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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터는 나르닥이다. 남캐를 적극적으로 그리는 점과 일상물을 주로 맡는 것이 특징인데, 또 하나 눈여겨 봐야할 점은 시노노메 유우코 시리즈, 그녀는 천재다, 그리고 소심한 복수 사무소까지 세번에 걸쳐서 작중의 주역들을 유학보냈다는 것이다. 나르닥이 일러스트를 맡은 작품은 그 외에도 몇 가지가 있으며, 만약 그 작품들도 주역이 유학을 간다면 나는 이것을 나르닥 유학효과라고 명명할 것이다. 앞으로 나르닥을 일러로 쓸 때는 조심해. 어느 새 네가 만든 커플이 유학으로 찢어지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아, 뭐 이건 개소리다.
하지만, 이말은 좀 해야겠다. 작가들, 그렇게 창의력이 없나? 아니 그 전에, 유학이 귀양이야? 왜 이별을 표현하는 모든 방법을 유학으로 때우는 건데? 이대로 가다간 '유학'이 엔하위키에 클리셰 항목에 올라오게 생겼다고. 일상물이면 유학을 보내야 한다가 무슨 법칙으로 잡힌건가? 아니면 이것저것 소재를 건들다가 쓸 게 없어서 결국 유학을 쓰게 된건가? 모르겠다.
뭐가 됐든 잘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소복사는 이 유학이라는 소재를 쓴 방식이 가히 최악이었다. 처참한 억지였다. 꾸준히 평을 쓰다가 3권에선 갸우뚱했고 4권에서 유학이 나왔을 때는 차마 기분이 잡쳐서 평을 쓰지를 못했다. 나름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2. 개괄적인 평가
류은가람은 정말 특이한 색을 가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감동과 교훈이 남는 글을 쓰는 거고 좀 험악하게 말하면 글에서 감성팔이를 한다. 개인적으로는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자기의 개성과 소신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소복사는 그의 첫 장편 시도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1권은 더럽게 재미없었다. 캐릭터도 평면적이고 이야기는 진부했고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더라. 그래도 주제의식만은 확고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용서) 그리고 현진과 소장의 연애가 진전되는 것. 지금, 5권에 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작가가 뭘 하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 중간의 공백기가 1년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소설을 좀 잘못 이해한건가? 1권에서 그렇게 말하던 주제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연애물이 된 것 같다만? 감성팔이를 하면 제대로 해야지 고깃집에 갔는데 야채절임과 된장국만 먹고 온 느낌이다. 그,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책에 그렇게 수없이 있던 노래와, 시와, 책 구절들은 그냥 멋있어서 넣은 게 아니겠지?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거겠지? 내가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1~5권을 옆에 갔다놓고 하나하나 분석해 보겠다.
3. 1권
이제보니 1권부터 분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1권 406페이지. 5권 252페이지. 오호라, 근데 5권과 비슷한 4권은 6500원이고 5권은 6800원. 1권은 7000원이라. 이 불합리한 가격의 이유는 뭘까? 5권에는 부록이 껴 있어서 종이값이 더 나갔다. 라고 주장해도 1권에도 부록이 붙어있었습니다만. 아니, 이제보니 2권과 3권도 별 두께에 차이가 없는데 3권은 6800원이고 2권은 6500원이다. 시드노벨의 책 가격 결정 기준이 있는 걸까? 뭔지 잘 모르겠다.
1권의 시작은. 정말 아스트랄했다. 뭘까. 5권의 에필로그와 이어지긴 하는데, 5권 에필로그를 위해서 1권 프롤로그를 그렇게 쓰느니 차라리 5권 에필로그를 바꾸겠다. 솔직히 5권 에필로그도 미친듯이 뜬금없었어.
게다가 떡밥 회수 안 한 게 있는데. 1권에서 정현진의 가정이 어머니 한 분에 아버지 두 분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이...... 건? 뭐지? 회수했던가? 정현진의 가족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적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넘어가자.
4. 2권
총 5권짜리 장편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한 권씩 책을 구성하는 것이 타당하다. 아니면 기 승 전 결 로 4권을 구성하고 5권은 마무리의 마무리를 짓는 권으로 하던가. 1권은 발단의 역을 해냈고 2권은 세계관을 넓히고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준비를 제대로 해냈다. 해낸거다. 2권은 상당히 괜찮게 나왔다. 어지간하면 이런 얘기 안 하지만 표지가 정말 최강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불쾌하고 꺼림칙한 점이 있긴 했다. 첫째로 일진을 개그나 모에의 속성으로 넣으려고 한 점. 거기까지는 상관없는데 빵셔틀까지 그런 웃음거리로 만들면 안 됐다. 게다가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꿈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엄청 현실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인데 작중의 개그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상당한 괴리감을 느낀다. 라이트 노벨이니까. 라고 하면 어떻게든 포용할 수 있지만 본인이 보기엔 소설의 질을 떨어트린 가장 큰 미스인 것 같다.
5. 3권
1년간의 공백을 가지고 돌아온 작품은 상당히 씁쓸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작중에서 처음 등장한 악역은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고, 이 작품에서 말하는 꿈이라는 것에 깊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어쨌거나 위기감을 주는 역을 한 것도 있고 작중의 모티브를 제공한 데미안에 대한 언급도 나왔고, 두 사람의 연애도 진전되었다. 이대로만 가면 완결까지는 무난하게 갈 수 있다.
6. 4권
여기서 이 작품의 '복수'는 완결이 났다. 복수란 용서. 그리고 사람이 이루려는 꿈. 다 괜찮았는데 유학은 뜬금없었다. 일단 작중에서 하늬가 무슨 꿈을 가지고 유학을 갔는지 일말의 언급도 되지 않는다. 독자들 보고 짐작해 보라는 건가? 난 모르겠다. 소장은 복수 사무소를 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5권에서 꿈을 이루고 주위 사람들과 주인공에게 당당하게 등장해 자부심을 느낄 소장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작가가 생각이 없을리가.
7. 5권
작가는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5권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4권에서 끝냈어야 했다. 5권은 총체적 난국이었고 소복사의 가치를 절반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꿈과 세상에 대한 복수, 용서, 등등을 묻는 작품이었는데 5권은 그딴 것들과 하등 상관이 없었다. 그냥 난데없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뜬금없는 삼각관계를 진행시키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연인과 지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는 연애물로 만들었다.
음, 이 삼각관계는 혹시 소장과 주인공의 관계나 세상에 대한 용서, 복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다. 아니었다. 5권은 이게 소복사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이질적인 에피소드였다. 계속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이 작품은 짧은 복수극을 넣을 만한 장면에서 넣지 않는다. 4권에서 복수가 완결이 나서 그렇다고 쳐도 중심 소재는 그거잖아. 나름대로 활용할 방법이 있었고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인데 왜 평범한 감성팔이로 이야기의 질을 떨어트리는가? 5권, 아니 궁극적으로 1~5권은 인기많고 못하는 게 없는 킹왕짱 주인공의 여자 후리는 모습을 보는 게 전부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게다가 소장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는데 갑자기 절벽 위에 핀 꽃이나 새장속의 파랑새같이 고결한 아가씨로 캐릭터가 변모했고, 소장이 무슨 일을 하려고 유학을 간 건지도 모르고, 꿈 대신 실리를 선택한 진하라던가 소장의 가족이라던가 묻혔고, 이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5권인지 아니면 그냥 번외편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래도 재밌으면 용서가 되는데 재미도 없었다. 진부했다. 그나마 한국적인 느낌이 들어가 있는 정도였다. 대체 이야기의 중심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던 소장을 어째서 5권에 와서 이야기와 분리시켜 놓은건가? 그 의미없는 삼각관계를 진행시키고 싶어서? 유학을 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연인을 기다린다. 아니, 전화기 있잖아. 그냥 서로 연락하면 되지 않나. 그렇지 않다면 나름대로 말을 덧붙이던가.
8. 총평
5권을 내지 말았어야 했어. 이게 4권 완결이었으면 정말 '나름대로 평작임' 했을텐데 뱀의 다리를 그려놓은 듯한 5권은 기분을 팍 상하게 만든다.
문장은 발전한 게 없는 것 같고 표현, 특히 개그에서 특히 강하게 들어나는 이질감, 그리고 뻔한 감성팔이는 고쳐지지를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류은가람의 개성이나 처음에 심각한 약점을 보였던 캐릭터 부분에서 크게 성장한 것 같기에 그래도 합격점을 줄 만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5권은 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