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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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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연애 해결사 기록 일지
글쓴이: 세이코
작성일: 12-07-31 23:57 조회: 3,126 추천: 0 비추천: 0

1

선혈이 고인 웅덩이 속에서 겨우 팔을 꺼내 『녀석』에게 뻗는다. 이성으로는 『녀석』에게 배신당했다고, 『녀석』에게 졌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몸은 근거 없는 믿음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녀석』은 그런 어리석은 내가 불쾌한지 등을 짓밟았다. 배의 상처가 바닥에 눌려 나온 피가 웅덩이를 넓혔다.

“어째서…….”

너무나도 뻔한, 시시한 질문에 『녀석』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쩔 수 없었어, 라고 하면 만족해?”

『녀석』은 따분한 듯이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았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아니면 넌 그저 내 폰(Pawn)이었어, 정도면 화내려나?”

“……그런가.”

“아아, 수고했다고? 네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으니까.”

“있……었던가.”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이젠 그만 무대에서 퇴장해 줘야겠어. 이젠 여긴 나만의 무대가 될 예정이거든.”

『녀석』은 마치 배우처럼 크게 양손을 벌렸다. 그런 『녀석』에게 나는 ‘그래.’라고 중얼거리며 힘겹게 『녀석』의 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끈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내 손이 닿자 『녀석』이 움찔한다.

“그럼 울지라도 말든가.”

“이건……그래, 기쁨의 눈물이거든?”

내 말에 녀석은 행복한 척이라도 하려는 듯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뺨에 닿은 내 손에 묻은 피가 눈가의 엄지부터 천천히 묽어져갔다.

“지면, 나중에 때린다…….”

“곧 죽을 놈이……그냥 편안히 가라고.”

‘허세는’이라고 되받아쳐 주려고 했지만 더 이상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에 최고의 피로감이 몸을 지배했다. 이대로 자면 영원히 못 일어날 것 같지만 이제와선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잘 가, 바보.”

아마 생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는 『녀석』이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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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현재 나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

“사랑과 추리, 이것만큼 가슴 찡하고 몰입하기 좋은 구도는 없죠. 암, 그렇고말고요.”

세화가 눈을 반짝이며 내민 원고지를 받아든 난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7월 초여름의 더위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정작 그것이 아니었다.

“이번 건 역작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구요.”

연민을 느끼게 하는 평탄한 가슴을 내밀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저 정세화 때문이다. 평소처럼 지루한 수업을 모두 마치고 부실인 이 가정 준비실에서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선풍기와 한 때를 보내려던 내 계획은 이 이변으로 인해 공중분해 되었다.

이변? 일상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무슨 헛소리야, 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이 맞다. 분명 이 상황은 이상할 게 전혀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다만 그 평범함이 세화와 더해지면 평범하지 않게 변해버리는 게 현 문제지만.

일단 세화는 창작활동, 아니 건설적인 활동 자체를 할 위인이 못된다. 어느 족이냐고 묻는다면 재미없는 휴대폰 연애 소설을 비난하면서 흥분하는 변태 쪽.

그런데 글을 쓰고 그거로도 모자라 평가를 바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 딴엔 재미있게 쓴 건데 별로였나 보네요. 아쉽지만 이건 폐기할래요….”

떫은 감을 씹은 내 표정에 세화는 원고지를 뺏어들고는 소중한 것을 다루듯 가슴에 모았다. 누구에게나 사랑스럽게 비쳐졌을 그 모습도 내게는 공포를 조성하는 요인이었다.

올해 초,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세화와 만나 어울리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미소녀는 삐뚤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곤경에 처해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귀염성 없는 신랄한 말로 자신의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건 물론 실화. 세화가 했던 짓이다.

“재미는 있는데….”

그럼에도 이 꿈 같은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는 마음에 무심코 중얼거렸다.

“정말요?!”

“응. 연극을 기반으로 한 추리는 반전을 넣기도 좋고, 판타지에 쓰인 켈트 신화도 전문성이 있어. 조금만 다듬으면 좋은 글이 될 거야. 취향을 좀 타겠지만.”

“해냈다!”

만세 합창을 하는 세화를 보자 꽤나 흐뭇했다. 드디어 올바른 길로 가주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가 없지.

이건 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니라고 한다면 환청을 동반한 고수준의 환각. 누가 거는 기술인지는 몰라도 칭찬하고 싶다.

“그럼 슬슬 현실로 돌아가 볼까?”

“네?”

“통계적으로 보면 오랜 기간 환각을 본 사람들은 자살률이 높다고 하거든. 그러니 나도 현실로 돌아가야지.”

“무슨?”

쾅.

이마와 탁자가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머리가 울리고 피가 이마로 몰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게다가 원래 목적인 환각에서 깨어나는 것조차 실패해 막막함에 두통마저 몰려왔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위험하다구요!”

아니, 두통은 내 이마를 보며 안타까운 눈을 한 세화 때문이다.

“으음, 이게 아닌가?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을까봐.”

“재성 군, 어디 아파요?”

“아파. 머리만 집중적으로.”

“두통약이라도 드릴까요?”

“한 방 머리를 때려주는 편이 훨씬 고맙고 도움이 될 것 같아.”

“때려달라구요?”

“응, 가능한 세게.”

세화는 잠깐 주춤하더니 눈을 꼭 감고 최대한 크게 벌렸을 손바닥으로 내 뺨을 때렸다. 촥 하고 감기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게임이었다면 화려한 임팩트가 터졌을 공격 덕에 종의 내부처럼 머리가 울려 시야가 흐려지며 상이 여러 개로 분리되었다.

토가 나올 것 같이 어지러워 머리를 짚고 세화를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은 공허한 눈을 한 내가 걱정되는지 세화는 안타까운 것을 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아니, 비웃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개로 나뉜 세화의 상이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쳐다보자 얼굴 형태도 달랐다.

둘 다 머리를 뒤 쪽으로 묶어 내린 흑발을 하고 있었지만, 비웃고 있는 쪽은 매서운 눈매에 대담한 미소가 어울리는 강렬한 인상이었고 울상 짓고 있는 쪽은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귀여운 전체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화였다면 머리에 물음표를 띠었을 내 표정에 매서운 눈매의 세화는 폭소하며 다른 세화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너 진짜 둔감하다. 어떻게 내가 아닌 걸 몰라보냐.”

조소하는 말과 함께 쥐었던 머리카락을 위로 들춰 올리자 검은 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길었던 머리카락도 어깨춤으로 짧아졌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대화하던 여자아이는 세화가 아니었습니다. 짜잔. 서프라이즈. 연기 한 번 참 잘하네요.

“그렇게 낚여주시지 대사부터 행동까지 하나 하나 야심차게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호갱님.”

“네네, 대단하네요. 세월도 낚을 훌륭한 솜씨였네요.”

“뭐야, 삐진 거야?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가끔 이렇게라도 자극을 줘야 지루한 일상을 버틸 수 있지 않겠어?”

“자극이 세면 고문이 된다는 거 알고 있어?”

“알았어, 알았어. 다음에 초콜릿 통 아이스크림 사줄 테니까 기분 풀어.”

“난 어린애 아니거든? 그리고 난 초콜릿 보다는 바닐라를 좋아한다구.”

“그럼 바닐라로.”

“……콜.”

“저기요? 저 공기 취급 하시는 건가요?”

소심하게 한 손을 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갈색머리의 소녀. 세화와 난 서로를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서랍에서 티 세트를 꺼내 갈색머리의 소녀 앞에 내놓고 세화는 티 포트에 물을 올렸다. 그리고는 소녀의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었다.

나와 세화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상투적인 대사를 말한다.

““저희는 달콤 쓸쓸한 연애 문제를 해결해드리는 핑크빛 해결사, 프쉬케입니다. 자, 당신의 고민을 부디!””

멋있었을 장면에서 세화가 하악하악 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어서 분위기가 깨져 갈색머리의 소녀는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세화로 인해 흉하게 변한 우리들의 인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안절부절 못하던 소녀는 내가 싸구려 티 백 녹차를 내온 뒤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야 하나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만약 이름을 밝히시더라도 신상정보는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거든요.”

“네…. 제 이름은 아리라고 해요, 홍아리. 나이는 16살. 빠른 생일로 올해 초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하악, 홍아리 씨군요.”

최근에 장만한 노트북을 두들기며 눈을 빛내는 세화를 보고 홍아리는 얼굴에 당혹한 빛을 떠올렸다.

“이 녀석은 연애라면 사족을 못 쓰는 변태라서요. 무시하는 게 편하실 거예요.”

이야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세화는 청춘을 듣는 아저씨처럼 흥분해버렸다. 저 모습을 수없이 본 나조차 식겁해버렸다.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하는지 홍아리는 녹차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첫 대사부터 막장이야! 아웃이라고!”

“닥쳐! 의뢰인이 귀엽고 수줍게 사랑 이야기를 말씀하시잖아! 입 놀리지 말고 경청해!”

“…감사해요.”

그녀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사춘기의 소녀처럼 갑작스레 연상의 남자가 좋아진 것이 아니다.

학생 시절 가난했던 그를 교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도와주실 때 만났고, 함께 자주 놀았던 추억과 자상한 그의 성격에 끌려 좋아하는 것이다. 이 애틋한 감정을 품은 지도 반년이 넘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과 제자라는 신분에 얽매여 이 감정을 숨겨야 했지만,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떠나며 일주일간 그에게 딸을 맡기고 떠나 같이 살게 되면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었다.

물론 아직 미성년자에 무뚝뚝한 그의 성격 덕에 위험한 일은 없었으나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것도 사실이었다.

“의외로 대담하시네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오면 남자가 더 당황해 할 걸요?”

그와 동거하기를 3일 째.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생인 그녀와 선생인 그가 동거하며 사귄다는 그런 불건전한 소문이?

“뭐야, 진짜 맞아? 이거 아침 드라마 각본 같은데?”

“실례에요. 사랑은 원래 드라마 같은 거라구요.”

처음에는 그저 친구들이 장난삼아 그러는 줄 알고 무시했다. 하지만 그 소문은 점점 커지고 부풀어져 학부모 측에서 항의 전화가 올 정도가 되었다. 그런 불건전한 연애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며 말이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그녀와 선생님은 뒤늦게 항변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학부모 중 한 명이 그를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선생님은 조금이나마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서를 쓰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녀의 아버지 같은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던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이다.

“교사와의 사랑이라는 남자들의 로망은 도덕에 지는구나.”

“남의 아픈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찌르는 군요….”

“하이라이트, 하악하악하악.”

“그래도 저것보단 낫잖아.”

“반박할 수 없네요….”

결국 선생님이 퇴직하고 사건은 잠잠해졌지만 그가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금전적으로 문제는 없었겠지만 꿈이 없어진 후유증은 큰 것처럼 보였다.

“이상이에요.”

세화의 신음소리 이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녹차로 메말라버린 목을 축였다.

“전개가 산으로 가네요. 흑막이 소꿉친구였을 줄이야.”

“네…….”

그때 일을 떠올렸는데 홍아리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우울한 분위기를 발산했다.

평소에 들어오는 바퀴벌레 커플들의 염장질만 들어오다가 이런 무거운 전개가 나오니 당황스럽다. 세화야 뭐, 무겁든 말든 흥분을 가라앉힐 기미조차 없지만.

“그래서……저희는 이 막장 속에서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요? 문제가 너무 많아서 감도 안 잡히는데….”

“선생님이 학교에 돌아오게 해주세요.”

“그건 안 되겠는데요.”

“왜죠?”

“저희는 사랑 관련 일만 받아서요. 사랑 문제를 해결하지 누군가의 직장 인생을 돌려놓는 기적을 일으키는 건 못하거든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안타깝다는 연기를 해보이자 홍아리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와 선생님의……사랑을 없었던 거로 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그건 너무 잔인하잖?”

“물론이죠, 고객님.”

내 말을 가로채듯 세화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을 한껏 구겨 화난 표정을 지어봤지만 세화는 가볍게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의뢰 받았습니다. 의뢰 내용대로 고객님과 선생님이라는 분의 사랑을 없었던 걸로 해드리죠. 괜찮겠습니까?”

“네.”

몇 가지 정보를 더 말한 후 홍아리는 방을 나섰다. 의뢰비는 후불로 받는다는 말에 잘해낼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채.

“우리가 언제부터 이별 대행사였냐?”

“지금부터라도 해 보지 뭐. 마침 달콤한 이야기만 들으니 질리기도 했고. 가끔은 쓴 음식을 먹어줘야 입맛이 생기지. 안 그래?”

후덥지근한 공기를 내보내려는 듯 세화가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 속에 숨은 상쾌함이 찝찝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무마시켰다.

“자, 먼저 그 선생님이란 사람의 뒷조사부터 시작해볼까.”

“스토커 짓은 안한다며.”

“당연히 거짓말이지. 라이어. 고객을 속이는 것 정도는 장사의 기본이잖아.”

비열한 장사치의 이미지가 세화와 겹쳐져 보인다.

“아, 맞다.”

“무슨 재미있는 거라도 떠올랐나봐?”

“아까 그 글 결국 누가 쓴 거냐?”

다음 날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있다가 세화에게 이끌려 현재 구석에 숨어서 교무실을 감시하고 있다.

몸을 쭉 내밀고 있어서 훔쳐보려는 것을 바로 들킬 게 뻔한 자세지만 다들 무시한 채 지나간다. 아마 엮기기 싫다는 마음이 강하겠지. 나도 그들과 같은 심정이니까 알 수 있다.

세화는 턱을 손으로 매만지며 으음 하고 신음을 흘렸다.

“농성전이라도 할 생각인가? 이렇게 눈치를 줬으면 나와 줘야 예의잖아.”

“…이봐. 그 선생님 사표서 썼다고 했잖아.”

“아, 맞다.”

그제야 생각났는지 세화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감탄했다. 아무래도 내 점심시간은 허무하게 날아간 듯 싶었다.

“장난이야. 그 정도도 기억 못해서야 이 짓을 어떻게 하겠어?”

“그럼 여기 왜 있는 건데?”

“기다려봐.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때마침 교무실의 문이 열리며 한 학생이 나왔다. 그 학생은 종종 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뛰어왔다. 보기 좋게 땋은 흑발이 살랑여서 한 마리의 건강한 말의 활기가 느껴지는 인상의 소녀였다.

소녀는 세화 바로 앞에서 멈춰서더니 활짝 웃으며 오른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성공했구나.”

“물론! 내가 누군데. 바로 정보상 김지은 아니겠니!”

자신을 지은이라 밝힌 소녀는 들고 있던 수첩 몇 장을 찢어 세화에게 건넸다.

“자, 네가 부탁한 ‘선생님’ 정보야. 비용은 언제나 그렇듯 내일 아침 7시 50분에 우리 반으로 와서 건네줘. 이번엔 좀 힘들었으니까 비싸.”

“상관없어.”

지은은 좋았어 라며 주먹을 쥐고 기뻐했다. 세화는 그런 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해 하고 있었다.

어째 나 혼자만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인 기분이 든다. 아까 홍아리의 기분이 이랬을까.

이대로는 뻘쭘하게 서서 이 둘을 구경해야할 것 같아서 지은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야?”

“소개하는 걸 깜빡했네. 이 녀석은 내가 애용하는 정보상이야.”

“안녕! 1학년 김지은이야.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비용만 지불하면 교장선생님의 10살 된 딸의 월경 주기도 알려 주니까.”

지은은 음흉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비볐다. 친구는 닮는다더니 세화와 어떻게 이리 똑같을까.

“마찬가지로 1학년 김재성이라고 해. 그리고 그런 정보 필요 없어.”

“로리콤 아니였어? 딱 봐도 소아성애자 처럼 생겼는데.”

“그러는 너야 말로 쇼타콤 처럼 생겼는걸.”

“맞아, 쇼타콤.”

간단하게 인정해버리는 지은. 내가 딱딱하게 세화를 돌아보자 세화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게 키 작고 귀여운 남자애라는 것 뿐이지, 별 문제는 되지 않잖아? 합법 로리라는 말이 있듯이 합법 쇼타도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말이지, 라고 운을 떼며 지은은 쇼타의 매력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여장을 시켰을 때 무진장 귀엽다나 뭐라나. 일반 남성에게 그런 걸 가르쳐 줘봤자 눈 뜨지 않는다고.

한참을 들어도 기세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지은에 세화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지은이 준 수첩 쪼가리를 들여다보았다.

“어디보자……이름은 한상호. 나이 27세. 학교 근처의 자취방에서 기생 중. 부모 없음. 여자 친구 없음. 친구 없음.”

“왕따냐?”

“아니, 주위 사람들이 다들 여자인데 관계가 애매해. 친구 이상 애인 미만? 그런 느낌이야.”

“작업 정신이 투철한 사낼세?”

“게다가 자각이 없는 천성 하렘인 이라나봐. 젊어서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고. 누구랑은 딴판이네.”

“거 참 죄송하게 됐수다.”

녀석 한 번 사람 신경을 박박 긁어주는 구만. 그러고 보니 아직 바닐라 통 아이스크림도 안 사줬다. 진심으로 절교하고 싶어진다.

내가 뾰로통해져서 투덜거리는 사이 세화는 수첩 쪼가리들을 획획 넘겨보다가 한 종이에서 멈춰서 넘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 그래?”

“한상호 선생님 주위에는 딱 한명밖에 동성친구가 없나봐. 그것도 담임으로 맡은 반 학생이네.”

“그게 뭐 어때서.”

“신기하잖아. 하렘남 주제에 근처에 남자도 있고. 원래 하렘이라고 하면 친한 남자 친구는 없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이 그쪽으로 밖에 안 돌아가?”

“무엇보다도 이름이 있어. 이찬우라는데? 우리랑 같은 1학년 생. 아무래도 수상해…….”

“어디 봐봐.”

세화가 건네준 종이에는 간략한 개인 정보와 함께 조그마한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꽤 인기 있을 것 처럼 생겼다.

“대인 관계 좋음. 성적 준수. 체력은 좀 딸리지만 꽤 만능이네.”

“하렘인 친구가 이런 스펙을 가져도 되는 거야? 건방지도다, 하렘인 친구.”

하렘에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세화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찬우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열변을 안 들어줘서 열기가 식었는지 지은도 다가와 내 어깨 너머로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간지러운 숨이 귓가를 간질여 기분이 묘하다.

“이 녀석…키가 작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들어.”

“복귀하자마자 유감스러운 발언이냐? 좀 더 이미지에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걸.”

“현실의 이미지는 필요 없어. 난 2D의 쇼타들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으니까!”

어째 점점 내 안의 지은 이미지가 추락해간다. 꽤 활기차고 귀여운 애일 줄 알았는데, 조금 아쉽다.

친구가 유감스러운 애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지만 세화는 여전히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중에 주름이 왕창 생기게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말이다.

“이 녀석 악당의 스멜이 나. 아무래도 이쪽도 조사해 봐야겠는걸.”

“악당은 무슨. ‘나 선인이에요.’의 얼굴이잖아.”

“칫칫칫. 그러니까 네가 안 된다는 거야. 제 3의 눈을 떠. 카드 게임 만화에 나오는 황금 눈 같은 거 말이야.”

세화라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이 아니라 켈트 신화의 발로르가 지닌 사안(死眼)을 가졌을 것 같지만.

“그럼 또 조사해줄까?”

“아니, 됐어. 이번엔 용돈이 빠듯해서 그냥 우리가 조사할래.”

“잠깐만. 그 우리에는 나도 포함되는 거야?”

내가 나를 가리키며 묻자 세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시간을 버리게 된 운명을 한탄하며 어깨를 늘어뜨리자 지은이 비둘기마냥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수고하라고, 제군들. 스토킹은 범죄니 들키지 말도록!”

지은이 군인의 장렬한 표정으로 경례를 하자 세화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나야 우울한 프레셔를 발산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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