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실패자들의 이야기, 좋아하십니까. 무능력자, 패배자, 낙오자, 삼류인생, 최약체, 쓰레기, 명백히 평범 이하 별 볼일 비중 없는 주인공. 어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이들이 꺾이고 부러지고 발버둥치고 좌절하는 이야기.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사족을 못 쓰게 좋아하는 편입니다.
뭐... 어째서냐고 묻는다 해도 제 취향을 일일히 분석하기도 힘들고, 많은 이유를 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간략하게 한마디로 줄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 또한 실패자이기 때문입니다. 위안, 동질감, 감정이입, 대리만족, 뭐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책, VS!!를 집어든 것도 대충 그런 이유였습니다. 전대물 세계관상 맨날 털리는 '악의 조직', 그 중에서도 '전투원'이 주인공이라는 말에 혹한거죠. 노블엔진에서 나온다는 소식이 처음 들리자마자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샀습니다.
1.
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7.5점입니다.
의외로 짠 점수라고 놀라신 분들도 있겠지요. 네, 이번에도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아서 막상 읽어보니 기대와는 달랐던 그런 경우입니다.
일단 VS!!가 사람들 평가에 맞게 우수한 작품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갑시다. 평가 좋을만 해요. 단점도 딱히 짚기 힘들고 재밌습니다. 다만 제 취향에 좀 안맞았을 뿐.
2.
가장 큰 문제가 어느 지점이었는가, 돌이켜보자면 아마 그겁니다.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임팩트'가 부족했어요. 초중반에 걸쳐진 이야기는 너무 미적지근합니다. 악의 조직 전투원들이 '히어로를 쓰러트리겠어!' 하는 것도 사실 공감이 잘 안됐어요. 실패자들이라기보단 고집불통이란 느낌이었으니까요. 중반부, 후반부 하이라이트 씬은 열혈이라 좋았지만 사실 그거 뿐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좋긴 좋아요. 하지만 그 좋은 이야기가 저한테는 와닿는 지점이 얼마 없었습니다.
3.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저한테 임팩트가 와닿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진히로인 자바워크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자바워크는 여러모로 이 소설에서 필수 불가결한 캐릭터입니다. 플롯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다 자바워크가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반부 지루하던 전개가 자바워크가 나옴으로서 타파되고, 중반부 이야기의 전환점이 되며, 결과적으로 후반부 열혈의 발화점이 됩니다.
...다만 바꿔말하면 자바워크라는 캐릭터를 빼면 이 소설에서 저한테 남는게...? <<<
4.
VS!!가 '평 좋고 판매량 좋았는데도 3권 완결'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저도 좀 놀랐습니다만 실제로 읽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것도 같았습니다. 단언컨데 VS!!는 장기 연재를 준비한 글이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VS!!는 애초에 단거리 달리기를 준비하고 완벽하게 짜여있는 글입니다. 억지로 잡아 늘렸다면 엉뚱한 수렁에 빠지거나 어딘가 뚝 끊어져버렸을지 모르죠.
거듭 말합니다만 제 타입에 안맞는다 뿐이지 VS!!는 괜찮은 작품입니다. 3권 완결로 주머니 부담도 없고, 맨날 보는 럽코 판이 지겹다 싶다면 집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VS!!는 요즘 보기 드문 열혈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