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들어가기 전에

소년, 라이트노벨을 쓰자! 는 나온 직후 바로 산 책이 아니다. 일단 한 달을 기다려 본 후, 다른 사람들의 감상글을 읽고 난 다음 사본 책이다. 그만큼 광고가 애매하긴 했다. 지뢴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이미 감상글에서 '작품은 괜찮은데 광고가 지뢰에요!'를 말하긴 했지만, 나도 한 번쯤 까고 넘어가야할 사항이라 맨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소라벨의 장르는 광고에서는 '코믹 감동 스토리'...라고 나오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시드노벨에서 요즘 장르 지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리벤지 레이디 때도 그러더니, 장르명칭을 제대로 안쓰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아무리그래도 그렇지 코믹 감동 스토리가 뭐냐?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라벨은 라이트노벨 창작론을 청춘물의 해법으로 풀어나간 소설이라 생각된다. 그래, 감동은 몰라도 코믹은 좀 아니다... 다른 럽코 작가들처럼 웃기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아니고, 웃기지도 않는데 왠 코믹.

소라벨의 스토리 또한, 광고에서 나오는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광고에서는 여자친구 때문에 라이트노벨을 써야만 한다는 식으로 무작정 얼버무리는데, 그건 아니지 않나. 여러가지 곁가지 스토리가 있지만, 소라벨의 메인 스토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호준과 이모는 마감에 맞춰 열심히 글을 쓴다. 단지 그 뿐이다.

1.메타픽션적 소설창작론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라이트노벨을 창작하는 라이트노벨이라는 구성이 상당히 내 마음에 들었다는 점이다. 작가 LR의 경험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듯, 라이트노벨을 써나가는 호준과 이모의 모습은 약간이라도 이 쪽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모습, 소설을 써내려가는 모습, 편집자에게 쫓겨 허둥대는 모습, 마감에 맞추느라 고생하는 모습... 두 주인공이 라이트노벨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메타픽션적 요소는 이 글에서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였다.

소설 창작론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모가 스스로의 노력에 대해 반성하는 장면. '작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글을 썼겠지만 결과적으로 뭔가 잘못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구절은 작가지망생으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도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껏 읽어온 소설 중에는 그런 글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런 작품이 있다. 작가의 노력은 느껴진다. 최선을 다해 썼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읽다보면 어딘가 안일하다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다. 조금만 더 퀄리티를 높였더라면, 조금만 나아갔더라면 '더 높은 곳'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수작들은 언제나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바가 무척 가슴에 울렸다. 진정한 작가라면 최선을 다하는 선에 그치면 안된다.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서도 더 나은 최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2.청춘물로서의 소라벨

액션물이라고 소설 내내 액션만 보여줄 순 없는 법. 마찬가지로 소라벨 또한 소설 내내 라이트노벨 쓰는 내용만 보여주진 않는다. 두 명의 주인공 중 이모가 창작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면 호준은 청춘 라이트노벨의 주인공 역할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만화적인 과장이나 생략 없이 무척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호준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가정형편 문제로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고, 이를 돕기 위해 노력한다. 메인스토리와 분리시켜 생각해도 그 자체로 그럭저럭 괜찮은 청춘극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청춘극이 메인스토리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소라벨의 플롯은 두 가지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호준이 이모와 함께 라이트노벨을 쓰는 메인 플롯, 또 하나는 호준이 진아와 빈과 함께 펼치는 청춘극 플롯. 이렇게 플롯이 두 방향 이상으로 나뉘는 경우, 소설 전체의 완성도는 필연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라이트노벨 중에는 방향이 다른 플롯을 작가가 완벽하게 다뤄낸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청춘극 플롯을 메인플롯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서 방향성이 다른 두 플롯을 완벽하게 조화시켜낸다. 이모와 함께 라이트노벨을 구상하던 호준은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청춘극을 적절히 소재로 사용해 러브코미디를 짜낸다. 방향성이 다른 플롯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 없이 완벽히 하나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 LR이 자신들의 창작론 경험을 적절히 소재로 사용해 라이트노벨을 써내는 메타플롯 구조와도 일치한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어떻게 라이트노벨을 써냈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3.속된 표현으로, 양반냄새.

소라벨을 읽으면서 느꼈던 세 번째 충격이었다. 이렇게나 건전한 라이트노벨이 나올 수가 있다니. 폭력도 없고 욕도 없고 모에 강조도 없고 음담패설도 없고 유행어도 없고 패러디도 없고 한국 라이트노벨이 문제점이라 지적받은 것들은 다 없다. 여성가족부에서 건전한 청소년문학으로 표창장 하나 쯤 줘도 된단 생각이 들만큼 진짜 깨끗하다. 이 소라벨이라는 라이트노벨은 청소년 문학에 가깝다면 몰라도 오타쿠나 일본 서브컬쳐와는 무척 거리가 먼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었던 점은 국어 사용. 주인공 호준은 가정교육을 얼마나 똑바로 받은건지, 은어나 속된 표현 하나 쓰는 정도로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라고 독백하며 국어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국어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는 호준이 이정도일텐데, 이 세계관에서 국어교육 똑바로 받은 녀석들은 얼마나 바른말 고운말을 쓰고 사는건지 상상이 안될 정도다! ...물론 농담이고, 라이트노벨 작가를 지망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유행어나 비속어에 빠져들지 말라'는 메세지 정도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소라벨의 이러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은 무서운 단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최근의 인터넷 유행어 중에는 '양반', 혹은 '선비'라는 표현이 있다. 고고한척 겸양을 떠는 이들을 비꼬는 단어지만, 라이트노벨의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그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일이다. 과연 이 소설은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4.결론.

빈이 이쁘요 빈이.... 보통 음충한 캐릭터는 동족 혐오 때문에 좋아하기가 쉽지 않은데, 빈이는 되게 좋더라. 빈이 이쁘요 빈이...

소라벨은 작가의 진심이 절절히 느껴지는 좋은 라이트노벨이었다. 독자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글을 볼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 놈의 광고 지뢰만 없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