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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 설문조사 - <포춘 하모니> 인기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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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14-05-30 23:52
 
 

어제, 그러니까 21일은 내 기준으로는 언제나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 집이 있는 녀석들이야 며칠 전부터 짐을 싸서 돌아가 버렸기에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라고는 해도 거리는 한산하고, 도서관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두셋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가방을 챙겨서 돌아갔고, 아무래도 2층 전체에 남은 사람은 나 하나뿐인 듯싶었다.

그래서 나는 후드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것이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취향이란 것 역시 알고는 있다. 실제로 감기 때문에 일주일이 넘게 고생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고. 하지만 이렇게 피부로 추적거리는 비를 느끼며 매끈한 바닥에 튀기는 빗물방울의 소리를 듣는 행위에는 뭐라 표현할 길 없이 안심을 주는 면이 있었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쭉 걷다가, 해혜대교 북단 전망대에 잠시 들러서 강이 숨 쉬듯 출렁이며 빗물을 들이키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언제나 조심성 없이 우산을 버려두는 사람이야 차고 넘치기에 우산이야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겨울비치고는 그렇게 차갑지 않고 해서 발이 시려운 점을 빼면 제법 견딜만한 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계속 내려가 버클리와 생화학동이 마주보고 있는 대로에 도달했을 즈음에 비가 멎었다. 근처에서 만두로 점심을 때우고, 간단히 파트타임을 뛸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지도를 불러오자 시야에 들어오는 축적도 안이 느낌표 표시로 빈틈없이 메꿔진 것이 보였다. , 다들 집에 가서 그런지 일자리가 넘쳐나는군.

 

잠시 고민하며 근방의 공원에서 돌아다니다가, 로제너 빌딩에 있는 우편집중국에서 분류업무를 하며 대강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기계화가 잘 되어있다곤 하지만 사람 손길이 아예 필요 없는 분야는 아직은 적어서, 수취인과 주소지가 그림 그리듯 괴발개발 적혀진 우편과 소포들이 제법 쌓여있었다. 물론 국내 우편이야 전부 전산으로 처리되니 글씨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으면 부치지도 못하지만(그 이전에 종이로 된 우편은 한국에선 거의 붉은색 등급의 멸종위기종 취급을 받지만), 네트워크 전사필기도구가 그다지 보급되지 않은 곳에서 온 국제우편 중에는 아직 손글씨로 부쳐진 것이 간간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 것들도 대부분은 스캐너를 긁으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문자인식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 창고에 쌓인 채로 가련하게 알바생의 손길을 기다리는 부류가 있었다. 예컨대 타이 문자라던가. 태국어나 아랍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에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일 자체는 해독하는 작업이 아니라 대조하는 작업에 가까워서 결국 보관된 우편물의 칠할 정도는 해치울 수 있었다. 나머지 일부에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악필이나, 어떤 필기체와 대조해봐도 파악할 수 없었던 문자가 여럿 섞여있는 우편물, 그리고 DB를 다 뒤져봐도 어느 언어인지조차 알지 못한 의문의 택배상자 따위가 있었다. , 이 정도면 받은 돈 만큼은 일한 셈이고, 나머지는 우편관리부 부원들이 설을 쇠고 돌아와서 해결할 문제다.

 

해서 일을 마무리하고 나오자 겨울 해는 벌써 저물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오후에 비가 한 차례 더 왔는지 바닥 이곳저곳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온 김에 길가를 따라 잠시 걸으며 인적없는 거리와 휘황찬란하게 밝혀진 고층건물들을 감상할까 싶기도 했지만 날씨가 생각 이상으로 추웠다. 뭔가 따뜻한 음식을 먹을까 생각하며 제일 가까운 생물학부 중앙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기자,

도서관이 닫혀 있었다.

전력난이란 단어가 사어가 된 지 오래임을 증명하듯 유리벽에서, 가로등에서, 심지어 도로조차도 온 몸으로 빛을 뿌려대는 학교의 야경 가운데 완전히 어두워진 채로 멈춰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문 주변에는 온통 출입저지용 띠가 둘러쳐졌고 문짝에는 노란 바탕 검은 스트라이프의 스티커가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출입금지 범죄수사중

대체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밀리고 쌓인 과제에 짓눌려 설 연휴 전날까지 학교에 남은 불쌍한 영혼들끼리 유혈이 난무하는 다툼이라도 했던 것인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실내를 들여다봤지만 적어도 1층 로비에는 아무 분쟁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주말을 낀 장장 5일의 연휴이고 마침 대부분의 학과가 한가한 시기여서 말 그대로 학교가 텅 빈 상태인데 저런 사건이 벌어진 것도 의아한 일이었지만, 점점 싸늘해지는 기온에 비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이 일대에서 휴게시설을 갖춘 건물은 전부 꿰고 있으니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낮에 비를 맞은 탓인지 몸에 오한이 돌고 약간의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찬비를 맞고 감기에 걸리는 거야 해가 지면 밤이 오는 것만큼이나 명약관화한 일이지만 사람의 행실이 전부 마음먹는 대로 바뀐다면 내가 이러고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까? 단지 자신의 멍청함 외에는 탓할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고통을 배가했다. 아니, 뭐라고 잘난체하는 거람, 이 얼빠진 인간이.

열이 올라 얼떨떨한 정신으로도 햇빛이 거의 잦아들고 냉기가 감도는 것을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라면 3블록 북쪽의 컴퓨팅센터 부설 아카이브일 것이지만, 이 와중에도 택시를 타거나 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도보로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가급적 걸어가는 것 역시 내 쓸데없는 고집의 하나였다바로 옆의 신축 연구센터에 들어갔다. 뭔가 거창한 이름이 붙은 6개 단지, 80여 층의 학과간 조인트 클러스터인데, 기억하기로는 작년 연말에 A동이 우선적으로 완공되어 개장했다던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내부는 텅 비어서 어지간해선 한군데쯤 갖춰두는 휴식공간 따위도 마땅히 없었다. 개장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거의 사람이 없는 듯, 로비의 드높은 벽면을 수직으로 가득 채운 안내 패널에 채워진 네임플레이트는 달랑 두 개였다. 시야와 사고가 온통 흐릿한 채로, 승강기를 타고 이름칸이 채워진 층으로 올라갔다. 60층을 훌쩍 넘기는 높이인데도 표시계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말 그대로 순식간에 도착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요즘 유행하는 무접점식 엘리베이터이거나 아니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감기가 생각 이상으로 심하게 들린 것 같았다. 이제 일부러 비 맞는 짓은 진짜로 그만 둬야지, 하고 몇 번이나 고통에 잠겨 다짐한 것을 다시 떠올렸다.

 

그 뒤로는 뭐, 굳이 말할 것까지도 없다. 67층은 동편이 회의실과 연구실, 서편이 복도식으로 된 사무실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뉴스에도 났었는지 뇌신경공조 인공지능 어쩌구 하는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 현관 홀에이 경우엔 엘리베이터 홀에걸려있었다. 지금은 소 무슨 박사라는 사람만 쓰는지 사무실은 맨 앞의 한 개만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한쪽 실험실엔 제법 비싸 보이는 장비들이 포장도 풀리지 않은 박스 채로 대충 늘어선 채였고, 반대편 실험실에는 그보다 훨씬 비싸고 커다란 실험장치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다른 방들은 전부 손댄 흔적조차 없이 휑했다. 박사님의 방에는 얼핏 봐도 상당히 푹신해 보이는 소파도 놓여 있는데다 문조차 잠겨있지 않았지만, 일단 무단침입한 입장이고 해서 시선을 돌렸다. 온통 조명이 휘황찬란하게 켜져 있었지만 그야 학교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사용하지 않는 사무실들은 기본적인 빌트인 책상과 책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양새였다. 다행히 등받이가 눕혀지는 형태의 의자였기에, 다행이다 싶어서 그대로 발을 뻗고, 코트를 덮고 잠을 잤다. 이곳 주인양반도 집에 갔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1호실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그래서 그런 얘길 믿으라고?”

매드 사이언티스트(추정연령 17)는 턱을 당기고는 비난하는 어조로 속사포처럼 쏘아올렸다.

지금 나한테 분명한 건 말이지, 내가 어젯밤에 기숙사 방에 돌아가니 누가 뒤지고 간 것처럼 쑥대밭이 돼있었단 거야, 그러니까, 원래부터 쑥대밭이긴 했는데, 내 말은, 내 생활습관에서 기인한 환경하고는 달랐어.”

라고 한 호흡 만에 내뱉고는, 다시 숨을 들이쉬더니,

사실은 거의 눈치를 못 챌 뻔 했는데,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신장이 165cm를 넘지는 않을 거야, 쓰레기더미를 헤치지 않고 거실 찬장에 닿지 못하는 키였던 건 확실하거든. 그래서 그치가 방에 쌓아놓은 쓰레기 탑을 허물어놓고 가버렸지 뭐야!”

나도 노숙자 신세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기 방에 쓰레기로 탑을 쌓는 여자와는 얽히고 싶지 않다……. 그보다 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미지의 괴도로 하여금 6개월 징계감이 분명한 행위에 도전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저기, 잘 못 알아듣겠으니까 좀 천천히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 얘기대로면 도둑이 든 건 집이지 오피스나 랩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반문하자, 소녀는 입을 다물고 옆으로 비켜섰다. 창가로부터 아침 햇빛의 직격을 받아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사무실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전경을 둘러보자 상당히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령, 주변에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서적, 집기와 참고자료 따위를 통해 보건대 우리 현행범께서는 전공이 두 개 이상인 것 같았다. 하나는 프로그래밍 쪽, 다른 하나는 뇌 아니면 신경생리학 쪽이겠군. 이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 평양에서 몇 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조합이 나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큰길에서 돌멩이를 던지면 반수는 박사학위자 머리에 맞는 도시니만큼 박사학위가 적어도 하나는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녀는 아마 이 방의 주인일 것이다. 척 보기에 상주하는 조교가 있을법한 가구배치가 아니니까. 아니이 어휘선정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 것 같다. 드넓은 방에 그 흔한 탁자나 책꽂이 같은 것도 없고 그저 기본사양인 책상과 의자, 그리고 어디에서 주워왔는지 모를 너덜너덜하고 삐걱대는 소파 하나만 덜렁 있으니까. 그리고 아마 그녀가 그 박사님이라면 상당히 전도유망한 인물일 것이다. 그 점은 이런 신축건물에 헤드쿼터 오피스를 배당받았단 사실로 증명할 수 있다. 뭔가 억대 자금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 명패가 걸려있는데,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맨 앞에 걸고 나선다면 그 분야에서 제법 잘났다는 소리겠지. 이곳 학교는 파벌다툼이나 교내정치 따위가 발생할법한 환경이 못 된다.

 

시간은 아침 820, 창밖에는 대동강이 햇살을 튕기는 중이었다. 현행범 씨는 잔뜩 어지럽혀진 방 안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듯싶었다. 자세히 보니 좀 전에 내 얼굴에 잔뜩 치덕거린 문제의 연고를 들고 있었다. 박사는 처음에 꺼냈던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를 한참 동안 찾아 헤메다가, 결국 포기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연고가 든 캔을 그냥 실험복 주머니에 쑤셔 넣은 참이었다. 저거 기억력 왜 저렇게 나쁘대.

인체실험 건은 해결됐고,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그런 용어로 표현하지 마세요! 그리고 뭐가 이상하단 거에요!”

박사는 내 항변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뭐야, 이상한 점을 못 느낀 거야?”

그야…… 책이란 책은 다 바닥에 떨어져 있고, 저쪽 밑에 널브러진 물건들은 아마 책상 위에 있었던 것 아닐까요.”

말 그대로 이런저런 집기들이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 장식용 조명의 취급처럼 대충 뒤엉킨 채로 책상 아래쪽 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 ! 보라고! 어젯밤에 집에 들렀다가 누가 침입한 흔적을 보고 바로 달려왔는데 사무실도 누가 털어갔다고! 실험실도! B실 실험장비 포장도 다 끌러놨다고! 내가 얼마나 저거 박스를 뜯어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 바로 엊저녁에 배송온건데! 으아아아!”

어쩐지 박스 윗면만 전부 열려있더라…….

그래서 뭐가 사라졌길래 그렇게 호들갑인건지나 알려주세요, .”

박사는 갑자기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음산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래, 너한테는 들어야 할 얘기가 많지.”

그리곤 주머니에서 길고 가느다란 금속 핀 형태의 물건을 꺼냈다.

아주 많아.”

 
+ 작가의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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