어요?"
나는 역앞에 누워있다 말고, 아주 겁먹은 태도의 그녀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줬다.
"보다시피, 명당을 구했거든."
보통은 노숙자들이 몇명이든 진을 치고 있어서 나같은 떠돌이는 하룻밤 묵기 힘든곳인데 어연일인지 노숙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명당...인가요."
그녀는 아주 곤란하다는듯 말한다.
"혹시, 여기있던 양반들 어떻게 됐는지 알아?"
"몰라..요. 아마 아무도 모를거에요."
아무도. 이 조선땅에서 아무도 모르는 일이 일어났다면, 반드시 그 일을 알고 있을만한 사람을 한명 알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전부 뒈졌다냐?"
"아뇨, 그게, 실종, 이라던가..."
그녀는 우물쭈물 말한다. 실종, 이라고 발표는 하고 있지만 아무도 믿고 있지 않다. 는 이야기로 나는 받아들였다.
"흠, 뭐, 내 알바 아니지."
슈퍼 히어로를 자처하고 있지만, 어린이의 친구 정도의 개념이다. 대규모 실종이라니, 이런건 FBI나 CIA가 해야할 일이다. 둘다 우리나라에는 없던가, 그러고보면 아직도 이 나라는 미제국의 속국이 안됐던가. 하긴 그 애는 옛날부터 연방에 들거나 이런걸 안좋아했지. 여동생의 노력이 가여워서 나는 조금 애도했다.
"어디...계셨었어요?"
"잠깐, 휴가."
"아..."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햇볕좋은 나폴리탄(지중해에 있는 가상의 도시, 히어로 출신의 백만장자가 은퇴하면 주로 간다.)에서 스파게티라도 먹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근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아, 네..."
긴장된 눈초리. 아니 그렇게 중요한 질문은 아닌데.
"너, 어떻게 나를 찾아오는거냐?"
처음에는 부자집 아가씨니까 가능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하늘을 날아다니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휴문의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주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 132 (청천동) TEL : 032-505-2973 FAX : 032-505-2982 email : novelengine@naver.com
 
Copyright 2011 NOVEL ENG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