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
+ 일체의 낭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치밀한 이야기 구조
+ 한국형 범죄 영화를 연상케 하는 구수한 입담과 사회풍자
+ 헐리우드 범죄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개성있고 유쾌한 사건들
+ 잽, 잽, 어퍼컷으로 이어지는 반전의 묘미
+ 역대 학원도시 중에서 가장 실제로 있을 법한 느낌의 배경
+ 선도부 듀엣을 포함, 때론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들의 개그만담

단점
- 이야기를 향해 달리느라 약해진 캐릭터의 매력어필
- 사회풍자, 범죄영화식 문법, 다소 복잡한 사건 전개 과정 등 주 독자층에게 어필하기 쉽지 않은 호불호 요소들
- 굳이 고등학생이어야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성인지향

결론
= 치밀한 전개와 꼬일대로 꼬인 반전을 거듭한 끝에 맞이하는 기분좋은 뒷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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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엔진 창간작 중 한 작품을 맡았던 보르자의 스타일리쉬 스쿨 서스펜스 군상극. 을 빙자한 모략과 담합과 배신의 한국형 사적구제 범죄물.

수십개의 초중고가 합쳐진 거대 연합체와 무제한에 가까운 학생 자치권이라는 익숙한 학원도시 설정을 모형정원 삼아 비리와 부패가 판을 치는 한국사회를 그대로 그려낸 풍자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1학년 시절, 정의의 사도병이 도진 선도부원으로서 무고한 소녀를 도와 연줄투성이 부자 학생을 상대로 무리한 법정 투쟁을 계속하다 소녀를 상처입히고 자신 역시 모든 것을 다 잃고 폐인이 된 주인공이, 복직을 미끼로 삼은 부패 선도지부장을 도와 크게 한탕 벌일 예정인 교내 범죄조직에 위장잠입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관이나 발단 스토리만 봐도 그렇듯이 본 작품의 첫 인상은 소설이라기 보단 영화, 고등학생이라기 보단 그 탈을 쓴 성인 사회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준다.

작품 내에선 자기보다 높은 자에겐 한없이 낮아지고, 낮은 자에겐 한없이 잔인해지고, 같은 위치에 있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 이용해 먹고 버릴 생각인 전형적인 부패 공무원 스타일의 캐릭터가 무척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말투마저 남학생과 여학생을 가릴 것 없이 마치 4,50대 아저씨들이나 쓸법한 걸쭉한 욕설과 담합 용어가 쉴틈없이 튀어나오는 점이 당혹스러웠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꽤 신선했다.

"어허, 사람이 경우가 없어." 나 "살펴 들어가십시오" 같은 전형적인 오야지 전매특허 대사를 굳이 포니테일 소녀 같은 캐릭터들이 사용하곤 하는 것은 '이 터무니 없는 배경도 결국 한국이다.' '관료화되고 권력의 단맛이 꼬이는 바닥은 어디나 똑같아 진다.'라는 살짝 삐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이 범죄와의 전쟁이나 사생결단 같은 한국 범죄영화가 연상되는 부분이라면, 큰 한탕을 위해 서로 속을 모르는 범죄자들이 모여 교무실이란 이름의 은행을 털이해나가는 과정은 오션스 시리즈 혹은 다크나이트의 초반 시퀀스가 연상되었다.

이런 작품의 독특한 영화적 문법과 사회풍자 요소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소하고 또 매력적이지만, 과연 성인이 아닌 십대 주 독자층도 이런 걸쭉한 분위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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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범죄물로서의 스토리 구조는 상당히 탄탄하다.

파더라는 익명의 거물 범죄자를 잡기위해 나서는 선도부를 포함해 학생부, 00부 등 거대 권력기관 사이의 알력과 암투. 그리고 누구 하나 신뢰하기 힘든 모략과 배반 속에서 몇 번이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로 잰듯 촘촘하고 낭비없는 전개로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결말을 향해 착실히 나아간다.

인물 사건 배경 등 모든 요소가 이야기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녹아들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동안 독자에겐 거의 쉴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대사와 행동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간 전개를 미처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독해 난이도가 높지만, 대신 이를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근사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더럽고 치사한 음모가 판을 치는 배경 속이기에 멍청한 구호 같이 보였던 권선징악과 뜻하지도 않았던 사적구제가 이뤄질 때의 쾌감은 더욱 각별하다.

이런 저런 요소가 있긴 하지만 단지 잘 만든 한편의 이야기라는 점 만으로도 본 작품의 재미 포인트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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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추진력을 위해 모에 어필 기회를 거의 다 빼앗긴 캐릭터는 대신에 한 마디도 흘려들을 수 없는 뼈 있고 위트 있는 대사와 예측하기 힘들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는 행동거지로 자신들의 존재를 빛낸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툭툭 던지듯 나오는 개그와 만담 역시 재미 요소다. 특히 팀의 개그를 책임지기 위해 등장한 선도부원 2인조의 커플만담은 비굴하고 삐딱한 테이스트가 여러모로 최고다.


다만 굳이 여성 캐릭터여야 했을 이유도 별로 없을 정도로 러브 코미디 요소는 전멸에 가깝고, 처음 접할때는 좀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부패한 성인의 말투가 곧잘 튀어 나오는데다가, 마지막까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모를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기에 달착지근한 부분은 아예 처음부터 기대를 접는 편이 좋다.

일 관계 이외의 감정의 교류도 없고, 클라이맥스 역시 감정보단 철저히 계획과 이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만큼 가슴이 요동치는 감동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다.

대신 클라이맥스에 가까워질수록 이 캐릭터 저 캐릭터를 넘나들며 오밀조밀하게 펼쳐지는 군상극으로서의 면모는 수준급이며, 누구하나 쩌리가 되는 일 없이 각자의 개성이 워낙 뚜렷하기에 다른 의미에서 모에가 느껴지기도 하는 점이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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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올해 읽은 작품들 중에선 가장 머리 아프지만 완벽에 가까운 플롯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단지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서 계속 읽게 만드는 서사의 힘은 근래의 여타 캐릭터 중심의 작품에선 느끼기 힘든 고풍스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소학명 등 다른 작품들과 함께 이제 적어도 이야기 구조의 완성도 면에 있어선 노엔이란 레이블을 믿고 살 수 있으리란 믿음도 어느정도 생겼다.

워낙 깔끔하게 마무리가 된 만큼 후속권이 나올지 차기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에선 히로인 캐릭터들에게 좀 더 스토리적으로 무의미한 여유를 주어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여동생 하나는 품고 있으니까. 당신의 여동생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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