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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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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급 매니저, 여동생담당 우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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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행아인가 행운아인가, 하필연
  • 모두의 대승운 파티, 대승운?!

 


12지장
글쓴이: 노트
작성일: 12-07-31 23:58 조회: 3,186 추천: 0 비추천: 0



12지장



0 - 불면증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양 여섯 마리. 양 일곱 마리. 양 여덟 마리. 양 열 마…….

“아씨 잘못 셌네. 다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양 여섯 마리. 양 일곱 마리. 양 여덟 마리. 양 아홉 마리. 양 열마…….


1 - 자파와 우파



“인사드리겠습니다. 자파의 총장 ‘정유장’님을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된 양가의 가주 ‘양하음’이라 하옵니다.”

“…….”

실내등은 꺼져있지만 커다란 창을 투과한 은빛의 만월 덕에 제법 환한 ‘정유장’의 침실.

이곳에 지금 저택이 세워진 이후로 처음 정유장 또래의 여성이 발을 들였다. 자신을 ‘양하음’이라 소개한 소녀는 달빛을 받아 더욱 백금으로 빛나고 있는 머리를 한번 넘겼다.

그 모습을 본 18세의 혈기왕성한 소년 정유장은 눈 둘 곳을 찾지 못하여 헤매이고 있다. 얼굴을 바라보자니 살짝 보조개를 패어 운을 띄었을 뿐인 미소가 은비녀와 어울려 너무 품격이 있어 자신이 작아져버렸고, 상체를 보자니 순백의 민소매 블라우스 밖으로 드러난 가늘고 흰 팔뚝에 눈이 저도 모르게 가는데, 그 팔을 따라 시선을 주욱 이동하면 가지런히 포개어 모은 두 손이 가리고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어 황급히 시선을 더 아래로 옮겼으나, 맨발인데도 먼지하나 묻지 않은 하얗고 조그마한 발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이 보여 결국 창밖에 시선을 두기로 하였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많이 놀라셨나보군요.”

“후우. 여기 앉을래?”

유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오는 하음의 질문을 무시하고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배려 감사합니다.”

하음은 품위있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침대가 미동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포시 엉덩이를 붙였다.

“자각몽이란게 이런 거였구나.”

유장이 자신의 볼을 꼬집으며 한 말이었다. ‘자각몽.’ 지금처럼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상태에서 꾸는 꿈을 자각몽이라고 한다는 것을 유장은 웹서핑을 통해 접한 바 있었다. 꿈이라면 상대가 엄청난 미소녀라도 긴장할 필요 없다.

“네?”

“아니야. 너 예쁘다고.”

“가, 감사합니다.”

또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예쁘다는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유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음의 백금빛 단발 머리 사이로 양의 귀가 삐져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양을 세며 잠들어서 양이 모에화 된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고양이를 셀 걸 그랬네.”

눈앞에 있는 양의 모에화 버전 소녀도 분명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유장은 양보다는 요염한 고양이가 취향이다.

“뭐, 고양이는 아니지만 너도 상당히 요염하니까 별 상관 없으려나?”

“무, 무슨 말씀이신지……?”

하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최대한 공손한 어투로 물었다. 무릎위에 포개어둔 손이 살짝 움찔한다. 이에 걸을 때도, 침대에 앉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목걸이의 방울이 청아한 소리를 울리며 잠시 금으로 빛났다.

이를 보며 유장은 ‘내 꿈 속 세계는 상당히 정교하구나.’하며 감탄했다. 볼을 꼬집었을 때 아프기까지 할 정도이니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 있는 꿈이다.

“좀 더 가까이 와볼래?”

자신의 말에 머뭇거리며 아주 조금씩 엉덩이를 옮기는 것을 본 유장은 츤근슬쩍한 성격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되었다는 것에 흡족해하였다.

유장은 팔에 힘을 실어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다시 누워버렸다. 하음의 무릎위에. 화들짝 놀란 하음은 무릎위에 올려둔 손을 치웠다. 목에 걸린 방울이 아까보다 더 밝고 크게 울린다.

“이, 이게 무슨 행동이-.”

“어? 잘 보인다. 그 방울 계속 빛나게 할 수 있어? 안 그러면 역광 때문에 니 얼굴이 잘 안보일 것 같아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자세를 바로해주시기 바랍니다.”

어금니를 최대한 꽉깨물고 가슴에 참을 인자를 세기며 말하는게 보인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기에 굳이 손을 써서 방울이 빛나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빛나주고 있다.

“부끄러움이 많구나? 정말 내 취향데로 잘 만들어졌다 너. 헤헤.”

유장은 그 떨림을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였다. 유장은 이 부끄러움 많은 양소녀를 더 부끄럽게 만들어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싶어졌다.

“잠시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귀 좀 빌려줄래?”

상사의 예의바른 부탁을 거절할 수 없기에 기분 나쁘지만 눈을 질끈 감고 찌그러진 미간을 최대한 다림질해가며 몸을 숙여 유장에게 귀를 가져다 대 주었다.

쪽-.

“잘 부탁해?”

귀에 있는 솜털이 부드럽게 입술을 간지럽혀 생각보다도 좋은 감촉이었다. 실제로도 이어키스의 느낌이 이럴지는 꿈이기에 모른다. 확실한건 이보다 좋지는 않을 것이다. 허구의 존재가 이렇게 리얼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였다.

“…….”

하음은 아무 말이 없다. 미간을 피려 노력하지도, 억지로 이빨이 갈리는 것을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처음 자신을 소개했을 때의 우아함은 온데 간데 없고 멍한 표정으로 몸이 굳어 있을 뿐이다. 유장은 뒷목이 닿아 있는 오른쪽 무릎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방울의 빛이 사그라들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피부가 붉게 달아올라 있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에 흡족해진 유장은 곧바로 다음 단계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입술에 키스 했을 때 얼마나 부끄러워할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턱을 살짝 잡아 얼굴을 마주보게 만들었다.

“읏!”

꿈이지만 이런 미인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마주보니 긴장이 되었다. 하음이 멍한 표정이 아니라 그 크고 맑은 눈으로 또렷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면 아예 숨이 멎었을 것이다.

“입술에 키스해도 괜찮지?”

자신의 창작물일 뿐인 존재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첫키스를 꿈에서 만난 허상 따위에 줘버려도 될지에 대한, 본인을 향한 질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작 꿈의 산물일 뿐이니까 키스해도 횟수에 포함 되지 않겠지?”

유장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하음에게 가져갔다.

“키……스?”

하음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몸이 크게 떨리기 시작한다. 새차게 울리는 방울소리는 이미 청아함이 아닌 소음이 되었다. 방울의 금빛이 투영되어 금빛이 되었겠거니 싶었던 눈은 스스로 백금빛 광채를 내며 빛나고 있다. 이어서 귀가 쫑긋해졌지만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 유장은 거기까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상치 않아.

유장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연이어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가 된지 2년차인 유장의 팔힘이 그간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팔힘만을 이용하여 사지가 정상인 하음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생아…… 누나가 미안한데, 이 새끼 죽이고 빵 들어가면 네가 가주 좀 맡아다오.”

‘가주’라는 말에 유장은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여긴 내가 창조한 꿈의 세계일 뿐이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조종할 수도 있을테고 실패하더라도 어차피 꿈일 뿐. 그렇게 마음을 먹자 눈 앞의 소녀가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아, 얼굴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를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다시 여유로워졌다.

“내 취향은 험담을 입에 담는 여자가 아니니까 다시 부끄러움 많은 소녀로 돌아와라.”

“흐, 흐흐흐…… 네 취향? 흐흐흐흐흐…… 곱게 죽고 싶지는 않나보구나?”

흠…… 내 내면에서는 이런 갭모에를 원하고 있었던 건가? 유장은 의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취향은 아니기에.

“죽어 이 새끼야!”

“크학-!”

미, 미친…… 아무리 꿈이 리얼해도 그렇지 진짜로 아프면 어쩌냐고! 하음의 박치기는 이미 그냥 아픈 수준이 아니었다. 유장은 사고 이후 2년만에 시야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다. 꿈이라해도 이건 벗어나야만 한다!

“제, 제발 그만 쿠헉! 제발!”

하지만 하음은 뭐라고 말을 해볼 틈도 주지 않고 쉴새 없이 박치기를 했다.

“후우…… 후우…….”

열 번이 넘게 박치기를 한 하음은 지쳤는지 잠시 고개를 들어 숨을 골랐다. 땀이났는지 이마엔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보기싫게 되었다. 유장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이마에 피가 나고 있었다.

“아빠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아빠 미안해. 가문 잘 이끌겠다고 약속했는데……. 하음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자파에 속한 다섯 가문 중에서도 그 중심에 있는 정가의 가주가 될 인물에게 위해를 가했다. 정신이 잠시 어떻게 되어 옥살이를 하는 대신 죽인다는 말을 했지만, 실상은 죽이기는커녕 뺨을 한 대 쳤다는 죄목만으로 무기징역감이다.

정유장은 자파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이다. 그런 존재의 이마에서 지금 피가 나고 있다. 누구 때문에? 양가의 1개월 된 가주 하음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이미 늦어 버린 것 같지만 유장에게 앞발의 굽이 달도록 빌어서라도 용서를 구한 후 상부에는 다른 곳에서 다친 거라고 보고하기로 짜는 수 밖에 없다.

“으아아…… 엄마 안녕? 천국은 어때. 좀 살만해?”

용서를 받기도 전에 제 정신이 아니게 된 유장의 이마에서는 피가 쉴새 없이 나오고 있다.

“어?”

그런데 피가 나오는 곳이 이상하다. 위에서 유장의 이마로 피가 떨어지고 있다.

이건 하음의 피다. 하음의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다. 화들짝 놀라 블라우스를 보니 피가 범벅이 되어있다. 아빠가 사준 건데. 변태새끼 때문에 돌아가시기 한달 전인 16살의 생일에 받은 마지막 선물에 입은 첫날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생겨버렸다.

“그냥…… 그냥 이렇게 된거 죽이지 뭐…….”

이미 상황이 상황인지라 용서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용서를 못봤는다고 봐야한다. 이 정도로 때렸으니 어차피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 선고다. 그럴 바엔 그냥 죽여 버리는게 나을 것이다.

“아빠…… 거기서는 엄마랑 사이 좋아보이네? 진작 좀 그러지 그랬어…….”

창의 반대쪽 벽에 그려진 그림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가는 무언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침대 위로 떨어진 은비녀는 흡혈귀의 심장에 박기위한 말뚝으로 쓰기에도 모자람 없을 정도로 끝이 날카롭게 잘 뻗어 매끈했다.

“후우…… 정말 하루빨리 이 성격을 고쳐야하는데.”

항간에서는 200년 전부터 온화한건 양가의 종특이라는, 200년 전의 조상들은 웃겼을지도 모르는 우스겟소리가 있을 정도로 양가의 일족이라면 당연히 온화한 성품을 갖추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31대 가주 양하음은 온화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소녀다. 그도 그럴것이 양하음은 양녀이다. 호적상 숙부인 자신의 친아버지와 적대세력인 우파의 사가(巳家)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법에 의거하여 15년 전 죽었어야 마땅한 소녀이다. 목에 걸고 다니는 방울이 사가의 소수 민족 ‘방울뱀 일족’의 징표이다. 사실 이제는 소수민족이랄 것도 없이 전멸 당한 민족이다. 양가에 의해.

그런 일족의 피가 섞인 자신을 양녀로 삼고, 가주의 자리를 물려준 아빠란 존재는 양어머니와 끝없이 싸우기만 하시다 얼마 전 양어머니와 함께 돌아가셨다.

그런 하음에겐 정신이 나가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내뱉는 유장의 말이라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동병상련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어쩐다.”

죽이지는 않기로 확실히 마음을 바꾸었으니 이제 다시 어떻게든 빌어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정신나간 놈한테 무엇을 사과하겠으며, 무엇을 연모할 수 있을까? 하음은 막막해져 없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이 고르게 될 때까지 마음을 진정시켰다.

최면을 걸자.

사실 오래 전에 떠오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위치의 인물에게 개인 사정으로 최면을 거는 것 또한 후에 발각 될시 엄청난 중죄이기에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 시점에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 마침 달은 만월. 초승달과 함께 최면의 효과를 가장 많이 증폭시키는 보름달이다. 아무리 자가의 가주가 될 인물이라지만, 계승권 4위의 인물인데다가 아직 각성조차 하지 않았으니 보름달의 힘까지 받는다면, 최대 두 달은 5분 정도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그 두 달 내에 유장과 친해져 이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묵인해 줄 것을 약조 받으면 된다.

“흠흠.”

최면을 건다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하음은 목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달의 기운을 받기 위해 유장을 내려놓고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행여나 저 변태새끼의 의식이 그동안에 돌아와 자신의 나체를 봐버리면 그 때는 정말 죽여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단추를 빠르게 풀었다. 옷을 벗을 때 나는 스르륵 소리야 말로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마의 음향효과라 생각하는 유장이 이 소리를 못 듣는다는게 안타깝다. 바쁜 와중에도 블라우스에 행여나 구김이 잡힐까 차곡차곡 개어 옆에 살포시 내려둔 하음은 이제 브래지어를 벗-.

브래지어는 입지 않았다.

그 덕에 옅은 끈 자국조차 없는 하음의 물 흐르듯 잘빠진 늘씬한 등은 만지면 사막의 모래처럼 부드러울 것 같았다. 그 사막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오아시스. 계곡 같은 등골은 유장이 보았다면 물을 부은 후 그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성수를 받아 마시고 싶다는 망상을 했을지도 모를정도로 깊고 아름다웠다. 왼쪽 어깨에 나 있는 작은 점은 맑은 물을 흐리는 검은 미꾸라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밋밋한 공백의 한지위에 떨어 뜨린 한 방울의 먹물같은, 흑일점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보다 진짜 약하네. 아무리 3대째 가문의 지원을 못 받고 자랐다지만 이정도라서야 원…….”

뒤를 돌아 확인해보니 유장은 여전히 뻗어 있었다. 안도를 한 하음은 치마를 벗어 던졌다. 치마는 아빠가 사준 것이 아니니 구겨지든 말든 별 상관없다.

어음…… 그런데 이거, 참.


짝-


이어서 분홍색 트렁크 팬티를 벗으려다 고개를 저으며 양쪽 골반 사이에 집어 넣었던 손가락을 꺼냈다. 트렁크…… 독특한 취향이다.

“속바지까지 벗을 필요는 없겠지?”

아, 속바지다.

몸도 마음도 준비를 마친 하음은 침대에 올라섰다. 달이 밝으니 그에 의한 그림자도 진해져 반대쪽 벽에 하음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인다.

“양가의 가주 하음이라하옵니다. 달님. 청하건데 부디 음의 정기를 베푸시어 곤경에 처한 저를 도우소서.”

두 손을 모으고 상당히 정중히 간청하긴 했지만 사실 의미 없는 행동이다. 달에게는 인격이 존재 하지 않으니까. 저 기도는 그저 미신 같은 것이다.

“으으으…….”

뚜두둑 거리며 척추가 맞춰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이 자세를 취하려니 영쉽지가 않다. 엉덩이를 뒤로 쭈욱 빼고 고개를 위로 향하는 것 까지는 요가의 일종인 ‘고양이 자세’와 같지만 그 상태에서 손으로 바닥을 받치지 않고 하늘을 떠받드는 자세를 취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 시키니 곧 서늘한 기운이 손끝으로 들어와 발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무는게 느껴졌다.

“후우~. 이만하면 됐다.”

음기가 충분히 모아졌다. 이제 세상만사 모르고 정신이 나가있는 치한에게 최면을 걸면 끝이다.

“조금 차가울 거랍니다? 총장 각하.”

음기가 서린 두 발을 유장의 어깨에 갖다대자 발에서 서서히 푸른 한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유장의 몸에 빨리듯 들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하음이 입을 열었다.

“메에에에에~ 메에~. 메에메에~.”

떨리는 성대가 만든, 방울 소리 보다 맑게 퍼지는 목소리였다. 감긴 눈 사이로 새어나오는 백금빛은 조금 무서웠지만, 그랬기에 ‘메에~’같은 소리가 가벼운 의성어가 아닌, 분명 나름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거라고 느낀 유장이었다.

유장은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언제부터?

하음이 옷을 벗기 시작할 때부터.

어깨에 차가운 무언가가 주입될 때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들켰다고 생각했지만 하음은 그러려니 했나보다.

그건 그렇고 어째 다시 정신이 이상해진다. 서서히 몽롱해 지는게 꼭 잠들기 직전 같은…….



◎ ◎ ◎



눈을 떠보니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여, 여긴 어디지? 구름 위입니다. 구름? 네. 용족의 은혜이지요. 그래? 이런 것도 있구나. 아 맞아! 아까 우파놈들한테 당할뻔 한걸 하음이 네가 도와 줬지?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걱정하실 정도는 쿨럭- 아닙니다. 저, 정말 괜찮은 거야?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닙니다. 총장님을 수호하는데 이 한몸을 희생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저, 정말 괜찮은거지?

대체 어디까지 최면을 걸어 둔건지 소름이 돋을정도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이걸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앗 손이 미끄러졌군요.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제3자라면 누가 봐도 고의로 멀리 던진 거였지만, 하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유장은 팔로 바닥을 짚어서 2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기꺼이 가기로했다. 구름의 특성상 뭉실뭉실해 힘주어 짚기도 힘들었다.

“제가 주워 드리고 싶지만 항해 중에는 한눈을 팔 수 없어 죄송합니다.”

그런 것 치고는 뒤를 보며 상당히 천천히 말한다.

“아니야 이정도 쯤이야 뭐. 가끔 생기는 침대밑에 리모컨이 들어간다던가, 형광등을 갈아야하는 일보다야 훨씬 쉬우니까.”

라고 말하지만 1m를 나아가는데에도 식은땀을 흘리는 유장을 보며 하음은 의문이 들었다.

왜 걸어가지 않고……?

팔힘에만 의지해 던져준 태블릿PC를 향해 나아가는 유장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지켜본 결과 하음은 두가지를 깨달았다.

나 분명히 한눈 팔 수 없다고 말했었지 아마? 그보다 다리…….

하음은 화들짝 놀라 품에서 유장을 만나기 전 받았던 유장의 신상명세서를 꺼냈다.

신체 특징- 하반신 마비

“…….”

지금껏 쌓아왔던 윤리관이 찰나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비록 성격이 더럽다는 건 자신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건 지키며 살아온 하음이다. 그런데 아픈 사람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왜. 왜 주의깊게 보지 않았었을까?

“헤헤 잡았다 요놈. 고마워 잘 읽을게! 하음 너한테는 오늘 여러모로 빚지네?”

아아.

죄책감이 몰려오는 하음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구름 밑바닥에 붙어있는 사람은 누구야? 하음의 친구?”

“네?”

“아까부터 구름 밑바닥에 누가 있길래 친구인가하고.”

구름 밑바닥에 누군가가 있다고? 설마 그럴 리가. 아직 각성도 하지 않았는데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늘 고초를 겪으신 탓에 몸이 잠시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좀 더 안정을 취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살면서 내 감각이 틀려본 건 단 한번뿐…… 아, 알았어.”

유장은 갑자기 낯이 어두워졌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것일까? 하음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아닐까하고.

“앗. 저도 뭔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잠시 살피고 오겠습니다.”

그래서 동의해 주기로 했다. 십이간지의 후예들 가운데 둔하기로치면 세손가락 안에 드는 양의 일족에게 은신을 간파하는 능력이 있을리가 전무하다.

“어? 한 눈 팔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아까는 눈치 못 채더니 이럴 때는 또 잘만 알아 챈다.

“새, 생각해보니 네비게이션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하……. 타고난 기계치라 그간 써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우연히 작동 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

“의외로 기계치구나~. 하음 넌 뭐든 잘 할 것 같았는데 헤헤.”

잘한다. 참을 인자를 새기는 것만 빼면. 특히 전자기기를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얼리어답터라는 소리를 들을 이해력이 높다.

“아하하 네 하하…….”

대충 웃어 넘긴 후 구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보니 역시.

“어?!”

“너는?!”

이런. 누군가가 있었다.

“꺄아-! 계집애~ 얼마만이야!”

“어? 하하 그러게?”

하음이 저렇게까지 날뛰며 손을 정신없이 흔들고 있는 대상은 하음의 소꿉친구 ‘계지애’. 계가(鷄家)의 가주 제 1계승권자다.

“여기서 뭐해~ 어서 올라가자!”

“아, 으응.”

넌 이미 실패했어. 멍청한 것.

“총장님의 말씀이 진짜였습니다!”

구름 사다리를 올라오는 동안은 나를 떨어뜨리기에 좋은 타이밍이었다. 역시 목적은 내가 아니라 변태인가. 아니, 그렇다해도 어째서? 나를 용운에서 떨군 후 처리하는 편이 쉬울텐데?

“그래? 헤헤 사실 이번에는 나도 좀 긴가민가했거든. 뭔가 어떤 기운이 가로막아서 제대로 파악이 안되더라구.”

위장술과 수준 낮은 은신술. 상대는 원가(猿家)놈이다. 상대가 적이라는게 보다 확실해 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원숭이라는 족속들은 예로부터 잔꾀가 가득한 놈들이기에, 아직 함부로 싸움을 걸 수가 없다. 구름다리에서 하음을 떨어뜨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 분명히 뭔가가 있다.

“안녕하세요. 계가의 장녀 계지애라고 해요! 총장님을 뵙게 되어서 실로 영광이에요!”

“하하 부끄럽게. 나도 지애처럼 귀여운 꼬마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

“꼬, 꼬마…….”

“총장님. 지애는 저랑 동갑이랍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어디로보나 딱 초등학교 5학년 남짓 되어보이는 이 아이가 16세라니!

계가의 종특인 붉은 머리와 어깨에 달린 짧은 날개. 너무 가늘어 툭치면 으스러질 것 같은 다리. 이 요소들이 키가 작은 지애와 만나니 붉은머리의 꼬마천사 같은 느낌이라 도저히 옆에 서있는 하음과 동갑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았다.

“응? 그, 그렇니?”

“네에…….”

이 모습을 지켜본 조금 당황스러웠다. 너무나도 똑같다. 꼬마라고 불렸을 때의 반응이. 연기일까?

“아하하. 그, 그렇구나. 장난이었어 장난~. 그보다 왜 아래에 있던 거야?”

유장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총장님 그건!”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면 저 놈은 바로 들키는 꼴이된다. 그럼 앞뒤 볼 거 없이 덤벼들게 뻔하다. 놈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지금 시점에서는 구름사다리를 올라올 때 반지의 버튼으로 호출을 한 가주들이 호위를 하러 올 때까지 시간을 끌며 기다리는게 최선이다.

“깃털 통에 깃털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아서 채우고 있었어요. 용운의 겉은 양털이지만 내부는 닭털로 만들어져 있거든요!”

타당한 이유다. 실제로 현재타고 있는 5호 용운은 깃털이 조금 부족했다.

“아~ 그런 거였어? 난 이게 진짜 구름인줄 알고 신기했었거든.”

“계집애 연락하고 오지 그랬어?”

하음이 떡밥을 한번 더 던지자 돌아온 반응은 하품이었다.

“하~아음~. 하음! 우리 다른 사람 앞에서는 서로 별명 안부르기로 했잖아?”

어? 뭐야. 얘 진짜 지애야?!

“아…… 그, 그랬지?”

“하음한테 별명도 있어?”

변태는 아직 하음의 별명이 ‘하~아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음의 별명이요? 말그대로 하-.”

“야!”

하음은 서둘러 지애의 입을 가로 막았다. 이미 탄로난 분명 방금까지만해도 자신의 별명이 유장에게 알려졌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을텐데, 의외라는 반응으로 으우웁 거리며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음에게 뭐라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장은 그 모습이 사이좋은 자매같아 미소를 지었다.

“푸하- 내 별명은 그렇게 마구 불러댔으면서! 치사해 하음!”

“부, 부끄럽단 말이야.”

하음이 유장에게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손가락을 비비꼬며 한 말이다. 이 모습 역시 사정 모르는 유장이 뒤에서 봤을 때는 사이좋은 자매가 굿나잇 뽀뽀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뽀뽀’하니까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몸에 오한이 오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어? 하음! 이마가 왜그래? 흐잇- 그러고보니 블라우스도!”

지애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피자국을 본 것이다.

“하음이 아까 우파 그 나쁜 녀석들한테 공격받을 때 날 지켜주다가 다친 거야. 하음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우읍!”

이번에는 전속력으로 달려 유장의 입을 막았다. 유장의 혀가 잠시 닿았지만 나중에 항균비누로 깨끗하게 씻으면 되니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우우으우웁!”

유장 역시 갑자기 왜 이러냐는 얼굴이다. ‘제발 눈치 없게 나대지 좀 말고 잠자코 있어주시죠 총장님.’ 이라는 말이 식도 끝까지 타고 올라왔지만 간신히 자제했다.

“부, 부끄러워서요.”

“푸아~. 그런 거구나. 하음은 칭찬에 약한가 보네?”

“아. 네, 뭐. 그렇습니다. 저 잠시 아까 우파에게 쫒길 때 드린 그 반지에 대고 ‘가주 소집해체.’라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유장이 자고 있을 때 하음이 끼워뒀을 뿐. 대체 기억조작을 얼마나 치밀하게 해둔건지 알수록 무섭다.

“그, 그런 만화 주인공 같은 부끄러운 짓을 나보고 하라고?”

그냥 좀 해라. 사내놈이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많이 때리고 싶거든.

“부……탁드립니다.”

안 나오는 말을 억지로 입밖으로 꺼내려니 식은땀이 흐른다. 변태에게 부탁이라니.

“지애가 있는 곳 까지 들리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그래.”

달빛에 얼굴 한쪽에 그림자가 낀 비장한 얼굴은 제법 무서웠기에 유장은 상대가 내세운 적도 없는 기백에 눌려 어느새 ‘그까짓거 그냥 하자.’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있었다.

“가주 소집해체.”

개미도 이거보다는 크게 말할 것이다.

“……너무 작습니다.”

네 기백에 눌려 큰 소리를 칠 수가 있어야지…….

“가주 소집해체.”

큰 발전이다. 개미보다는 크게 말했다.

“후우…… 총.장.님?”

“히익- 가, 가주 소집해체!”

쓸데없을 정도로 크게 말했다.

“에?!”

그 소리에 떨어져서 지켜보던 지애가 경악했다.

“너, 너 각성 한 몸인거야?!”

계획대로다.

“응 몰랐어? 그보다 지애야. 총장님께 너가 뭐니 너가?”

아까 무슨무슨 새끼라고 한건 하음의 도플갱어쯤 되나보다.

“아니, 원숭아?”

“저기…… 너희 갑자기 왜 그래?”

유장이 순식간에 거칠어진 분위기를 눈치 채고 말했다.

“혹시 나를 두고…….”

눈치 한번 겁나게 없다.

“알고 있었던 거냐?”

말을 마치더니 지애의 얼굴에서는 도저히 나오기 힘들어 보이는 더러운 인상을 쓰며 허상의 껍질에서 탈피했다.

“어억! 저, 저게 뭐야!”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보기에는 상당히 구역질 나는 장면이다.

“두명의 가주를 상대로 승산이 없다는 것쯤은 네 그 교활한 머리에서 이미 계산이 끝났을 터. 꿇어라.”

“어떻게 안거지? 분명 거의 다 넘어 왔었을텐데……!”

이 말에 하음은 왼쪽 입꼬리를 올려 한쪽 보조개를 깊게 패었다.

“입술.”

“입술?”

“으윽 이, 입술?!”

이 와중에 입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유장은 또 오한이 왔다. 영문을 모르니 미칠 노릇이다.

“계가의 아이들은 말이야. 취소. 우리 지애는 아이가 아니라 숙녀니까. 계가의 덜 성장 된 사람들은 말이야 입술 안에 부리가 아직 완전히 흐물흐물해지지 않아서 딱딱하거든. 그런데 너는 아~주 말랑말랑하더라. 아쉽네? 그것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오래 속일 수 있었을텐데 말야?”

“크흐흐흐흐…… 그런거였나? 실수. 인정하지. 자 어서 내 목을 쳐라.”

원숭이는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어보였다. 원숭이가 말을 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릎을 꿇은채 뒷짐을 지고 있는 것도 상당히 신기하다.

“여기서 죽일 생각은 없다. 고개를 들어라. 목줄을 걸기 불편하거든.”

하음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목줄을 채찍처럼 착착 소리가 나게 잡아 당기며 원숭이에게 다가갔다.

“의외로 고분고분-.”

“퉤!”

목줄을 채우기 위해 상체를 숙인 하음의 얼굴에, 눈에 침이 날아왔다.

“너흰!”

“꺄앗-!”

“실수 한!”

“쿠흐핫-!”

“거야!”

“으아흐윽…….”

원숭이는 바닥에서 튀어오르더니 말한마디를 마치기 전에 얼굴, 복부, 골반에 차례로 스트레이트 어퍼컷 로우킥을 날렸다. 하음은 예상치도 못한 기세에 어느새 몸의 중심을 잃어 무릎을 꿇고 있다.

“하음!”

“등신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고 소집 해체를한게 오늘 너희가 죽는 이유다. 저승갈 때 잘 기억해 둬!”

“그만둬!”

악당스러운 대사를 친 원숭이는 유장의 말따위는 무시했다. 각성을 했다지만 1시간도 되지 않은 녀석따위는 사실상 일반인과 다를바 없다.

겁에 질려 동료를 구할 생각도 못한채 바닥에 앉아만 있는 유장에게 썩소를 날리며 무릎을 꿇은 하음의 얼굴에 찍어차기를 선보였다.

선보이려했다.

“있잖아…… 꼬마야. 누나가 오늘 어떤 변태새끼 때문에 안그래도 기분이 더럽거든? 그래서 누구하나 잡아서 반쯤 죽여버리고 싶어. 그런데 누나가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를 막 때리고 그러면 정당방위가 설립이 안되잖아? 근데 이만하면 될 것 같아.”

하음이 원숭이의 발목을 잡고 한 말이었다.

“하……음?”

“꼬마가 아니야! 열여섯 살이라고오!”

하며 오른발을 속박하고 있는 손을 풀고 그래도 다시 내려찍는다면 제법 멋졌겠지만.

“어, 어어? 이거 왜 안 빠져!”

애당초 속박을 풀 수가 없었기에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보름달이 떳더라고.”

하음의 손에 한기가 서려있다. 하음은 진심으로 기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섬뜩했던 원숭이는.

“아악-!”

오른발을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하음의 손을 지지대삼아 왼발로 하음의 턱을 걷어찼다.

호랑이는 한번 잡은 먹이는 놓치지 않는다. 이건 양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하음은 그 와중에도 원숭이를 놓치지 않고 하늘로 들어올려 바닥에 내리쳤다. 원숭이는 다가올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

바닥은 푹신푹신했다.

“아오 진짜 미춰 버리겠네!”

“헤헤 고마워 이렇게 살려줘서!”

하음의 손에서 벗어난 원숭이는 하음이 포효하는 사이 빛의 속도로 줄행랑을 쳐서 용운 아래로 뛰어내렸다.

“후우 글렀네.”

잠시 밑으로 추락하는가 싶었던 원숭이는 호랑이의 형상을 한 작은 나룻배에 착지했다. 날개도 없는 것이 참 잘난다.


그렇게 원숭이는 놓쳐버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페이크가 아니라 진짜로 소집해체를 해도 되겠다.

“소집 해체입니다.”

라고 반지에 대고 말한 순간 멀리서 세 개의 용운들이 보이기시작했다.

“이런.”

각각 묘가(卯家), 마가(馬家,) 계가(鷄家)의 가주들이다.

양측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하음은 반가운 얼굴로 와줘서 고맙지만 상황은 이미 끝났어. 라고 말했다.

“알고 있구마. 이 원숭이에게 들었구마.”

마가의 가주 마제환이 한말이다. 마제환의 옆에는 아까의 그 원숭이가 헤어질 때보다 많이 아파보이는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원숭이가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듣자하니 달의 기운을 쓰셨다고…….”

“하음! 정말인거야?!”

이런……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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