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이후의 세계 리뷰
읽고 가세요!
1. 결론만 보고 싶으면 쭉- 스크롤 돌려서 끝 쪽으로 가세요.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답니다.
2. 너무 길어서 대충 보고 싶다면, 굵은 글씨만 휙휙 읽으세요.
3. 하지만 다 읽어주는 당신이 진정 천사~♡
작가: 류세린 /일러스트레이터: Juke
회사: 노블엔진 /장르: 러브 코미디
가격: 6500원 /페이지: 약 400
0.
감상을 하기 전에 밝혀 두자면, 저는 러브 코미디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최근에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나 ‘나는 친구가 적다’ 같은 것에 관심을 두기는 합니다만. 아직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제 라이트 노벨 책장은 ‘트리니티 블러드’나 ‘종말의 크로니클’, ‘오라전대’ 같은 걸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책장은 SF와 하드커버, 사회 문화 관련 책이 놓여 있죠. 김훈 느님의 소설이나, 본 아이덴티티 같은 스릴러, 그리고 홍위병이나 티베트 이야기 같은 역사책, 화염조선이나 기드온의 스파이 같은 밀리터리가 지금 눈앞에 있네요. 로맨스랑 러브 코미디는 거의 없어요.
위와 같은, 그런 특성의 사람이 아래의 감상을 썼음을 밝힙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오늘의 소설, ‘엔딩 이후의 세계(줄여서 엔이세)’도 노블엔진 대상 작품이 아니었으면 사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대상이잖아요? 난 이미 궁금해졌어요. 그럼 질러야죠. 호기심은 세계 멸망의 원인입니다. (ex. 판도라의 상자) 암요.
오해는 마시기를! 저 아직도 헬기 보면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블록버스터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청소년입니다? 0.5초 뒤에는 꿈도 희망도 없는 소음 피해가 떠오르지만요.
조금 두서 없지만, 시작하죠.
1.
이 소설을 봤을 때, 저는 조금 당혹했습니다. 문체가 이상했어요. 문체가 평소에 봤던 것과는 생판 다른 녀석입니다. 품위 없는 문체라고 하면, 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느낀 바는 그랬습니다.
순문학처럼 섬세한 묘사, 잘 골라진 말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허나, 폭풍같이 뿜어져 나오는 말줄임표와 느낌표, 의성어의 향연은 조금 감당하기 힘들더군요. 마치 SKT의 가벼움과 ‘원고지 위의 마왕’이라는 소설의 문체가 합쳐진 기분이었습니다. (원마왕의 경우에는 마왕 대사 한 번에 말줄임표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껄끄러웠어요.)
정확히 어떤 기분이냐고요?
“……!! 말했잖아……!! 내가, 네까짓…… 아이템!! 그래, 필요한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끼고 다닐 뿐이었던!!”
<엔딩 이후의 세계, 382p>
이런 기분입니다.
특별히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순문학 중에서도, 저런 게 조금 있거든요. 게다가 라이트 노벨이잖습니까? 문체가 조금 별로여도, 방정맞아도 괜찮지요. 오히려 저렇게 적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품위는 없지만. 아름답지도 않지만. 훨씬 머리에 잘 박히거든요. 확실히 읽기 쉬웠습니다. 2시간도 안 돼서 400p를 다 읽은 것 같군요.
하지만 오글거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라이트 노벨을 잘 안 읽던 사람이 읽기에는 조금 버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라이트 노벨 분위기 자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그래도 좀 지나치다 싶군요.
2.
근데 라이트 노벨에서 중요한 건 문체가 아닙니다. 최소한 다른 장르에 비하면 그 요구하는 수준이 낮지요.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겁니다.
라이트 노벨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히로인 아닙니까!
하루히 같은, 그런 꿈과 희망이 넘치는 깽판!
미얄 같은, 그런 음흉하고 귀여운 로리!
고로 이 소설에서도 히로인인 맥거핀이 가장 중요하죠.
일단 로리입니다. 귀엽죠. 상큼하죠. 거기다가 드문 편인 괴짜 과학자 히로인! 게다가 제 취향인 개털 머리 아가씨! 실험 가운 노출도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아름다웁니까! 머리카락에 전선 꼽고 나풀거리는 그 자태를 생각해보세요!
내 비록 누님파였던 사람이지만. 그래도 찬양하렵니다. 빛나지 않습니까? 현실에서 백금발 소녀를 본 이후로. 나는 로리가 뭔지 알아 버렸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 로리 캐릭터는 무지하게 마음에 들어요.
고로 난 외칩니다.
“맥거핀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일러스트 속에서! 나와 함께-!”
뭔 개소리냐고요? 전 지금 개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소설에서 맥거핀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맥거핀이 표지에 있지만. 맥거핀이 메인 히로인이지만. 나오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뒤에 50p 정도만 잠깐 나오고 사라져요. 50p도 안 되는 것 같네요.
그래요. 이건 사기입니다. 많은 분들이 맥거핀을 보고 샀을 겁니다. 맥거핀의 로리로리하고 귀여운 자태에 산 사람, 분명 꽤 될 겁니다.
근데 없어요.
다른 캐릭터는 비중이 많은데.
맥거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이건 독자에 대한 우롱입니다.
(이거 광고부를 테러해야 하는 거야, 작가를 테러해야 하는 거야? 둘 다? 비료 폭탄?)
아아, 님은 가셨습니다. 일러스트에서만 잠깐 그 아리따운 자태를 비추시고는.
맥거핀의 향기로운 자태를 묘사한 분량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사서 다음 권이 나와, 맥거핀이 움직이게 해줘야 합니다! 기회를 한 번 더 줘야 한다고요! 설마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 나오는 인덱스처럼 공기가-
그래서 여기까지만 듣자면. 이 소설은 최악입니다.
히로인이 없는 소설이 이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라이트 노벨의 기본조차 되지 않은 거에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맥거핀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대한 부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캐릭터 운용이 상당히 괜찮아요. 물론 일러스트레이터가 ‘나와 호랑이님’이나 ‘나는 친구가 적다’처럼 괴물이 아니라서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매력적이에요.
우리 가슴 짱 좋은 (몰캉몰캉하고 빵빵하게 심성이 좋다는 소리일 겁니다, 아마.) 위대한 누님. 츤츤 거리는 (사실은 진성 S인) 소꿉친구, 도벽이 있는 유쾌한 (사실은 정서 불안 같지만) 괴도, 그리고 소설 내 라스트 보스급인 (진히로인) 얀데레 소녀까지. 말 그대로 엔딩 이전에 있을 법한 대표 캐릭터들이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내는 맛은 상당히 괜찮습니다.
캐릭터 운용을 잘 했달까요?
책 한 권에 캐릭터를 너무 많이 때려 부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3.
소재도 퍽 잘 살린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소설의 주제가
-하렘을 만들지 맙시다. 미소녀는 하나면 족해요.
인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하렘을 짰을 때 느낄만한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더군요. ‘2시의 데이트’ 같이 말이죠. 그래서 초반의 몰입도는 상당했습니다. 초판부터 주인공에게 주어진 시련이 장난이 아닙니다. 여자에 의한 고난이 뭔지 보여 주지요.
그래서 웃긴 게 상당합니다.
공감도 상당했어요. 모두 다 양판소 하나 정도는 잡아보지 않았습니까? 10권, 20권 하는 그 기나긴 스토리들. 그런 기초에서 포인트를 잘 잡더군요.
이걸 중반에 계속 이어줍니다. 그리고 라스트 보스까지 미친듯 타고 올라가죠. 그래서 중간까지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대상 먹은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물론 주인공이 지나치게 변태라는 점. 스토리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점. 등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만. 조금 유치한 거야 괜찮지 않습니까? 이건 라이트 노벨이라고요! 그런 건 충분히 용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딩 문제는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 엔딩 하나로, 저는 이 소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됐습니다.
대놓고 말하면 스포일러이니 몇 가지 예시를 들겠습니다.
기욤 뮈소의 ‘종이 여자’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기억하기로는 2011년도 초반에 베스트셀러를 먹었죠,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요. 로맨스 작품이었는데, 그 엔딩이 조금 묘합니다.
전체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사랑하는 여인, 돈, 작업 의욕까지 모두 소설가에게, 소설 속의 여주인공과 똑같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설정 하나하나 전부 똑같아요. 그녀와 갈등하고 사랑하며, 소설가는 슬럼프를 극복합니다. 그 사이에 원고가 날아가고, 돈이 떨어지는 등의 여러 사태가 발생하죠. 여하튼, 원고가 완성 되면서, 빌리는 죽어갑니다. 이야기가 중단 돼서 현실에 떨어졌는데,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면 그 이야기 속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야기가 완성된 날, 종이 여자는 사라집니다.
아릿하게요. 짠하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알고 보니 모두 훼이크. 편집자인 친구가 소설의 여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데려와 훈련을 시키고 주인공을 위로한 것 뿐이었습니다. 중간에 잉크를 토한 거고 뭐고 다 훼이크.
막판에 여주인공과 주인공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죠.
물론 저게 좋다고 할 사람 많습니다. 해피엔딩 좋은 거죠. 예. 문제는 저렇게 하면서 아래 위로 모든 인과관계를 다 깨먹었다는 겁니다.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면 도저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엔딩 이후의 세계는 그런 엔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피엔딩이라서 보기는 좋습니다. 하지만 말은 좀 안 돼요. 소설의 견고함을 해쳤습니다.
사실 그것뿐이라면 넘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해피엔딩을 위한 다소 간의 희생. 그건 괜찮잖아요?
그런데, 하나 더 있습니다.
이것도 예시를 들어보죠.
류은가람 작, 소나기 x 소나기.
작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재는 사람들이 거의 사지 않는 작품이고, 읽을 만한 사람은 다 읽었으므로 엔딩을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여주인공은 알고 보니 환상 속에 자기를 가둔 것이었다. 웃지 않던 남주인공은 알고 보니 얼굴이 굳는 병에 걸린 것이었다.
(스토리가 좀 적기 귀찮아서 앞뒤 다 짜른...;;)
조금 신파극 같은, 지나치게 있을 법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니’가 지나치게 많아서, 아침드라마 같다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사실 엔딩이 저 위의 예와는 성질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대충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화려한 초중반에 비해 기대하던 만큼의 출력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논리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막상 가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납득하기에는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의 반전.
억지로 만든 기분의 해피엔딩.
그리고 이 엔딩이 제게 준 여파는 상당했습니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수작’이 ‘그냥 꽤 괜찮은 소설’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자고로 잘 쓴 러브 코미디라 하면. 아니, 할리우드 영화이던, 일본 소설이던, 한국 시트콤이던 뭐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처음에는 웃기고 막판에는 감동을 줘서 멋지게 끝내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런데 저 위의 두 가지 덕에. 공감이 깨졌습니다. 공감에서 작위적이고 억지인 기분이 나오니, 산통을 깨버리는 기분이더군요.
조금 사납게 말하자면 실패했어요.
물론 저 위의 ‘소나기 x 소나기’가 그렇듯, 이런 엔딩을 좋아하는 분이 많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초중반의 흥미를 반감시켰습니다.
고로 제게 이 소설은 흔히 말하는 용두사미였습니다.
(네타 안하려고 예시를 들었는데. 힘들군요. 남자에게 참 좋은데. 뭐라 말로 표현은 못하겠고. 답답하네.)
4.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결론: 다 피지 못한 꽃 같은 글.
이 작가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라이트 노벨이라는 점 때문에 문체를 넘어가주면, 썩 괜찮았습니다. 솔직히 중반까지는 뒤가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았거든요. 그만큼 던진 떡밥의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각각의 장면은, 조금은 급하게 쓴 기분이 나기는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허나 뒷마무리가 엉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만약 2권이 나온다면, 난 이걸 사고 말겠죠. 이번에는 분명 수작일 거야! 하면서.
그런 희망을 줄 수 있는 작가였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취향을 가진 녀석에게 그런 희망을 준 작품은.
정말이지 오래간만이군요.
조금 쓸데없는 훈수를 두자면.
어떤 공모전이든 1회차는 성적이 별로라고들 합니다. 시드노벨 때도 그랬고. 1억 원이 걸렸던 조선일보 판타지 공모전 때도 그랬죠. 더욱이 그게 기존 장르가 아닌 새로이 자라나는 장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고로, 속는 샘 치고 한 번 믿어보지요.
이미 십 수 번 다른 출판사, 공모전, 광고에 속아왔으니.
한 번 더 속는다고 별 문제 없을 것 같거든요.
5.
잡담:
1. 근데 저는 22권짜리 원래 시리즈가 더 읽고 싶어요. 오라전대라도 빨리 나와야 할텐데. 한국판타지는 3권부터다! 라는 것을 신봉하며 기다리는 중 입니다. 헠헠헠헠, 마리 짱, 아름답다능.
2. 간만에 엄청 열심히 적은 기분입니다. 솔직히 저도 한 번쯤은 리뷰해서 상 타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보니 그게 될 지 좀 의문이기는 합니다만.
게다가 찬양을 안 했으니....GG
-이상 제 조촐한 감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매에 참고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분량 약 6000자. 소요 기간, 3일.
주의: 단지 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한 것이므로 태클이나 조언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건 논쟁을 낳고, 서로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싸우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래도 난 당신에게 꼭 한 마디 해야겠다! 이러시면 ‘쪽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만들었으면 써야지 않겠습니까! (덧글 쓰는 곳이 논쟁의 장이 되면 전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예의 있는 짤방
-에헤라디야~
시드노벨에 올린 리뷰 링크 : http://www.seednovel.com/pb/202750
-현직 작가한테 '일타이피'라고 까였습니다.
(류모씨 =류은가람. 소나기 x 소나기. > 슬퍼요.)
덧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