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전. 군대를 입대하기 전에는 매달 3~4권씩은 꼭 라노베를 샀다. 하지만 입대를 하면서 라노베에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막 입대 했을때만 하더라도 '신작들 보고싶당 ㅠㅠ'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서 동생에게 이것저것 사라고 시켰었다. 하지만 그게 10권, 20권이 넘게 쌓이기 시작하자 도저히 처리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휴가나와서 3권 보고 다시 들어가면 20권이 쌓였다. 그렇게 못 본 라노베가 전역할 땐 60권에 달했다. 전역하고서는 군대의 영향인지, 아니면 다른 영향인지 알 수 없지만 라노베를 볼 시간 자체가 없어졌다. 흥미가 없어졌다. 유일하게 미얄시리즈를 챙겨 봤고, 그 외에는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2학년, 3학년이 되면서 점점 취미생활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기도 했다.
이런 잡담을 늘어 놓는 것은 최근 라노베의 트렌드를 잘 모른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함이다. 전역 후 본 라노베는 사쿠라장,미얄, 나와 호랑이님 이 세개가 끝이다. 그러니 내 감상은 어느정도 (구)라노베에 대한 향수를 담고서 본 그릇된 시선일 수도 있다. 사실 이 두 권의 라노베를 산 것은 어느정도 충동에 기인한다. 간단하게 말하지면 지름신이 강림하신 것이다. 순전히 내용은 관심이 없고 일러스트 70%, 제목 30%정도만 고려해서, 지름신의 강림에 의해 산 것이다.
먼저 매관매직 스크램블. 사실 일러스트만 보고 구입하긴 했지만 내용을 완전히 기대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배경은 조선시대. 폭군의 폭정은 소녀왕의 등장으로 끝을 맺고 이제 막 어지러웠던 나라가 안정되어가는, 아직은 불안정한 시대이다. 여기서 '조선시대에 어떻게 소녀가 왕이 되냐;;'라던가 '역사 왜곡 쩌네;;'라고 태클건다면 그건 라노베를 즐기려는 기본 자세가 부족한 것이다. 어느정도 작가가 제시한 비 현실적인 '설정'은 설정으로 존재하고 그래서 특별히 생겨난 '가상'의 세계를 즐기는 것이 환상문학이 아닌가? 주요 재제인 마법소녀에 대한 것 역시 '으음..그래? '싶은 마음으로 인정 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어느정도의 가상성을 인정한다 해도 중간중간 걸리는 부분이 많다. 일단 현대문물의 등장이다. 녹음기도 나오고 CD라는 단어도 나온다. 영어까지 퍼져 있다. 말투 또한 그렇다. 본관, 소녀, 있사옵니다.. 등등 구어체로는 몇 백년 전인 조선시대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현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유행어를 사용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설정한 시대 배경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꼭 배경을 조선시대로 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가장 하고 싶었던 드립인 '탐관오리가 쓰는 마법은 매관매직!'을 하고 싶어서 조선시대를 한건지, 아니면 1권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작가의 숨은 뜻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매관매직 스크램블의 시대적 배경은 아주 어색하다. 최근 한국형 라이트노벨에서는 인터넷 유행어의 사용이 아주 활발하다. 후술할 아빠하고 나하고 YO에서는 그 특징이 아주 크게 드러난다. 꼭 이 두권이 아니더라도 어느 한국산 라이트노벨을 보면 주로 사용되는 드립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것은 라이트노벨 독자층인 10~20대 남자를 노린 아주좋은 수단이다. 보통 라이트노벨 독자들은 라이트노벨만 읽지 않는다. 게임도 하고 애니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다른 라이트노벨도 본다. 그러한 독자들에게 '패러디'로 받아들여 지는 인터넷 유행어의 사용은 최근들어서 정형화 되어있다..고 느낀다. 사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매관매직 스크램블이라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무분별한 언어로 인해 배경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몇몇 소재들(암행어사, 매관매직, 양반 등 조선시대의 냄새가 나는)을 제외하면 전혀 조선시대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 부분을 위에서 말 한 것처럼 작가의 설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조금 더 설명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CD나 성우, 온라인 게임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는데 왜 컴퓨터를 사용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가? 라고 물었을 때 대답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설정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는 이야기 전개에 대해서 말 하고 싶다. 오랫만에 라이트 노벨을 읽으면서도 전혀 새롭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프롤로그에서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초반에는 주인공/히로인의 등장. 독자가 실실 웃게 만드는 터지게 하는 개그를 선사하고, 짤막짤막한 몇 가지 사건을 제시한다. 중반부에는 슬슬 그 권에 등장할 대형 사건의 암시가 나타난다. 그리고 갈등이 고조되면서 그 권에서 다룰 가장 큰 사건에 등장한다. 매관매직 스크램블 1권에서는 윤서의 등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멋지게 등장하면서 해결. 2권 암시. 이 구도가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구도는 라이트노벨에 있어서 교과서 적인 구도이며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장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구도이다. 비단 라이트노벨 뿐 아니라 크게 보자면 모든 서사텍스트의 기본 골자이다. 그러면서도 각 권에서 한 개의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라이트 노벨에 있어서 최상의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크나큰 단점이다. 비단 매관매직 스크램블 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라이트노벨이 이러한 구도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매관매직 스크램블 1권을 보면서 프롤로그에 불과하다는 인상이 아주 강하게 남는다. 도망친 소녀에 대한 내용이나 12지신을 본 뜬 소녀들은 처음에만 살짝 나오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2권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이런 구도를 많이 접해 본 독자에게는 '아 뻔한 구도네;;'라고 하면서 아예 기대를 접어버리게 만든다.
캐릭터 측면에서도 아주 정형화 되어있다. 민폐형 히로인과 태클담당, 사건수습형 (그러면서도 눈치 없는) 주인공 + 그 외 보조 히로인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부터 시작한 어느정도 강함을 가져서 민폐짓을 할 수 있는 히로인과, 태클걸면서 그 민폐에 휘말리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캐릭터성 또한 아주 정형화 된 구도이다. '아 이 소설 지젼 뻔함;;'이라고 말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이야기 전개와 마찬가지로 이 설정은 독자들에게 익숙하고 그만큼 흥행을 보장하기 때문에 아직도 사용되는 것이다. 캐릭터성에서 그나마 특징이라고 한다면 보조 히로인인 윤서가 1권에서 등장하는 주 사건의 반동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배신하는 동료' 클리셰와 어느정도 유사성을 가진다. 캐릭터 성에서 전혀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관매직 스크램블을 그냥 뻔하고 저급한 라이트 노벨이라고 매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매관매직 스크램블은 노블엔진이라는 회사에서 선정해서 출판 할 정도로 기본 골자와 재미를 탄탄하게 갖춘 라이트 노벨이다. 아직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내지 못한 내가 평가를 한다는 것 조차 과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특별히 이 소설을 읽어야 겠다, 이 소설을 누군가에게 추천 하고 싶다, 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라이트 노벨의 가장 큰 목적인 '(주로 덕질하는)독자에게 모에요소를 첨가한 소설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너 이거 꼭 사서 봐라 ㅋㅋㅋㅋㅋㅋㅋㅋ'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는 없었다.
그 다음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라이트 노벨은 아빠하고 나하고 YO이다. 절대로 일러스트에 혹해서 샀다. 어린애 YOOOOOOOO!!! 너희들 이 책 절대 보지마 아청법으로 잡혀가 YOOOOOOOOOO!!!!!
...는 개드립이 될 것 같으니 그만두고. 먼저 아빠하고 나하고 YO에서 가장 큰 특징은 짧은 화를 연결해서 보여주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점이다. GJ부에서 처럼 4컷만화를 보는 듯 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간단간단하게 볼 수 있고 큰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초 먼치킨 은하 아빠와 10살 소녀 은하가 만들어내는 약간은 비일상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그걸로 끝이지만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앞서 말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기본구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이점은 어느정도 실행 된지 지났지만 아직까지 메이져한 단계는 아니다. 독자에게 신선함을 주기에 좋다. 또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더 친숙하다. 일상물은 잘 못쓰면 아주 재미없어진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비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소설을 본다. 하지만 일상물은 특별한 점이 없다면 그렇게 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빠하고 나하고 YO는 독특한 캐릭터성을 통해서 일상물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즐거움이라는 두가지 토끼를 둘 다 잡아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배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드립들, 주로 앞서 말한 인터넷 유행어의 사용이 자유롭다.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쉽고 또 재밌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흔히들 말하는 '캐릭터가 살아있다'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은하는 10살이지만 10살 소녀의 모습은 아니다. 많이 알 것 다 알고, 순진하기만 한 어린 소녀가 아닌 동시에 귀여움과 천진난만함을 가진 어린 소녀이다. 유리, 혜지, 웬디 그리고 다른 캐릭터들도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고 그 캐릭터성의 활용이 뛰어나다. 자칫 잘못하다간 심각한 주제가 될 수 도 있는 '버려진 아이'라는 점을 무덤덤하게 표현해 낸다. 메인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 특성을 통해 훈훈함 또는 즐거움을 이끌어 낸다. 무난하게 사용되는 구성을 탈피 하면서도 '꼭 이 소설을 봐야 하는 이 소설만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주변에 라이트노벨을 쓰려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하라고 보여 주고 싶은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