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블엔진 팝이 오덕계 일러스트를 차용함으로써 순수한 본래의 의도를 망각했다'는 문제제기는, 엄밀히 보자면 적합한 맥락을 관통하는 지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문제제기가 함의하는 방향성의 가이드는 최소한 유효합니다.
저는 노블엔진 팝이 오덕계 일러스트를 '불순한' 목적에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구도를 빌어 변론하고 싶습니다. 아이러니한 레토릭을 잠시 구사하자면, 노블엔진 팝은 노블엔진 팝이 아닙니다. 노블엔진 팝은 '근본적으로' 노블엔진입니다. 극단적으로 이 역설을 밀고 나가자면, <노블엔진 팝>은 <노블엔진>이라는 고유명에 단지 '팝'이라는 부적인(sub에 불과한) 수식이 붙은 것에 다름없는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노블엔진 팝이라는 브랜드는 아직까지는 노블엔진의 그림자를 벗어나 하나의 독자적인(그리고 독립적인!) 브랜드로서 안정적으로 형태화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거죠. 그래서 환상입니다. 환상이 아닌, 철저히 현실적인 현실이기에는 그러한 현실에의 조건이 덜 갖춰졌다는 거죠.
이 조건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명료해집니다. 그것은 노블엔진 팝이라는 브랜드가 태생적으로 모호성을 모태로 삼고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즉, 라이트노벨부터가 규범적인 언어로 다수에게 합의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라이트노벨의 '멀티'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 장르 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가 그 원형부터가 불분명하기에 그 자신도 심히 애매모호한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죠. 이제 경제적인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그것은 '수익성'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블엔진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자체적 내수 라이트노벨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본의 규모는 영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본진도 자원이 얼마 없는 상황에서 멀티를 짓는다? 당연히 그것은 '노블엔진 팝'이 쪼들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배경을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모호성'도 수익성의 시발적인 한계에 기여합니다. 노블엔진 팝을 단적으로 명쾌하게 규정할 수 없으니(즉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규정 짓고 그 규정을 실천할 수 없으니) 총체적이고 효율적인 집합적 출판 기획을 시도할 수가 없는 것이죠. 이것은 설사 충분한 자본이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생산성으로 직결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자, 이렇게 노블엔진 팝이 현재로선 환상으로서의 무엇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해보았습니다(물론 그것이 환상이라고 해서 무효적인 것 내지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레토릭, 메타포예요). 그렇다면 자연히 '미소녀 일러스트'가 노블엔진 팝의 현재 성과물들에 수반되는 현상의 개연성도 드러납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하게도, 수익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그리고 규정되지 못한 정체성의 혼란을 부분적으로 지연시키기 위해) 그렇게 연유된 거예요. 노블엔진 팝의 주요 독자는 대체적으로 노블엔진의 기성 독자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죠(당장 '노블엔진'의 pop이니까요). 그러한 주요 독자층에게 마케팅적으로 어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그들에게 익숙한 것을 함께 제공해주는 거예요. 익숙하며, 강력한 것. 그것은 '미소녀(혹은 그것이 연관되는 이미지 효과!)'입니다.
너무 노블엔진 측의 손만 들어줬나요? 그래서 이제는 스파이킴 님의 의견도 그것이 수렴될 필요성(정당성)을 주장해보고자 합니다. 스파이킴 님의 사견의 엑기스를 추출해보자면 바로 이런 거예요. "노블엔진 팝이 출범한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그간 라이트노벨의 '묵시록'이었던 한정적 시장성을 돌파해, 시장을 확대하고, 새로운 라이트노벨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는 거였잖아? 근데 그런 당초 목적의 순수성을 잃은 채 스스로도 갈피 못 잡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러다가 죽도 밥도 안 되고 자멸해버린다고?)"
사실 이 자체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블엔진, 나아가 한국 라이트노벨계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정이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저는 그래서 뭐라고 덧붙여서 이 정론다운 정론을 강화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훌륭한 따끔한 충고 아닙니까? 물론 노블엔진 팝의 현실적인 여건(그리고 초기의 필연적인 시행착오들)을 간과해서 비교적 어긋난 맥락에서 발화된 지적이기는 하지만요.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사상(거창한 의미가 아니고, 말 그대로 생각의 체계라는 뜻입니다)을 취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의 표현론적인 흠결을 단지 헐뜯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상의 정수를 추출할 수 있게끔 가능한 한 그것의 고유한 맥락.의도를 존중하면서 우리 자신(여기서는 노블엔진의 미래)에게 적용될 수 있는 긍정적인 의의.의미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깔 건 까구요. 그래서 저도 깠잖습니까? 허허.
러브 & 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