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서든 다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만큼 금기를 중요시 여기는 나라가 많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특히 '금기'라는 것이 중요한 맥락을 가진다.
이 작품에서도 여러 '금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나 민담, 기담 등 옛날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자주 나온다. 그 예를 들자면 한문설화부터 시작해서 근대 소설까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민담 및 설화, 전설 등에서의 '금기'는 어길 경우 불행해진다는 그 속성이 중요하다. 그러하여 구비되어 전해져오면서 그 내용은 약간씩 바뀔지라도 그 '금기'에 대해서는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금기'란 것은 ~하지 말라는 제한이 있으며 반대로 그 '금기'를 깨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존재한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 '책' 또한 여러 제한적 '금기'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유랑화사'라는 제목을 보고 왜 '유랑화사'라는 제목을 붙였나 라는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왜 유랑화사인지 궁금했다(사실 처음 봤을 때 유랑회사로 봤다. 회사.. 회사.. 기업..).
그 어떤 나라에서도 민담이라는 소재는 구비문학으로서 전해진다.
이러한 내용들이 구비문학으로서 여겨지는 건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이고 그 틀에 구애받지 않고 한 소재를 여러 결말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더 간단히 말하면 그냥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에...).
일단 구비문학의 특징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므로 그것은 어디든 돌아다닌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작품 내 '화사'는 자신을 '떠돌이'라고 표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에서 떠돌이라는 건 오랫동안 있었온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 보부상이 아니겠는가? 그 어떤 지역에서 전해져오는 전설 또한
재미가 있다만 여러 마을을 떠돌아 다니며 그 전설을 듣고 다른 곳에서 약간 달라진 전설을 말하며 그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약간씩 바뀌어 그 내용이 많이 변형이 되어 전해지는 그 민담 전설
이것이 '떠돌이'의 의미인 것 같다. 화사를 다르게 화자인 '말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생각해보고 싶다.
이제 각설하고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여러 '금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내용은 우리가 본 익히 배우고 들은 내용과는 약간 다르다. 하지만 그 '금기'에 있어서는 우리가 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우라는 '금기'.
이 책에서는 여우의 목숨의 '금기'가 나타난다.
여우라는 소재는 우리에게 간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특히 여우 중 구미호는 남자의 간을 먹는 이미지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여우는 핍박받는 존재로 나온다. 욕심으로 가득찬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욕심 때문에 여의상자에 갇힌 여우.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여우와는 다른 그 주객이 바뀐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하여 여우의 목숨이 다 하여 그것에 대한 대가가 돌아오는 '금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금줄이라는 '금기'
다른 이야기에서는 금줄의 소재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금줄은 여러 가지 소재로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게 부정(不淨)을 쫓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그 의미로 쓰였다.
'금줄을 넘어서는 안 된다' 부정한 것은 그 어떠한 것도 금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금기'이다. 본책에서는 죽은 각시의 혼령이 나타났지만 '금줄'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 '금기'는 화사가 오고나서야 깨졌다.
이 금기가 깨짐으로써 혼령은 자신의 갈망을 푼다.
선녀로서의 '금기'
다음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이 보통의 민담을 내용으로 사용했을까? 아니다. 이 책의 내용 또한 우리가 흔히 아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에서의 '금기'는 '보이지 마라'지만 이 책에서는 '마시지 마라'라는 금기가 나온다.
결국 선녀는 금기를 어겨 그 대가를 받는다.
어머니로서의 '금기'
양반 집안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옛날 조선시대에는 서자와 얼자가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서자의 대표격인 홍길동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신분적인 위계가 뚜렷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전 세계 공통적으로 같을 것이다. 자신을 낳아주신 존재 길러주신 존재.
하지만 신분적 위계가 뚜렷한 옛날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양반인데 자신의 어머니가 노비라는 그 상황은 양반의 자제로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어머니로서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단순하다 자신이 어머니로서 자식을 사랑하는데 신분이란 것이 중요할까? 하지만 본책에서는 최대한 밝히지 않고 지내면서 자신의 자식을 최대한 위하고 아끼고 생각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죽어서도까지 자식을 아끼는 것 그것이 어머니가 아닐까? 또한 그것이 '금기'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이 책을 우리나라의 '금기'로서 살펴보았다. 이 책이 갖는 내용으로서 '금기'가 무엇일까? 어떻게 나타날까? 라는 것을 생각해보며 본 것이다(절대 리아가 좋아서 산 게 아닙니다. 리아...)
모든 에피소드가 연결되는 피카레스크 방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어있는데 이것이 하나하나 끊기는 내용이고 주제지만 말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인 것 같다.
떠돌이의 이야기
본책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안 나와있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민담이야기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서 그림쟁이인 화사는 그 계급이 아주 천하다.
떠돌이의 이야기로 표현이 되었지만 그 화사의 시야로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은 극과 극을 보여주며 나타난다.
'금기'를 어기며 그 대가를 받는 이야기. 이 작품을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자면 '목각인형'인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어머니라는 소재는 그 어떠한 것보다 우선된다.
무슨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